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혁 (재중동포소설가, 역사칼럼니스트)

 

30년대 상해에서의 독립운동가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 "암살"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여주인공 안옥윤의 어머니가 겪은 "간도참안"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영화 “암살”에서 톱스타 전지현이 주연한 안옥윤은 “간도참안”에서 어머니를 잃는다.


또 한 부의 의열단활동을 다룬 영화 “아나키스트” (개봉: 2000.04.29, 감독: 유영식 출연: 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이범수, 김인권)에서도 주인공 상구는 경신년 간도 대학살에서 친지를 잃고 상해로 와서 의열단에 가입한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에서도 녀주인공 정화는 역시 “간도참변”시 부모를 잃는다.

“간도참안”은 "경신참변", “경신간도학살사건”이라고도 불린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일어났던 청산리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한인사회· 항일단체. 학교· 교회 등을 초토화시켰다. 간도참변으로 한인 3,700여 명이 피살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참변으로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한인 사회 및 항일단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간도참변”중에서도 가장 비참했던 사건은 “장암동 학살사건”이다.

필자는 올해 창작한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의 앞머리에 주인공의 어머니가 겪은 간도참변에 대해 핍진하게 재현하였었다. 

그 부분을 절록하여 먼저 선보인다.


중국 최초 위안부소설로 될 필자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은 올해 말까지 조선족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에 연재중, 명년초 출판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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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순은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종아리를 치는 억새풀을 와락와락 헤치며 발목에 차 오르는 시내물을 첨벙첨벙 박차며 돌부리에 발을 채이여 넘어졌다가는 다시 그악스럽게 일어나 달리고 또 달렸다.
 

치마자락이 자작나무가지에 걸렸다. 급한 마음에 확 잡아채자 치마 자락이 찢겨 나갔다. 너덜너덜 해진 치마자락을 날리며 또 달렸다. 찢겨진 천쪼박이 그루터기에 걸려 애처롭게 나붓겼다.

 

거치적거리는 치마자락을 추슬려 가슴앞자락에 껴안고 끝순이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입매에 움찔움찔 품은 울음이 당금이라도 터질듯한 표정을 하고 치뛰고있었다. 

 

누가봐도 놀라운 풍경이였다. 그 진동한동 단말마의 힘으로 뛰는 달음박질에 놀라서가 아니였다. 다름아닌 그녀는 막달 산모였것이다. 항아리처럼 큰 배를 안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그녀가 놀라웠고 또 산모가 그렇게 달음박질해 될가 걱정되는 풍경이였다. 

 

그렇게 허위단심 뛰고 있는 그녀의 뒤로 칼고함이 울었다. 고함질은 끈적한 흡반처럼 촉수를 뻗쳐 한사코 그녀를 따라왔다. 그녀에게 들붙으려 하고 있었다. 

 

“도마레(서랏)!”

“서랏! 게 서지 못해!”

 

무리 승냥이가 우는듯한 소리, 사금파리를 긋는듯한 듣그러운 악청이였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그녀를 쫓고 있었다. 그녀를 쫓고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은 모두다 제복차림을 하고 있었다. 제복차림의 그들의 손에는 총검을 세운 장총이 들려 있었다. 

 

고함소리는 긴 채찍이 되여 그녀의 등짝이며 귀전을 사정없이 후려 쳤지만 그녀는 소리의 몰매를 맞아가면서도 뛰고 있었다. 

 

물론 끝순이는 그 고함의 뜻을 알지 못했다. 추적자들의 그 고함소리는 왜말이였기때문이였다. 

 

이 모든게 꿈일거라고 끝순은 생각했다. 

 

꿈이라도 지지리 나쁜, 머리털이 돋아 세상 처음 꾸는 나쁜 꿈,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꿈일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이 몽매(夢寐)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깨워주는 사람도 없는, 지독하게 가위 눌린 꿈이라고 끝순이는 생각했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낳았다. 

 

그렇게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여태 꾸어봤던 나쁜 꿈들이 머리속으로 휘리릭 지나갔다. 

 

강 건너 청나라 사람네 집 검은 개에게 쫓기던 날 끝순은 악몽을 꾸었었다. 

 

꿈에 온 얼굴에 이빨투성이인 괴물이 그녀를 한사코 쫓아오고 있었다. 그 강한 렬육치(裂肉齒)에 걸리면 뼈라도 부수어 깨질것 같았다. 

 

악몽에 꺼둘려 분절이 불분명한 헛숨 빠지는듯한 소리를 하는 그녀를 남편이 흔들어 깨웠다. 

 

미끄러운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깨뜨리고 우물에 빠질번 했던 그 겨울의 저녁 꾼 꿈도 기억에 남았다. 

 

떨어져도 떨어져도 끝없는 천길나락을 무작정 떨어져 내리는 꿈이였다. 그녀가 어찌나 헛비명을 질러댔던지 놀라 깨여난 아버지가 데거치른 발길질로 그녀의 엉덩이를 호되게 걷어찼고 그제야 꿈에서 깰수 있었다. 

 

그런 꿈에 비하면 이는 말도 안되게 혹독한 꿈이였다. 

 

렬육치를 가진 커다란 괴물이 한사코 쫓아오고 누군가 그녀의 등짝을 사정없이 걷어 차 우물에 빠뜨려넣었는데 밑창 모를 밑바닥에는 또 커다란 렬육치를 가진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꿈의 련속이였다.


악몽같은 참극은 아침 우물가로 부터 일어났다. 

 

우물이 있는 마을 동구밖 들머리에 집이 있어 우물댁으로 불리는 아낙은 아침 일찍 우물가로 나섰다가 그만 아닌 밤에 찬 우물물이라도 뒤집어 쓴듯 그 자리에 우두망찰 서버렸다. 

 

어느새 닥쳐 왔던지 우물가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수효가 얼마나 많았던지 우물댁은 그 수효가 주는 엄슬함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꼭같이 가라말을 타고 꼭같이 센또보시(전투모)를 쓰고 꼭같이 누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였다. 그리고 등에는 꼭같이 기다란 장총을 메고 있었다. 

 

우두머리인듯한 자가 말고삐를 당겨 휘적휘적 앞으로 나왔다. 운두높은 모자에 둘린 붉은 테와 제복의 목깃에 달린 붉은 계급장이 시선을 찔렀다. 계급장에는 노란 별 세개가 박혀 있었다. 허리에 혁대를 두르고 긴 칼을 차고 있었고 손에는 말채찍이 들려 있었다. 움쑥한 눈으로 우물댁을 째려보던 그가 손에 든 말채찍을 저었다.

