• 최종편집 2024-04-17(수)
 
■ 김철균

2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문영이는 늘 수심에 잠겨있던 지난날과는 달리 활달한 모습을 보이었다. 자신을 낳은 친 어머니는 없지만 자신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새로운 조선족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는 영애를 비롯한 순자네 자식들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알고 보니 순자의 딸들 역시 착하고 친절했으며 문영이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자매들이었고 점점 나날이 지나면서 오빠들 또한 모두 점잖고 유식했으며 동정심도 많은 형제들이었다.

문영이는 일요일마다 “북해상점”에 와서 순자와 어울려 때로는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상점옆에 있는 영옥이네 집에 들어가 영옥이네 아들애와 함께 놀아주기도 했다.

한편 문영이는 순자의 일을 거들어주면서 김치와 장을 담그는 재간과 기타 주방일을 배웠다. 일이란 내켜서 하는 것이라 재미있기 마련이었고 문영이는 열심히 조선족주방일을 배웠으며 얼마 안있어서는 제법 조선족 여성에 못지 않게 주방일을 척척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담근 김치도 제법 맛있다는 평가를 받아보기도 하였다.

문영이가 기뻐하며 기를 펴고 나다니자 이를 바라보는 순자의 마음 또한 흐뭇하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순자의 남편 김용환 교원도 상점에서 문영이를 만나보고는 자신도 어렵게 자라면서 공부를 해온터라 문영이에 대해 진정으로 아껴주면서 친딸처럼 대했다.
그 해 겨울방학이 되자 문영이는 연길을 떠나 돈화에 있는 아버지의 곁으로 가게 되었다. 순자의 곁에 있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 더 편하고 행복할 수도 있었지만 문영이는 가야만 했다. 방학기간만이라도 장애자인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문영이를 돈화로 보내는 것 이는 또한 순자의 뜻이기도 했다.

문영이가 떠날 때 순자는 과자, 사탕, 과일, 술 등 먹을 것을 한아름이나 사서 문영의 가방안에 넣어 보냈다. 어쩔 수 없이 문영이를 돈화의 시골로 보내긴 했지만 이는 가슴의 살을 도려내듯 저리고 아픈 노릇이었다.

아니나 다를가 문영이가 떠난 이튿날부터 순자는 문영이에 대한 근심으로 끙끙 속을 앓으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돈화의 농촌은 이곳 연길보다 많이 더 춥겠는데 얘가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았는지?…얘 영순아, 문영이가 무사히 도착했는지 또 앓지나 않는지 전보라도 한통 쳐보려므나.”

“어머니, 우리가 자랄 때는 막 굴러다니며 자라게 하더니 이번에 한족딸을 삼으니 제법 정성이 지극하구만요.”

큰 딸 영순이의 악의없는 농담에 순자는 제법 정색을 했다.

“너희들 그렇게 생각하면 못쓴다. 걔는 에미가 없는 애란다. 너희들과는 달라. 너희들도 걔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

“알겠습니다. 한족딸의 어머니, 이 조선족딸들은 그 영을 받들어 따르겠나이다.”

막내 딸 영애도 한술 더 뜨며 말참견을 했다.

“에끼, 이것들 너희들도 자식을 키워보면서 그것도 몰라?”

순자 역시 악의없이 딸들을 흘겨보았다.

그러면서도 순자의 뇌리속에는 문영이에 대한 근심뿐, 요즘 세월처럼 전화 한통이라도 할 수도 없었고 다만 편지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
어느 덧 음력설과 정월보름이 지나고 위생학교 울안의 백양나무에 까치가 앉아서 우는가 싶더니 개학을 앞둔 어느 날 문영이가 나타났다.

“어머니!”

“문영아!…”

모녀는 대뜸 한덩어리가 되었다.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

“문영아, 나도 그랬어. 나도 네가 보고 싶어 죽는줄 알았다.”

모녀는 다시 한덩어리가 되었다.

이윽고 문영이의 손을 잡아보는 순간 순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구, 네 이 손이 뭐냐?”

그도 그럴 것이 문영이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거웠고 손등은 얼기설기 갈라터지기까지 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집에 가있는 동안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 찬물에 밥을 하고 빨래하고 하면서 무척 고생한 것이 분명했다.

순자는 문영이의 언손을 가슴속에 꼭 품어 주었다. 순자의 따뜻한 살결이 손에 닿는 순간 문영이는 뜨거운 모성애에 눈앞이 흐려났다.
 
아, 모성애란 바로 이런 것인가?!

순자의 가슴팍에 안긴 문영이는 7-8살이 어린애가 되고 싶었고 그대로 발버둥이질을 치며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으며 아니, 그대로 영영 떨어지고 싶지를 아니했다.

