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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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차 잊혀지고 있는 노천영화
    과거 중국인들의 문화레저생활 방식의 하나였던 노천영화(露天电影)는 수세대 중국인들의 공동한 추억이었다. 지난 50, 60년대부터 80년대말까지 노천영화는 줄곧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레저방식으로 특히 농촌에서 큰 인기를 보였다. 스크린 하나, 방영원 한명, 빛 한줄기 그리고 스스로 쪽걸상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노천영화의 주요 구성부분이다. 디지털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점차 원시적인 영화 관람 방식을 잊게 됐다. 이제는 노천영화가 아닌 컴퓨터, 텔레비전, 영화관 등이 신세대 사람들의 새로운 레저생활방식으로 떠올랐다. 최근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푸저우 영화방영팀을 불러 아파트 주민들에게 노천 영화를 방영케했다. 수일간의 영화 방영은 다만 나이 많은 몇몇 관객과 호기심으로 발걸음을 멈춘 일부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 연예·방송
    2012-11-11
  • 아시아U19축구, 조선 8강 진출 실패
    조선 19세 이하(U-19) 축구대표팀이 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선수권대회에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조선은 9일 새벽(베이징시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대회 C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후반에 2골을 내줘 0-2로 패했다. 직전 대회(2010년) 우승팀인 조선은 이날 패배로 1승1무1패(승점 4)를 기록, 우즈베키스탄(승점 7)과 요르단(승점 5)에 밀려 3위로 조별리그를 끝냈다. 각 조 2위까지 주어지는 8강 진출권을 놓친 조선은 대회 2연패 도전에도 실패했다. 한편 한국은 지난 7일 중국을 이기면서 조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cctv
    • 스포츠
    2012-11-11
  • 11월부터 중국 입국자 과일˙야채 휴대 못해
    내달부터 중국에 입국할 때 과일이나 야채를 휴대할 수 없는 등 반입 금지 품목에 관한 규정이 대폭 강화된다. 베이징천바오(北京晨報) 28일 보도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중국 국가질검총국의 ‘출입국자휴대품검역관리조치’에 따라 중국 입국자는 어떤 신선 과일이나 야채도 반입할 수 없게 된다. 애완동물 반입에 대한 규정도 대폭 강화, 개와 고양이외의 애완 동물에 대한 반입은 일체 불허하며 개와 고양이도 입국자 1인 당 한마리로 제한된다. 이밖에 농업유전자변형생물을 휴대한 사람은 입국시 검역기관에 수출국가나 지방기관에서 발급한 검역증서와 농업유전자변형생물 안전증명서를 제출토록 했다. 한편 중국에 입국해 국내선 항공편으로 갈아타는 환승객은 예전처럼 중간에 직접 짐을 꺼내 검역을 받지 않고 휴대품 자동 검역시스템을 통과하도록 해 절차를 간소화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12-11-08
  • 중국 비자 및 성매매 단속 강화