그러자 몇몇 사병이 말에서 뛰여 내렸고 한 사람을 말에서 끌어 내렸다. 그 사람은 대자형으로 오라를 지워져 있었다. 구타를 당한 모양, 눈확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입가녁도 찢어져 있었다. 입가녁에 말라붙은 피자국이 보였다. 흰 옷 군데군데에도 피자국이 새여 나와 있다

 

그 사람을 밀어 우물댁의 앞에 내세웠다. 모진 고초에 넋이 나간듯 그 사람은초점 잃은 눈으로 우물댁을 퀭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사병 하나가 총의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그 사람의 어깨박죽을 내질렀다. 휘청이던 그 사람이 가까스로 마른 입술을 열었다. 저승에서 새여나오는듯한 꺼져가는 소리로 물었다.

 

“량, 량씨네 집이 어디임둥?”

 

우물댁은 그냥 얼빠진 상태였다.

 

그 사람이 마른 입술 한번 다시며 다시 힘겹게 물었다.


“영신학교 량교장네 집 말입꾸마”

그제야 정신 차린듯 우물댁이 손을 들어 마을어구의 한 집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가을바람에 들린 허수아비의 빈 팔소매처럼 푸르르 떨리고 있었다. 

 

투르르~ 말이 투레질을 했고 “붉은 계급장”이 채찍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무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얼빠진 우물댁을 내쳐 둔채, 결박된 사람을 앞세우고 마을길로 들어섰다. 

 

이때였다. 

 

앞에서 떠박질려 가던 흰옷 입은 사람이 후딱 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결박된 상태로 뛰면서 소리 질렀다. 행주 비틀듯 쉬여버린 소리를 한껏 짜내며 피를 뿜는 고함을 질렀다.

 

“날래 뜁소. 왜놈들이 왔습꾸마 날래 뛰…”

 

그는 마지막 구절을 마무리 하지 못했다. 말을 달려 한 달음에 따라간 “붉은 계급장”의 서슬푸른 군도가 아침의 대기를 갈랐고 그 사람의 머리가 허공에 붕 뜨더니 뒤미처 호박덩어리처럼 굴러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아리는 몇걸음 더 달려나가다가 콩단처럼 쿵! 그 자리에 넘어갔다. 

 

기병들의 말이 머리없는 몸뚱아리를 마구 짓밟으며 마을로 우르르 쳐들어 갔다.


총개머리판에 떠밀리면서, 대검에 쑤시우면서 마을 사람들은 학교 마당에 집결되였다. 

 

봄철이면 운동회가 열리고, 동네의 크고 작은 일이나 정기행사가 이루어지던 학교마당이였다. 곧 열리게 될 봄철 운동회 준비로 마당에는 소나무가지를 꺾어 만든 솟을 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각 종목에서 우승한 팀들은 그 소나무 솟을 문앞에서 교장으로부터 상패와 상물을 받군했다. 

 

축제전야의 열기로 설레이던 마당은 이제 시퍼런 분위기로 때글때글 얼어 있다.

 

등등하게 차려입은 누런 군복과 번뜩이는 칼날을 세워든 사병들은 대적이라도 만난듯 표정들이 험상스레 굳어있다.

 

세워든 날카로운 총검이 아침나절의 해살에 번뜩인다.

 

기죽은 사람들은 태덩이처럼 미동도 크게 못하고 저마다 어깨를 한껏 옹그리고있다. 

 

끝순은 남편곁에 꼭 붙어 섰다. 그런 그의 긴장한 손을 남편이 꼭 쥐여 주었다. 병색이 완연해 쑥갓 꽃잎처럼 얼굴이 노란 남편이 걱정스레 그녀를 지켜본다.

 

남편은 영신학교 교원이였다. 룡정대성중학을 졸업한 남편은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다. 무지렁이같은 과년한 끝순에게 대처에서 온, 학교교직원인 남편은 남들의 시샘을 자아낼법 했다. 

 

이 모든 것은 지독하게 과묵했지만 인간성이 올곧았던 아버지의 공로이기도 했다. 

 

마을사람들은 학전(學田)을 떼여 선생들의 월급을 마련했는데 그중 옹색한 살림에서도 아버지가 부치는 학전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그때 남편은 그녀의 집에서 돌림밥을 가장 많이 먹었다. 그런 남편이 나중에는 아예 이 집에 눌러 앉게 된것이다. 

 

남편의 결점이라면 몸이 허약한 편이였다.

 

늘 때국이 낀 요를 무릎에 두르고 아래목에 앉아 기침을 무더기로 토했고 집안 대들보에는 약봉지가 마늘타래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곤 했다. 

 

그런 남편이라도 끝순은 하늘같이 높이 뵈였고 금슬 좋은 둘 사이에 막 사랑의 결실을 보려던 참이였다. 

 

마을사람들은 흘끔흘끔 곁눈질로 운동장 가녁을 훔쳐본다. 

 

운동장 가녁에는 버드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이곳에 맨 처음 이주해 터를 잡았던 선친들이 공터에 심었던 버드나무였고 그 공터자리에 지금은 학교가 선것이다. 마을의 당산나무 격이였던 그 버드나무에 눈길이 미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심장이 파고듦을 느낀다. 

 

버드나무에는 사람이 매달려 있다. 

 

학교의 량교장이다. 높이 매단데서 교장의 다리가 허공에서 버둥거린다. 마치 날다가 악착한 거미줄에 봉변들 당한 나방처럼 교장의 흰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인다. 

 

교장이자 마을의 터주대감이다.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했뿐더러 깊은 오지의 학교를 멀리 아라사(俄羅斯)에서도 한인학생들이 찾아오도록 유명한 학교로 만들었다. 또한 북간도의 반일단체인 의군부와도 련계를 갖고있어 그들은 늘 이 사슴골을 찾군했다.

 

그 덕망높은 량교장을 왜놈들이 꽁꽁 묶어 그 무슨 도살직전의 짐승처럼 나무에 매단것이다. 

 

포승을 당했지만 량교장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다.

 

“붉은 계급장”은 한 손은 허리에, 한손은 허리춤에 지른 군도자루에 얹고 있다. 아무말 없이 움쑥한 옴팡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며 활동사진 찍듯 하나하나 동공에 담는다. 금방 사람의 피를 본 군도가 허리춤에서 데룽거린다. 

 

호동그란 동공은 눈앞 사람들의 멱이라도 움켜 잡을듯이 또렷하고 팽팽하다. 그 눈길에 질려 사람들은 눈길이 지나갈때마다 오싹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계급장이 말채찍을 들어 까땍했다.

 

앙바틈한 사병 하나가 사람들앞에 나섰다. 강똥 싸는 사람처럼 턱을 난딱 쳐들고 소리소리 질렀다. 

 

“록골(鹿溝)사람들은 듣거라. 

 

이 분은 이 지역을 관장하고 있는 우리군 제14사단의 스즈키(鈴木)대위님이시다.”

 

스즈키라 불리운 “계급장”이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앙바틈한 사병이 그냥 쉼표 없는듯한 한 톤으로 말을 이었다. 어눌하나마 제법 조선말을 구사하고 있다.

