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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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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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북한, 일본 2-1로 꺽고 U20 여자 아시안컵 우승
    [동포투데이] 16일 막을 내린 20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1-1로 비기고 일본에 0-2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편 호주 여자축구는 3,4위 결승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두 팀은 일본, 북한 등 4개 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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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7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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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 “최종 목표는 월드컵 진출”
    [동포투데이] 8일 오전 11시, 중국축구협회는 톈진에서 브란코 이반코비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을 위한 정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인 중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3월 21일과 26일 조별리그 36강전 싱가포르와의 연속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반코비치는 “지금 기자회견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선수들의 경기 감각도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의 1차 목표는 최종예선 진입이고 최종 목표는 강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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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中 U-20 여자축구, 일본에 완패…월드컵 진출 불투명
    [동포투데이] 7일 밤에 끝난 AFC U-20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중국이 일본에 0 : 2로 패하면서 U-20 여자 월드컵 진출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해졌다. 이번 U-20 여자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전년도 준우승팀인 일본, 그리고 전년도 준우승팀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어 U-20 여자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상대의 강한 실력에 비해 중국은 라인업이 불규칙했고 중앙수비수인 차오루치(乔睿琪)가 경기 준비 마지막 순간 부상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서 중국은 1 : 1로 힘겹게 북한과 비기면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은 지난 경기에서 베트남을 10 : 0으로 대파했다. 중국은 월드컵 진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번 경기에서 적어도 골을 넣어야 하고 최소 1점을 따내야 했다. 왕쥔(王军) 중국팀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은 기술이 뛰어난 팀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강팀”이라며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경기에 비해 중국팀의 이번 라인업이 다소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리팅잉거(李渟英格), 장천징(姜晨璟), 천자위(陈佳宇)가 선발로 나섰다. 초반에는 양 팀 모두 골문 앞의 절대적인 찬스가 있었지만, 득점을 못했다. 경기 20분 중국은 상대의 실수를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루자위(卢家玉)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 의해 무산되었다. 26분 페널티 구역에서 동료의 크로스를 받은 일본의 마야 히지카타가 슈팅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고 88분에 아마노 스즈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대회에는 8개 팀이 참가하며, 중국은 일본, 북한, 베트남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2024년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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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8

실시간 스포츠 기사

  • [ACL ] 전북 현대, 산둥 루넝에 4-1 대승
    전북 현대(한국)는 3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각)중국 지난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ACL E조 2차전 산둥 루넝(중국)과의 경기에서 에두, 한교원, 이재성, 레오나르도의 연속골에 힘입어 4-1 승리를 거뒀다. 가시와 레이솔(일본)과 1차전 홈경기서 0-0으로 비겼던 전북은 이날 승리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1승 1무(승점 4)를 기록한 전북은 가시와에 득실차에서 밀려 2위에 기록됐다. 한편 같은날 오후 7시 30분(현지시각) 김학범 감독이 이끌고 있는 성남 FC(한국)가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ACL F조 감바 오사카(일본)와의 안방 경기에서 왼쪽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황의조의 맹활약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두고 기념비적인 첫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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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4
  • 2015시즌 연변팀 어떤 선수들이 출전하나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3월 2일, 2015 중국축구 갑급리그에 출전할 연변장백산 천양천팀의 선수진 명단이 출범되었다. 올해 연변천양천팀의 선수진은 도합 28명으로 본토 선수 21명에 국내 기타지구 출신의 선수 4명, 외적용병 3명으로 각각 구성되었다. 올해의 연변팀 골키퍼진과 앞의 3선 라인을 보면 골키퍼진과 미드필더진은 큰 변동이 없으나 공격라인과 수비라인이 대대적으로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하태균, 스티브와 챨튼 등 3명 외적용병이 합류한 공격라인은 사상 최고의 실력으로 평가되고 있고 조우밍, 배육문 등이 합류한 수비라인 또한 지난해에 비해 실력이 한차원 향상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재의 연변팀을 보면 골키퍼 윤광과 지문일은 중국프로팀들 중 1류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 외 앞의 3선 라인을 보아도 올들어 제1집단군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갑급강등이란 비운을 지녔던 연변팀, 하지만 연변팀이 부진을 딛고 돌풍을 일으킨 사례는 많다. 1965년 을급권에서 진급한 길림성팀이 전국갑급축구 우승고지에 올랐는가 하면 1996년 강등후보로 꼽혔다가 겨우 갑A잔류에 성공했던 연변팀이 1997년에는 갑A 4강에 들어가기도 했다. 또한 2010년에도 부진을 겪던 연변팀이 김광주 감독의 지휘하에 갑급 3등에 오른적도 있다. 연변장백산천양천 축구팀이 2015 중국축구 갑급리그에서 새로운 센쇼이션을 말아올리기를 기대해 본다. 연변장백산축구팀선수명단: 감독: 박태하 코치: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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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2
  • 【연변FC 특집】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고훈 감독편 을급리그 현념 깨어지기 시작한다 연변세기팀 고훈 감독과의 인터뷰 올들어 연변세기팀을 이끌고 5 연승을 거듭한 고훈 감독, 일전 기자는 세기팀이 제6라운드가 경기공백인 기회를 타서 그를 만나 올 을급시즌 전 5 라운드 경기에 대한 소감을 들어봤다. 문: 5라운드까지 세기팀은 5전 5승의 불패의 기록으로 북방경기구1위에 있다. 지금까지 대결한 팀과 이제 남은 팀들의 실력에 대한 분석이라면? 답: 올시즌에 뛰어들 때 우리 팀은 필승의 자신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중시도를 낮추지 않았다. 제1라운드부터 진공을 위주로 하면서도 수비를 홀시하지 않았으며 제5라운드까지 치르면서 보면 차면 찰수록 성숙되는 기미를 보였고 상대방 팀들은 우리가 예견했던 것처럼 강하지 못햇다. 특히 북경굉등팀이 그랬다. 상대방이 약한 점, 이는 우리가 쉽게 이기고 대승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불리한 점도 없지는 않다. 아직까지 진짜 강팀과 대결해보지 못했고 또한 이제부터는 원정경기도 많아지기에 성적이 이상적이겠는가 하는 것은 장담하기 어렵다.예견되는 강팀이라면 요녕청소년팀, 하얼빈협력팀이라고 느껴지지만 매체들에서 을급팀에 관한 보도를 적게 하고 이에 대해 장악한 정보도 많지 못하기에 큰 파악은 없다. 하지만 팀실력을 볼 때 그 어느 팀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심이 생긴다. 어찌보면 올 을급리그 북방경기구의 현념은 이미 깨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잇다 문: 올들어 가장 진보가 빠른 선수들이라면? 답: 선수들이 모두가 정도부동하게 진보가 잇다. 돌출한 선수라면 좌조개, 한송봉, 최영철, 정림국 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림국은 시즌 초기에 좀 부진을 보였지만 인차 경기상태에 진입하여 컨디션에 회복하였고 새로운 도약을 가져왔다. 문: 원 오동팀을 지휘할 때에 비해 현유팀의 총체실력을 평가한다면? 답: 출중한 선수를 꼽으라면 아직은 좀 이르겠지만 총체적으로 정식맴버와 후보들 사이의 차이점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가 많아 기쁘다. 원 오동팀을 지휘할 때엔 고종훈이나 이광호같은 선수들이 경고누적이나 상처로 결장할 시엔 자리를 메꿈할 선수가 없어 매우 골치 아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거의 없다. 문: 이번 휴전기간의 훈련슈케줄은 ? 답: 매일 오전 오후로 4시간 정도씩 훈련하며 주로 체력회복에 정진한다. 