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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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나라에 보내는 이메일
    ● 전영실 보고싶은 당신! 저의 목소리 들리는지요? 2년만에 당신을 불러봅니다. 그렇게 그리워하지만 왜서 꿈에도 나타나 주지 않는지요? 당신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요? 하늘나라 몇번지인지요? 거기에는 마음이 편하겠죠? 당신은 이승에서의 고달픈 삶과 생사를 가르는 투병생활, 지치고 피곤한 기색ㅡ 초췌한 얼굴 벗어나 근심걱정이 없는 좋은 곳에서 나와 꿈에서라도 만나주면 안됩니까? 흰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같이 살자던 당신이 어쩌면 가정운명의 굴레를 나에게 맡겨주고 혼자서 두말없이 떠난답니까? 당신이 가는 길을 막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집 네채씩 팔아 넣어도 재산은 재산대로 날아났지만 끝내 병이 당신을 이기고야 만답니까?!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했는데 그래 나의 정성이 모자랐단 말입니까? 이 큰 세상에 어쩌면 암을 치려하는 의사가 한명도 없단 말입니까? 나는 지금 살아있지만 이승이 아니고 저승에서 사는 기분입니다. 며칠전 회사에서 “3.8활동”이 있었어요. 정심식사가 끝나자 노래방으로 갔답니다. 우두커니 한구석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의미”란 노래를 선택하여 주었어요. 당신, 사랑하는 내 당신/ 둘도 없는 내 당신/ 당신 없는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 노래가 나의 마음을 울렸어요. 슬픔의 봇물을 터뜨려 놓았습니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오고 목이 꺽 메였어요. 저는 끝내 마이크를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하남강의 물결도 대동강으로 되네. … 당신은 노래를 한다하면 목소리가 좋고 춤도 그렇게 몸을 가볍게 움직이였지요. 당신은 무슨 일이나 막힘이 없이 척척 해나갔고 남을 돕기를 즐겼습니다. 당신은 투병생활를 하면서 생사를 가르는 순간, 저 세상으로 가는 한명 또 한명의 환자들 생명이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필경 충격이 컸으련만 언제 한번 세상에 대고 자신의 불평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고 그 암담한 투병생활속에서도 정해진 자기의 운명을 고스란이 받아들이군 했는데 정서는 여전이 평온하면서도 낙관적이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고 갔기에 저는 오늘 너무도 외로운 존재가 되였습니다. 비록 착한 아들애가 있어 위안은 된다 하지만 그래도 어찌 당신에 비하겠습니까?! 요즘 꽃샘추위가 이어지는데 함속에 있는 당신 춥지 않는지 걱정됩니다. 밤이면 외롭지 않는지? 바라볼 사람도, 만나볼 사람도 없는 적막한 곳이지만 당신 항상 용감해서 무섭지는 않을거예요. 당신한테 사랑을 더 많히 주지 못한 것이 너무도 죄송스럽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저는 그 무엇이라 변명할 길 없습니다. 나를 버리고 먼저 간 당신 내가 괘씸해야 하겠는데 왜서 후회만 가득할까요? 공포, 악마 사람들은 왜서 어두움을 싫어하고 밝은 빛을 선호하는지? 겪을 것을 다 겪으면서 완성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되지만… 당신은 나에게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고 아픈 추억만 남겼어요.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려 슬픔과 고민을 씻어준다면 얼마난 좋겠어요? 당신 나를 만나서 고생 많이 하였는데 미안한 건 더 말할나위 없습니다. 저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면서 살겠습니다. 가기 싫어도 꼭 가야하는 길, 먼저 가고 늦게 갈 따름이지 아무 때건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2014년 4월 5일 청명날 전영실 프로필 1957년 4월생 2009년 연변련통회사에서 퇴직.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여성문인협회 원 연변 어머니수필회 회원 1995년 연길방송국 "대만등구컵" 일등상 수상. 2001년 한국 KBS "조선족생활체험 수기공모" 가작상 수상 2003년 연변일보 생활수기 2등상 수상 2004년 한국장학회 우수상 수상 2004년 연변 조선족어머니수필회 은상 수상.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4-06-02
  • 1분이라도 더 뛰면 승리한다