    최근 다롄, 칭다오 지역에서 비자 및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었습니다. 중국지역에서 체류 중인 우리 관광객 및 교민여러분께서는 본인의 체류비자를 확인하시고 성매매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 중국의 성매매 관련 처벌법률 -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제301조) 집단혼음행위를 주도하거나 수차례 참가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함. - 중화인민공화국 치안관리처벌법: (제66조) 성매매를 한 자는 10일 이상 15일 이하의 행정구류와 5,000위안 이하의 벌금에 처함. ※ 우리나라의 성매매 관련 처벌법률 -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1조) 성매매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함. (제18조)성매매를 강요하거나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함. - 여권법: 외국에서의 위법한 행위 등으로 국위를 크게 손상시킨 사실이 있는 경우, 1년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동안 여권 발급을 제한할 수 있으며, 여권의 반납을 명할 수 있음. /주청도영사관
    • 외국인· 출입국
    2012-11-08
  • “2012시즌 연변장백호랑이팀 총결산” 1
    ▲ 조긍연, 김광주, 정상룡연변팀 사령탑 적신호… 감독 세번 교체지난 10월 28일 2012중국프로축구 갑급리그가 제30라운드를 끝으로 원만한 마침표를 찍었다.갑급리그에서 분전하고 있던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은 이날 홈장에서 심양심북팀과 최종전을 펼쳤는데 결국 0대2로 체면을 구기며 팬들의 불만을 샀다. 올시즌을 돌아보면 연변팀은 10승4무16패(승점 34점)로 순위 13위에 간신히 턱걸이했는데 갑급리그 잔류에는 성공했지만 팬들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그만큼 2012시즌은 연변팀에게 있어서 다재다난의 해이기도 했다. 특히 올 시즌에 들어서서 연변팀은 세번씩이나 감독을 교체하는 등 연거푸 사령탑에 적신호를 알려 축구팬들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연변팀은 지난 2011시즌에도 역시 강급위기에 몰렸었다. 경기 제16라운드까지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팀을 정상룡씨가 넘겨받았고 나머지 경기를 6승 4패로 작성하며 갑급보존에 성공했다. 따라서 정감독은 2011시즌이 끝나기 바쁘게 연변주체육국으로부터 2012시즌 연변팀감독으로 결정되였다. 2012시즌을 앞두고 팀 재건에 나선 정감독은 “연변축구팀은 자체 특색이 없는 평범한 팀이다. 우리만의 특징을 갖춘 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팀을 재조직하여 좋은 성적을 따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뜻대로 안되는것이 축구, 정작 시즌이 시작되자 정감독이 이끄는 연변팀은 고전에 고전을 면치못했고 결국 저조한 성적이 타깃이 돼 5월 19일 감독자리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그동안 정감독이 연변팀을 맡아 치른 경기는 도합 10껨으로서 2승2무6패로 8점을 기록, 순위 제14위에 머물러있었다. 정감독의 전격 하차와 함께 김광주가 “소방수”로 등장했다. 대리감독 김광주는 5월 26일에 펼쳐진 북경리공대학과의 제11라운드 원정경기를 2대1로 장식하며 보귀한 3점을 챙겼다. 이어 6월 2일 홈장에서 있은 중국축구협회컵 경기에서도 중경FC팀을 5대4로 누르며 제3단계경기에 진출했다. 이날 경기결속후 가진 소식공개회에서 김광주감독은 대리감독기간 2껨의 경기를 전부 승리로 장식해 매체와 축구팬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이날은 또한 연변축구구락부가 한국에서 물색한 조긍연 신임감독이 매체와 대면하는 자리이고 했다.