며칠 전에는 등산도 해보았는데 선수들한테서 체력하강현상을 크게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동기전지훈련이 잘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로 코치인 전영춘 지도가 수고 많이했다. 문: 연변축구팬들과 외지축구팬들의 차이점이라면? 답: 차이가 선명하다 제2라운드 경기 때 북경에 가보았는데 관람석에 50명 정도가 앉아 구경했다. 그 분위기도 우리가 원정팀이라는 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연변의 축구장분위기는 슈퍼리그경기장 분위기 못지 않고 한편 연변의 축구팬들은 저마다 축구전문가라 할 수 있다 하긴 이 때문에 감독과 지도 및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많고 가끔씩 욕도 먹지만 그것이 우리에 대한 깨우침이고 계발이라고 할 때 고까운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다. 총적으로 연변팬들은 너무나도 고맙기만 하다. 《스포츠》 2004년 5월 24일 공격형 축구와 고훈 감독의 전술풍격 조선족축구인 고훈, 선수시절엔 중앙공격수로 자리매김을 했고 축구지도생애를 시작한 1990년대부터는 한국행 연수와 은사인 최은택 교수로부터 현대축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익혔으며 1999년엔 갑A의 5 개 강팀을 선두주자 자리에서 끌어내려 “거물사냥군” 지휘자로, 축구협회컵 4강까지 이룩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 병마로 쓰러진 뒤 오동팀을 강급시킨 “장본인”으로 비난받기도 했던 고훈 감독, 그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고훈 감독이 다시 연변축구의 사령탑을 잡았다. 어찌됐건 필자는 고훈 감독의 기전술풍격을 긍정하는 일원이라는 것을 분명 밝히는 바이다. 팀 실력에 맞는 과학적인 진영배치 갑A의 감독시절 고훈 감독은 352포메이션의 공격형 축구를 자주 구사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 실력에 따라 진영배치를 해야 하는데 352진영을 너무 고집한다”, “최은택 교수한테서 배운 것이 352진영뿐이니 그걸 벗어날 수 없다”고 책망하기가 일쑤였다. 필자가 알건대 그 시기 고훈감독이 구사한 352포메이션은 이광호, 장경화, 황경량(때론 학위동, 텔렉, 남호 등도 포함됐음) 등 3명의 수비와 고종훈, 현춘호, 김청, 황동춘, 천학봉(노주섭, 송소우, 박순배, 왕광위 등도 포함) 등 5명의 미드필더라인 그리고 졸라, 정동칠(이찬걸, 오영군, 테니 등도 포함) 등 2명의 공격수로 배비된 진영이었다. 이는 1997년 최은택 감독의 시대부터 자주 운영해온 것도 있었지만 그것이 비교적 선수들의 특성에도 맞았고 짜임새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시기 오동팀이 수비선을 볼 때 비교적 나이와 경험이 많은 선수들로서 이광호의 침착하고 온당한 중앙수비, 완강하고 끈질긴 장경화와 황경량의 대인수비 및 김청, 송소우이 협력수비 등은 442진영의 4명 수비보다 못지 않게 견고했기에 공방조직의 고리인 미드필더라인에 1명의 선수를 더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아무리 352포메이션을 주장한다는 고훈 감독이었건만 무턱대고 그 진영을 고집한 것만은 아니었다. 홈장 아닌 원정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가끔씩 졸라 한명만 톱에 내세우고 361포메이션을 구사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고훈 감독이 올들어부터는 442포메이션을 구사, 올들어 첫 몇경기를 구사한 442포메이션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백승호, 한광화, 조명, 좌조개 이 4명의 수비선수 중 2번 백승호와 5번 좌조개는 수비선수면서도 보조공격에 적극 참여한다. 포메이션을 말하면 352이든 442든 선수구성과 특정에 따라 배치하는바 지금 442포메이션은 백승호, 좌조개, 최영철, 고만국 등 4명의 ‘변선공격’이 맹활약적인 특점에 따라 공격망을 넓히자는데 목적이 있다. 현시점에서 해결할 과제라면 이 4명의 ‘변선공격수’가 공을 중앙에 정확히 패스해주는 것, 이 과제가 풀리면 팀의 득점력은 크게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공격형축구 – 상대방이 나의 리드대로 움직이게 한다” 지금 일부 축구인들은 연변세기팀의 첫 몇경기를 보고는 “공격형축구로 경기의 주도권을 쥐려는건 분명하나 감독의 축구이념을 선수들한테 주입시킴에 있어서 어딘가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리가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한 감독의 축구이념을 선수들한테 주입시키는데는 시일과 선수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 1997년 최은택 감독이 오동팀을 자기의 축구이념으로 개조시키기까지엔 첫 5라운드까지 1무 4란 부진을 겪는, 반년 이상의 시간을 소모했고 원 한국국가팀의 히딩크 역시 감독직을 맡은 뒤 근 2년간 유럽강팀들과의 평가전에서 번번히 패하여 “동양계축구를 지휘할 감독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고훈 감독 역시 아무리 선진적인 축구이념을 강조하고 훈련에 주입시킨다 해도 필경 을급축구권에 속하는 연변세기팀을 짧은 시일내에 쇠소리나는 강팀으로 부상시키라는 건 어딘가 무리란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편 올들어 세기팀은 을급권에서 자리지킴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어코 갑급행렬로 진출하려는 팀인만큼 온당한 방어반격보다는 공격형축구로 상대방마다 우리 팀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 고훈 감독의 기전술, 상대방 실력여하에 따라 구체적인 제압전술도 체현하게 되는바 제1라운드에선 홈장우세로 감숙중우팀을 전반전에 2 : 0으로, 제2라운드 원정에서는 북경굉등팀이 북구의 강팀이었기에 전반전엔 공방절주를 장악하다가 후반들어 강한 체력과 정신력 우세로 상대방을 몰아붙여 첫 원정승을 일궈냈다. 동시에 고훈 감독의 지도이념은 상대방 역습에 선골을 적게 먹거나 먹지 않는 전제하에 될수록 골을 빨리 내고 많이 내는 다득점 우세로 북구의 우승신분으로 최종결승에 뛰어들어 갑급진출을 성공시키려는 것이다. 을급리그 진급방법에 대비한 지도사상과 지도풍격 “갑급권진급방법에 비해 을급리그의 진급방법은 일정한 모순이 있다. 8강전의 도태식이 없고 점수가 높은 팀이 진급하는 방법을 채용한다면 지난해 연변팀이 올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2단계의 경기까지는 훌륭하게 잘 치렀으나 최후 4강전에서 실력이 한차원 아래인 서안안형원한테 승부차기에서 밀려났다. 억울한 일이다. 한편 이는 평소부터 심태문제를 잘 풀어주지 못한 것으로 보아진다. 올해엔 해남 전지훈련 때부터 강팀과의 경기를 잘 치르기 위한 심태문제 해결에 모를 박았다. 아무리 우리보다 실력이 몇차원 강한 팀이지만 약한 고리가 있기 마련이고 그들과 이길 수 있는 요소가 30% 정도 있다는 사상을 강하게 심어줬다. 그 외 강팀을 이기자면 방어반격보다는 공격형축구를 펼쳐야 그 가망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하다면 올들어 첫 3경기를 보면 우선 연변세기팀의 풍격이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이는 아래와 같은 몇가지로 보아낼 수 있다. 첫째. 불필요한 뒤패스가 적고 양측 “변선날개”와 미드필더선 공쟁탈을 포함한 공격망이 넓어지고 공격이 보다 날이 섰다. 이는 이왕에 수비선에서 직접 공격선의 정림국이나 문호일한테 롱패스하여 득점하려다가 두 선수가 상대방 수비수들에 의해 발목을 묶이우던 국면을 돌려세웠다. 공격망이 넓어지니 득점수가 단 정림국과 문호일만이 아닌 여러 선수들한테로 넓어지니 득점기회가 많아졌다. 아직 변선에서의 패스처리나 문전배합에서 좀 미숙한 것은 사실이나 이 고리만 풀리면 연변세기팀한테서 골사태가 터질 날은 조만간에 다가올 것 같다. 둘째. 공격형축구는 선수들한테 승전의 자신심을 심어준다. 고훈 감독이 밝힌바와 같이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승전요소가 30% 있다”는 것처럼 자신심만 있으면 반쯤은 이긴 경기를 펼쳐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으로는 1998년 장춘 남령 경기장에서 대련만달팀을 1 : 0으로 제압한 것과 1999년 갑A 선두주자로 달리던 요녕무순, 북경국안, 상해신화, 사천전흥, 중경융흠 및 산동노능을 꺼꾸러뜨린 경기가 가장 좋은 사례가 된다. 그리고 선수들의 자신심은 결승전에 가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심어주고 키워줘야 한다는 설법에 더욱 동감이 간다. 셋째. 공격형축구는 관중들이 좋아한다. 중국 갑A전장에서 소문놨던 한국인 이장수 감독의 주장인 “세번 빅어 3점을 따기보다 두번 지고 한번 이기는 것으로 3점을 따는 것이 훨씬 통쾌하다”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침투하고 쐐기를 박는 등 공격력의 강화는 늘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함과 동시에 그것으로 또한 관중들을 흡인하여 경기장으로 모여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축구란 높은 순위를 따내는 것도 목적이지만 관중들한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면에서 보면 고훈 감독은 과거 중국축구무대에서의 최은택, 싼트라치, 이장수, 카로스 등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비판언론에 대한 소감 연변은 축구운동의 중점지구이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에 대한 기대도 크다. 따라서 축구감독이나 축구선수들에 대한 언론평가도 많은바 축구를 관심한다는 견지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현상이다. 반면에 이런 언론들 중에는 흔히 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깨우침보다는 인격비방이 나올 때가 허다하다. 언론은 자유이지만 인격 모독과 무함, 중상은 삼가해야 할 것이 아닐까? 사람이 로봇이 아닌만큼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잘못을 재차 범하지 않도록 깨우쳐주는 것이 축구인이나 보도분야의 책임이다. 말하자면 이전에 고훈 감독이 쓰러져 오동팀이 강급하니 뭐나 고훈의 잘못이고 지난해 이호은 감독이 갑급진출에 실패하니 또 그 책임을 그한테 몰아붙이듯이 해서는 감독한테보다는 연변축구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없다. 고훈 감독 역시 찬반이 엇갈리는 여론에 대해 참다운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지당한 판단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스포츠》 2004년 5월 24일 자신심 수립과 풍격 발휘는 정비례 연변세기팀 고훈 감독의 축구이념 들어본다 올들어 연변세기팀을 이끌고 있는 전국을급리그 북방경기구의 9연승을 일구어낸 고훈 감독, 제1순환단계 경기에서 그가 고안해낸 축구이념과 기전술풍격 및 지도사상 그리고 제2순환단계와 8강전에 대비한 훈련과 경기 방안은 무엇일까? 일전 기자는 고훈감독과의 독점인터뷰를 통해 그 궁금증을 풀었다. “축구에 있어서 자신심수립과 풍격발휘는 정비례라고 인정한다. 여기서 자신심 수립은 감독앞에 부여된 과제이고 풍격발휘는 선수들을 통해서 체현돼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말 팀을 맡았을 때 느낀 점이라면 선수들한테서 가장 결여되는 것이 바로 자신심 부족이었다. 