 

“스즈키 대위님께서 록골 사람들에게 우리가 찾아온 요지를 말하고자 하신다.”

 

대위가 앞에 나섰다. 말채찍으로 손바닥을 툭툭 치면서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리도(利刀)라도 휘두르는듯 날이 서있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무조건, 우리들의 행동에 교오조(공조)해 주길 바란다. 언감 대일본제국에 불온한 마음을 품고있는 후테이 센징(不逞鲜人)들을 색출하라는 닌무(임무)를 받고 이 부라끄(마을)를 찾아 왔다.”

 

땅딸보 사병이 축음기 되돌리듯이 그 말을 반복했다. 

 

스즈키의 목청이 순간 듣그럽게 한 옥타브 불거져 올랐다.

 

“유감스럽게도 이 부라끄 사람들 모두 다 대일본제국에 맞서는 후테이 센진이라는 정보를 우리는 입수 할수 있었다.” 

 

대위의 얼굴이 불판처럼 시뻘겋게 달궈졌다. 

 

화딱지가 난듯 뻐센 억양으로 내지르는 그 소리가 발작적이였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 당수(黨首)들을 소고끄(즉각) 처결하려 한다!”

 

대위의 시선이 버드나무쪽을 향해 팽팽하게 꽂혔다. 움쑥한 눈에는 벼락을 맞아 쓰러진 고목밑둥이에서 밤이면 이는 퍼런 린광같은것이 번뜩이였다. 

 

스즈키가 시뻘건 얼굴로 칼집에서 칼을 쓰윽 뽑아들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병사들이 일렬을 짓고서서 장총을 장전했다.

 

시커먼 총구가 쳐들렸다. 시커먼 총구가 버드나무를 겨누었고 량교장을 겨누었다.

 

비대한 몸집의 대장이 앞에 나서며 구령을 불렀다.

 

요이(준비)-

멱따는듯한 구령소리가 울렸다.

핫샤(발사)!

탕! 탕! 탕!

 

되알진 총소리가 울렸다.

 

총소리가 평화롭던 사슴골을 뒤흔들었다.

 

고막을 찢을듯한 총소리에 아이들이 울었고 개가 짖었다.

 

버드나무 잎들이 찢겨져 우수수 날렸다.

 

탄환은 삽시에 나무에 결박된 량교장의 온 몸을 벌집내 버렸다. 

 

놀란 비명이 터져 올랐다. 

 

사람들중에서 아낙네 하나가 울부짖으며 버드나무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뒤를 묻어 총각애 하나도 따라 나갔다.

 

“여보”, “아부지”

 

탕! 탕!

또 한번 총성이 울렸고 량교장의 마누라와 아들애가 버드나무를 눈앞에 두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참극에 마을사람들은 순간 아뜩해 졌다. 모두가 넋나간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왜놈들이 량교장을 원쑤 취급하는데는 나름 리유가 있었다.

 

나날이 심해가는 식민지정책에 아직도 강을 건너는 월강민(越江民)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망명객과 반일투사들이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도피하면서 사슴골은 은연중 반일활동의 책원지로 성장하고 있었던것이다.

 

게다가 지난 봄 룡정에서 일제에 항거해 온 시가지를 뒤흔들며 웨친 반일시위속에도 사슴골 사람들은 어김없이 끼여 있었다. 

그날 룡정의 장관에 대해 끝순은 눈앞에서 목도했다. 룡정으로 나가는 남편을 기어이 따라나섰던것이였다. 룡정행차가 처음인 그녀는 그저 대처구경을 간다는 단순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이날 사슴골의 사람들은 영신학교 교원, 학생들과 함께 전날 밤부터 주먹밥을 만들어 지니고 수십리 새벽길을 죄여 룡정에 도착했다. 

 

처음 와 본 룡정거리는 수런거리는 소요와 팽만한 기운으로 늠실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룡정의 서전(瑞甸)벌판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흰두루마기며 치마저고리를 입은 남정네들과 녀인들 지어 백발로인들과 삼척동자들도 가세하여 구름떼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북간도 각 지역에서 사람들은 내물의 지류가 강을 바라고 흘러들듯이 사면팔방에서 룡정이라는 이 “간도의 서울”이자 조선인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구심점을 향해 흘러 들고 있었다.

 

집회장소는 어느 보통학교 마당이였다. 회장 중앙에는 "정의인도", "조선독립 만세!"라는 오장기가 세워져 있었다.

 

회장주변에는 교회당의 종루가 솟아 있었다. 

 

끝순은 눈시울을 좁히며 종루를 쳐다보았다. 

 

종루에는 조무래기들이 새까맣게 올라가 있었다. 이 작은 시가지에서 전에 없었던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뎅 뎅

 

서전벌우로 펼쳐진 한자락 대공(大空)을 흔들며 종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환호속에 두루마기차림의 사람이 나서서 대회를 선포했다. 그리고 랑랑한 소리로 "독립선언서포고문"을 랑독했다.

 

"우리 조선인들은 해방을 선언하노라. 지위를 선언하노라. 정의를 선언하노라. 인도주의를 선언하노라!

 

우리는 영광스런 력사를 지닌 민족이요, 또한 근로한 민족이노라. 그런데 우리를 훼멸하고 타파하려는 자가 있도다… 지사의 눈물은 바다를 채웠고 우민의 원한은 창천에 미쳤도다. 하늘의 귀가 백성의 목소리에 향하고 하늘의 눈이 백성의 시야로 향하여 세운이 일변하고 일도가 갱신할제 정의의 종소리는 큰 거리에 울리고 자유의 항선은 앞 나루에 닿았도다.

 

오인(吾人)은 천민 속의 한 사람이오, 약자 속의 한 사람이라. 오늘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응하여 천만 민중이 일제히 한입같이 자유찬가를 부르며 쌍수를 굳게 쥐고 평등의 태도로 전진하는 바이로다. 저 동양문명의 수뇌, 동양평화의 보루라고 자처하는 일제의 침략으로 하여 현 정세에 변천을 가져왔도다... 

 

민중들은 한 맘 한 뜻으로 단합 하야 침략자들이 간도 땅을 짓밟지 못하도록 할지어라. 모든 사람은 다 이런 신성한 책임이 있거늘 우리 간도의 80만 조선족 민중은 황천의 명소에 갈지 언정 인류의 평등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 바칠 바이어라."

 

포고문이 다 랑독되자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한 이들은 한민족의 뿌리와 력사적 소명의식을 자각하고 목청껏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다. 만세소리는 해란강가에서 오래도록 메아리 쳤다. 

 

만세소리 높이 부르며 시위행진이 거행되였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끝순이도 시위대오를 따라나섰다. 장사진을 이룬 시위대오는 앞뒤 끝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오 맨 앞장에는 기수가 "조선독립을 성원"이라는 오장기를 들고나섰고 각지 학교의 교원과 학생들로 구성된 300여명의 “충렬대”가 앞장에 섰다. 그 뒤로는 각지에서 모여온 군중대오가 따라 섰다. 

