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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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변천양천 광동일지천에 2 :1 승리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지충국의 새로운 시도가 선제골을 낚아올리고 최인의 침투가 두번째 골을 유도해냈다. 1일,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12라운드 홈구장전에서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북상한 광동일지천팀을 2 : 1로 제압하면서 꼴찌탈출에 성공함과 아울러 갑급잔류의 서광을 맞았다. 경기전 연변팀의 이광호 감독은 수비가 위주이고 기술형 구단인 광동일지천팀의 특징을 면밀히 분석하고 3-5-2의 진공위주의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경기초반, 연변팀은 홈구장우세를 충분히 이용, 75% 이상의 공점유율을 가지면서 강하게 상대방을 몰아붙였다. 특히 10번 지충국 선수가 상대방이 수비에 집착하는 반면 연변팀에 출중한 스트라이커(前锋)가 부재한 상황을 감안해 대담히 롱슈팅(远射)을 시도, 연속 두번 슈팅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지충국의 시도는 적중했다. 경기 25분 지충국은 25미터밖의 중앙에서 세번째로 슈팅, 상대방 골키퍼가 “아차” 할 사이도 없이 공이 일지천의 골네트를 흔들게 했다. 이어 7번 최인 선수 역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연변팀에 득점기회를 만들어냈다. 전반 27분경, 최인 선수가 변선에서 드리블하며 일지천 금지구역으로 돌입하던 중 상대방의 반칙으로 연변팀은 페널티킥 기회가 생겼고 10번 지충국이 키커로 나서면서 추가꼴에 성공했다. 두번 골을 허락한 일지천은 그제야 정신이 드는듯 외적용병을 투톱으로 거센 반격을 가해왔지만 연변팀은 악착같이 수비에 집중하며 전과를 지켜내기에 성공했다. 후반들어 일지천은 실점만회를 목적으로 더욱 사납게 밀물식 공격을 해왔다. 후반 12분 연변팀 선수들이 체력한계를 보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일지천팀의 엽위초 선수가 공차단에 성공하며 슈팅해 한꼴 만회했다. 후반 18분, 연변팀의 9번 김도형의 패스를 이어받은 6번 이훈 선수가 골키퍼가 없는 빈 문대를 놓고 슈팅했으나 공이 크로스바(球门)옆으로 굴러나갔다. 그날 경기 중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그뒤 연변팀의 20번 최민이 선후로 프리킥을 주도하고 헤딩슈팅도 날렸지만 골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상대방 또한 골키퍼가 프리킥까지 주도하며 맹공격에 나섰으나 연변팀의 육탄수비를 뚫지는 못했다. 이날의 승전으로 연변팀은 2승 2무 8패 8점으로 꼴지탈출에 성공했다. 오는 7일 연변팀은 역시 연길홈구장에서 심양중택팀과 2연승을 노리게 된다.
    • 스포츠
    2014-06-01
  • 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마지막 회)
    ■ 허길성 2003년의 어느날, 어디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한 한국혈통의 미국인이 나를 찾아왔다. 김찬영이라고 부르는 그 분은 교육학 박사로서 세계 여러개 나라를 돌아다니며 우리 민족들한테 도움을 주는 자선가이기도 했다. 당시 김박사가 나를 찾게 된 리유는 자신이 연변내에 집을 지어 자선사업을 하게 되자 건축설계에 미립이 터있는 나의 손을 빌자는것이였다. “허선생님, 선생이 건축설계분야의 전문가란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하는 사업이 저를 위한 일이 아니고 우리 민족을 위한 자선사업이니 선생님께서 저의 한팔로 되여주시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당시 돈을 벌자고 들었다면 나는 그 미국적 한국인을 돕지 않아도 되였다. 내가 하고있는 곰사육업을 잘 해도 별로 돈곤난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 자선사업을 하기 위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니 차마 거절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번 마주앉다 보니 김찬영이란 분의 인간성도 매우 좋았고 인상이 깊었다. 나는 결국 김찬영이란 자선가의 청을 받아들였다. 가정의 곰사육업도 몹시 힘들었지만 남의 청이라면 거절하지 못하는것이 나의 흠이라면 흠이였다. 헌데 김찬영이란 분과 합작하다 보니 내가 해야 할일이 단지 건축설계뿐이 아니였다. 그분이 연변에서의 자선사업뿐 아니라 기타 나라에 가서도 자기가 할일이 별도로 있다보니 연변에서의 일은 내가 도맡아할 때가 많았다. 