    1일,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12라운드 홈구장전에서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북상한 광동일지천팀을 2 : 1로 제압하면서 꼴찌탈출에 성공함과 아울러 갑급잔류의 서광을 맞았다. 감독초대석 왕건: 찜통더위에 선수들 수고했다 맥초: 우리 선수들 표현에 만족한다 왕건(연변천양천팀 코치): 이광호 감독은 일이 바빠 소식공개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나한테 위탁했다. 오늘 찜통같은 더운 날씨에 우리 선수들이 체력상 좀 문제가 있었지만 최종 승리했다. 오늘같은 날씨에 누가 1분이라도 더 뛰면 승리한다. 결국 우리 선수들이 해냈다. 선수들한테 감사하다. 맥초(광동일지천팀 감독): 연변팀의 홈구장 승리를 축하한다. 우리로서는 오늘 경기가 아주 힘들었다. 충분히 준비했으나 더운 날씨에 기술발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는 연변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반전에 2골 뒤지면서 선수들의 심리에 조급정서가 생겼다. 후반들어 재포치하고 선수들이 교체하면서 주도권을 장악한 결과 한골 만회했다. 힘든 시기이다. 끝까지 잘 싸워주어 감사하다. 앞으로 수비를 강화하고 진공면에서도 일정 부분 개선하노라면 기회가 생길 것이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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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2
  • "의료관광도 한류 열풍에 탑승한다"
    6월을 눈앞에 두고 베이징에는 갑자기 섭씨 42도의 무더위가 들이닥쳤습니다. 베이징 국가회의센터에서 열린 2014중국(베이징)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한국 전시관에도 더운 날씨만큼이나 열풍이 불었습니다. 한국 전시관에는 대한무역투자 진흥공사를 비롯한 총14개 업체가 참석, 그 중에는 의료 관광 등을 목적으로 참가한 업체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 6개나 되었습니다. 베이징 아니 중국 전역을 강타하는 한류 열풍에는 인제 의료관광도 탑승하고 있습니다. 한국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의료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수가 총 21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중 중국에서 방문한 분이 5만6천명으로 약 26%정도에 해당합니다. 방문한 분들중에 4명중에 한명은 성형, 혹은 피부과 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성형시장의 수요층은 학생, 직장인, 산후 여성 등으로 다양하며 매년 20%이상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중국의 성형시장은 이제 막 성장기에 진입해 향후 성형시장 규모가 계속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와중에 한국 성형외과는 중국의 안방을 차지한 한국드라마처럼 역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형외과는1961년 한국의사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성형외과 전공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유재덕 교수가 연세의대에서 성형외과 전문진료와 교육을 시작한것에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중국보다 20년 앞서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로 인해 현재 한국 성형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로 부상했습니다.인제 한국에서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삼은 성형시장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현 주소입니다. 이에 따라 적지 않은 병원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유치하는데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고객군체가 많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일본 등 나라가 자연히 그들의 중요한 타깃으로 떠올랐습니다. 중국이 워낙 인구도 많고 한국과는 위치적으로도 가깝고 그렇지만은 한국이 좀더 몇몇 앞선 분야들중에 하나가 의료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신경성형술이라는 일종의 간단한 시술이에요. 저의 21세기 병원은 척추와 관절을 주로 하는데 중국보다는 수준자체가 최소 10~20년 앞선것으로 평의되여 있거든요. 그런 쪽에 포커스를 맞춰서 환자분들을 한국으로 유치할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왔고요. 