한국인으로는 사상 두번째로 연변팀 지휘탑을 잡은 조감독은 이날 매체와의 대화에서 “현재 팀이 하위권에 있지만 같이 노력해 좋은 성적을 거두어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룡정해란강경기장에 팬들이 가득 차게 하는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자신의 스승이였던 고(故) 최은택 감독이 연변에서 이뤄낸 성과를 초과하고 싶다”며 “자신도 그에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공언해 좌중을 놀래우기도 했다. 1985년,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프로선수로 뛴 조감독은 1992년 허리 부상으로 은퇴했다. 포항제철에서 활약했던 당시 ‘포항의 전설’로 불리웠으며 한국 사상 처음 고등학생시절 국가축구대표팀에 선발된 축구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감독은 중국축구에 대한 료해가 부족했고 또 한국인 특유의 고집과 소통방식으로 역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연변팀을 맡은 조감독은 팀을 맡아 얼마 안되여 훈련에 게으름을 피운다는 리유로 쿠리바리, 라피치, 홍진섭 등 용병들에 대해 벌금을 안기고 선발은 물론 후보군에도 제외하는 등 사정의 칼을 댔다. 대신 전부 본토선수들로 포메이션을 구성하고 신진들인 박세호와 손군을 선발에 대담히 기용했다. 제12라운드부터 연변팀의 고삐를 잡은 조긍연감독 역시 8월 16일 허리병을 리유로 감독직을 반납했다. 말이 허리병이지 역시 팀의 저조한 성적때문이였다. 조감독은 그동안 팀을 맡아 도합 10껨 경기를 치렀는데 5승2무3패를 기록했다. 스코어만 보면 괜찮은 성적이지만 이중 8껨이 홈경기였다는 점을 간파한다면 그 “경질” 리유를 어렵잖게 상상할수가 있다. 또한 대련실덕팀과의 축구협회컵 제3차전에서 0대8로 대패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진기록”역시 조감독이 연변팀의 사령탑을 잡아서 생긴 일이기도 했다. 결국 연변팀은 당시 팀의 코치로 자리를 옮겼던 김광주를 또다시 “소방수”로 급파했고 최종 김광주는 쿠리바리, 라피치, 홍진섭 등 용병들을 당시 1팀에 복귀시키며 연변팀을 갑급리그 보존에 성공시켰다. 년초에 연변팀은 슈퍼리그 진출을 웨쳤으나 결과는 룡두사미 꼴로 나타났다. 리유야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리유는 팀의 사령탑인 감독선정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신희윤 기자연변통보 2012-11-04
    • 스포츠
    2012-11-04
  • 일본 최고의 40대 동안미녀
    미즈타니 마사코 (水谷雅子)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런데 일본 모잡지사에서 개최한 아름다운 마녀 선발대회중 자신의 동안미모를 뽑내며 스타계열에 올랐다. 40대라고는 상상도 되지않을 정도의 뽀얀 피부와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1968년 출생에 그녀는 벌써 2명의 자녀를 두고있는 아줌마다. 놀랍게도 큰딸은 벌써 20살에 가까워 지고 있다. 이 대회가 끝나고 미즈타니 마사코는 일본 수많은 주부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잡지사의 모델로 활동하며 지내고 있다.
    • 연예·방송
    2012-10-29
  • 연변축구 2012 용병인입 정황
    올시즌 연변팀의 용병농사는 잘 되지 못한것으로 판명났다. 10월 30일부로 연변팀의 4명 외적용병인 쿠리바리(미드필더, 말리적), 이반 보직(공격수, 크로아찌아적), 홍진섭(미드필더, 한국적), 라피치(수비수, 크로아찌아적)의 계약이 해제된다. 올시즌 중반에 영입된 이반 보직선수는 7꼴을 뽑았고 홍진섭선수가 6꼴, 쿠리바리선수가 4꼴을 뽑는데 그쳤다. 한국적 조긍연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때를 제외하고 이들 4명 선수는 대부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팬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연변축구 결책층은 올시즌 용병농사 실패를 꼼꼼히 분석하고 충분한 자기검토를 한 토대에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것이 축구팬들에 대한 도리라고 사료된다.