례하면 고아원에 식량과 모포(毛毯) 등을 보내주고 빈곤지역에 소를 지원하고 또한 그런 지역에 소우사칸을 지어주는 등 일은 내가 직접 조사하고 계획을 짜고 그분한테 신청할 때가 많았다. 한편 이런 사업을 하다 보니 직접 나의 돈을 투자하여 벌이는 일은 아니였지만 보람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또한 나와 내가족이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 이 세상엔 아직도 계절에 따라 바꿔입을 옷이 없고 래일 솥에 앉힐 쌀이 없어 근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고 하니 가슴이 찡해나기도 했으며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이야말로 신성하고도 보람있는 사업이란것을 재삼 절감하군 했다. 김찬영이란 자선가와 손잡고 일하는 10여년간 나는 그의 사업을 동조하며 규모가 큰 호텔 하나, 양로원(훈춘) 한채, 고아원과 유치원 그리고 탁아소 각각 한채씩 설계해냈을뿐만 아니라 이런 건물을 짓는 공사의 질감독까지 맡아하였다. 한편 김찬영박사는 연길에 체류하고 있는 6년 기간 부인과 함께 공원뒤에 있는 나의 집에 거주, 집안에 있는 TV, 랭장고 및 기타 가구는 모두 우리가 쓰던 그대로 김찬영박사 내외간이 사용하게 했다. 김찬영이란 분과의 합작은 오늘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있다. 아마 이내 몸이 더 늙어 운신하기 힘들 때가 되여서야 완전히 손을 떼게 될런지?……다른 한편 그 언제부터인가 나한테는 늘 마음속 한쪽 구석에서 걸리는것이 있었다. 즉 남을 도와주는 인생에서 어딘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것이였다. 인생은 베푸는것이고 또 거기로부터 인생의 보람도 만끽한다고도 하는데 하다면 여태껏 내가 남한테 베풀어줌에 있어서 너무 린색하고 너무 자사자리한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되자 나는 몸은 편안해도 마음은 편안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는 김찬영이란 한국계 미국인을 알게 되고 그와 손잡고 함께 자선사업에 몸을 담그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바로 이럴즈음, 많은 농촌들에서 학교들이 페교가 되면서 숱한 학생들이 도시로 대거 몰려들었는데 그중에는 개산툰에서 태여나고 자랐던 송정동이란 애도 있었다. 나는 그애를 우리 집으로 데려다 키우면서 공부시키자고 안해한테 제의했다. 이에 안해는 그애의 처지에 대해 동정은 하면서도 처음에는 쉽사리 응하지 않았다. 그 리유는 여러가지였다. 리유를 들어보니 안해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나 역시 여태껏 죽도록 고생한 안해가 이제부터라도 편안하게 로후를 보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제날 우리가 자식들을 키우면서 고생할 때 도와나선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런 사람들의 처지 역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즉 그냥 수수방관할수가 없었다. 안해의 몸이 고달프고 나 또한 신체가 예전과 같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안해를 설복하면서 송정동이를 키워보자고 제의했다. 나의 지속적인 설복에 결국 안해도 끝내는 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기실 안해 역시 그애를 데려다 키워줄 생각을 했으나 다만 자신과 나의 신체가 걱정돼 우려했을 따름이였다. 송정동은 6살부터부터 우리 집에 와서 자라기 시작했다. 애는 천성적으로 예술세포가 있는 애였다. 후에 송정동은 국내의 모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한국에서 박사공부를 하고있는 상황이다. 한편 송정동이란 애 한명만을 데려다 키운다고 했으나 한번 참여하면 계속 하게 되는것이 바로 이런 일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뒤 우리는 계속 마지막이라고 하면서도 선후로 서중걸, 리해, 송정복 등 애들을 우리 집에 데려다 키우게 되였다. 물론 정력과 시간을 많이 쏟긴 했지만 현재 그애들이 잘되고 또 잘되여 가는것을 보노라니 그만큼 보람도 컸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 밝힐것은 송정동에 이어 우리 집에서 자라며 공부한 애들중 서중걸이란 애는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근무하고 리해라는 애는 중앙민족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본교에 남아 교편을 잡고 있으며 송정복이란 애는 현재 장춘재정대학 재학중이란것이다.