그래서 해남도 전지훈련시에 첫 한달은 선수고찰과 더불어 자신심수립을 위한 심태훈련을 주로 시켰다. 즉 골을 먹지 않거나 적게 먹자는 사상을 버리고 골을 넣고 이기기 위한 경기력을 키워달라고 자주 강조하였다. 그리고 매 선수들한테는 ‘너는 된다. 기죽지 말고 맘껏 재능을 다 발휘해보라’는 식으로 자신심을 심어주면서 자비심을 철저히 버리게 했다. 결과 전지훈련의 후반단계에 있은 27차례의 평가전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은 승전을 위한 득점공간창조에 집중됐으며 또한 이를 통해 공격형 축구를 시도하는 감독의 뜻도 체현될 수 있었다.” 올들어 선수들이 보편적으로 속도가 빠르고 변선진공에 유력한 특점에 근거하여 442포메이션을 도입한 고훈 감독, 하지만 442시스템 역시 상대방 실력의 여하에 따라 구사한 그였다. 즉 비교적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수비진 4명, 하프진 4명, 공격진 2명의 평행선 위치를 기본으로 하는 442포메이션을,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앞 허리께와 뒤 허리께에 각각 한명씩 배치하여 공격과 수비를 돕게 하는 시스템을 구사한 결과 큰 효력을 봤다는 것이 고훈 감독의 일가견이었다. 그 사례로 시즌초기에 변선 공격수였던 최영철을 시즌 중반부터는 앞 허리께에 배치하자 공격력이 많이 강화되어 득점율을 크게 높이게 했고 또한 이러한 공격형 축구를 통해 많은 스타들도 출현, 원유의 한송봉, 정림국 등 기존주력의 토대상 최영철, 백승호, 좌조개, 조명, 김도 등 선수들이 재빠른 진보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었다. “9연승이란 그 순위나 점수는 그닥 중요치 않다. 현재 선수들의 심태가 온정이 됐고 충만된 승전욕으로 벅차있는 것이 더 중요하며 나 또한 9연승보다도 선수들의 현심태와 자신심과 투지에 더욱 만족한다. 세기팀은 오늘부터 최후 8강전에 대비한 집중훈련에 들어갔다. 8강전에 들어가면 이틀에 한경기를 치르기에 선수들의 체력보완도 중요하거니와 그 때면 모두 강팀들이 모여들기에 전술변화에도 모지름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남방경기구 순위를 보면 상해제녕구거룡팀이 제1위로 달리고 있다. 이 팀은 지난해 초 내가 거느리고 있던 원 상해천나팀이기에 대체상 상황파악은 할 수 있으나 그 팀 역시 신화팀으로부터 4명 선수를 영입했기에 실력이 많이 향상된 걸로 알고 있다. 또한 축구에서의 자고자대는 금물인만큼 충분한 준비를 갖고 경기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 세기팀의 자세이다.” 현재 세기팀을 보면 공격진의 천학봉, 문호일, 김도, 고만국 등 선수들이 모두 정도부동하게 상한 상황, 그 중 천학봉 선수의 참전이래야 8월 말경에 가능하고 인대상처가 심한 김도 선수는 8강전에 참가할 수 있을지도 미결이다. 하루 속히 정동칠로 하여금 부진상태에서 벗어나 컨디션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고훈 감독의 앞에 놓여진 과제이다. 그리고 여태껏 세기팀이 치른 경기는 그 거개가 약팀과의 경기었던만큼 수비선수들의 단련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제 강팀들과 붙으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허점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에 수비진의 대인방어와 위치메꿈 및 하프진의 적극적인 수비협력이 요청되며 이에 대비한 훈련을 강화해야 함이 필수라고 보아진다. 고훈 감독이 제2순환단계 경기에서 세기팀을 이끌고 더욱 휘황한 전과를 올리기를 미리 기대하는 바이다.《스포츠》 2004년 7월 19일 세기팀 총체적 실력과 고훈 감독의 용병술 11전 전승의 연승대행진, 말이 쉽지 그걸 실천화, 현실화 한다는 건 피고름을 짜는듯한 노력을 바탕으로 해야 함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축구유럽컵에서 그리스가 우승하는 이변을 일으키고 서아시아의 아마추어팀인 바레인축구가 아시안컵 4강까지 진출하는 마당에, 현대축구에서 절대적 강자와 약자가 없다는 이론으로 볼 때 고훈 감독이 세기팀을 이끌고 한두경기도 아니고 11연승을 이끌어낸데는 그 어떤 영단묘약이 적용됐을까? “세기팀을 놓고보면 왕성한 체능에 속도가 빠르고 매개인 실력이 고르로운 장점 외 평균 키가 작고 문전 슈팅에 출중한 선수가 적은 등 약점도 갖고 있다. 어찌보면 튼실한 미드필더실력으로 압박축구를 펼치면서 밀고 들어가는 기세는 좋으나 그걸 골로 연결시키기 힘들어하는 한국팀과 비스한 점이 많다. 이런한 점을 감안하고 보다 효과있는 실리적 축구를 펼치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누가 고정된 공격수 혹은 수비수라는 관념을 없애게 했다. 즉 주력멤버를 구성할 때 한 선수의 공격점수와 수비점수의 평균치를 내와갖고 선정, 예하면 한 선수가 아무리 공격선에서의 활약이 100점이라 해도 수비에서 빵점을 맞으면 절대 주력멤버에 들어갈 수 없게 했다. 공격수가 공격에만 골몰하면서 수비를 포기하고 수비수 또한 수비위치만 지키면서 공격에 참여하지 않으면 3선 탈절이 생겨 십중팔구는 상대방한테 허점을 제공해 주기 마련이다. 이러한 축구이념을 팀에 주입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헌데 그것이 하루 한시에 결실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그것이 점차 성숙에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허점이 생기면서 상대한테 역습의 기회를 주어 가끔씩 실점하는 경우가 있다. 필경 레알 마드리드나 AC밀란과 같은 세계급 스타들로 구성된 구단이 아닌 연변팀이니 말이다.” 고훈 감독의 이론대로라면 골키퍼외 선수 모두가 공격과 수비에 교차적으로 투입돼야 한다는 것, 시즌 초기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은 이해할수가 없었다. 진영구성이 분명하지 않고 선수선정이 타당치 못하며 특히 수비수가 너무 앞으로 밀고 나가는 문제 등을 놓고 그의 기전술 풍격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훈 감독은 행동을 갖고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그의 축구이론을 긍정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백승호, 좌조개까지 투입되는 공격력, 정림국, 문호일, 최영철, 김도, 현춘호, 한송봉, 좌조개, 송소우한테까지도 득점기회가 주어지는 공격망 강화와 6 : 0, 5 : 0, 8 : 0 등 다득점과 그와는 반비례를 이루는 적은 실점(지금까지 총 4골 실점) 등은 팀 실력에 근거한 고훈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이 일궈낸 화려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은 가장 훌륭한 방어이다.” 이는 무턱대고 들이대는 맹목적인 공격이란 뜻이 아니다. 10명의 선수 모두가 막강한 공격망을 구성함과 더불어 2중, 3중의 수비벽을 구축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주지하다싶이 공격에 들어서는 백승호와 좌조개마저 최전방에 투입되는가 하면 수비에 들어서는 톱에서 뛰던 정림국이나 문호일까지 하나의 육탄방선으로 되는 세기팀의 공방시스템, 그것을 선수들한테 주입시키기까지는 긴 시일과 많은 품이 들었지만 효과는 아주 이상적이었다. 미드필더선과 수비수들도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의식을 주입시켰는가 하면 아무리 출중한 공격수라 해도 수비의식이 약하면 주력멤버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게 했다. 여기서 가장 진보가 돌출한 선수라면 아마도 좌조개와 백승호를 짚어야 할 것이다. “현재 연변세기팀 선수들을 놓고 볼 때 이전의 오동팀 선수들에 비해 평균 키가 크고 속도와 개인기의 우세가 있는 반면 이전의 선수들에 비해 자신심이 좀 결핍한 문제점도 존재한다. 이전의 선수들은 강팀과 맞붙는다고 하면 일종의 호기심과 꼭 이겨보겠다는 오기도 강했지만 지금의 선수들은 그것이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어린 선수가 많은 팀이고 큰 경기를 얼마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쯤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지금은 그것이 많이 개변됐다. 어찌됐든 최종 4강전과 결승전에서 현재의 실력에 자신심을 잘 심어준다면 갑급진출쯤은 별문제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2004년 8월 18일 세기팀 8강전 대비훈련과 심태조절이 관건 연변세기팀 고훈 감독과의 독점인터뷰 전국축구 을급리그도 이젠 막바지단계에 진입했다. 지금까지 14전 전승으로 을급리그 북방경기구의 챔피언으로 내달리고 있는 연변세기팀, 이미 올린 전적보다는 앞으로 있게 될 최후의 결승전이 더욱 중요하다는 건 이젠 기성사실로 되고 있다. 그럼 요즘들어 세기팀에서 어떤 훈련에 몰두하고 있고 8강전에 대비해 어떤 대책마련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고 일전 고훈 감독을 찾아 독점인터뷰를 가졌다. “세기팀은 이미 시즌초기에 계획했던 두가지 목적 중 한가지 즉 북방경기구 챔피언이 된다는 목적에 도달했다. 이제 관건적인 것은 결승전에서 2위안에 들어 갑급진출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이는 어려운 과제지만 꼭 짚고 넘겨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12연승까지 하게 되자 8강전에 대비한 계획안을 새롭게 세우고 조선 함경북도팀을 초청하여 훈련경기를 치르는 것과 더불어 2일에 한번씩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체능훈련도 집중적으로 들이댔다. 그 체능훈련은 이제 2 – 3일가량 더하고 10월초 경에 조선의 1급팀 중 앞자리를 차지하는 소벽수팀을 초청하여 훈련경기를 몇번 더 치르기로 했다. 그 경기엔 주로 8강전에 뛰어들 주력멤버들을 출전시키고 리그경기에는 승무패에 상관없이 후보선수들을 출전시켜 단련시킬 예정이다. 헌데 요즘 세기팀이 갑급진출에 성공하면 팔아버린다는 여론 때문에 선수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나온 여론인지는 알 수 없으나 팀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것이 갑급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 골치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여론을 두고 고훈 감독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찬반표시는 거부하면서 현단계에서는 모두가 똘똘 뭉쳐 상하일심의 정신으로 갑급진출을 위해 투신할 때라고 밝혔다. 한편 세기팀의 조영원 지도가 수차 남방지구를 순회하면서 남방경기구 팀들을 고찰했는데 주로 제녕구거룡팀, 상해구성팀, 강서의 8.1형원팀, 운남의 여강동파팀 등 팀들이 엇비슷한 실력을 소유, 이는 북방구에 세기팀외 그닥 강한 팀이 없는 것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라 할 수 있는바 여태껏 강팀과의 경기를 별반 치러보지 못한 세기팀으로 말할 때 불리한 요소가 한두가지 아니란 것이 고훈 감독의 시각이었다. 그리고 세기팀의 약한 고리로 고훈 감독이 짚는건 여전히 수비선이었다. 그 이유라면 지금까지 약팀과의 경기만을 치렀기에 수비수들이 큰 압력이 없이 주로 공격에만 참여하다 보니 강팀과의 접전에서 그 약한 고리가 허점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큰바 이것을 잘 해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제일 관건으로 짚었다. 