    • 스포츠
    2012-10-29
  • 세상에 공짜가 없다 사기행각 1 2 3
    근래에 입국한 중국조선족들이 아래와 같은 사기행각에 경각성을 높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제공하기로 한다. 1. 장한평 《나눔의 사람》들은 다단계 방법으로 중국 조선족들로부터 740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사기했다. 회원들만 3000여명, 관련된 친족들은 1만여명이라고 한다. 몇명의 악덕업주들이 법적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조선족를 위주로 여전히 군자동, 청담동 일대에서 이전의 방식대로 화장품, 고기능 이불, 건강식품, 불법치료기를 판매한다. 2. 불법건강검진센터에서는 무료로 조선족들에게 건강검진을 해준다. 허나 의료기기를 임의로 조정하여 모든 검사받는 사람들이 100%로 건강이 좋지 않다. 이들 센터에서 판매하는 약으로만이 그들의 병을 완전 치료할수 있다고 한다. 3. 서울대 입구쪽에 《한화로 34만원을 입금하면 다음주부터 평일에는 매일 1만원씩 통장에 입금된다. 340만을 입금하면 매일 10만원씩 입금된다 》고 하는 다단계가 있다. 소문에는 악덕업주가 이미 도망한 상태라고 한다. 4. 중국 모 부동산회사라고 자칭하는 회사에서는 《지금 한화로 60만원을 입금하면 반년후에 한화로 600 만원을 준다》고 한다. 영국려행사라 하는 곳은 《지금 한화로 26만원을 입금하면 반년 후에 한화로 500만원을 준다 》고 한다. 5. 90 년대 중국 현지에서 한국사기군들이 ( 브로커 ) 위명려권 ( 일명, 머리바꾸기 가짜 려권)을 일인당 10만원 (한화 1800 만 )으로 무려 50억원을 사기쳤다. 6. 지금 한국에서 일부 려행사나 행정사는 한화 500만원 혹은 1000 만원을 주면 위명려권을 합법려권으로 만든다고 한다. 법무부에서는 이런 정책이 전혀 없으니 중국식대로 돈만 내면 모든 일을 마무리할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7. 불법체류자나 위명려권자에게 영주권이나 합법려권을 준다거나 단속한다고 하면서 가짜 경찰이나 가짜 출입국 공무원이 나타나 금품을 요구한다. 8. 근래에 남의 집을 월세로 맡아 전세로 보증금을 갈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월세를 줄 담당자가 아니면서도 ( 가짜 부동산 ) 전월세 보증금을 사기하거나 계약이 만기되였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이 적지 않다. 9. 지난해 19차례나 《주유 상품권》으로 동포들을 유혹하여 한화 5억여원을 갈취한 이모씨를 구속하고 일당 3명의 행방을 추적중이라는 소식도 있다. 10. 본인의 학력을 불문하고 3개월간 90만원만 내면 모두 F-4 로 변경할수 있다는 설이 있다. 본 학원에서 학습하면 누구든지 전부 책임지고 F―4 로 변경시켜주며 안되면 100% 로 환불한다고 한다. 학원에 등록만 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F―4로 된다고 한다.이상의 사기들은 도망가려는 꼼수다. 13.한국남자와 결혼하였거나 결혼준비상태에 있는 중국조선족녀성과 불륜관계를 맺은 뒤 몰카로 동영상이나 사진을 만들어 거액의 금품을 갈취한다. 14. 《길림신문》 에 따르면 연변주 공안국이 길림성, 료녕성, 복건성, 산동성, 광동성 공안국과 협력해 5개 보이스 피싱의 조직원 68명을 검거하였는데 그중 한국인이 11명이고 대만인이 1명이다. 동결한 금액은 320만원 ( 한화 5억 7600만원 ) 이다. 일년사이 사기친 금액은 5000만원이라고 한다. 한국형 보이스 피싱이 수출하여 한국은 물론 중국 동북 특히는 연변이 피해가 극심하다. 15.가리봉시장 입구에서 공짜 꿀병, 공짜 미역, 공짜 밥주걱을 주면서 흑마늘, 천마 등을 만병통치약이라고 판매한다. (기실은 건강식품이다. 원가격의 10배 ) 16. 금시계, 우산, 옷, 칼세트, 제주도려행권 (비행기표 )등을 공짜로 준다고 하면서 홍삼이나 건강식품 혹은 기타 상품을 판매한다. (원가격의 10배 ) 환불하지 못하면 조폭을 리용한다. 17. 지하활동실 ( 마작실 )은 도박으로 신고대상이니 일단 경찰의 수사에 걸리면 전부 몰수한다. 중국의 습관으로라면 적은 돈으로 마작을 하는것은 아주 정상이고 합법이다. 하기에 전국의 《로인활동실》은 전부 마작이 위주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한국의 지하마작실엔 꼼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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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0-29
  • 연변팀 마지막 경기 0대2로 패.