현재 이애들은 명절이나 우리 부부의 생일이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오며 그때마다 우리 부부의 덕분으로 자기들의 오늘이 있게 됐노라며 늘 우리한테 감사해하고 있다. 2003년 우리 부부는 연길시 민주촌에 작으마한 집 한채를 사놓았다. 금방 샀을 때 그 집은 40여평방이나 되는 작으마한 초가집이였으나 후에 우리는 해당 부문의 허가를 맡고 그 집을 확장, 확장된 집은 180평방메터였고 뜨락까지 합치면 약 2000평방메터가 됐다. 내가 이 집을 산 목적은 겨울이면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내고 봄부터 가을 사이에 촌에서 살며 포도나 복분자같은것을 재배하면서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잔병이 많은 안해를 위해서도 그런 생활이 필요했다. 도심의 아파트에서 “갇혀사는 생활”보다 공기가 맑고 생활의 진가를 체험할수 있는 교외생활이 스트레스 해소나 다른 건강에도 좋을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집을 사자바람으로 정원에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오얏나무, 사과배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 등을 심었으며 오미자, 구기자, 딸기 등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2000평방여메터가 되는 집둘레에 철근배자를 세웠으며 개와 닭 등을 쳤다. 그뒤엔 곰우리를 만들고는 시내에 있던 곰도 그곳으로 옮겨 사육했다. 우리는 과일나무와 오미자 등 경제작물에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고 개, 닭과 곰 등 동물들이 배설하는 오줌이나 똥을 비료로 만들어 주군 했다. 그러자 과일나무들과 경제작물의 자람새가 매우 좋아 몇년후부터는 과일과 오미자, 구기자, 포도 등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모든것을 팔지 않았다. 과일은 철에 따라 친척집과 친구들한테 나누어주었고 오미자 등 경제작물도 가을에 수확해서는 일부는 팔고 일부는 여러 가정에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중 살구같은 과일은 제때에 다 먹을수 없어 씨만 받아서는 그것을 깨먹기도 하고 약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안해의 친구들이나 나의 친구들은 곧잘 우리 그 집을 찾아와 들놀이를 하는 동시에 뜨락에서 수확한 콩으로 두부를 앗아먹기도 한다. 나의 그 집은 민주촌의 산기슭에 있기에 경치가 아름답다. 그리고 집에는 침실 3개, 객실 3개, 위생실 2개가 있고 노래방기계, TV등 시설이 구전하며 지하 40메터 깊이에 있는 샘물을 뽑아올리기에 물맛 또한 으뜸이다. 거기에 절기에 따라 앵두, 살구와 오얏 그리고 복숭아와 사과배 등을 맛볼수 있기에 사람들이 즐겨 찾군 한다.그리고 여기서도 빠뜨릴수 없는것은 안해를 위해, 또 안해의 건강이 념려되여 민주촌의 정원생활을 선택한 나였으나 내가 줄곧 사회활동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 그 집의 관리 즉 정원을 가꾸고 개, 닭과 곰에 대한 사육과 관리는 기본상 안해가 도맡아했다. 그러니 내가 또 안해를 고생시키고 안해한테 빚을 진셈이였다. 또한 이러한 안해가 있었기에 내가 시름놓고 사회활동에 참여할수 있은것도 사실임을 분명히 밝히는바이다. 그저 현모량처인 안해한테 고마울뿐이다. 최근들어 나는 가끔씩 안해의 얼굴을 뜯어보군 한다. 어쩐지 늙었다는 생각이 들기때문이였다. 엊저녁에도 나느 침대에 누운 안해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힘없이 자는 모습이 불쌍하고 못내 이 가슴이 쓰려났다. 특히 요즘부터는 초저녁이면 꼼짝 못하는 안해이다. 나는 그래도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파트에서 그닥 멀지 않는 진달래광장에 가서 산책이나 하지만 안해는 그렇지를 못하고있다. 내가 산책이나 운동을 좀 하다가 들어오면 안해는 인기척도 모르고 꿈속에 빠지기가 쉽상이다. 처녀시절의 이쁜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볼수 없도록 망가진 모습이다. 오, 어찌 그렇지 않으랴…나는 늘 이런 안해한테 크게 빚을 진 마음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안해한테 크게 잘해준 일은 거의 없고 그저 나와 이 가정을 위해 고생만 시켜왔으니 말이다. 신혼초기에 있은 나의 로동개조, 중년기에 들어서의 나의 잦은 출장 그리고 집안살림을 도맡아하면서도 자녀들의 뒤바라지를 위해 복장공장의 삯일을 했고 해리서와 곰을 키우고 지어는 시집편과 친정편의 학생 여러명의 뒤바라지까지 해온 안해였다. 그것도 몸에 잔병이 많은 안해로서 말이다. 그리고 안해한테는 아무런 명예도 없다. 