선수들의 심태에 대한 고훈 감독의 분석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을급권엔 우리의 적수가 없다. 세기팀이 제일 강팀이다. 자신심을 가져라. 우린 무조건 갑급팀에 올라간다’고 자주 강조한다. 하지만 선수들한테 존재하는 보수사상을 하루 한시에 떨쳐 버리기는 어렵다. 3년째 갑급행이 실패했으니 그런 사상이 남는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팀의 갑급행이 실현된 뒤에야 비로서 철저히 없어질 수 있는 법이다. 그 외 8강전에 들어 최악의 상태 즉 먹지 말아야 할 골을 먹거나 골운이 따르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막론하고 철저히 대비하여 그 어떤 강팀앞에서도 선제골을 넣고 다득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갑급진출의 꿈을 기어코 현실로 만들 결심이다.”《스포츠》 2004년 9월 6일 고훈 감독 중원에서의 280여 시간 ◎ 긴장과 모지름과 생사박투의 그 순간, 그 장면들 역사는 인간이 쓴다. 또한 전쟁에서는 승자가 쓰기 마련이다. 때문에 역사의 기록 역시 일종의 경향성을 띄기 마련이다. “승자는 영웅이고 패자는 역적”이란 말도 있다 싶이 패자한테 역사는 어쨌든 무정했다. 그 어떤 이유도,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 고훈 ㅡ 지나온 반생을 축구와 떠돌이 생활이 몸에 푹 배인 사나이, 성공과 희열과 좌절의 아픔을 동반하면서 이젠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어 인생반백을 바라보는 그가 재차 한 사나이의 자존심을 내걸고 중국축구무대에 도전장을 내던졌다. 여기서 꺼꾸러지면 그 뒤길은 너무나도 번연한 사실이었다… 고훈 감독이 연변세기팀을 이끌고 상해로부터 중원땅 정주로 달려온 것은 지난 10월 27일, 정주시 중심가에 자리잡은 39호텔 1502방에 행장을 푼 그는 본격적인 8강전 작전방안 짜기에 달라붙었다. 그의 가장 큰 적수는 산동구거룡팀이 아니고 운남여강팀이었다. 그의 앞에는 조영원 지도가 제공한 정보자료와 중국축구협회로부터 가져온 여강팀 경기를 녹화한 VCD자료들로 가득했다. 【렌즈 1】 : 원 운남홍탑구락부의 후비력 팀이었던 여강팀은 대부분 선수들이 4년간 브라질행 전지훈련토대를 닦은데다 상해신화의 부분적 선수들을 영입하여 팀이 구성됐는바 키꼴이 1.80미터 이상이 되는 선수가 20명이 넘으며 선수들의 개인기가 을급행렬에선 1류라고 할 수 있다. 진공속도가 빠르고 공중우세가 뚜렷하며 거기에 왕성한 체능우세까지 있는바 이번 8강전에서는 최종결승에서의 우승다툼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4강전에서 이 여강팀을 꺾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기간 고훈 감독은 그 어던 지도일군들의 구단방문과 기자들의 취재도 사절, 지어는 상해로부터 달려온 아내인 김연화 여사마저도 자기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한편 이번 8강전은 실력전이면서도 지력전이었고 고훈 감독의 지휘능력을 재차 검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고훈 감독은 기전술구사와 더불어 참전멤버배치에도 남다른 알심을 들였다. 경기는 고훈 감독의 작전방안과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제1라운드 제1회합에서 세기팀이 산동구거룡팀을 6 : 0으로 대승하자 고훈 감독은 참전진영을 조절, 제2회합에서는 최영철과 김도외 몽땅 후보들을 출전시켰다. 또한 전반전에 2 : 0으로 앞서자 상대방 문전에서 활약상을 보이던 최영철마저 빼버리고는 진짜 후보멤버들로 구거룡팀과의 경기를 펼쳤다. 결과 2 : 3로 역전패했지만 그건 아무런 수치도 아니었다. 그것은 관건적인 여강팀전에서 상병선수 혹은 레드카드를 받는 주력선수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해 10월 31일은 고훈 감독의 생일날이었다. 이날 연길과 상해 및 전국 각지에 널려있는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생일축하전화가 걸려오자 그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아내인 김연하 여사 역시 인편으로 생일축하케이크를 보냈을뿐이었다. 생일파티도 요리 몇접시 더 올랐을뿐 평소의 상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대 운남여강팀과의 작전방안 ㅡ 고훈 감독은 생일날에도 이것에 대한 신경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렌즈 2】: “운남여강팀이 제1라운드 1회합에서 하얼빈팀과 대결을 펼칠 때 나는 그들의 약점을 발견했다. 변선공격수의 속도가 빠르고 공격이 날카롭지만 뒤를 따르면서 배합해주는 선수가 없었고 3명이 지키는 수비선(그들은 352포메이션을 구사) 역시 빈공간이 가끔씩 보였다. 나는 수비와 공격에서 그들의 허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즉 수비에서는 한광화와 조명 선수로 상대방의 공격수의 발목을 묶고 공격에서는 정림국과 문호일 외 최영철과 천학봉의 영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가 그것이 효과를 보아 전반전에 세기팀은 페널티킥 기회로 한골 앞서게 됐다. 헌데 을급리그 8강전이 이토록 격렬할줄은 진짜 상상밖이었다. 여강팀과의 첫경기 전반전이 끝나자 골키퍼 윤광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좌조개는 눈이 화등잔처럼 되어 긴장해한는 것이 역연했다. 나는 평소의 리그전처럼 치르라고 긴장을 풀어주는 한편 일련의 기술포치를 했다. 후반들어 경기는 더욱 격렬했다. 여강팀이 공격은 노도와 같은 기세였다. 이에 세기팀은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 진공을 견제, 상대방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기전술을 펼쳤다.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다. 정림국이 강행돌파를 시도할 때마다 3 - 4명씩 막아나서면서 서슴없이 반칙을 했고 한송봉이 공을 잡아도 선수들로 담장을 쌓고 슈팅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도 장악한 정보에 의해 대처방안을 연구하고 포치한 것이 분명했다. 쌍방의 대등한 실력, 여기에서는 완전히 지력상수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판이었다. 드디어 경기종료를 앞둔 후반 43분경, 주장 한송봉은 상대방의 물샐틈 없는 방선을 피해 프리킥을 김청 선수한테 살짝 패스, 그것을 김청 선수가 달려들어가며 슈팅을 날린 것이 그물에 걸려 상대방의 동점골 시도를 몰살시켰다. 제1회합에서 상승세를 타자 제2 회합은 완전히 경기의 주도권이 세기팀한테 장악됐다. 전반전에 세기팀은 여전히 상대방의 체력을 괴롭히는 소모전에 진입, 상대방으로 하여금 극도로 긴장과 조급증에 시달리게 했는바 세기팀의 현춘호 선수가 페널티킥에 성공하는 한편 상대방은 가슴이 냉각되어 요행 차려진 페널티킥을 문대옆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드디어 후반전이 개시되자 고훈 감독은 공격신호를 올렸다. 승승장구로 돌격하는 세기팀 선수들, 좌조개의 헤딩골, 현춘호의 호선골과 문호일의 쐐기골이 연속 터지면서 상대방의 경기력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극한의 체력소모로 2명의 선수가 동시에 근육경련으로 쓰러지는 꼴불견의 장면도 출현됐다. 환호하는 경기장, 감동의 도가니 ㅡ 선수들은 고훈 감독을 번쩍 들어 반공중에 올렸고 고훈 감독은 선수들마다를 품에 포근히 안아주기도 했다. 【렌즈 3】: “여강팀은 상해구성팀을 피해 우리와 결사전을 펼치려 했는데 잘못 선택했다. 또한 제1라운드 제2 회합에서 우리가 구거룡한테 2 : 4로 패하고 자기들이 7 : 1로 할빈팀을 이기자 자고자대해졌다. 그리고 우리의 주력들은 3경기를 치렀지만 그들은 4경기에 주력멤버가 몽땅 동원됐다. 우리의 상대방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전술도 효과를 봤다. 특히 두번째 게임에서 그들이 공격으로 체력을 소모할 때 우리는 여우가 있게 체능조절을 하면서 상대방을 견제하는 한편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총적으로 선수들이 나의 기전술 사상을 잘 파악하여 경기를 승전으로 이끌었다.”《스포츠》 2004년 11월 15일 “올 갑급시즌 혼전과 혈전 계속될듯” 연변팀 고훈 감독이 분석하는 올시즌 갑급판도 “올 갑급시즌은 마지막 26라운드까지 혼전과 혈전을 피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는 강급제도가 없으니 모두 적게 투자하고 숨을 돌리면서 힘과 재력을 비축했다. 올해의 혈전과 혼전은 주로 제1집단군과 제3집단군내의 사활전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제1집단군이 팀이 비교적 많은바 절강녹성, 광주의약, 강소순천, 남경유유, 청도해리풍, 하남건업 등 팀이다. 그 중, 절강녹성, 강소순천, 남경유유, 하남건업 등 팀은 갑급권(이전엔 갑B)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던 팀들로서 올들어 3000만위안 이상의 거금을 투자하여 일품의 외적선수와 슈퍼권의 유명선수들을 유치, 목표를 슈퍼리그진출로 명확히 규정했다. 다음 제3집단군 팀들로는 우리 연변팀을 포함하여 호남상도, 북경굉등, 산서노호 등 팀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팀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장담도 할 수 없다.” 장장 100여일간의 남방전지훈련끝에 갑급리그 제1라운드 대 상해강부팀과의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고훈감독이 분석하는 갑급판도, 위에서 밝힌 것 외에도 “명년부터 슈퍼권에서 두개 팀씩 강급하기에 슈퍼리그진출을 성사하려면 올해가 가장 좋은 기회”인 한편 제3집단군 또한 올해부터 실시되는 강급권에 들지 않기 위해 그 어떤 강팀과도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고훈 감독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현재 갑급권내의 1, 2, 3집단군이 형성되기 시작, 강소순천, 절강녹성, 청도해리풍, 남경유유, 광주의약이 제1집단군(하남건업)은 아직 제2라운드를 차지 않았음)내에 진입했고 예견대로 연변을 포함한 호남상도, 산서노호, 북경굉등, 남창8.1 등 팀이 꼴지군단에 머물러 있는데 꼴지군단 중 고훈 감독이 보는 잠재력이 큰 팀은 남창8.1팀으로서 두 외적선수의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변팀을 꼴지군단으로 분석한다는 고훈감독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올해가 아무리 슈퍼진출을 성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지만 현재까지 구락부의 경제상황이 어려워 외적 선수란 졸라외 거의 공짜로 데려온 월리엄뿐인데 어떻게 다는 구단과 비길수 있는가? 거기에 올들어 두번씩이나 선수들의 훈련불참사건까지 발생해 선수들의 정서도 아주 불안정한 상태이다. 올해 구락부에 정한 목표는 갑급보존의 기초상 지난해와 같은 순위나 그것을 좀 더 높이라는 것, 이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가령 나한테 강소순천이나 절강록성같은 명품선수만 차례진다면 큰 소리 치면서 슈퍼진출을 꿈꿔볼텐데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해 아쉽다.” 