    고의적으로 져준 경기에 비해 더 보기 흉한 경기를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이 펼쳐 팬들의 실망을 자아냈다. 10월 28일 용정해란강경기장에서 열린 2012 중국프로축구 갑급리그 최종 라운드경기에서 연변팀은 심양심북팀에 0대2로 패배, 10승 4무 16패란 수치스러운 성적으로 전반 시즌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즌 초기 슈퍼리그 진출을 목표로 내건 팀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특히 이날 시즌 결속경기에서 보인 전체 팀과 감독진의 표현은 한마디로 엉망이었고 기전술은 물론 연변팀의 상징이었던 투지도 보이지 않는 경기라 개괄할 수 있었다. 연변팀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갑급리그 잔류에 성공했다는 점에 내심 안도하고 내년 시즌을 대비(?)해 “화력”을 아낀 반면, 원정경기에 나선 심양심북팀은 전 연변팀의 절대주력이요, 핵심선수들이였던 문호일, 김경도를 선발진영에 포함시키며 참답게 경기를 운영하고 리드해나가는 등 판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 경기에서 연변팀은 한남용, 한호, 한송봉 등 올해 시즌에 별반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신진”들을 대거 출전시켰고 또한 후반에 들어서서는 선제골을 먹은 상황에서 팀의 간판공격수인 버지치를 쿠리바리와 교체, 퇴장시키는 등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을 구사해 팬들의 불만을 샀다. 조직적인 공방체계가 근본 보이지 않았고 예정된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 그라운드를 뛰는 로봇을 방불케 했다. 연변팀은 후반전에 들어 경기 제60분경에 심양심북팀의 류락단에게 선제골을 허락한데 이어, 경기 84분경 외적선수 하쎄에게 추가골을 허락하며 0대2로 맥없이 무너졌다. 경기 결속 후 다년간 연변팀의 골수팬으로 살아온 정씨 노인은 “이런 맥아리 없는 경기는 처음”이라면서 이렇게 축구를 할 바엔 차라리 팀을 해산해 버리는 게 오히려 팬들한테 있어서 행복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올해 홈장경기를 한차례도 빼놓지 않고 현장을 찾았다는 리씨 성의 한족 축구팬은 “연변팀의 축구팬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오늘 연변팀의 경기를 보니 다음해 연변팀의 표현을 알 수가 있다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이날 경기 패배를 끝으로 연변팀은 총점 34점을 기록, 최종리그 순위 13위에 머물렀다. 신희윤기자
    • 스포츠
    2012-10-29
  • 삶의 등불
     지난 7월 21일, 중한문화교류협회의 사무국장 루비님이 한국에 온다고 하여 싱록수님이 조직한 모임에 가니 뜻밖에도 <연변일보>사의 장 경률 기자선생님을 만났었다. 1983년부터 룡정시 주재 기자로 계시면서 우리들의 통신 사업을 이끌어 주시던 분이신데 한국에서 만나니 그 기쁨 비할바 없었다. 저의 생애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희망을 안겨 준 것은 무엇이였던가? 그제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안겨왔다. 무산계금문화 대혁명의 격류속에 휘말려 정규적인 교육도 못 받고 중학교를 필업했다는 종이장 하나만 갖고 귀농의 대오에 가담한 저는 항상 배움의 갈증에 목말랐던차 제 마음을 비춰 준 등불이 있었으니 삶의 등불이라 하면 적절할 것이다. 1983년, ㄷ향 선전 사업을 책임지신 김송범님께서 각 촌에 2명씩 선발하여 통신원 학습반을 꾸렸었다. 그날 학습반에 참가하니 장 기자 선생님이 오셔서 통신원의 역할, 기사 쓰는 법, 그리고 짧은 기사 쓰고 원고 평의도 하였다. 그 당시 처음에는 인원이 많다가도 가을에 가면 이런저런 원인으로 떨어지고 몇 명이 견지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노루꼬리만한 소식이라도 기자 선생님들의 정성어린 수개가 없었더라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중에서 저는 통신원의 역할을 알게 되였으며 삶의 진가를 알게 되였다. 