오직 남편과 자식들이 잘되게 하기 위해, 남편과 자식들이 밖에 나가 기죽으며 살게 하지 않게 위해 그 한몸 망가지도록 일만 했다. 그러다보니 잃은것은 젊음이였고 남은것은 병들고 지친 몸뿐이다.현재 안해는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을것이다. 또한 갖고싶은것도 많을것이다. 기실 안해는 현대인들로서는 거의 모두가 누리고 있는것을 누리지 못하였다. 특히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에서 파마머리를 못했고 너울을 쓰지 못했으며 첫날상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어찌보면 이 모든것이 내가 못나고 능력이 없어 빚어진 결과인것 같다. 총적으로 내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심정이다. 현재 나 역시 여러모로 생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안해를 기쁘게 해줄수 있겠는가고말이다. 지금까지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준 안해여 고맙소… 그리고 사랑합니다. 에필로그 인생을 한번 쭉 돌이켜보면서 그것을 정리해보는 이 시각, 나는 행복이란 이 단어를 놓고 여러가지로 음미해본다. 어떤이는 대부자로 되는것을 행복의 최고치로 생각할수도 있고 또 어떤이는 크게 출세하는것을 행복의 최고치로 간주할수도 있다. 그중 나는 큰부자도, 큰벼슬도 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그것을 최고의 만족으로 여긴다. 수십년간 나를 따라준 현숙한 안해가 있고 거기에 많지는 않지만 해외류학까지 한 아들과 딸이 있는가 하면 귀여운 손녀가 있으며 또한 지금도 나 자신의 취미와 능력에 따라 살고 있으니 더욱 만족이다. 나의 취미란 곧바로 독서, 그리고 가끔씩 친구나 일가친척들과 모여앉으면 즐겁고도 유쾌하게 마시는 술 한잔 등이라고나 할가?그렇다. 나는 결코 지나온 나의 인생에 대해 큰 후회가 없으며 또한 이제 다시 태여나고 시대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안해와 함께 나의 취미와 생활방식대로 살고 싶음을 고백하는바이다. (끝)※ 지금까지 애독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부터는 장편실화소설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을 연재해드립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6-01
  • 오묘한 세계대백과(11)달은 어디에서 왔는가?
    달은 어디에서 왔는가? 달은 우리 지구에서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구(星球)이며 밤하늘에서 우리가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명랑한 천체이다. 그럼 달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미국의 “아폴로”호 비행접시가 갖고 돌아온 달의 암석표본을 화험해본 결과 사람들은 달이 지구보다 더 나이가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달은 가능하게 원래 하나의 태양주위를 도는 소행성이었다가후에 지구쪽으로 접근했으며 지구의 자기마당 반응에 의해 지구의 위성으로 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감측에따르면 달과 태양계의 소행성 사이의 평균 밀도가 매우 접근해 있지만 이는 지구와의 밀도와는 다르다. 다른한 방면으로 달의 궤도와 지구의 궤도가 같은 평면에 있지 않다는 것으로서 비록 달과 지구가 “친밀”하고 “가깝다”지만 확실히 “낳아준 어머니”는같지 않다는 것이다. 달에 대한 요해가점차 심입됨에 따라 사람들은 달에는 인류가 생존함에 있어서 필요한 산소가 결핍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미국 화학가들은 일종 방안을 개발, 그것인즉 달에 있는 일종 광석을 가열하거나 전기를 통하여 산소를얻어 사람들이 그 곳에서 호흡하게 하고 또한 로켓의 연료로 쓴다는 것이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제공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5-31
  • [연변축구] 약팀은 없다 방심은 금물