 

"조선독립만세!"

"일제의 침략을 반대한다!"

"친일주구를 타도하자!"

 

시위자들은 구호를 높이높이 외치면서 호호탕탕하게 룡정 도심에 자리를 틀고 앉은 일본 간도총령사관을 향하였다. 

 

갚자기 앞에서 수런거리는 소요가 일었다. 령사관 가까이에서 시위군중들과 막아서는 군경들 사이에 몸 싸움이 시작되였던것이다. 

 

격노한 군중들은 돌멩이를 가로막는 군경들을 향해 뿌리면서 계속 밀고 나갔다. 그 긴박감과 결연함에 왜놈들은 질겁했다.

 

탕! 이때 총성이 울렸다. 맨 앞장에 오장기를 들고 나섰던 기수가 쓰러졌다.

 

일제경찰과 그 사주를 받은 중국경찰들이 당황한 나머지 시위대를 향해 일제히 발포하기 시작한것이다.

 

총소리는 콩볶듯 울렸고 앞장 선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적수공권의 시위대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여 흩어졌다.

 

혼란속에서 어떻게 남편의 손에 끌려 룡정을 벗어났던지 끝순은 알수 없었다. 

 

후에 량교장한테서 들은데 의하면 그날 일제군경들의 탄압으로 어지러운 총소리속에서 10여명 시위자가 당장에서 숨을 거두고 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했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군은 사슴골을 불령선인들의 진원지의 하나로 간주하고 호시탐탐 습격할 기회를 노렸던 것이였다.

 

눈앞에서 피를 물고 죽어가는 교장을 보는 순간, 그제야 마을사람들은 덜컥 무섬증의 덫에 치여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끝순이도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운 공포에 전신을 쩌눌림 당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것 같은 공포속에 아직 태여나지 않은 아기를 보호하련듯 둥시런 배를 두팔로 감싸며 몸을 웅그렸다. 

 

비대한 몸집의 사병이 두려움에 떨고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땅딸보가 나서 그 말을 통역했다.

 

“죠시(녀자)들은 가만 있고 성년 난세(남자)들은 모두 나와라. 하야꾸(빨리)”

 

남자들이 쭈볏쭈볏 무리속에서 나왔다. 사병들이 그런 남자들의 잔등을 총의 개머리판으로 무자비하게 내질렀다. 

 

사병이 아낙네들 뒤에 웅그리고 섰는 한 남자를 발견하자 멱살을 잡아 끌어 내였다. 말채찍으로 따귀를 갈겼다. 그 남자의 얼굴에 벌건 핏금이 건너갔다. 쑥대 머리칼을 잡아채며 질질 끌고 갔다. 

 

아버지도 끌려갔다. 원체 말수 적은 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끝순의 남편도 끌려갔다.

 

끌려가던 신랑이 뒤를 돌아보았다. 

 

쑥갓 꽃잎처럼 노란 얼굴로 끝순이를 빤히 쳐다 보았다. 

 

그 눈길은 분명 막달 산모인 끝순에 대한 걱정으로 차 있었다. 남편의 그런 살틀한 시선을 느끼는 끝순이의 눈매는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문칮거리는 남편의 잔등을 사병이 사정없이 군화발로 걷어찼다. 

 

아낙네들은 모두 학교 마당에 남겨 둔채 서른 명 남짓한 마을의 남정들은 모두 끌려 학교교실로 들어갔다. 

 

남겨진 아낙네들은 대체 무엇하려는건지 영문을 몰라 그저 두려운 눈길로 이 모든것을 지켜 볼뿐이였다. 

 

사병들이 교실문을 걸어 잠그었다. 교실에 남정들을 가두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몇몇 사병이 운동장에 세워진 소나무 솟을 문을 부셨다. 그 소나무와 널판자들을 가져다 교실주위에 쌓아놓았다. 마을사람들이 뒤산에서 일껏 해와서 마당에 차곡차곡 무져놓은 땔나무도 가져다 교실주위에 쌓았다. 떡갈나무, 생솔가지를 꺽어놓고 조짚단도 가져다 쌓았다. 

 

구경 모를 행동들이였지만 웬지 심상치 않은 그 거동들에 아낙네들의 가슴은 두려움에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사병 몇명이 진록색 수통을 들고 달려 왔다. 물통 마개를 열더니 교실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골고루 부었다. 

 

휘발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낙들의 눈망울이 불안으로 흔들렸고 심장이 널뛰듯 점점 더 높뛰였다. 

 

“애 아버지, 애 아버지”

 

누군가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붉은 계급장의 대위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옴팡눈의 번뜩임에 그 울음소리가 쑥 잦아 들었다.

 

준비를 마친 사병들이 다시 일렬을 짓고 섰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또 한번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끝순은 깜짝깜짝 놀라 했다.

 

시커먼 총구가 쳐들렸다. 시커먼 총구는 학교의 창문을 겨누었다.

 

사병 하나가 관솔불을 붙여들고 나서더니 교실주위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던졌다. 

 

확 불이 댕겼다.

 

마른 솔가지와 장작더미에 휘발유까지 끼얹은 장작더미에는 삽시에 불이 댕겼고 나무기둥과 새끼를 얼기설기 꼰 회벽으로 만든 학교는 삽시에 화염에 휩쌓였다. 

 

오리무중에 빠져있던 아낙네들이 순간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연기가 미친듯 머리를 풀어헤치며 하늘로 치솟았고 불길이 혀를 날름이며 창문으로 뻗쳐들었다. 불길은 연기와 함께 창의 문설주우로 널름거리며 기여 올라 처마를 핥기 시작했다. 

 

기침소리와 비명소리를 뿜으며 갇혔던 사내들은 맨주먹으로 학교의 창을 내질러 깼다. 깨진 창으로 머리칼이며 옷자락에 불이 붙은 남정네들이 하나 둘 뛰쳐 나왔다.

 

탕! 탕!

 

왜병들은 뛰쳐나오려는 사람들을 향해 가차없이 발포했다. 

 

연기속에서 뛰쳐나와 괴롭게 기침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검을 꽂았고 군도를 휘둘렀다. 

 

남정들의 목이 두부모마냥 섬벅섬벅 베여진다. 순식간에 떨어져 나뒹구는 머리통들이 학교마닥에 공처럼 뒹굴었다.

 

총소리가 랑자하게 학교마당을 흔들었고 사슴골을 흔들었다.

 

불길을 못이겨 연기속에 몸부림치며 머리를 내밀던 남정들은 반신을 창문턱에 걸채인채 죽어 갔다. 