제가 어린 아들들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면서도 ,연변 일보>, ,연변 녀성>등 해마다 구독하니 아들들도 힘내서 학습에 노력하였고 온 가정이 독서에 열을 올렸다. 저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들에게 학기말 시험을 치면 85점을 맞으면 5원을 장려해 주고, 95점을 맞으면 10원을 장려해 주고, 그 돈으로 향 공소합작사의 책매대에 데리고가 명인들의 이야기와 과학상식들을 사서 보게 하였으며 다른 것은 없어도 책꽂이는 넘쳤었다. 매일과 같이 일하여도 수입은 적고 힘들때는 사람사는 것이 너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다가도 그래도 통신을 쓰게 되면 그래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느끼기도 했었다. 두 아들을 도회지 학교에 보내고 공부 뒤바라질 할 때의 일이다. 그 때 봄엔 생산 계획을 세우고 닭알 가리를 높이 쌓아 올렸다가도 뜻밖의 자연 재해가 오면 일년농사 <나무아미타불>로 되여 버렸다. 2천년에는 양건종 담배 9무를 심고 콩,옥수수를 심어 정성스레 가꾸면서 수입을 늘리려고 밤낮없이 일했다. 아침 다섯시면 방학에 아들들을 데리고 도시락을 싸 갖고 담배를 따서 그날에 딴것은 그날로 달고 나면 저녁 8,9시에 집으로 오면서 알뜰하게 900줄을 걸어 놓아 90%는 완성한 셈이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8월 16일이였다. 이날도 남편과 같이 일하고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북쪽으로부터 검은 구름장이 몰려 오더니 억수로 퍼붓는 비는 강바닥에 넘쳐나고 제 남편이 2년생 암송아지를 몰고와 고삐를 넘겨주어 그 송아지를 끌고 언 덕에 올라서자 담배 달대는 한곳씩 착착 넘어지더니 비닐박막과 같이 둥둥 정처없이 떠내려 가는 것이였다. 그 송아지를 끌고 언덕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저는 언녕 수중고혼이 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사 고비를 지나왔기에 아무리 고달파도,인생의 좌표는 흔들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게 하였다. 중국말 속담에<물은 30년 동쪽으로 흐르고 , 30년은 서쪽으로 흐른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것 같다. 2007년,방문 취업 한국어 실무 시험을 쳐 합생격하고 추첨이 되여 2008년 한국에 왔었다.처음에는 식당에가 일했는데 주방이처음이고 말도 서툴어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었다. 하여 적성에 안 맞는다고 판단하고 그해 9월에 <요양 보호사>자격증을 따려고 도전하였다. 오전에는 강의를 받고, 오후에는 상가에 가 청소를 하면서 12월에 자격증을 땄었다.그때도 자신감을 갖고 살며 악착스레 일하고 생활에 신심을 가졌었다. 산 설고 물선 고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법에 위반되지 않고 도박 마약.다단계등을 제쳐놓고 돈이 되는 일이면 파출부로도 열심히 뛰였다. 그렇게 일하다가 ㅈ간병 협회에 가입하여 맡기는 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였더니 김 소장님이 가정집에 보내주어 1급 판정을 받은 할머니를 돌보다 돌아가신 후에도 86세 나는 그집 할아버지를 계속 돌보고 있다. 이렇게 걸어 온 과정에도 통신원을 하여 큰돈 버는건 아니지만 삶을 더 충실히 할 수 있었고 항상 신심을 갖고 도전할 수 있게한 리철억 선생님한테도 감사 드리고 이 시기에 우리들을 이끌어준 기자 선생님들과 ㄷ향 당위에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 어디에 살던지 환경에 적응하고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 남은 생을 후회없이 살도록 애쓰고 싶다. 2012년 10월 26일 현만녀
    • 독자기고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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