    ■ 김철균 오는 6월 1일, 연변장백산 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연길 홈장에서 올들어 약체팀으로 불리우는 광동일지천팀과 한 판 승을 노리게 된다. 올들어 연속 3경기가 차례진 홈장, 욕심대로라면 지난 중능팀전이 빅었으니 이번의 대 광동일지천전과 다음 6월 7일의 대 심양중택전은 반드시 반드시 이겨야 11점이란 기록으로 꼴찌탈출과 더불어 강등후보권에서도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에서도 언급했지만 때마침 연속 3경기가 홈장인데다 상대의 두 팀 다 올들어 “눈정기가 없는 마약투여자”처럼 휘친거린다. “하늘이 준 기회”란 생각도 갑자기 든다. 광동일지천- 연변팀 먼저 성적부진으로 감독풍파를 겪은 “동병상련”의 갑급구단이다. 하지만 현재 일지천도 지난 2경기에서 1승 1무로 팀 안정세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올들어 어찌 어찌하여 부진을 겪고 있지만 지난해엔 슈퍼리그진출을 견주었던 팀이다. 하기에 올들어 연변팀한테는 약팀이란 없다. 지난번 청도중능과의 경기에서 빅었다 하여 자만해서는 절대 안된다. 중능전에서의 무승부는 선수들이 최선을 잘해준 것도 있지만 운도 잘 따라주었다. 즉 패전가능성이 아주 컸던 경기에서 그나마 빅었던 것이다. 그날 연변팀은 많은 허점을 노출시켰다. 중원탈절현상, 대인마크에서의 집중력과 기량 부족 그리고 후반들어 현저하게 드러난 체력한계… 이번에 그런 허점 외에도 다른 허점이 보이면 큰 일이다. 연변팀에 왜 “제2의 고종훈”과 “제2의 이홍군” 그리고 “제2의 이재민”이 나타나지 못하는가 원망스럽다. 중원조직자는 넓은 시야와 공방절주 통제가 필수이고 대인마크는 위치선정과 자리메꿈이 필수이며 스트라이커(前锋)는 슈팅챤스 장악이 필수이다. 9시간이 아니고 90분간의 정신집중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능력 이상의 요구는 없다. 그저 지난 중능전만큼이라도 열심히 경기에 임하면 만족이다. 중능전처럼 경기에 임한다면 설사 패전일지라도 축구팬들은 그런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 스포츠
    2014-05-31
  • 중국 국민첫사랑 최심심 한복화보 화제..... 대장금2 캐스팅?
    최근, 중국의 국민첫사랑(国民初恋)으로 불리우는 최심심(崔心心)양의 한복화보가 화제다. 네티즌들은 마치 대장금의 이영애를 연상시키다는 반응과 함께 혹시 대장금2나 한국드라마에 캐스팅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졌다. 이에, 최심심 측 매니저는 현재 한국의 모 드라마 제작팀과 협의중인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 정해진 드라마나 배역은 없다고 전했다. 중국의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우는 추이신신(최심심)양은 1994년생으로 신세대 여배우다. 그녀는 해방군예술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드라마<四手妙弹> 에서 청순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 연예·방송
    2014-05-31
  • 한국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 시안서 제막
    신화통신에 따르면 5월 29일 오전, 한국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 제막식이 시안(西安)시 창안(長安)구 두취(杜曲)진에서 있었다. 왕리샤(王莉霞) 산시(陝西)성 부성장과 외교부 아시아국, 산시성 외사 관련 담당자 및 각 계 시민들이 제막식에 참여했다. 그외 박승춘 한국 국가보훈처 처장, 전재원 시안 총영사 등이 참석했다. 장보원(張寶文) 산시성 외사 판공실 주임이 중국 측을 대표해 축사를 발표했다. 장보원은 축사에서 중한 인민이 어깨 나란히 일본군국주의 침략에 대항해 나섰던 역사를 회고하고나서 표지석을 세운 목적은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역사 정의를 수호하는 것을 기반으로 미래를 개척하려는데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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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4-05-31
  • 중국, '비만' 세계 정상 미국 추월할 듯
    [동포투데이] 비만으로 고민하는 중국인 수가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어 '비만' 세계 순위에서 2위 차지한 중국은 곧 정상을 지키고 있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러시아 언론이 보도했다. 최근 공개된 란세트 국제의학저널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 중국에서 약 6,200만 여명이 비만으로 전 인구의 9%를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아동 비만이 성인 비만의 2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중국 언론 보도에 의하면 4살된 류 지하오 소년의 몸무게가 62kg을 기록하며 세계기록을 갱신했다. 비만 주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바르지 못한 식습관, 앉아서 일하는 생활습관, 환경학적 문제를 꼽았다. 한편 비만은 음주, 흡연보다 더 해롭고 사망률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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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31