 

그 와중에 우물집 남정이 창문에서 뛰여 내려 몇발자국 뛰였으나 탄환이 등짝을 관통하며 피를 물고 쓰러졌다. 

허집사가 연기속에 머리를 내밀다가 이마에 탄환을 맞고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졌다. 

 

최포수가 뛰여 나왔으나 시체에 걸채여 몇걸음 못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득달같이 달려간 사병이 쓰러진 그의 등짝을 총검으로 내리찍었다. 총상과 자상으로 너덜해진 최포수가 단말마로 몸을 일으켰다. 무엇인가 움켜잡을듯 손을 뻗쳐 허공을 허비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우물댁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불타는 교사를 향해 뛰여 나갔다. 

 

그런 그의 어깨죽지를 사병 하나가 갈퀴손으로 찍어 당겼다. 

 

그 손을 뿌리치며 우물댁이 기어이 뛰여 가려 했다. 

 

그러자 사병하나가 뒤에서 그녀의 등을 총검으로 찔렀다. 칼날이 호박 지르듯 푹 들어갔다 벌건 혈액을 묻히고 다시 나왔다. 우물댁의 등에서 피의 분수가 치뿜겼다. 비명한번 못지르고 우물댁은 그 자리에 폭 고꾸라 졌다. 

 

그뒤를 따라 달려 나가던 최포수의 딸도 어깨에 칼을 맞고 쓰러졌고 휘적이며 뛰여 나가던 회령댁은 휘두르는 군도에 팔 하나가 뎅겅 잘려 나갔다. 

 

떨어져 뒹구는 자기 팔을 주어들고 어떻게 주체할길 없어 회령댁이 악악 비명만을 죽기내기로 질러댔다. 

 

공포에 사로잡혀 헤갈하는 사람들을 죽이기란 마른 풀대 꺾기보다 더 쉬웠다. 왜병들은 살아보려 몸부림하는 목숨들을 마음대로 찌르고 베고 토막쳤다.

 

그야말로 아비지옥(阿鼻地獄)과 규환지옥(叫喚地獄)에 떨어진듯한 참경이였다. 퍼런 린불이 피여오르는 무간나락에서 악귀들의 손에 마음대로 꺼둘리우고 있는 사슴골 사람들이였다.

 

불타오르는 교사를 향해 뛰쳐 나가려던 아낙네 몇의 발길이 뒤미처 두려움에 묶였다. 아낙네들은 감히 나서지 못했고 그저 선자리에서 옷고름을 집어 뜯으며 발로 땅을 헤집어 파며 목놓아 절규했다. 기함을 할 듯이 비명에 비명을 질렀다.

 

“여보”

“아버지”

“오빠”

 

갈래갈래의 창자를 비트는 듯한 비명과 비명속에 불길은 높아갔다. 

 

학교가 드디여 화살에 관통된 붕새처럼 어깨죽지를 꺾으며 물러 앉았다. 

 

지붕이 폭삭 내려 앉고 불길과 회색연기와 불똥들이 마지막으로 하늘향해 치솟았다. 

 

눈앞에서 자행되는 참극속에 목놓아 울며 끝순은 이상한 환상에 갈마들었다. 

 

아버지나 남편이 제발 창문으로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하지만 뛰쳐 나오면 총칼의 수풀이 기다리고 있고 나오지지 않으려면 불지옥이 기다리고 있는것이였다. 

 

이 모든것은 꿈일거야, 꿈이였어 하고 버거운 배를 부등켜 안은채 공포의 들숨 날숨을 헐떡이며 끝순은 생각했다. 기허한 몸은 허깨비에라도 사로잡힌듯 했다. 바람에 뒤척이는 공기의 갈피마다에는 매캐함과 피비린내가 섞여 숨을 쉴수 없었다. 

 

꿈틀, 배속의 아기도 놀란듯 뒤척였다. 

 

끝순은 둥시런 배를 부여안으며 그자리에 주르르 물앉았다.


언제 왜놈들이 물러갔는지 누구도 몰랐다. 공포와 절망의 늪에서, 죽음의 냄새속에 허우적거렸던 사람들은 사슴바위쪽에서 해가 이울기 시작해서야 이 피비린 도륙이 막을 거두었음을 알게 되였다. 

 

악마구리 끓듯 하던 마을이 얼마쯤 소강상태를 찾자 누군가 먼저 다가가 폭상 물앉은 재더미를 헤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불티를 머금은 재더미는 열기를 안고 있었다. 

 

기둥을 치우고 채 타지앉은 서까래들을 치우자 재더미 속에서 뒹구는 시체들이 보였다. 

 

시체들은 화덕속에 던져진 멸치처럼 까맣게 타들어 있었고 꼬부라져 있었다. 

 

누가 누군지 분별할수가 없었다. 불타다 남은 나무 기둥과 사람의 송장을 혼돈하기도 했다. 

 

아낙네들은 그저 앙가슴을 탕탕 줴지르며 이제 쉬여버린 목소리로 다시 꺼억꺼억 울음을 짜냈다. 

 

섬약한 그네들이 할수 있는것이란 울음에 또 울음이였다. 울음을 우는것만이 참혹하게 죽어간 남정들에 대한 애도요, 어찌할수 없는 무기력감에 대한 변명인것 같았다. 그래서 너나 할것없이 승벽내기라도 하듯이 목청높여 울고 울고 울었다. 

 

그 란리속에서 누군가 홍소를 터뜨리며 재더미우를 뛰여 다녔다. 

 

왜병들의 만행에 광증을 일으킨 돌배집 할멈이였다. 할멈은 가을벌판의 새쫓듯 간헐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아직도 불티를 튀기고 있는 재더미우를 마구발방 뛰여다녔다.


학교마당에 가맣게 탄 시신들이 건어물처럼 놓였다. 

 

33구의 시신, 교회의 목사님을 모시러 룡정으로 나간 병욱이네를 빼면 마을 남정 전부가 왜놈들의 손에 도살 당한것이였다.

 

도무지 누구의 시신인지 가릴수 없어 시체를 합장하기로 했다. 

 

마을 어구의 산자락에 합장할 거대한 묘소를 팠다. 아낙들의 힘이였기에 묘소를 파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스름이 내리고 빛이 사위여도 달빛을 빌어 묘소를 팠다. 

 

어느새인가 울음은 멈추어져 있었고 모두들 아무 말도 없이 구덩이를 파는데 열중할뿐이였다. 온몸에 울혈이 맺혀 들쑤시는 몸으로 아낙들은 남정네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끝순이도 삽을 들고 나섰다. 아버지와 남정을 잃은 그를 대신해줄 사람도 없었다. 또 막달 산모가 쟁기를 들고 나서도 누구 하나 그에 생각이 미칠 겨를도 없었다. 

 

힘겹게 삽질을 하면서 끝순은 줄느런히 누웠는 시신쪽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시신이 어느것이였을가 골똘히 생각했다. 