그렇게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의 고객 유치에 초점을 맞춘 그들과는 달리 고객이 살고 있는 현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병원도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성형시술을 많이 받는데 중국에서 직접 병원을 해서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편하게 시술을 받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한국 현재 상태는 경쟁이 심하고 포화 상태에 넘치고 가격 경쟁력도 높습니다. 중국시장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중국 시장을 한번 진출해 보려고 왔습니다. 한국의 의료부스는 많은 박람회 참석자들의 발길을 잡았습니다. 종합 전시장 1층에 자리를 잡은 의료부스는 언제나 사람들로 흥성거렸습니다. 하루 평균 150명에서 200명이 저의 부스를 찾아주시고요..대부분 저의 목적대로 함께 병원을 운영 하실 의향있는 분들도 있고, 미용에 관심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의료관광 고객 유치를 해주는 에이전시 직업군체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직업군체는 중국에서 한국에 치료 받으러 가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한국에 가서 치료받을수 있게 건강한 진료계획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중국에서 병원예약으로도 의료관광이 가능해졌습니다. 의료관광비자는 한국병원이나 유치기관에서 초청절차를 대행하여 '사증발급인정서'를 미리받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본인(여행사)이 직접 서류를 준비하여 대사관에 의료관광비자 신청을 할수도 있습니다. 한국 입국비자 수속절차가 편리해짐에 따라 의료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중국 관광객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인제 의료관광도 한류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국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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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1
  • 연변천양천 광동일지천에 2 :1 승리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지충국의 새로운 시도가 선제골을 낚아올리고 최인의 침투가 두번째 골을 유도해냈다. 1일,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12라운드 홈구장전에서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북상한 광동일지천팀을 2 : 1로 제압하면서 꼴찌탈출에 성공함과 아울러 갑급잔류의 서광을 맞았다. 경기전 연변팀의 이광호 감독은 수비가 위주이고 기술형 구단인 광동일지천팀의 특징을 면밀히 분석하고 3-5-2의 진공위주의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경기초반, 연변팀은 홈구장우세를 충분히 이용, 75% 이상의 공점유율을 가지면서 강하게 상대방을 몰아붙였다. 특히 10번 지충국 선수가 상대방이 수비에 집착하는 반면 연변팀에 출중한 스트라이커(前锋)가 부재한 상황을 감안해 대담히 롱슈팅(远射)을 시도, 연속 두번 슈팅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지충국의 시도는 적중했다. 경기 25분 지충국은 25미터밖의 중앙에서 세번째로 슈팅, 상대방 골키퍼가 “아차” 할 사이도 없이 공이 일지천의 골네트를 흔들게 했다. 이어 7번 최인 선수 역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연변팀에 득점기회를 만들어냈다. 전반 27분경, 최인 선수가 변선에서 드리블하며 일지천 금지구역으로 돌입하던 중 상대방의 반칙으로 연변팀은 페널티킥 기회가 생겼고 10번 지충국이 키커로 나서면서 추가꼴에 성공했다. 두번 골을 허락한 일지천은 그제야 정신이 드는듯 외적용병을 투톱으로 거센 반격을 가해왔지만 연변팀은 악착같이 수비에 집중하며 전과를 지켜내기에 성공했다. 후반들어 일지천은 실점만회를 목적으로 더욱 사납게 밀물식 공격을 해왔다. 후반 12분 연변팀 선수들이 체력한계를 보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일지천팀의 엽위초 선수가 공차단에 성공하며 슈팅해 한꼴 만회했다. 후반 18분, 연변팀의 9번 김도형의 패스를 이어받은 6번 이훈 선수가 골키퍼가 없는 빈 문대를 놓고 슈팅했으나 공이 크로스바(球门)옆으로 굴러나갔다. 그날 경기 중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그뒤 연변팀의 20번 최민이 선후로 프리킥을 주도하고 헤딩슈팅도 날렸지만 골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상대방 또한 골키퍼가 프리킥까지 주도하며 맹공격에 나섰으나 연변팀의 육탄수비를 뚫지는 못했다. 이날의 승전으로 연변팀은 2승 2무 8패 8점으로 꼴지탈출에 성공했다. 오는 7일 연변팀은 역시 연길홈구장에서 심양중택팀과 2연승을 노리게 된다.