한편 고훈 감독은 “여건이 어떠하든간 연변팀은 매차례의 경기를 열심히 치르는 것으로 연변축구를 사랑해준 팬들에게 훌륭한 경기모습을 선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합신문》 2005년 4월 3일 고훈 감독이 보는 세기팀 전력 및 매 선수의 특점 ◎ 3선에서의 기둥선수 결핍 ◎ 미드필더선 선수 많고 중앙선 골잡이 적어 올 갑급시즌이 이미 제17라운드까지 진행, 시즌초기 미드필더선과 량측변선이 강하고 공격선과 수비선이 약해 원정은 물론 홈장에서도 자주 어이없이 패전하던 연변세기팀이 시즌경기가 심입됨에 따라 성숙되면서 현재까지 6승 2무 9패로 9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갑급권 신참으로서는 양호한 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거니와 광범한 축구팬들도 받아들일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 세기팀의 사령탑을 잡은 고훈 감독이 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일전 전문 이 화제를 두고 고훈 감독과 대담을 나눠봤다. 세기팀 전력 및 매 선수의 특점 분석 “세기팀을 놓고볼 때 3선에서의 선수균형이 잘 잡히지 못한 상황이다. 예하면 미드필더선 선수가 많고 수비선과 공격선 선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골치거리이다. 그것도 공격선과 수비선에 기둥선수가 없다. 공격선에서 졸라 선수가 큰 활약을 보이지만 다른 팀의 외적공격수들에 비해서는 이미 한물이 간 상태이고 수비선의 조명 선수 역시 육성가치가 크지만 아직은 단련을 더 거쳐야 보다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수비선보다도 공격선이 더 문제인데 수비가 약해 골을 먹더라도 그만큼 골을 많이 넣어야 할텐데 말이다. 그래서 공격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조선국가올림픽팀과 평가전 때 외적선수 채두용을 센터포드로 배치해봤는데 그 역시 정림국이나 문호일처럼 변선활약은 눈부셨지만 중앙선에서는 그 작용이 크지 못했다. 현재 세기팀의 골잡이를 보면 졸라가 8골, 정림국과 문호일이 각각 3골씩이고 한송봉과 김도가 각각 2골씩으로 졸라외 돌출한 골잡이가 없다.” 세기팀이 갑급권에 튼튼히 발을 붙이자면 강급이 없는 올해보다도 명년도 성적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헌데 올해 35살인 졸라가 명년에 계속 뛸 수 없을 경우를 감안할 때 세기팀도 자체의 “간판골잡이 출산”이 급선무로 나서고 있다. 현재는 물론 명년에도 연변의 상황에서 장춘아태팀의 이리예같은 골잡이를 영입하긴 어려운 상황, 기존의 선수들중에서 하문남사팀의 전야와 같은 스타가 출현돼야 하는데 그 가능성에도 물음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명년시즌 위한 대책 및 팀전력 조절상황 올시즌 세기팀 경기를 보면 기존주력들이 불참하고 이전의 후보들이 주력멤버에 들어갈 때가 가끔씩 있었다. 그 실례로 수비선에서는 한광화 대신 배육문이 들어가고 공격선에서도 정림국 대신 박만철이 출전하는 등 경우였는데 이에 대한 고훈 감독의 목적은 명백했다. 모든 선수들을 경기중에서 출분히 관찰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발굴하기 위한 조치였다. “단 한차례의 승전을 위해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광화 - 배육문, 정림국 – 박만철 등의 전력조절외에도 미드필더선의 공격조직자인 현춘호를 늘 후반에 출전시키군 했는데 그 목적은 현춘호외 한송봉이나 기타 미드필더선 선수들이 현춘호같은 공격조직자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현제 세기팀 상황을 놓고 볼 때 변선공격을 잘하는 선수가 너무 많아 누구를 배치해야 할지 고민거리이고 공격선수는 너무 적어 졸라만 빠지면 누가 대신할지 역시 고민거리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 전력조절을 하는데 절대적 보장은 없지만 자주 조절을 하다보면 나아지는 점이 꼭 많으리라 인정한다.” 한편 현재 조선 기관차팀에서 뛰고 있는 정철선수가 공격수로서 세기팀 물망에 올라 있는데 고훈 감독에 따르면 올해내에 그를 데려다 고찰하면서 적응훈련을 하다가 명년부터 기용할 타산이지만 상화에 따라 올해내에 출전시킬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종합신문》 2005년 8월 15일 사나이는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2005년 시즌과 연변축구팀 감독 고훈 숨막히고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2005년도 이젠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돌이켜 보는 올해 ㅡ 그것이 축구인 고훈한테는 결코 평범한 한해가 아니었다. 축구감독을 하다보면 속을 썩이긴 여느 해나 마차가지었지만 올래는 특히 달랐다. 갑급권진출 첫 스타트인 올해에 팀적응력을 높임과 아울러 갑급권 진지구축을 잘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자니 그 어느 해보다도 힘들고 어려웠다.지난해 을급시즌이 끝나 연변세기팀이 갑급진출이 성공한 뒤 연변팀의 새해시즌 준비사업을 두고 연변 주체육국의 양창호 국장이 고훈 감독을 찾았다. 당시 고훈은 양창호 국장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갑급권은 필경 을급권과 다릅니다. 웬간한 투자와 더불어 실력파 국내선수와 외국선수도 영입하고 구단의 훈련 및 생활 조건도 어느 정도 개선해야 하는 걸로 생각합니다. 더 적절하게 말하면 갑급진출의 성공을 그 어떤 임무의 완수보다는 새로운 스타트선으로 간주하고 모든 정비를 빈틈없이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고훈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005년 갑급시즌에서의 순위를 어느 정도 높이겠다는 타산은 있었다. 이는 단지 자기가 이전에 갑A시절의 감독이었다는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헌데 2005년 갑급시즌 준비사업이 가동되어 팀이 해남 전지훈련에 들어간지 오래되도록 구락부 후근사업은 아무런 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자금계획이 낙착을 보지 못하니 외적용병은 물론 국내선수에 이르기까지 고찰에만 그칠뿐 그 어떤 협상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구단의 외적용병으로는 연변팬들한테 익숙한 졸라 선수 한명을 공짜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자금줄은 시즌이 개시되어 몇라운드의 경기가 치러질 때가지 좀처럼 해결되지 못했고 뒤이어 노임체불현상이 나타났다. 진작 예견하지 못한건 아니었지만 선수들을 보기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선수들이 다른 구단의 선수들처럼 사단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를 잘 따라주는 것이었다. 고훈은 그것이 더욱 가슴이 아팠다. 바로 이 때 아내인 김연화씨가 보다 못해 일본의 모 기업과 연계하여 협찬금 100만위안을 유치해왔다. 그는 그저 아내의 거동이 고맙기만 할뿐이었다. 한편 고훈은 올시즌 계획을 3개 단계로 나누어 적응기, 안정기, 상승기 등으로 알심들여 작성, 시즌 중도에 자금난으로 인한 시련도 수차 있었지만 계획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져갔다. 하긴 그 기간 팀배합과 성적보완을 위해 한국의 고봉근, 조선의 채두용 등 외적용병을 자주 바꾸면서 말못할 고충도 많았으나 홈장에서 청도해리풍, 대련장파와 상해구성 등 팀을 멋지게 압도하여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고 하문남사, 절강녹성 등 강팀과는 비록 졌지만 거의 대등한 경기로 풍격을 잘 발휘한걸로 팬들의 위안을 받기도 했다. 원정경기 또한 연속 패전하던데로부터 점차 상승세를 타면서 비기거나 이기는 경기도 펼쳐 “원정 딱정벌레”란 감투를 벗어 던지게 됐다. 올시즌의 성적은 이뿐이 아니었다. 순위 8등보다 못하지 않은 성적이라면 조명 선수를 유일한 “국자호”로 키워낸 것이었고 최영철, 지문일 등 선수들도 장래의 국가팀 선수로 주목받게 한 것, 이 3명 선수 모두가 지나해부터 자기를 이끌던 선수였다고 생각하니 보람도 컸다. 2005년 시즌의 전반 과정을 분석하면서 고훈 감독은 다음과 같이 피로했다. “올해는 구단사상 가장 간고했던 한해로 보아진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구단에 낙착된 자금은 협찬금과 경기장수입까지 몽땅 합쳐봐야 300만위안선을 조금 넘은 상황, 터무니 없이 부족한 자금을 갖고 구단운영을 하자니 애로가 많았다. 그래도 선수들이 열심히 싸워줘서 갑급 8위권이란 성적을 냈다. 이 공로의 많은 부분을 선수들한테 돌리고 싶다. 기실 연변팀을 놓고 볼 때 호남상도, 대련장파 등 약팀과 비슷한 실력으로 갑급 하위권실력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은 매차례의 경기마다 100% 이상의 노력을 경주, 이길 경기는 기본상 다 이겼고 상대적으로 강한 팀과의 경기에서 이긴적도 몇번은 잘된걸로 알고 있다.” 다른 한편 올시즌이 결속되자마자 “감독유임위기”를 당했던 고훈이다. 당시 억울한 생각도 들었고 뭔가 잘못되지 않나 하는 우려감으로 연변축구의 장래를 걱정했던 그였지만 인차 냉정을 회복했다. 시장화축구에 진입하자면 감독교체나 감독하학 등을 피면할 수 없다는 것, 오직 연변축구에 유익한 일이라면 모든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연변축구팀이 이미 2006년 시즌을 위한 전지훈련에 들어갔다. 명년시즌에 들어 진정 시장화경영에 들어가게 되는 연변프로축구가 어떤 모습을 나타낼지? 궁금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경쟁시대인만큼 축구감독이란 이 위치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란 것은 고훈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와 더불어 감독위치에 있는 마지막 날까지 오직 최선만이 있다는 것을 고훈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종합신문》 2005년 12월 19일 ▲고훈 감독의 가족사진 뒷줄 왼쪽으로부터 여동생 고성희, 고훈, 고헌 그리고 앞줄 어머니 한채순 여사와 아버지 고자성 음악원로 “아버님, 불효자는 웁니다” 고훈 감독 ㅡ 슬픔과 비통이 엇갈리던 그 14시간 지난 5월 30일 연길 경도능원 추도청에서는 건국 후 연변음악의 개척자 중 한분이신 고자성 원로의 추도회가 장중하고도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열리었다. 추도회에서는 현재 연변축구의 사령탑을 잡고 있는 고 고자성 음악원로의 둘째 아들인 고훈 감독이 가족을 대표하여 답사를 했다. “… 저의 부친님은 우리 삼남매를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되게끔 키웠으나 우리 삼남매는 제마끔 외지에 있고 또한 분망한 사업 때문에 부모한테 진정한 효도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는 원정경기 때문에 부친님의 임종순간마저도 지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발언한 고훈 감독은 비통으로 인한 나머지 한동안 아래말을 잇지 못했다… 연변팀 원정경기 때문에 부친의 임종 순간마저 자리를 비워야 했던 조선족 축구인 고훈 ㅡ 올들어 지금까지 그의 “운수”가 자꾸 꼬이기만 했다. 지난해 10월말 2005년 갑급리그가 끝나자 고훈한테는 극히 불길한 소식이 전해왔다. “정붕휘씨가 1800만위안의 조건부로 연변축구팀을 인수하려 한다.” 고훈은 그것이 불안했다. 갑급진출 1년만에 축구팀을 “축구도박혐의”가 짙은 정붕휘한테 넘기다니? 