  • 중국으로 가는 하늘길 대폭 확대된다!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하늘길에 저비용항공사의 신규취항이 대폭 확대되고, 기존에 운항중이던 노선도 운항횟수가 증가하여 비용·스케쥴 측면에서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항공 이용객의 편익 증진과 항공사의 국제노선 취항확대를 통한 항공운송산업 활성화를 위해 서울-허페이 등 17개 여객 신규노선 주51회와 서울-베이징 등 12개 여객 기존 노선 주39회, 한-중 간 화물노선 주8회의 국제항공운수권을 5월30일 항공교통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적항공사에 배분하였다고 밝혔다. 17개 여객 신규노선의 경우 대한항공이 서울-허페이 등 3개 노선 주10회, 아시아나항공이 서울-옌청 1개 노선 주3회, 제주항공이 서울-스좌장 등 3개 노선 주7회, 진에어가 제주-시안 등 2개 노선 주6회, 에어부산이 부산-옌지 등 2개 노선 주5회, 이스타항공이 청주-옌지 등 3개 노선 주7회, 티웨이항공이 서울-인촨 등 3개 노선 주13회의 운수권을 각각 배분 받았다. 한-중 항공협정에 따라 기존 운항 중인 항공사만 운항 가능한 12개 여객 기존노선의 경우 대한항공이 서울-베이징 등 7개 노선 주 17회, 아시아나항공이 서울-청두 등 8개 노선 주22회의 운수권을 각각 배분 받았다. 그 외 한-중 간 화물 운수권의 경우 대한항공이 주4회, 아시아나항공이 주4회를 각각 배분받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금번 국제항공운수권은 항공교통분야 민간전문가들로 구성한 항공교통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배분하였으며, 국민의 체감도가 높은 중국 노선에 저비용항공사의 신규취항이 대폭 확대되고, 기존 운항중인 노선의 운항횟수도 증가하여 이용객들의 더 편리한 중국방문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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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30
  • 서귀포 경찰, 아도사끼 주부 도박단 검거
    사진=서귀포경찰서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서귀포경찰서는 2천만원대 판돈을 걸고 서귀포시내 펜션 등을 돌아다니며 상습적으로 아도사끼 도박을 한 주부 도박단 39명을 30일 오전에 검거하였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 피의자 송씨 70세(여)는 오야(들머리)로 선수들을 모집하고, 장소를 물색하여 도박장을 개장한 후 10만원 승할 때 마다 3천원씩 받는 도박장을 개장하고, 피의자 고씨 63세(여) 등 32명은 일명 선수로 5월 29일 밤 9시 30분 경부터 다음날 0시 5분경까지 서귀포시 한 하우스에서 1회에 5~20만원씩 걸고 화투4장으로 끗수를 계산하여 높은 사람이 승하는 속칭 아도사끼 도박을 여러 번 반복 결행하였다. 피의자 유씨는 문빵(망지기)으로 10만원, 피의자 강씨(여), 피의자 김씨(여)는 화투패를 돌리는 일명 ‘밀대’, 피의자 권씨(여), 피의자 박씨(여)는 패한사람들 돈을 걷는 일명 ‘고리’, 피의자 강씨(여)는 커피와 담배심부름 하는 일명‘커피탕’으로 5만원씩 받고 도박을 용의하도록 방조하였다. 경찰은 펜션 등을 옮기며 주부들이 아도사끼 도박을 한다는 첩보 입수하여 잠복, 미행, 추적하여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수사과 전 직원 비상소집 망지기 제압 및 도박장소 포위 및 급습하여 아도사끼 도박을 하고 있는 피의자 39명 현행범인 체포하였다. 경찰은 도박 주도 여부, 범죄전력 등 종합하여 신병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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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30
  • 그제날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들 (시리즈 7)