    • 스포츠
    2014-06-01
  • 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마지막 회)
    ■ 허길성 2003년의 어느날, 어디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한 한국혈통의 미국인이 나를 찾아왔다. 김찬영이라고 부르는 그 분은 교육학 박사로서 세계 여러개 나라를 돌아다니며 우리 민족들한테 도움을 주는 자선가이기도 했다. 당시 김박사가 나를 찾게 된 리유는 자신이 연변내에 집을 지어 자선사업을 하게 되자 건축설계에 미립이 터있는 나의 손을 빌자는것이였다. “허선생님, 선생이 건축설계분야의 전문가란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하는 사업이 저를 위한 일이 아니고 우리 민족을 위한 자선사업이니 선생님께서 저의 한팔로 되여주시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당시 돈을 벌자고 들었다면 나는 그 미국적 한국인을 돕지 않아도 되였다. 내가 하고있는 곰사육업을 잘 해도 별로 돈곤난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 자선사업을 하기 위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니 차마 거절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번 마주앉다 보니 김찬영이란 분의 인간성도 매우 좋았고 인상이 깊었다. 나는 결국 김찬영이란 자선가의 청을 받아들였다. 가정의 곰사육업도 몹시 힘들었지만 남의 청이라면 거절하지 못하는것이 나의 흠이라면 흠이였다. 헌데 김찬영이란 분과 합작하다 보니 내가 해야 할일이 단지 건축설계뿐이 아니였다. 그분이 연변에서의 자선사업뿐 아니라 기타 나라에 가서도 자기가 할일이 별도로 있다보니 연변에서의 일은 내가 도맡아할 때가 많았다. 례하면 고아원에 식량과 모포(毛毯) 등을 보내주고 빈곤지역에 소를 지원하고 또한 그런 지역에 소우사칸을 지어주는 등 일은 내가 직접 조사하고 계획을 짜고 그분한테 신청할 때가 많았다. 한편 이런 사업을 하다 보니 직접 나의 돈을 투자하여 벌이는 일은 아니였지만 보람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또한 나와 내가족이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 이 세상엔 아직도 계절에 따라 바꿔입을 옷이 없고 래일 솥에 앉힐 쌀이 없어 근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고 하니 가슴이 찡해나기도 했으며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이야말로 신성하고도 보람있는 사업이란것을 재삼 절감하군 했다. 김찬영이란 자선가와 손잡고 일하는 10여년간 나는 그의 사업을 동조하며 규모가 큰 호텔 하나, 양로원(훈춘) 한채, 고아원과 유치원 그리고 탁아소 각각 한채씩 설계해냈을뿐만 아니라 이런 건물을 짓는 공사의 질감독까지 맡아하였다. 한편 김찬영박사는 연길에 체류하고 있는 6년 기간 부인과 함께 공원뒤에 있는 나의 집에 거주, 집안에 있는 TV, 랭장고 및 기타 가구는 모두 우리가 쓰던 그대로 김찬영박사 내외간이 사용하게 했다. 김찬영이란 분과의 합작은 오늘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있다. 아마 이내 몸이 더 늙어 운신하기 힘들 때가 되여서야 완전히 손을 떼게 될런지?……다른 한편 그 언제부터인가 나한테는 늘 마음속 한쪽 구석에서 걸리는것이 있었다. 즉 남을 도와주는 인생에서 어딘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것이였다. 인생은 베푸는것이고 또 거기로부터 인생의 보람도 만끽한다고도 하는데 하다면 여태껏 내가 남한테 베풀어줌에 있어서 너무 린색하고 너무 자사자리한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되자 나는 몸은 편안해도 마음은 편안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는 김찬영이란 한국계 미국인을 알게 되고 그와 손잡고 함께 자선사업에 몸을 담그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바로 이럴즈음, 많은 농촌들에서 학교들이 페교가 되면서 숱한 학생들이 도시로 대거 몰려들었는데 그중에는 개산툰에서 태여나고 자랐던 송정동이란 애도 있었다. 나는 그애를 우리 집으로 데려다 키우면서 공부시키자고 안해한테 제의했다. 