당시 고훈의 뇌리에는 올해를 “슈퍼권진출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던터라 그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 뒤 선수들의 공개신과 보도매체 및 축구팬들의 여론에 의해 정붕휘의 “연변축구인수꿈”이 “임대경영권”으로 바뀌었으나 고훈은 여전히 정붕휘의 부임이 달갑지를 아니했다. 아니나 다를가 정붕휘씨로 인한 선수들의 “훈련불참사건”과 더불어 “축구협회컵”의 연변팀 참전권리가 취소됐으며 갑급리그가 개시된 뒤 경기성적도 줄곧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 5월 17일 고훈 감독의 부친은 오랜 고질이던 심장병이 재돌발해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이 때 연변 주체육국내에서는 중대한 인사변동이 있었다. 즉 연변 주체육국과 정붕휘 사이에 맺은 “연변축구임대경영계약”이 해제되어 정붕휘와 그의 수행일군들이 연변을 떠남과 아울러 연변축구구락부의 임시경영권이 고훈한테 떨어지는 등이었다. 5월 26일 고훈감독이 팀을 이끌고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해 항주로 떠날 때 부친은 이미 혼수상태에 처했다. 림종을 앞둔 부친을 두고 원정행을 떠나는 고훈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원정경기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부친께서 버티여줄것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5월 27일 저녁 7시 항주시 황룡경기장 지휘석에 앉은 고훈의 기분은 매우 소침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부친의 생명이 경각을 다투었고 다른 하나는 경기 상대가 갑급권 제2위로 있는 절강녹성팀이라 철통같은 심장을 가졌다는 사나이었으나 그 순간만은 그 부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선수들이 그의 포치에 따라 육탄투혼을 발휘하여 두번이나 상대방의 앞선 골을 원점으로 되돌려 그의 마음을 다소나마 기쁘게 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나 숙소로 돌아간 고훈은 핸드폰을 켜놓은채 새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는 피곤을 달래려고 TV를 켰으나 프로가 시야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드디어 새벽 2시 30분경, 그의 핸드폰 신호가 울렸다. “고훈아, 아버지가 운명했어…”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그의 형님인 고헌씨였다. 고훈은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상해로 향발, 상해에서 연길행 직항선비행기에 올랐으며 연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4시 30분이었다. 그러니 부친의 심장고동이 멈춘지 14시간만이었다. “아버님, 이 불효자가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딱 한번만 눈을 뜨셔서 이 아들을 봐주십시오…”그러고는 아버님의 유체앞에 무릎을 꿁고 굵직굵직한 사나이의 눈물을 떨구었다. ▲어머님 한채순 여사의 만년을 지켜주고 있는 고훈 감독
    • 스포츠
    2015-02-28
  • 연변FC 국내용병 5명 영입 확정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28일, 연변 장백산축구구락부에 따르면 올 중국축구 갑급리그에 참전할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이 국내 용병 5명을 전부 확정, 이들로는 원 연변팀의 주전이었던 배육문과 조우밍(赵铭), 원 신장텐산(新疆天山)팀의 아이크바이얼, 원 광둥르즈쵄(广东日之泉)팀의 선펑(沈鹏)과 원 저장뤼청(浙江绿城)팀의 왕즈펑(王志鹏)등이다. 국내용병 매개인을 소개하면 2004년 연변팀의 갑급진출시의 공신이었던 배육문은 공수평형을 잘 통제하고 프리킥 능력이 뛰어나고 있으며 역시 연변팀 갑급진출시의 공신인 조우밍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중앙수비로 우월한 신체조건과 뛰어난 수비의식을 갖추고 있다. 이 외 나어린 용병들인 아이크바이얼은 속도가 빠르고 기술이 출중하며 선펑은 속도가 빠르고 기술이 좋으며 특히 변선돌파능력이 뛰어나 원 최인선수의 공백을 메울 전망이다. 또한 올해 22살인 왕즈펑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조직 및 공수송 능력이 돌출한 등 능력으로 연변팀 감독진의 눈에 든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스포츠
    2015-02-28
  • 中 “중국 축구개혁 총체방안” 심의통과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재하고 리커챵 국무총리 등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27일 열린 중앙전면심화개혁지도소조 제10차 회의에서는 “중국 축구개혁 총체적인 방안”, “지도간부들이 사법활동에 간섭하고 구체적인 사건처리에 개입한 기록에 대한 통보와 책임추구 규정”, “인민감독원제도 개혁을 심화할데 관한 방안”, “상해시 지도간부들의 배우자 및 자녀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기업을 경영하는데 관한 관리를 강화하고 규범화할데 대한 의견”을 심의하고 통과했다고 중국 신화망이 2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꿈의 실현은 중국 체육강국의 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축구진흥은 체육강국의 필연적인 요구이고 전국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축구를 발전진흥시키려면 반드시 축구발전진흥을 저애하는 체제와 기제를 극복하고 축구발전진흥에 훌륭한 체제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축구운동 발전의 규칙에 따라 국정과 국제경험을 결합하고 장원함과 기초다지기를 결합하며 창신재건과 문제정돈을 결합하고 전국의 체제와 시장의 체제를 결합하며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추동하며 부단히 총화하고 개진해야 한다. 축구사업을 발전진흥시키는 관건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장기적으로 노력하며 군중기초를 잘 닦고 인재기반을 견실히 하며 어린 아이때부터 틀어쥐고 기층으로부터 틀어쥐며 기초로부터 틀어쥐고 군중참여로부터 틀어쥐어야 한다. 학교축구, 신형의 축구학교, 직업클럽, 사회축구 등 각종 배양도경이 연결되고 관통되도록 함으로써 축구사업의 발전동력을 충족하게 하며 활력이 있도록 해야 한다. 체육계 특히는 축구계는 시기를 틀어쥐고 대담히 개혁, 탐색하며 중국의 축구발전진흥을 위해 새로운 체제를 탐색할 뿐만 아니라 체육관리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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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5-02-27
  • 아시아챔스리그 서막 중국의 대잔치로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아시아축구의 최강클럽을 가리는 2015 아시아챔피언스리그가 지난 24일과 25일에 거쳐 전면 가동, 중국 클럽을 대표해 출전한 팀들인 광저우 헝다, 베이징 궈안, 산둥 루넝과 광저우 부리 등이 “전 전선”에 거쳐 승전 축포를 쏴올리면서 말그대로 중국의 대잔치로 벌였다. 2월 25일, 중국 광저우 탠허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광저우 헝다는 FC서울과의 경기내내 상대방을 거세게 압박했다. 전반 2분 5경, 알란이 빠른 슈팅으로 서울의 크로스바를 위협, 4분 뒤 항대에 슈팅기회를 허용했으나 골키퍼 김용대가 그 슈팅을 막아냈다. 서울은 전반 28분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고 광저우 헝다는 코너킥 기회에 굴라트의 헤딩슈팅으로 서울의 골망을 흔들었다. 한편 이날 베이징 궈안은 호주 원정에서 브리즈번로어팀(호주)을 1 : 0으로 제압했고 이에 앞서 2월 24일 산둥 루넝은 원정에서 베트남평양팀(平阳)을 전승, 광저우 부리는 일본 오사카 원정에서 전후반 각각 한골씩 넣으며 오사카팀을 완승하였다. 오는 3월 3일 베이징 궈안은 홈에서 수원삼성과, 산둥 루넝은 현대전북과, 광저우 부리는 안방에서 유나이티드(타이)와 2차전을 치르게 되며 3월 4일 광저우 헝다는 시드니 원더러스팀(호주)과 원정경기를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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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7
  • 연변FC, 수원삼성 공격수 하태균 영입
    2015시즌 연변팀 유니폼을 입게 될 두번째 외적선수가 확정됐다. 한국 K리그 수원삼성팀에서 활약하던 하태균선수가 2015년 7월 20일까지 임대 이적하게 되였다. 한국 국가청년팀, 국가올림픽팀, 국가팀에서 활약하던 하태균선수는 1987년 11월 2일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출생, 신장 187센치메터, 체중 80킬로그람 위치는 공격수이다. 한국 구포초등학교, 현대중학교, 강릉제일고등학교, 단국대학교를 졸업, 2007년 수원삼성에 입단, K리그 최우수신인상을 획득, 2013-2014년 상주상무팀으로 이적, 2014년 하반년 수원삼성으로 돌아온 하태균선수는 2015년 에스빠냐 동계전지훈련 평가전에서 3꼴을 기록,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상해신화팀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3꼴) 기록한적 있다.<길림신문 김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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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9