 

남북골인 남편의 머리통과 야위인 몸 맨두리를 보아 어느 한 시신이 자기 남편인것 같은데 집사댁이 자기 남편인것 같다고 했고 게다가 북산댁까지 나서서 자기 오빠같다고 했다. 그러니 시신을 정확히 확인 할 방법이 없었다. 

 

눈물과 씨름하면서 아낙들은 용케도 장사(葬事)를 치러 나갔다.

 

훌쩍 훌쩍 코물을 치걷으며 시신을 하나 하나 구덩이에 내려 눕혔다. 

 

시신우에 거적을 덮고 벗겨온 봇나무껍질을 덮고 흙을 덮었다. 

 

마을 앞산 더기에 거대한 봉분이 생겨났다. 

 

그리고 봉분을 다 덮을 무렵에 밤비가 내렸다. 안개처럼 수물대는 가랑비가 내렸다. 자기의 눈물에 젖은 사람들은 이번에는 하늘의 눈물에 젖었다.

 

비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자디잔것들이 눅눅한 습기를 몰고와, 소리없는 눈물처럼 내려 사람들의 가슴을 더 습하게 만들었다.

 

막상 봉분을 대하자 또 슬픔이 북받쳐 올라 아낙들이 우르르 무덤에 덮쳤다. 가랑비에 젖는 무덤이 애처로워 몸으로 막아주련듯 했다. 다시 일렁이던 울음보들이 터져 올랐다. 

 

비에 젖어가는 밤의 골짜기에서 쇠지랑물 냄새가 났다. 

 

온 골짜기를 자오록히 덮는 그것은 슬픔의 냄새였다. 

 

어둠과 가랑비와 슬픔속에서 무덤에 엎드린 아낙들의 울음소리는 그칠줄 몰랐고 울음 소리는 비 소리를 덮었다. 

 

그날 왜놈들의 분탕질에 정갈하던 마을은 삽시에 쑥밭이 되였다.

 

왜놈들이 지른 불에 마을의 학교와 교회당 그리고 전부의 가옥이 불탔다. 

 

불은 이틑날 아침까지 타올랐는데 그 연기기둥은 수십리 떨어진 룡정에서도 보였다. 

 

악귀들의 손에 남정들은 몰살되였고 지어 골골대는 닭과 컹컹짖는 개들 마저도 사람들과 함께 도륙되였다. 그야말로 마우계견(馬牛鷄犬)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이튿날 또 한번 우물가에서 어느 아낙의 비명이 새청맞게 터져 올랐다. 

 

피범벅, 흙범벅이 된 옷가지를 씻어라도 볼 양으로 나섰던 북산댁은 우물가에서 머리통을 부여 잡고 두눈을 휩뜬채 악악 비명만을 지르고 섰다. 

 

뚜드럭 뚜드럭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소리를 내며 우물가로 수십기의 기마병들이 몰려 들고 있었던것이다. 

 

불에 덴 사람이 부지깽이를 보고 질겁하듯 전신을 인두질 하며 휩쓸고 간 화상의 아픔을 수습하기도 전에 악귀같은 누런 군복의 왜병들을 다시 본 아낙은 비명을 련발하다 그 자리에 혼절하고 말았다.

 

불개미처럼 버글버글 몰려든 무리의 맨 선두에서 노란별 세개를 박은 붉은 계급장을 단 대위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그야말로 다시 보고싶지않은 귀면같은 얼굴이였다. 

 

아낙네들이 또다시 사병들의 총 개머리판에 윽박지름을 당하며 무덤앞에 모여섰다. 

 

돌연한 암벽이 우뚝우뚝 키를 돋혀 좁혀 오는듯해 아낙들은 공포감에 숨조차 바로 쉬지 못했다. 

 

저승의 차사(差使)가 손짓을 하듯 대위가 말채찍을 들어 무덤을 가리켰다. 

 

“파라”

 

아낙네들이 일순 영문을 몰라 대위를 쳐다보았다.

 

몸집이 앙바틈한 그 사병이 나와 어눌한 조선말로 말했다. 

 

“하까(무덤)를 파라. 무덤을 파란 말이야”

 

아직도 오리무중인듯 어리둥절한 기색을 지은 집사의 아낙이 나서며 물었다.

 

“뫼, 뫼를 파란 말임둥? 어째서 말임둥?”

 

사병의 총 개머리판이 아낙의 머리를 가격했다. 아낙이 머리통을 부여잡으며 무덤가에 쓰러졌다. 부여잡은 손가락틈새로 피가 번져 나왔다. 

 

“하야꾸(빨리)”

 

땅딸보 사병이 무덤을 가리키며 감때 사납게 웨쳤다.

 

이때 새청맞은 비명이 터져 올랐다. 어제 일으킨 광증이 다시 발작한 돌배집 할멈이였다. 할멈은 비명을 지르며, 홍소를 터드리며 맨발로 겅중겅중 무덤주위를 뛰여 다녔다. 

 

“야까마시이 (시끄럽군)”

 

붉은 계급장이 뇌까렸고 사병 하나가 총박죽으로 윽박지르며 할멈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할멈을 벼랑가에 세워놓고 조준하던 사병이 총을 내리웠다. 사병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지어졌다. 총을 거두고 사병이 군화발로 할멈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질렀다. 

 

할멈이 돌덩이처럼 산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할멈이 떨어져 내린 산아래에서 메새가 화드득 날아 올랐다.

 

아낙들이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마에 들린듯 쥐여주는 쟁기를 받아들고 서둘러 채 마르지도 않은 무덤을 다시 파헤치기 시작했다.

 

흙을 밀고 봇나무껍질을 걷우어 내고 거적을 치웠다.

 

무덤속에 누워있는 사람의 그것같지않은 형체의 시신들이 보였다.

 

아낙들속에서 억누르지못한 울음소리가 새여 나왔다. 

 

그 시신들을 끄집어 내라고 하였다. 왜병들의 윽박지름에 시신을 끄집어 내여 하라는대로 무덤가에 덧쌓아 놓았다. 

 

그리고 사병 하나가 또 진록색의 수통을 들고 왔다. 

 

휘발유를 시신우에 부었다. 

 

불을 달았다.

 

연기 기둥이 솟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송장타는 노릿한 냄새가 아낙들의 가슴을 아프게 헤집어 놓았다. 

 

또 한번 지자러진 울음소리가 터져 올랐다. 

 

연기는 소나무 우둠지높이까지 치솟았고 끝순의 회동그랗게 치뜬 눈길은 그 연기를 쫓고 있었다. 머리를 젖혀 파란 하늘을 검은 망사처럼 가리는 연기를 지켜보며 끝순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않나하는 자문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울음소리가 귀전에 들렸고 시체타는 냄새를 코로 맡을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납디 사나운 흉몽이 정녕 실제로 내 신변에서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뼛골을 파고드는 공포에 새삼스레 소름이 와삭 돋았고 악몽의 나락에서 벗어나련듯 끝순은 목구멍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뒤걸음쳤다. 