이에 안해는 그애의 처지에 대해 동정은 하면서도 처음에는 쉽사리 응하지 않았다. 그 리유는 여러가지였다. 리유를 들어보니 안해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나 역시 여태껏 죽도록 고생한 안해가 이제부터라도 편안하게 로후를 보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제날 우리가 자식들을 키우면서 고생할 때 도와나선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런 사람들의 처지 역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즉 그냥 수수방관할수가 없었다. 안해의 몸이 고달프고 나 또한 신체가 예전과 같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안해를 설복하면서 송정동이를 키워보자고 제의했다. 나의 지속적인 설복에 결국 안해도 끝내는 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기실 안해 역시 그애를 데려다 키워줄 생각을 했으나 다만 자신과 나의 신체가 걱정돼 우려했을 따름이였다. 송정동은 6살부터부터 우리 집에 와서 자라기 시작했다. 애는 천성적으로 예술세포가 있는 애였다. 후에 송정동은 국내의 모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한국에서 박사공부를 하고있는 상황이다. 한편 송정동이란 애 한명만을 데려다 키운다고 했으나 한번 참여하면 계속 하게 되는것이 바로 이런 일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뒤 우리는 계속 마지막이라고 하면서도 선후로 서중걸, 리해, 송정복 등 애들을 우리 집에 데려다 키우게 되였다. 물론 정력과 시간을 많이 쏟긴 했지만 현재 그애들이 잘되고 또 잘되여 가는것을 보노라니 그만큼 보람도 컸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 밝힐것은 송정동에 이어 우리 집에서 자라며 공부한 애들중 서중걸이란 애는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근무하고 리해라는 애는 중앙민족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본교에 남아 교편을 잡고 있으며 송정복이란 애는 현재 장춘재정대학 재학중이란것이다.현재 이애들은 명절이나 우리 부부의 생일이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오며 그때마다 우리 부부의 덕분으로 자기들의 오늘이 있게 됐노라며 늘 우리한테 감사해하고 있다. 2003년 우리 부부는 연길시 민주촌에 작으마한 집 한채를 사놓았다. 금방 샀을 때 그 집은 40여평방이나 되는 작으마한 초가집이였으나 후에 우리는 해당 부문의 허가를 맡고 그 집을 확장, 확장된 집은 180평방메터였고 뜨락까지 합치면 약 2000평방메터가 됐다. 내가 이 집을 산 목적은 겨울이면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내고 봄부터 가을 사이에 촌에서 살며 포도나 복분자같은것을 재배하면서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잔병이 많은 안해를 위해서도 그런 생활이 필요했다. 도심의 아파트에서 “갇혀사는 생활”보다 공기가 맑고 생활의 진가를 체험할수 있는 교외생활이 스트레스 해소나 다른 건강에도 좋을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집을 사자바람으로 정원에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오얏나무, 사과배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 등을 심었으며 오미자, 구기자, 딸기 등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2000평방여메터가 되는 집둘레에 철근배자를 세웠으며 개와 닭 등을 쳤다. 그뒤엔 곰우리를 만들고는 시내에 있던 곰도 그곳으로 옮겨 사육했다. 우리는 과일나무와 오미자 등 경제작물에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고 개, 닭과 곰 등 동물들이 배설하는 오줌이나 똥을 비료로 만들어 주군 했다. 그러자 과일나무들과 경제작물의 자람새가 매우 좋아 몇년후부터는 과일과 오미자, 구기자, 포도 등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모든것을 팔지 않았다. 