때마침 이들의 상봉을 알아주기라도 하는듯 당시 중국대륙에서 많이 유행되던 대만가요 “세상에는 엄마가 좋아(대만영화-‘어머니 다시 한번 더 사랑해 주세요’에서의 주제곡)”가 “북해상점”의 반도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세상에는 엄마가 좋아/ 엄마있는 아이는 보배같지요// 엄마품에 안기어 행복 끝없어라…

한편 순자와 문영이가 서로 한덩어리가 되어 있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영순이와 영애마저도 눈시울이 뜨거워나게 했다.

3

봄이 왔다. 뒤늦게 찾아오는 북국의 봄이지만 봄이 오는 것만은 분명했다. 해빛은 포근했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도 매섭지 않았으며 사람마다 봄이 좋다고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허리를 펴며 기지개를 켰다. 아니 이 시각, 자연계에 찾아오는 봄도 좋았지만 문영의 가슴에 스며드는 인생의 봄은 더욱 따뜻하고 좋았다.

봄을 맞는 마음은 순자도 마찬가지었다. 그 해는 한족딸 문영이와 인연을 맺은 뒤 맞는 봄이라서인지 더욱 즐겁기만 했다.

문영이는 자주 “북해상점”으로 찾아왔다. 또한 문영이가 오지 않으면 순자가 문영이네 기숙사로 찾아가기도 했다. 이틀만 서로 보지 못해도 그리워서 못견딜 지경이었다.

어느 덧 “3.8절”이 다가왔다. 그 날 학교에서는 오전만 수업하고 오후에는 전체 사생들을 휴식시키기로 했다. 그러자 집으로부터 용돈을 좀 넉넉히 받아쓰는 학생들은 기숙사식당의 밥은 먹지 않고 외출준비에 서둘렀다. 밖에 나가 맛있는 것도 사먹고 옷도 사입으면서 유쾌하게 “3.8절”을 쇠려고 말이다. 그러나 문영이를 비롯한 가난한 가정의 애들 몇몇은 외출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외출하는 애들이 함께 나가 식사라도 한끼를 같이 하자고 했으나 일일이 거절했다. 그 애들도 집에서 보내오는 돈을 쓰기에 남을 도우면서까지 쓰기엔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까닭없이 남의 배려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하긴 문영이는 순자네 “북해상점”으로 찾아가 맛있는 것을 얻어먹을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늘 함께 어울리던 애들을 떼놓고 혼자 가기도 미안했고 그렇다고 그 애들을 몽땅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 때 순자가 헐레벌떡 기숙사로 찾아왔다.

“문영이 있구나. 내가 좀 늦었구나. 아직 밥먹기 전이지? 오늘은 ‘3.8절’이니 상점에 가서 물만두나 빚어먹자꾸나.”

“어머니, 전 괜찮아요. 기숙사식당에도 밥이 있는데요 뭘…”

“얘, ‘3.8절’날에 왜 고독하게 기숙사식당에서 밥을 먹겠니? 자, 그러지 말고 함께 가자꾸나. 오후에 수업도 없다면서…”

“그런데…”

문영이는 함께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던 얘들을 돌아 보았다.

그러자 순자는 눈치를 인차 알아 차렸다.

“너, 저 애들 때문에 그러는구나. 그럼 저 애들도 함께 데리고 가면 될게 아니냐?!”

“어머니 정말요?…”

문영이는 기쁜 나머지 순자의 목을 끌어 안고는 볼에 입을 맞추었다.

캡처.png
▲북해상점서 한족딸 문영이와 장려(안경을 낀 사람 장려임)한테 일본어를 배워주는 김순자(흰위생복을 입은 사람 김순자임)

그 날 문영이와 몇몇 가난한 집의 자녀들은 “북해상점”에서 순자가 만들어준 물만두와 몇가지 맛있는 밑반찬과 볶음채를 먹으면서 “3.8절”을 기념했다.

음식을 다 먹자 천진난만한 여자애들은 자기네들이 보고들은 학교얘기와 기타 사생활을 화제에 올리며 웃고 떠들었다. 그와 중 어느 한 애가 학교과목 중 일본어가 배우기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에 문영이도 한마디 동조했다.

“그래 나 역시 일본어가 힘들긴 마찬가지야. 선생님들이 말하기를 발음상에서 조선족들은 일본어를 배우기가 쉽대. 한족은 영어를 배우기가 쉽고 말이야.”

순자는 설겆이를 하다가 엉결에 그 애들이 주고 받는 말을 엿들었다.

“얘 문영아, 일본어가 배우기 힘들다구?”

“그래요, 어머니. 가장 힘든 것이 일본어예요.”

“음, 그랬구나. 그럼 진작 이 엄마한테 얘기할 것이지.”