 

비치적대며 뒤걸음친 발걸음은 저도모르게 산더기에서 몇발자국 내려와 있었다. 

 

사병들은 아직도 화염에 쌓인 시체더미에 눈길이 쏠려 아낙네들중에서 빠져나오는 끝순을 보지 못했다. 

 

산더기아래에서 왜병들과의 거리를 의식한 순간 끝순은 뛰기 시작했다. 

 

“저년 잡아라”

 

뒤에서 고함소리가 울렸다. 분명 자기를 향해 지르는 소리임을 느껴 끝순은 얼핏 머리를 돌려 보았다. 사병 하나가 자기를 향해 삿대질 하고 있었고 그 호령에 맞추어 두명의 사병이 그를 향해 달려 왔다. 들짐승같이 눈을 번득이며 자신을 향해 득달같이 덮쳐오는 무리를 보고 끝순은 기겁을 했다. 

 

“어매!”

 

짧은 비명 한번 지르고 나서 끝순은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그저 뛰기만 했다. 이 귀신나락같은 곳을 벗어만 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몸을 버겁게 놀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무거운 몸은 어느새 산 자락을 내렸고 개울을 건넜고 앞산 산자락을 향하고 있었다. 

 

사슴을 신통히 닮은 바위가 있는 곳, 그래서 사슴골이라 마을이름이 지어졌다. 그 바위를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했고 기자석(祈子石)처럼 간주해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그곳으로 가면 이 두려움에서, 이 악몽에서 벗어날수 잇을것 같았다.

 

전설속의 사슴이 뿔을 세워 악귀들과 맞서고 커다란 뿔을 펴들어 그 아래 자기를 보호해 줄수 있을것 같았다. 지쳐 곱아드는 무거운 몸을 포근한 등에 실어 멀리 멀리로 실어다 줄수 있을것 같았다. 

 

“서라, 서지않으면 쏠테다”

 

뒤에서 헐떡이며 악에 받쳐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등덜미를 물어뜯는 개의 짖음처럼 가까이 들려 왔다. 하지만 끝순은 멈추지않고 뛰기만 했다. 

 

탕! 총성이 울렸고 끝순은 종아리를 각목으로 가격을 받은 것처럼 풀썩 넘어갔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배를 껴안으며 모로 넘어갔다. 

 

신음을 흘리다 모지름쓰며 다시 일어섰다. 

 

몇보 달리자 그제야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종아리 아래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다리를 질질 끌며 끝순은 또 달리기 시작했다. 

 

깜박깜박 흘지는 정신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들고 내뛰였다. 

 

고무신에 흘러내린 피가 고여 질퍽거렸다.

 

잡풀이 뒤덮인 산자락에 좁은 길이 가리마처럼 뻗어있었고 그 길로 우차가 덜컹거리며 느릿느릿 오고 있었다. 

 

골이 깊고 길이 외진 이곳에서 마을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였다. 

 

그 우차를 향해 허위단심 뛰여 갔다. 

 

우차에서 누군가 놀라며 뛰여 내렸다. 

 

“아니 너 끝순이 아니냐?”

 

우차에서 뛰여 내린 이는 장목사였다. 

 

마을의 목회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 꼴로 룡정에서 수십리 상거한 사슴골까지 찾아오던 장목사였다. 

 

목회자로서의 설교뿐아니라 간간히 왜적들의 국권수탈에 대한 설분이며 민족의 독립에 대해서며를 알기쉽고 조리정연하게 이야기해주어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자아냈던 인끔높은 장목사였다. 마을의 량교장과도 사이가 도타왔고 학교의 교사들이 일이 있을때면 대신 교학도 맡아주었던 장목사였다. 


“목사님, 아이고 장목사님!”

 

끝순이 구명은인이라도 만난듯 목사의 팔목을 부등부등 부여잡았다. 오금이 풀려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목사가 그를 안아 일으켰고 소몰이군이 그들어 그를 안아 우차우에 눞혔다. 

 

일본사병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피흘리며 쓰러진 끝순이와 총검을 비껴들고 뛰여 오는 사병들을 본 목사가 사태의 엄중성을 직감했다. 

 

“끝순일 부탁하네. 빨리 뛰게나”

 

목사가 소몰이군에게 당부했다. 소몰이군이 덴겁히 소를 돌려세웠다. 코뚜레를 끌며 손에 들었던 버드나무가지로 소잔등을 마구 후려갈겼다.

 

“가자, 가자, 날래 뛰여라”

 

공포에 휘감긴 소몰이군의 어조가 괴상한 음조로 변형되여 있었다. 

 

채찍질에 소가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우차의 들춤질에 끝순은 잠간의 혼수에서 깨여났다. 몸을 반쯤 일으키며 뒤를 돌아다 보았다. 

 

장목사가 사병들을 맞받아 뛰여 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기에 하필 임산부를 잡으려는것이오?”

 

“도시리도끄(비켜라)!”

 

사병들이 장목사를 향해 감때사납게 웨쳤다. 

 

하지만 장목사는 벽처럼 사병들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사병 하나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장총을 들어 멀어져 가는 소수레를 향해 발포했다. 

 

탕, 

 

총알이 머리우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귀전을 스치는 총성에 끝순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어이쿠!”

 

소몰이군이 손에 들었던 버들가지를 팽개쳤다. 그리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사병이 다시 총에 장탄을 했고 우차우의 우두망찰 앉아있는 끝순을 향해 조준했다. 

 

장목사가 덮쳐들며 총가목을 잡아 우로 쳐들었다.

 

탕!

 

탄환이 허공을 갈랐다. 

 

“칙쇼 (망할놈) 죽고싶냐”

 

사병이 장목사의 배구럭을 군화발로 걷어찼다. 

 

그런 사병의 군화발을 장목사가 그러 안았다. 한사코 그러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질질 끌려가면서도 놓아주지 않았다. 

 

악에 받친 사병이 총창을 거꾸로 들어 장목사의 어깨를 내리 찔렀다.

 

하지만 장목사의 두손은 집게처럼 사병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사병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총검으로 장목사의 등을 마구 내리 찔렀다. 

 

등뒤에서 장목사의 비명이 들려 왔다. 

 

두 손을 허우적거리는 장목사의 입으로 꿀럭꿀럭 검은피가 새여 나오고 있었고 총검의 찔린 몸의 이곳저곳에서 피의 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온 몸으로 피를 흘리며 장목사가 마지막 절규를 뿜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이 모든 광경을 우차에 실려 가며 끝순은 놀라움에 휩뜬 눈동자에 담고 있었다. 

 

이 변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는 는지럭거리며 걷고 있었다. 