  • [연변FC 특집보도] 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김철균 기자 프로필 1957년 8월 26일 생연변대학 통신학부(현재의 성인학원) 졸업선후로 훈춘시방송국, 연변라디오방송국, 연변일보사에서 사업현재 연변일보 종합신문 편집국장, 길림신문 축구논평원, 동포투데이 논설위원 등 겸임단편소설 “잃은 것과 얻은 것”, “수산나”, “전쟁과 칠성영감의 여인들”, 실화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한국인의 삶의 자세와 중국조선족”, 수필 “사향심” 등 200여편장편실화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 합작저서 “야망의 축구스타”, 번역작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기적”, “오묘한 세계대백과”, “연변레저지남” 등이 있음청년생활 “화연문화상”, 연변라디오방송국 “라디오문학상”, 길림신문 “신춘문예상” 등 여러편 수상 연변팀 고훈 감독편 길은 개척하기에 달렸다 길림오동팀 고훈 감독이 보는 갑A 제1단계 경기 가렬처절하던 1999년 중국축구 갑A 시즌 제1단계 경기가 지난 9일에 끝났다. 9일까지 우리 길림오동팀은 3승, 4무, 2패로 잠시 갑A의 제6위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감독으로서 나는 오늘과 같은 좋은 성적을 위해 하나처럼 똘똘 뭉쳐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과 팀에 열정적인 성원을 보내준 광범한 연변의 축구팬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지난 9라운드의 경험과 교훈을 잘 총화해보는 것도 팀의 앞길에 이롭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시즌이 끝난 그 당시 전반 팀이 탈진상태에 처해 있었고 그 때의 그 상태로 새해시즌에 뛰어든다는 것은 억지다짐이고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나와 연변축구구락부 지도층에서는 거듭되는 연구끝에 몇가지 방침을 제정하고 그것을 즉시 실천해 나갔다. 첫째, 일찍 손쓰고 빈틈없이 준비했다. 우선 팀의 지도부력량을 강화했다. 원 감독진의 기초상에서 코치직을 구락부의 전명호 주임이 맡기로 하고 원 2팀에 있던 김광수지도를 보충했다. 목적은 감독의 부담을 경감시키고 각자가 맡은 바의 부서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지도진영이 결정되자 즉시 외적 선수 및 국내 선수 물색에 달라붙었다. 아시안게임과 조선선수 고찰 및 조경과 해경 훈련기지에서 수많은 외적 선수들을 반복적으로 고찰하다가 최후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테니 선수를 선택했고 국내선수 영입에서는 수십명을 고찰하던 끝에 왕해파, 학위동, 우용 이 3명의 선수를 영입했다. 둘째, 동계전지훈련을 일찍 시작하고 훈련량을 늘이었다. 지난해 시즌에서 거의 탈진상태에 처한 팀을 보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지만 우리 팀한테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앞서 지난해 시즌이 끝난 20여일만에 강훈련에 들어갔다. 그 목적은 체능시험에 무난히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그 강도를 보면 신체가 좋다는 왕해파 선수마저도 “이건 훈련이 아니라 사람잡이”라고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극한의 훈련을 통해 고종훈을 비록한 모든 선수들이 1차적으로 체능시험에 통과되어 올해의 경기에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한 한편 남호, 정동칠 등 싹수가 보이는 선수들을 새로 발견하여 공격선과 수비선에 큰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셋째, 외적선수 영입과 국내선수 영입이 비교적 적중했다. 조선의 조인철, 리창하, 강춘일 등 선수들을 받지 않은데 대한 축구팬들과 매스컴에서도 의론이 많았지만 그들을 받지 않은 이유라면 그들이 우리가 수요하는 위치(그 위치의 선수는 우리 팀에도 많음)의 선수가 아니었고 또한 그들이 갑B리그에서는 출중했지만 갑A리그에서도 작용이 클까 하는 것이 미타했으며 그들이 또한 한국행 훈련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 있던 블라이마와 졸라 등을 계속 유임시키는 전제하에서 테니를 새로 받았다. 그 목적은 졸라는 기술형이고 테니는 충격형이어서 각 자의 특점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국내선수 영입에서는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에 주로 모를 박았는데 왕해파와 학위동이 비교적 이상적이었다. 이쯤되니 우리 팀의 실력이 지난해에 비해 많이 강화된 것만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팀들을 경시할 수 없었으며 금년도 목표를 정할 때 여전히 갑A 보존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남들도 실력이 많이 제고됐기 때문이었다. 갑A시즌이 개시되자 우리 팀은 제1라운드에서 원정경기로 광주송일팀과 맞붙게 됐다. 원정경기인데다 송일팀의 내막을 잘 알지 못했기에 우리는 맹목적인 공격에만 병력을 투입한 것이 아니라 수비를 강화하는 한편 몇차례의 역습을 들이댔다. 결과 송일팀은 공격차수가 훨씬 많았지만 견고한 우리의 방선을 뚫지 못했고 반대로 우리 팀은 몇번 안되는 공격이었지만 챤스가 좋았기에 1골을 성사해 3점을 따게 됐다. 송일팀과 이긴 뒤 우리는 계속하여 상해신화팀과 대련만달팀과의 경기에서도 역시 수비를 강화하는 한편 역습을 시도하는 전술로 강팀인 이 두팀과도 무승부로 손을 잡게 됐다. 이렇게 송일팀과 이기고 상해와 대련팀 및 천진팀과도 빅자 우리들한테는 알게 모르게 자만정서가 나타나게 됐다. 그 원인은 갑A의 제1집단군이라 할 수 없는 산동노능과 중경융흠팀이란데서 기인된듯 싶다. 모두가 알다싶이 산동과 중경과의 두번의 경기에서 연속 졸전을 치렀고 나도 “샤커(下课)”이란 소리를 듣게 됐다. 그것을 검토해 보면 아마도 감독으로부터 선수에 이르기까지 냉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또한 대 천진팀전에서 팀의 약점이 드러났음에도 계속 그 약점을 시정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두 졸전을 치른 후 우리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냉정한 자세로 진영체계 및 기전술응용을 재삼 검토하면서 경기마다 신경을 쓴 결과 과연 사천전흥팀과 요녕팀과는 이기고 북경국안과는 비기는 결과를 낳게 됐다. 전 9라운드에서 제일 잘 치른 경기라면 물론 사람마다 보는 견해가 다르겠지만 감독인 내가 보건대 결과는 요녕팀과의 경기가 제일 좋았고 경기풍격을 보면 아마도 대 상해신화팀전, 대 사천전흥팀전과 대 북경국안팀전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그리고 두번의 졸전에 대해서는 우선 감독인 내가 잘 검토하고 다음에 선수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으며 축구팬들한테 죄송함을 재삼 밝히는 바이다. 또한 나의 감독직에 대해 이전에도 언급한적이 있지만 팀이 계속 부진을 겪는다면, 다음 더욱 훌륭한 감독이 나타난다면 나는 언제든지 자리를 내줄 용기가 있다. 허나 경기에서 실패란 피면하기 어려우며 상승장군이란 있을 수 없듯이 갑A 의 중간집단군에 속하는 오동팀이 계속 이기는 경기를 치른다고 장담할 수 없으며 또한 계속 이긴다면 대련만달팀이지 오동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될수록 적게 패하고 많이 이기는 경기를 치르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신진들을 많이 단련시킬 것이지만 축구협회컵 경기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러 나갈 것이다. 총적으로 보아 우리는 제1단계의 경기에서 기본상 예정된 목표에 도달했으며 경기결과에도 만족하게 된다. 한편 경기에서 영원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갑A보존을 완수하면 갑A우승을 노리게 되고 거기서 성공하면 또 아시안게임이나 월드컵을 노리는것이 모든 축구인들의 욕망이다. 그렇다. 축구에서는 영원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김철균 대필 《연변일보》 1999년 5월 17일 싸리나무 한가지 꺽기 쉬워도 아름드리나무는 꺽지 못하리 고훈 감독과 오동군단 A B C 국자호 선수가 한명도 없는 건 물론 고종훈 선수만 빼면 다른 갑A팀에 가서 주력으로 뛸만한 선수도 별반 없는 상황이지만 선수들이 하나의 군단만 형성하면 그 어떤 강팀도 타승할 수 있는 것이 오동팀의 현주소라 할 때, 국가팀마저도 평가전을 꺼려하는 오동팀의 실력요소는 과연 어떠한 것들이 들어있을까? 이에 대해 나름대로의 추적과 분석을 해봤다. 단결은 힘, 단결은 승전의 담보 팀의 단결은 최은택 교수가 사령탑을 잡고 있을 때부터 지금 고훈 감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강조하고 있는 팀의 좌우명었다. 오동팀의 감독진영을 놓고 보면 각자가 자기의 맡은 부서에 따라 일을 하지만 팀의 단결에 한해서만은 감독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서로 감독하고 책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오동팀은 조선족, 한족과 외적 선수까지 뒤섞여 있다 보니 단결문제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팀에서는 단결에 불리한 그 어떤 언행도 엄금되고 있으며 일단 일이 발생하면 먼저 자신부터 잘못을 검토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지난해 시즌초기 팀에서 데려온 싸싸와 발렌티가 표현이 그닥지 않자 사회상에서는 의론이 있었고 팀 내부에서도 “숱한 돈을 받는다는 여석들이 왜 그 모양인가?” 하는 등 말썽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자 당시 사령탑을 잡은 최은택 교수는 “이는 감독이 알아서 할 일이지 선수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후 누가 단결을 파괴하면 작게는 벌금, 크게는 경기참전권 취소 등 일련의 제도를 내왔다. 그 후부터 선수들은 경기에서 지는 등 일에 봉착하면 먼저 자기의 잘못과 실수부터 검토하군 했다. 특히 지난번 대 중경융흠팀과의 경기에서 참패를 당한 후에도 참답게 경험교훈을 총화하고 단결제일을 강조한데서 그것이 사천전흥팀과 요녕팀을 타승할 수 있는 중요한 활력소가 될 수 있었다. 뜨거운 혈형 “오동형” 사람의 혈형은 A, B, O, AB 등 네가지형으로 나뉜다. 하다면 각종 혈형으로 군단을 이룬 오동군단의 총체적 혈형은 과연 어떤 형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동형”이라고 명명함이 지당할 것이다. 사람들의 인상속에 훈련장과 경기장에서의 고훈은 엄한 감독으로 통하지만 생활속의 고훈 감독은 인정이 그렇게도 많은 자애로운 사나이었다. 그한테는 한권의 특수한 수첩이 있었다. 김청 : 1977년 11월 29일생 이광호 : 1971년 9월 16일생 왕광위 : 1978년 1월 6일생 이렇게 오동군단 모든 선수들의 출생 연월일이 기록돼 있다. 감독진에서 선수들한테 보내주는 생일선물은 근근히 생일축하 케이크에 불과하지만 감독과 선수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다. 외적선수에 한해서는 워낙 블라이마가 팀에 대한 기여도 크고 집에 자식이 많은 등 상황에 근거하여 크고 좋은 집을 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다른 선수들의 정서에 영향이 생긴다는 점을 감안해 졸라와 테니한테도 똑같은 집을 주고 아내와 자식까지 데려오게 했다. 아니나 다를가 올해초 얼마간의 불만이 있던 졸라 선수도 인차 안착하고는 상한 팔에 붕대를 감고서도 열심히 경기에 뛰어들고 있다. 선수들의 생활을 돌볼줄 모르는 감독은 감독자격이 없다는 것이 현임 고훈감독이 신조이다. 팀이 일단 봉페식 훈련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집으로 다녀올 수 없게 됐지만 고훈 감독은 특수상황은 특수하게 처리한다. 얼마전 졸라의 안해가 출산했다. 그녀를 놓고 말하면 만리타향에 와있는 몸이라 친인도 없고 언어소통도 안되기에 남편의 도움이 몹시 필요했다. 고훈 감독은 인차 졸라선수의 고충을 헤아리고는 그더러 가끔씩 집에 다녀오게 했다. 과연 그가 훈련과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감독의 관심에 대해서도 몹시 감격해하군 했다. 오동군단의 애향심 고향을 사랑하지 않을 선수가 그 어디에 있겠소만 소수민족 주축으로 이뤄진 군단 – 오동팀 건아들의 애향심은 특별하다. 조사에 따르면 팀의 주력선수 거의 모두가 아무리 높은 보수를 준다고 해도 다른 그 어떤 팀으로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음식습관, 언어소통 등 원인으로 다른 팀에 가서 적응하기 힘들거나 다른 팀에서도 잘 써주지 않는 점도 원인으로 될 수 있지만 그것보다 고향축구를 위해 힘다하려는 것이 오동팀 선수들의 최대 소망이다. 하기에 고향을 떠나면 마치 축구생애가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라 선수들마다가 최선을 다하는 기적을 낳군 한다. 