“뭐예요?! 그럼 어머니가 일본어를 배워줄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그래, 안믿어?! 이래뵈두 난 해방전 일본인이 교장하는 학교에서 전문 일본말로 대화하며 공부한 사람이란 말이다. 일본어를 모른다면 아주 섭섭한 일이지.”

“야 ㅡ 정말……”

여자애들은 탄성을 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순자가 한 말은 결코 제 자랑을 늘여놓는 것이 아니었다. 소학교 시절의 6년간 일본의 노화교육을 받았던 그는 일본어의 회화나 문자 실력이 당시 연변 내의 웬간한 일본어 교원은 뺨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로부터 순자는 상점벽에 자그마한 흑판 하나를 걸어 놓고는 문영이를 비롯한 몇몇 위생학교 학생들한테 일본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가 순자의 일본어실력은 대단했다. 한낱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여겼던 순자한테 그렇듯 놀라운 일본어 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문영이와 기타 학생들은 모두가 깜짝 놀라면서 틈만 나면 순자한테로 찾아와서 모를 것을 물어보군 하면서 열심히 일본어를 배우군 했다.

순자의 보충교수로 문영이를 비롯한 애들의 일본어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제고돼 갔다. 문영이는 순자와 자기 자신의 인생이 함께 엉키게 된데 대해 진정으로 고마움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하늘에 하느님이 있다면 문영이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배려라고 인정하고 싶기도 했다. 연변위생학교ㅡ “북해상점”ㅡ 김순자어머니ㅡ그리고…만약 자신의 인생에 연변위생학교, “북해상점”과 김순자어머니가 개입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을까 하고 문영이는 자주 반문해 보기도 했다.

한편 문영이는 조선족어머니의 사랑과 도움에 고마워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뭔가 어머니한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는 것으로 어머니가 기뻐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것이 후날 문영이가 작가로 되는 취지가 되기도 했다.

평소에 그림그리기를 즐겼고 또 어느 정도 “미술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문영이는 조선족어머니를 노래하는 첫 스타트로 “꿈속의 어머니”란 제목으로 된 그림 한장을 그렸다.

홀로 상상해서 그렸으니 어떻게 보면 이는 창작이기도 했다. 그림속에는 술병, 간장병과 기타 상품들이 있는 가운데 새하얀 위생모자를 쓴 순자가 벽에 걸린 작은 흑판을 이용하여 학생들한테 일본어를 가르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림의 수준을 떠나 그 속에는 순자에 대한 문영이의 고마움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4

“3.8절”이 지난 후 3일 뒤, 이른 봄이었지만 그날은 날씨가 제법 더웠다. 그 날 물건구입을 나갔던 순자는 행인들의 옷차림과 자신의 옷차림을 비교해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직도 겨울옷을 걸치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행인들 거의 모두가 가볍고도 환한 봄철 옷으로 단장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연길복무청사 냉면부의 출입문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더워오자 목에 갈증이 생기면서 냉면생각들이 난 모양이었다.

순간 순자는 또 문영이가 생각났다. 문영이를 보지 못한지도 사흘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기숙사밥으로 끼니를 에우며 공부를 하고 있을 문영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또 알짝지큰해났다.

순자는 문영이한테 냉면 한그릇 사먹이고 싶었다. 시계를 보니 별로 늦지는 않았다.

순자는 종종걸음으로 문영이의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에는 마침 문영이가 있었고 점심밥을 먹기 전이었다.

“문영아, 오늘 무척 덥구나. 나와 함께 냉면 한그릇씩 먹지 않을래?”

“냉면?! 어머니 저한테 냉면 사줄래요? 오케이, 야 신난다. 오늘 냉면 먹게 됐구나!”

키만 컸지 문영이는 여전히 애나 다름이 없었다. 냉면을 먹는다고 하니 그렇게 뛸듯이 좋아하는 문영이를 보며 순자는 저런 철부지를 두고 에미가 어떻게 눈을 감았느냐 싶었다. 순간 또 가슴이 뭉클해 나며 눈물이 나왔다. 하긴 기숙사생활을 오래 하노라면 어른들도 항상 속이 출출한 법이라 이는 결코 문영이가 철부지래서만이 아니었다.

미구하여 함께 복무청사 냉면부에 들어가 사람들 속을 비집고 겨우 식탁에 마주앉은 순자와 문영이ㅡ 헌데 순자는 문영의 몫으로 냉면 한그릇만을 샀다.

“어머니, 왜 한그릇만 샀어요? 어머니는요?”

“기실 난 아까 나왔던 김에 한그릇 먹었다. 미안하다. 혼자서 먹다가 그만 네생각이 나서 너한테로 간거다. 어서 먹어라.”