과일은 철에 따라 친척집과 친구들한테 나누어주었고 오미자 등 경제작물도 가을에 수확해서는 일부는 팔고 일부는 여러 가정에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중 살구같은 과일은 제때에 다 먹을수 없어 씨만 받아서는 그것을 깨먹기도 하고 약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안해의 친구들이나 나의 친구들은 곧잘 우리 그 집을 찾아와 들놀이를 하는 동시에 뜨락에서 수확한 콩으로 두부를 앗아먹기도 한다. 나의 그 집은 민주촌의 산기슭에 있기에 경치가 아름답다. 그리고 집에는 침실 3개, 객실 3개, 위생실 2개가 있고 노래방기계, TV등 시설이 구전하며 지하 40메터 깊이에 있는 샘물을 뽑아올리기에 물맛 또한 으뜸이다. 거기에 절기에 따라 앵두, 살구와 오얏 그리고 복숭아와 사과배 등을 맛볼수 있기에 사람들이 즐겨 찾군 한다.그리고 여기서도 빠뜨릴수 없는것은 안해를 위해, 또 안해의 건강이 념려되여 민주촌의 정원생활을 선택한 나였으나 내가 줄곧 사회활동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 그 집의 관리 즉 정원을 가꾸고 개, 닭과 곰에 대한 사육과 관리는 기본상 안해가 도맡아했다. 그러니 내가 또 안해를 고생시키고 안해한테 빚을 진셈이였다. 또한 이러한 안해가 있었기에 내가 시름놓고 사회활동에 참여할수 있은것도 사실임을 분명히 밝히는바이다. 그저 현모량처인 안해한테 고마울뿐이다. 최근들어 나는 가끔씩 안해의 얼굴을 뜯어보군 한다. 어쩐지 늙었다는 생각이 들기때문이였다. 엊저녁에도 나느 침대에 누운 안해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힘없이 자는 모습이 불쌍하고 못내 이 가슴이 쓰려났다. 특히 요즘부터는 초저녁이면 꼼짝 못하는 안해이다. 나는 그래도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파트에서 그닥 멀지 않는 진달래광장에 가서 산책이나 하지만 안해는 그렇지를 못하고있다. 내가 산책이나 운동을 좀 하다가 들어오면 안해는 인기척도 모르고 꿈속에 빠지기가 쉽상이다. 처녀시절의 이쁜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볼수 없도록 망가진 모습이다. 오, 어찌 그렇지 않으랴…나는 늘 이런 안해한테 크게 빚을 진 마음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안해한테 크게 잘해준 일은 거의 없고 그저 나와 이 가정을 위해 고생만 시켜왔으니 말이다. 신혼초기에 있은 나의 로동개조, 중년기에 들어서의 나의 잦은 출장 그리고 집안살림을 도맡아하면서도 자녀들의 뒤바라지를 위해 복장공장의 삯일을 했고 해리서와 곰을 키우고 지어는 시집편과 친정편의 학생 여러명의 뒤바라지까지 해온 안해였다. 그것도 몸에 잔병이 많은 안해로서 말이다. 그리고 안해한테는 아무런 명예도 없다. 오직 남편과 자식들이 잘되게 하기 위해, 남편과 자식들이 밖에 나가 기죽으며 살게 하지 않게 위해 그 한몸 망가지도록 일만 했다. 그러다보니 잃은것은 젊음이였고 남은것은 병들고 지친 몸뿐이다.현재 안해는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을것이다. 또한 갖고싶은것도 많을것이다. 기실 안해는 현대인들로서는 거의 모두가 누리고 있는것을 누리지 못하였다. 특히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에서 파마머리를 못했고 너울을 쓰지 못했으며 첫날상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어찌보면 이 모든것이 내가 못나고 능력이 없어 빚어진 결과인것 같다. 총적으로 내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심정이다. 현재 나 역시 여러모로 생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안해를 기쁘게 해줄수 있겠는가고말이다. 지금까지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준 안해여 고맙소… 그리고 사랑합니다. 에필로그 인생을 한번 쭉 돌이켜보면서 그것을 정리해보는 이 시각, 나는 행복이란 이 단어를 놓고 여러가지로 음미해본다. 어떤이는 대부자로 되는것을 행복의 최고치로 생각할수도 있고 또 어떤이는 크게 출세하는것을 행복의 최고치로 간주할수도 있다. 그중 나는 큰부자도, 큰벼슬도 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그것을 최고의 만족으로 여긴다. 