    ■ 김철균“1950년 6월 25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평소같으면 일요일엔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었으나 그날은 새벽 날이 밝기전에 모두 기상하게 했다…”적정이 있으니 전시상태에 진입하라는 명령이었다. 아버지에 따르면 그날은 새벽부터 비가 구질구질 내렸다고 한다. 그렇듯 지꿎은 날씨에 아버지네가 진지에 들어가 전투태세를 마친 뒤 얼마 안되어 마침내 새벽 4시가 되자 천둥이 울듯 포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붉은 신호탄들이 38선 상공의 여기 저기서 하늘로 올랐다. 한동안 지축을 뒤흔드는 포격이 지속되더니 뒤이어 또 탱크들이 굉음을 울리며 남으로 향했다. 드디어 최고사령부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한다.“남조선 괴뢰군 옹진반도로 북침 개시, 전 전선에 거쳐 반격할 것!”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때의 진격개시 암호는 “폭풍”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상급 작전지휘부에서는 알 일이고 아버지네는 그런 건 알리 만무했다. 그저 명령에 따를뿐이었다. 인민군은 탱크의 뒤꽁무니를 따르며 남으로 쳐내려갔다. 얼마 뒤 “38선”이라고 쓴 나무패쪽과 철조망이 나타나자 진격의 선두에 선 탱크들은 그것을 짓뭉개면서 진격로를 개척했다. 한국군의 진지는 인민군 포병들의 조준사격에 하나 둘씩 하늘로 날아났고 군인들은 죽은 건 죽고 살아남은 사병들은 뿔뿔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인민군의 진격은 파죽지세였다. 38선을 돌파한 뒤 미구에 진격하는 인민군 앞에는 웬 강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아마 그 강이 소양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인민군 선두부대가 강을 건너려고 하니 포탄이 우박처럼 날아왔고 강 남안에서는 한국군들이 진을 치고 인민군의 도하를 막고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 인민군은 탱크부대의 엄호하에 한국군을 쉽게 물리치고 강을 건넜다. 이렇게 38선을 돌파한 그날로 인민군은 춘천, 홍천을 지나 원주의 북쪽고지 코밑까지 밀고 내려갔다. 이어 진격부대 앞에는 또 한갈래의 강물이 나타났다. 강물은 깊고도 물살에 몹시 거세여서 진격로에 있어서의 커다란 장애로 됐다. 당시 38선에서 후퇴한 한국군은 바로 이 강을 천연방어선으로 간주하고 진지를 구축했던것이다. 한국군은 이 천연방어선을 이용하여 결사적인 저항을 했다. 미구에 어디선가 미군기까지 날아와 마구 기관총소사를 했다. 미공군은 인민군의 진격을 저애했을뿐만 아니라 보급로를 마구 끊어놓을 잡도리었다. 더군다나 인민군의 진격을 가로막는 한국군은 명성이 자자한 “왕패부대”인 한국군 “백호부대”었다. 맹목적으로 공격만 하다간 사상자만 낼뿐이었다. 인민군은 날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별동대를 조직하여 몰래 강을 건너서는 한국군진지 코밑까지 침투해들어갔다. 새벽녘이 되자 한국군은 다리를 폭파하려고 폭약을 나르는 것이었다. 인민군별동대는 즉각 따발총을 휘두르면서 다리를 폭파하러 나온 한국군을 섬멸했다. 뒤이어 강북쪽에 있던 주력부대도 총 공격을 발동했다. 인민군 별동대는 주로 교두보에 진을 치고 있는 한국군을 조준사격으로 섬멸, 주력부대의 교두보 탈환을 유력하게 지원했다. 한국군은 다리폭파목적이 뜻대로 되지 않자 다리위에 폭약을 되는대로 던지고는 퇴각했다. 다리는 한쪽모퉁이만 조금 파괴되었을뿐이었다. 인민군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다리를 건넜다. 계속해서 인민군 선두부대가 파죽지세로 원주시가지에 쳐들어가니 미처 퇴각하지 못한 국군만이 남아 건물을 엄페물로 저항할뿐이었다. 하지만 인민군포가 조준사격으로 몇개 거점을 날려보내자 나머지 국군들은 모두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인민군은 계속 승승장구로 진격하여 전쟁이 터진 이튿날 저녁 무렵에 원주를 완전히 장악했다. 뒤이어 아버지네 부대에는 휴식정돈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밤 아버지네가 원주 시가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무기와 탄약을 정리하는 한편 휴식을 취할 때 갑자기 콩볶는듯한 총소리와 더불어 포탄이 여기저기에 날아와 터지었다. 아버지네는 한국군의 꼬임에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군단지휘부에서 아버지네더러 원주 시가지에서 휴식하게 한 것은 “범을 굴에서 끌어내기 위한 전술”이었다.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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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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