“그랬어요? 기실 전 안먹어도 괜찮은데…”

문영이는 순자의 말을 그냥 그대로 믿었다.

쫄깃쫄깃한 냉면오리와 시원한 냉면국물, 정신없이 맛있게 먹고 있는 문영이를 바라보는 순자의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다. 그러나 두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어머니, 울잖아요? 왜 그래요, 어머니?”

“아니다. 네가 먹는 걸 보니까 흐뭇해서 그런다. 앞으로는 냉면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 엄마한테로 오거라.”

천진한 문영이는 오늘 어머니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렇다고 점심을 굶어가며 자기한테 냉면을 사주고 있다는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 날 문영이한테 냉면을 사먹이다 보니 순자는 손님이 가장 많이 들이닥칠 점심시간에 상점문을 닫아야만 했다. 하루 매출액이 100여위안이라 할 때 점심시간에 그 50% 이상의 매출액은 그 시간에 올려야 한다는 것은 모든 상점주인들이 다 알고 있는 상업법칙이다. 그렇게 말하면 그 날 순자는 주먹구구로 아무리 적게 계산해도 70원 정도는 적게 번 셈이었고 또한 적지 않은 단골을 다른 상점에 빼앗길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가 후에 단골로  “북해상점”에 드나들던 맥주애호가 몇몇이 그 날 점심에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섰다며 섭섭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생필품을 사러 다니는 위생학교 교직원과 학생들과 그냥 길가다 찾아들어오는 행인손님들, 그 날 순자가 놓친 손님은 과연 얼마나 되였을까? 하지만 문영이한테 냉면을 사먹인 것에 대해 순자는 꼬물만치도 후회가 없었다. 아니, 자기가 문영이한테 등한히 대한 적이 있을가봐 항상 신경을 기울였으며 2-3일만 문영이를 보지 못해도 얘가 앓지나 않는가 하고 마음을 졸이군 했다.

그랬다. 순자가 문영이에 대한 사랑은 친 딸들에 대한 사랑 그 이상에 달했다. 이는 그 사랑을 직접 받고 있는 문영이 자신도 다는 알 수가 없었으니 타남들이야 그것을 알아줄리 더욱 만무했다.

사례로 한가지만은 꼭 적고 싶다.

그해의 여름, 큰 아들과 큰 며느리가 북경으로 출장갔다가 돌아오면서 순자한테 값진 양털적삼, 속내의와 신 등을 기념으로 사왔다. 이런 옷과 신 등은 평소에 순자가 별로 보지도 못하던 것들이었다. 좋은 옷을 보면 입고 싶어하는 것이 여성들의 천성이라고 할까? 순자도 마찬가지었다. 아들 며느리가 사다준 옷을 입어보고 신을 신어보고 하던 순자는 기쁘기 한량 없었다. “고진감래(苦尽甜来)”라고 자식들 효도에 이젠 복을 누리는가 싶었고 또한 옷이 날개라고 그 옷을 입으니 20년은 더 젊어 보이기도 했다. 순자는 그 옷을 입고 거울앞에서 이리 저리 비춰보기도 했다. 결혼한 뒤 수십년간 영감한테서는 이런 옷을 한번도 선물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자식한테서 이런 복을 받아 보다니 어쩐지 꿈만 같았다.

하지만 이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또 문영이가 뇌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 애는 지금 한창 피여나는 꽃나이인데 반반한 옷 한벌 없지 않은가?!)

순자는 아쉬운대로 입었던 새옷을 벗어 다시 포장했다.

순자는 문영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어느 날 그가 나타나자 아들 내외한테서 선물받은 옷을 내놓았다.

“어머니, 이게 뭔가요?”

“너 큰 오빠네 내외가 북경에 갔다가 나한테 선물로 사온 것이다. 아마도 네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다.”

그러자 문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머니, 전 받을 수 없어요. 어머니한테 선물한 것을 제가 어떻게 받아요.”

“얘, 큰 오빠가 뭐 남이냐? 그리고 기실 그 옷들이 너무 환해서 나한테는 좀 어울리지도 않는다.”

순자는 짐짓 맘에 없는 말을 했다.

순자는 막무가내로 옷과 신 등을 문영이한테 밀어맡겼다. 기실 문영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연했다. 그러면서도 짐짓 그 심정을 감추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한테서 자꾸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떡해요. 전 어머니한테 아무 것도 해드린 것이 없는데…”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앞날이 창창한데 앞으로 왜 기회가 없겠느냐! 그리고 이 엄마가 널 해주는 건 너한테서 뭘 보답받기 위해서가 절대 아니란다.”

“어머니ㅡ”

문영이는 재차 순자의 목을 끌어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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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연재】한 여인의 인생변주곡(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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