수십년간 나를 따라준 현숙한 안해가 있고 거기에 많지는 않지만 해외류학까지 한 아들과 딸이 있는가 하면 귀여운 손녀가 있으며 또한 지금도 나 자신의 취미와 능력에 따라 살고 있으니 더욱 만족이다. 나의 취미란 곧바로 독서, 그리고 가끔씩 친구나 일가친척들과 모여앉으면 즐겁고도 유쾌하게 마시는 술 한잔 등이라고나 할가?그렇다. 나는 결코 지나온 나의 인생에 대해 큰 후회가 없으며 또한 이제 다시 태여나고 시대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안해와 함께 나의 취미와 생활방식대로 살고 싶음을 고백하는바이다. (끝)※ 지금까지 애독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부터는 장편실화소설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을 연재해드립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6-01
  • 오묘한 세계대백과(11)달은 어디에서 왔는가?
    달은 어디에서 왔는가? 달은 우리 지구에서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구(星球)이며 밤하늘에서 우리가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명랑한 천체이다. 그럼 달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미국의 “아폴로”호 비행접시가 갖고 돌아온 달의 암석표본을 화험해본 결과 사람들은 달이 지구보다 더 나이가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달은 가능하게 원래 하나의 태양주위를 도는 소행성이었다가후에 지구쪽으로 접근했으며 지구의 자기마당 반응에 의해 지구의 위성으로 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감측에따르면 달과 태양계의 소행성 사이의 평균 밀도가 매우 접근해 있지만 이는 지구와의 밀도와는 다르다. 다른한 방면으로 달의 궤도와 지구의 궤도가 같은 평면에 있지 않다는 것으로서 비록 달과 지구가 “친밀”하고 “가깝다”지만 확실히 “낳아준 어머니”는같지 않다는 것이다. 달에 대한 요해가점차 심입됨에 따라 사람들은 달에는 인류가 생존함에 있어서 필요한 산소가 결핍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미국 화학가들은 일종 방안을 개발, 그것인즉 달에 있는 일종 광석을 가열하거나 전기를 통하여 산소를얻어 사람들이 그 곳에서 호흡하게 하고 또한 로켓의 연료로 쓴다는 것이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제공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5-31
  • [연변축구] 약팀은 없다 방심은 금물
    ■ 김철균 오는 6월 1일, 연변장백산 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연길 홈장에서 올들어 약체팀으로 불리우는 광동일지천팀과 한 판 승을 노리게 된다. 올들어 연속 3경기가 차례진 홈장, 욕심대로라면 지난 중능팀전이 빅었으니 이번의 대 광동일지천전과 다음 6월 7일의 대 심양중택전은 반드시 반드시 이겨야 11점이란 기록으로 꼴찌탈출과 더불어 강등후보권에서도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에서도 언급했지만 때마침 연속 3경기가 홈장인데다 상대의 두 팀 다 올들어 “눈정기가 없는 마약투여자”처럼 휘친거린다. “하늘이 준 기회”란 생각도 갑자기 든다. 광동일지천- 연변팀 먼저 성적부진으로 감독풍파를 겪은 “동병상련”의 갑급구단이다. 하지만 현재 일지천도 지난 2경기에서 1승 1무로 팀 안정세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올들어 어찌 어찌하여 부진을 겪고 있지만 지난해엔 슈퍼리그진출을 견주었던 팀이다. 하기에 올들어 연변팀한테는 약팀이란 없다. 지난번 청도중능과의 경기에서 빅었다 하여 자만해서는 절대 안된다. 중능전에서의 무승부는 선수들이 최선을 잘해준 것도 있지만 운도 잘 따라주었다. 즉 패전가능성이 아주 컸던 경기에서 그나마 빅었던 것이다. 그날 연변팀은 많은 허점을 노출시켰다. 중원탈절현상, 대인마크에서의 집중력과 기량 부족 그리고 후반들어 현저하게 드러난 체력한계… 이번에 그런 허점 외에도 다른 허점이 보이면 큰 일이다. 연변팀에 왜 “제2의 고종훈”과 “제2의 이홍군” 그리고 “제2의 이재민”이 나타나지 못하는가 원망스럽다. 중원조직자는 넓은 시야와 공방절주 통제가 필수이고 대인마크는 위치선정과 자리메꿈이 필수이며 스트라이커(前锋)는 슈팅챤스 장악이 필수이다. 9시간이 아니고 90분간의 정신집중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능력 이상의 요구는 없다. 그저 지난 중능전만큼이라도 열심히 경기에 임하면 만족이다. 중능전처럼 경기에 임한다면 설사 패전일지라도 축구팬들은 그런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 스포츠