 

장목사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병이 발길로 장목사를 산길아래로 차서 내리뜨렸다. 퉤, 하고 사병이 목사의 피범벅이 된 몸뚱아리를 향해 침을 뱉었다. 

 

사병들이 다시 우차를 향해 조준하려던 총을 거두었다. 바퀴 구으는 소리 요란한 우차우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사병들이 헐레벌레 쫑아와 소고삐를 잡아 당겼다. 소가 멈춰 섰다. 

 

소수레길 왼쪽은 비탈진 산자락이였고 그 자락의 끝으로는 강이 사품쳐 흐르고 있었다. 

 

사병들이 총을 거꾸로 메고 허리를 굽혀 산자락 아래를 굽어 보았다. 아무리 굽어보아도 끝순은 보이지 않았다. 

 

“칙쇼! 어디로 샜나? 강에 빠져 뒈져나 버려”

 

씨벌이다가 산자락 아래를 향해 몇방 빈총을 갈겼다. 

 

탄환에 찢긴 진달래 꽃잎이 우수수 날렸다. 

 

그와 함께 놀란 메새들이 날아오르며 강가는 온갖 새소리로 왜자했다. 

 

한동안 산자락을 훓다가 빈물을 켠 사병들이 돌아섰다.

 

산자락에 군락을 이룬 관목림속 우묵한 곳에 끝순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종아리를 관통한 총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엎드린 땅을 적셨다. 

 

하지만 감히 상처를 처치할 념을 못했다. 강언덕우에서 씨부렁거리는 왜말이 아직도 바람을 타고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극심한 공포에 끝순은 한기에라도 들린듯 부들부들 떨었다. 그저 눈을 멍쩡히 뜨고 자신의 다리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묽숙한 피를 멀거니 지켜보기만 했다. 

 

속이 미식거리고 목이 말랐다. 

 

한결 굵어진 해빛이 산그늘에 숨어 있는 그녀의 몸우에 빛무리를 우와우왁 내리 붓고 있었다. 왜놈들에게 들킬가 끝순은 자꾸만 나무 그늘속에 몸을 옹송그렸다. 

 

한동안 소리가 없자 끝순은 앙당그렸던 목을 빼들고 나무가지사이로 빠끔 머리를 내밀었다. 

 

돌아서던 사병들이 장목사가 쓰러진 쪽에 다시 멈춰서 있었다. 장목사의 몸이 아직도 꿈틀거리는것을 확인하자 사병하나가 총을 들어 그의 머리에 겨누고 쏘았다. 

 

탕!

 

메새들이 다시 한번 푸르르 날아 올랐다.

 

소쩟소쩟 

 

소쩍새가 이제는 울 기력마저 없는 미망인들의 호곡을 대신하는양 덩이진 울음을 연신 토해 냈다. 

 

이윽고 끝순은 떨리는 손으로 너덜너덜해진 치마자락의 한귀를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덜덜 맞부디치는 이발로 치마자락을 물고는 고개를 홱 젖혀 북 찢었다. 치마자락이 찢겨나가며 속곳이 다 드러났고 희멀끔한 허벅살이 다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을 따질 게제가 못되였다. 

 

천쪼박으로 총상을 입은 다리를 질끈 동이였다. 

 

그러다 끝순이 신음을 토해냈다. 

 

다리의 통증이 느껴져서가 아니였다. 그보다도 더큰 통증이 배에 덮쳐왔다. 


너무나도 큰 통증에 끝순은 뒤로 벌렁 자빠져 버렸다. 

 

통증은 아래배로 부터 스멀스멀 기여와 온 몸을 휩쌓다. 극심한 통증에 끝순은 입을 딱 벌렸다. 하느라지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렸다. 

 

사슴바위를 떠인 산 봉우리가 그녀를 향해 꼰지기라도 할듯 거꾸로 동공에 비쳐왔다.

 

그 골짝사이로 하늘변을 덮으며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검은 연기가 보였다. 

 

한 가슴 울기처럼 가득찬 슬픔과 동통이 한꺼번에 피덩어리처럼 뭉쳐 목구멍 가득히 뻗질러 올라오고 있었다.

“어매!”

 

 

방금까지는 들쉼조차 함부로 쉬지 못하던 끝순이 동통을 못이겨 소리내여 비명을 질렀다. 

 

강보에 어머니를 잃고 홀아비 손에서 자랐던 그녀는 보지도 못한 어머니를 소리내여 불렀다. 

 

혼몽한 의식속에 산자락을 덮으며 흐드러지게 피였는 진달래꽃이 보였다.

 

허우적거리는 손으로 진달래나무가지를 부여잡았다.

 

뭉그려 힘을 준 손에서 진달래가 뿌리채 뽑혀 나왔다.

 

배꼽노리로부터 불덩이 같은것이 불쑥 치솟는듯 했다. 

 

아래배로 못견디게 우럭우럭하는 뜨거운 열기를 느껴 끝순은 두 손으로 흙바닥을 호벼파며 몸부림했다.

 

창자를 비트는듯한 비명과 함께 끝순은 하체로 진달래꽃처럼 선연한 피를 울컥 쏟으며 태생부터 불운한 아이를 몸밖으로 밀어 냈다. 

 

팽팽하게 켕켰던 힘살이 느즈러질 무렵 꽉 깨문 터진 입술로 배릿한 피를 머금고 끝순은 치마자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아기를 받았다.

 

꿈지럭거리는 아이를 보듬어안고 이발로 데룽데룽 달린 태줄을 물어 끊었다.

 

그런 경황중에서도 아이의 아래도리에 눈길이 갔다. 계집애였다.

 

굵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제 평생 울 분량을 다 울어버렸나 했더니 눈물은 다시 멈출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아이의 얼굴에 대였다. 아이가 흠칫 하더니 드디여 응애 하고 첫 울음을 터뜨렸다

막상 고고의 소리가 아기의 꽃순같은 입에서 터져 나오자 끝순은 와뜰 놀라며 아기를 품에 꼭 껴안았다. 덴겁히 사위를 둘러 보았다. 다행이 왜병들은 물러가고 없었다. 

 

강녘은 죽음처럼 조용했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여 있다.

 

앞산에도, 뒤산에도, 양지 음지를 가리지 않고 피여 있다. 

 

산등성이에도 고개마루에도 바위 틈에도 그리고 마을 언저리까지 밀고 내려와 피여 있다. 

 

하지만 진달래가 가녁을 령롱하게 수놓았던 마을은 이제 더는 없다. 

 

볼을 스치는 배릿한 강바람에는 옅은 진달래 향이 섞여 있었다. 

 

그 바람의 위무의 손길에 끝순은 젖은 눈물을 말렸다. 

 

솟쩍 솟쩍

 

어디선가 소쩍새가 한이 서린 울음을 덩이로 토하고 또 토해 냈다.

 

- 김 혁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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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칼럼] 소설로 읽는 “간도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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