    2014-05-31
  • 중국 국민첫사랑 최심심 한복화보 화제..... 대장금2 캐스팅?
    최근, 중국의 국민첫사랑(国民初恋)으로 불리우는 최심심(崔心心)양의 한복화보가 화제다. 네티즌들은 마치 대장금의 이영애를 연상시키다는 반응과 함께 혹시 대장금2나 한국드라마에 캐스팅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졌다. 이에, 최심심 측 매니저는 현재 한국의 모 드라마 제작팀과 협의중인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 정해진 드라마나 배역은 없다고 전했다. 중국의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우는 추이신신(최심심)양은 1994년생으로 신세대 여배우다. 그녀는 해방군예술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드라마<四手妙弹> 에서 청순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 연예·방송
    2014-05-31
  • 한국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 시안서 제막
    신화통신에 따르면 5월 29일 오전, 한국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 제막식이 시안(西安)시 창안(長安)구 두취(杜曲)진에서 있었다. 왕리샤(王莉霞) 산시(陝西)성 부성장과 외교부 아시아국, 산시성 외사 관련 담당자 및 각 계 시민들이 제막식에 참여했다. 그외 박승춘 한국 국가보훈처 처장, 전재원 시안 총영사 등이 참석했다. 장보원(張寶文) 산시성 외사 판공실 주임이 중국 측을 대표해 축사를 발표했다. 장보원은 축사에서 중한 인민이 어깨 나란히 일본군국주의 침략에 대항해 나섰던 역사를 회고하고나서 표지석을 세운 목적은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역사 정의를 수호하는 것을 기반으로 미래를 개척하려는데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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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4-05-31
  • 중국, '비만' 세계 정상 미국 추월할 듯
    [동포투데이] 비만으로 고민하는 중국인 수가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어 '비만' 세계 순위에서 2위 차지한 중국은 곧 정상을 지키고 있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러시아 언론이 보도했다. 최근 공개된 란세트 국제의학저널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 중국에서 약 6,200만 여명이 비만으로 전 인구의 9%를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아동 비만이 성인 비만의 2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중국 언론 보도에 의하면 4살된 류 지하오 소년의 몸무게가 62kg을 기록하며 세계기록을 갱신했다. 비만 주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바르지 못한 식습관, 앉아서 일하는 생활습관, 환경학적 문제를 꼽았다. 한편 비만은 음주, 흡연보다 더 해롭고 사망률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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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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