이는 또한 선수들한테 무한한 애향심을 불러 일으키는바 부모와 선수들 사이 그리고 선수와 축구팬들 사이에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하기에 30만명을 좀 웃도는 작은 연길시건만 오동팀이 경기가 있다 하면 수만명씩 경기장에 모여들 수 있고 선수들 또한 고향의 부모형제 앞이라 그들의 응원에서 자신심과 용기를 얻고 열심히 경기와 훈련에 투신하기에 국내이적 선수들도 일단 오동군단에 오면 명선수가 되고 스타가 되는 것이다. 오동팀 선수들의 정신에 감화되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력진영에 들수 없는 망신도 하니까 100% 이상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실례로 이전의 황경량이 그랬는가 하면 오늘의 왕해파가 그렇게 되고 있다. 이 밖에도 경제실력이 보잘 것 없고 인구가 적은 지구에서 무어진 오동팀이 6년간아니 갑A에서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원인에 대하여 고훈 감독의 기발한 기전술응용 등 여러 가지 실례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책략과 조치도 모두 팀 전체를 하나로 묶어세우는데 귀결되는바 그 어느 환절도 단결, 박투, 헌신과 응집력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싸리나무 한가지는 꺾기 쉬워도 아름드리나무는 꺾을수 없는 것이다. 《연변일보》 1999년 5월 24일 낙낙장송 큰 나무도 다듬어야 동량된다 길림오동팀 고훈감독의 신진양성 관리경험 동량이란 무엇인가? “우리 말사전”에 따르면 그건 건축에 쓰이는 대들보를 일컫는 말이다. 하다면 매 하나의 애목이 동량으로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이런 가설로 오동팀의 신진 양성 및 그 관리에 대해 진맥해본다. 팀의 운명과 신진양성 주지하다싶이 길림오동팀은 그 지리적 위치와 경제상황 및 등 여건으로 외적 선수와 국내 선수 영입에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구단으로 이는 축구를 혹애하는 연변인들의 심리와는 크게 모순된다. 가령 연변에 오동팀마저 없다면 이 곳의 정신문화생활도 크게 공허하기 마련이다. 이를 감안해 연변 축구구락부 및 오동구단의 주요 과제가 바로 신진발견과 그에 따르는 양성관리었다. 올해 길림오동팀에서는 잠시적인 구단이익에 손상이 가더라도 대담히 신진양성에 모를 박았다. 이는 소장파 감독인 고훈의 굳은 결심과도 갈라놓을 수 없다. 연변태생인 고훈 감독은 장기간 연변팀에서 일해왔기에 연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신진양성의 긴박감도 절감했던 것이다. 그는 늘 “나도 언젠가는 감독직을 내놓기 마련이다. 그 때의 팀이 크게 병든 팀이라면 나는 연변축구사의 큰 죄인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군 했다. 이로 보아 그는 눈앞의 이익과 명예만을 위해 일하는 일부 다른 감독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올시즌 중반부터 고훈 감독은 팀의 중견인 황동춘 대신 오영군을 자추 출전시키군 했다. 그러자 당시 축구팬들은 “오영군한테 무슨 싹수가 보이는가?”, “고훈 감독이 오영군을 각별히 고와하는 모양이다” 라며 그의 인격과 전술사상까지 의심했다. 허나 후일 오영군의 출전차수가 잦아짐에 따라 축구팬들은 이 신진의 유망정도와 고훈 감독의 뜻을 보아내게 됐다. 그외 블라이마를 대체한 고수춘의 기용, 졸라와 학위동을 대체한 유봉과 남호의 기용 등은 모두 “샤커”소리까지 들으면서 떠올린 고훈 감독이 대담한 시도였다. 과학적인 신진기용법 신진양성이 중요한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하루 아침 사이에 신로교체를 완수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길림오동팀의 난제였다. 신진기용 방법상 길림오동팀은 매 훈련 및 경기 단계를 거쳐 신진을 고찰한 후 선수 차이를 두고 신진기용 시간을 정하군 했다. 고훈 감독이 작성한 선수서류를 펼쳐보면 거기엔 선수마다의 슈팅능력, 헤딩술, 공통제력과 경기의식 등이 점수제로 기록돼있는가 하면 그 선수들의 특점 예하면 정동칠은 득점챤스 잡기에 능하고 왕광위는 순발력과 원거리슈팅 능력이 강하며 오영군은 수비와 공격에서의 종합적 재질이 보이고 유봉은 이악스럽고 발과 몸돌림이 빠른 등으로 나열돼 있다. 고훈 감독은 이에 기초하여 상대방 실력과 결부하면서 매 한차례의 경기방안을 짰고 경기흐름에 따라 부단한 전술변화도 일으키군 했다. 그 사례로 올 4월 1일, 대 천진태달전시 경기종료를 앞두고 교체해 들어간 정동칠이 넣은 동점골, 그 후에 있은 대 사천전흥팀전과 대 요녕팀전에서 넣은 왕광위의 원거리슈팅과 프리킥의 성공도 다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 고훈감독은 팀과 선수 매개인의 전도를 한고리로 삼고 틀어쥐였다. 곡식을 키우자면 제때에 북을 돋구고물과 비료를 주면서 김도 매고 해야 하듯이 그는 매 선수한테 모두 기회를 주고 싹수가 보이면 제때에 기용해야 한다고 인정, 특히 한 선수가 부진을 겪거나 그에 대등한 선수가 나타났을 때 이에 따르는 예비발굴과 위치바꿈이 필요했는데 올들어 왕광위의 위치를 앞으로 옮기고 문광혁을 수비선에 배치한건 모두 그런 범주에 속했다. 엄한 관리와 솔선수범 길림오동팀에 있어서 생활관리 또한 훈련이나 경기보다 못하지 않은 중요한 고리이다. 목하 축구선수의 사회적 위치가 급상승함에 따라 그들의 주위에는 이성팬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모이기 마련, 이는 일종 좋은 현상인 반면에 선수 자신과 전반 팀을 해치는 역작용을 할 가능성도 큰 법이다. 이에 대비해 팀에서는 엄한 규장제도를 세움과 동시에 사업, 이상, 도덕에 관한 인생관교양을 강화하였다. 예하면 공중장소에서의 언행, 몸관리에서의 삼가할 점, 훌륭한 애정관 수립 등으로 말이다. 동시에 규장제도 집행상황은 추호의 여지도 없었다. 한번은 진강 선수가 몰래 맥주를 마시다가 고훈 감독한테 들통나 호된 비판을 받고도 2주일간 매일 모아산까지 왕복으로 뛰는 처벌까지 당했다. 또한 선수들이 말미를 얻지 않아도, 식사 및 취침 시간을 어겨도, 특히 정한 양의 음식을 낭비해도 그에 해당한 처벌을 면치 못했는바 모든 스케쥴이 일절 군사화되었다. 한편 이 모든 것은 감독의 솔선수범이 필요했다. 고훈 감독은 워낙 친구가 많은데다 주량도 큰 사나이었다. 하지만 감독직을 맡은 후 술좌석 친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술을 절제했고 될 수 있는한 자기의 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께 숙식을 하면서 외출과 외박은 극력 삼가했다. 또한 취재접수시나 공중장소에 나설 때면 항상 옷차림부터 언행에 이르기까지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자기의 모든 소행이 전반 팀의 형상과 연관된다는 것을 시시각각 념두에 두었다. 따라서 그외의 감독진 성원과 선수들도 자연히 자기의 직업도덕을 두고 항상 유의, 오동팀 상하의 이런 행동은 팀의 형상수립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놀게 했다. 그리고 최근 몇년래 오동팀 선수들한테는 마약투여나, 이성과의 스캔들은 물론 흐지부지 술에 취하는 선수도 없었으며 모두가 내지의 다른 팀 선수들에 비하면 아주 순결하다는 평가를 받군 했다. 이는 그닥 체계적인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된 집단이라 할 때 생활도덕 규범상의 일대 변혁이며 프로축구팀 관리에서의 귀중한 경험축적이 아닐 수 없다. 《연변일보》 1999년 11월 29일 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인간 고훈과 그의 정감세계 1999년 시즌에 고훈 감독이 이끄는 길림오동팀은 “거물사냥군”으로, 중국축구의 갑A무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킴과 아울러 사상 처음으로 축구협회컵 4강에 진출했으며 소장파 감독인 고훈 역시 두번이나 국내 권위성이 있는 스포츠 전문지에서 선정한 최우수 감독으로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듯 일련의 자랑찬 성과앞에서 고훈 감독은 오히려 더욱 차분한 모습이다. 그는 오동팀과 자기의 모든 것이 성공과 실패가 동반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한쪽에만 매달리다 보니 다른 한쪽은 늘 부끄럽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것이었다고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인간의 삶이란 사업과 가정이 항상 병존되기 마련, 하지만 일절 가정의 모든 것을 포기한채 축구에만 신경써온 인간 고훈의 삶 – 다른건 다 제쳐 놓고라도 그는 적어도 아들 학파한테만은 합격된 아빠가 되지 못했다고 자탄했다. 일찍 1998년 시즌이 끝난 뒤 고훈은 가정에서의 자기의 의무에 충실히 잘해 보려고도 했다. 헌데 그 해에 겨우 강등을 면한 오동팀, 그는 어깨위의 중임을 가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동팀을 갑 A 에서 떨어지지 않고 굳건히 생존하게 이끌자면 당분간 계속 가정이나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8년 시즌이 끝나자 미처 피로도 채 풀기도 전인 20여일만에 팀을 거느리고 동계훈련에 들어갔고 동분서주하며 외적선수 고찰도 했으며 남먼저 조경훈련기지로 진주하여 팀 전체가 1차적으로 체능시험에 통과되게 했다. 결과 길림오동팀은 1999년 시즌이 시작되자 첫 스타트를 멋지게 떼여 연속 무패행진을 할 수가 있었다. 팀이란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 시즌 제5라운드와 제6라운드에서 길림오동팀은 남한테 허점을 잡혀 산동노능과 중경융흠과의 대결에서 참패를 당했다. 헌데 그 때인즉 상해의 여동생한테 가있던 아들 학파가 사연에 의해 거기에 더는 있을 수 없게 됐다. 이는 아버지인 고훈으로 하여금 무척 골치가 아프게 했다. 이런 일은 워낙 아빠인 고훈이 직접 나서서 처사해야 했다. 하지만 2연패의 후유증으로 전반 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판에 개인의 일 때문에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 고성희한테 재차 부탁할 수밖(후에 녀동생이 학파를 책임지고 북경에 전탁시켰음)에 없었다. 후에 길림오동팀은 과연 존엄과 사기를 되찾고 대 사천전흥팀전과 대 북경국안팀전 그리고 대 요녕팀전에서 2승 1무로 “거물사냥군”의 본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가령 감독인 고훈이 개인정감에만 빠졌더라면 오동팀의 경기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한편 고훈도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었던만큼 불안과 동요가 생길 때도 가끔씩 있었다. 지난해 시즌의 제10라운드 대 심수평안팀전이 있은 후 고훈은 처음으로 사직의 뜻을 내비쳤다. 그 때 그는 확실히 지쳐 있었으며 자기의 능력에 대해서도 어딘가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훌륭한 감독이 되지 못할 바엔 훌륭한 아빠라도 돼보자는 것이 그 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 고훈은 팀이 역경에 처할수록 그것을 회피하려 한다면 그것은 가장 비겁한 행위라고 인정했다. 물론 고훈도 자기보다 더 훌륭한 감독적임자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하학”할 담력과 준비가 돼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직적으로 제기되고 논의돼야 하며 적어도 팀의 사기나 안정을 되찾아준 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그 후에도 수차 있었다. 특히 축구협회컵 대 산동노능과의 준결승, 제2회합 경기는 길림오동팀한테 있어서 1965년 이래 재차 전국급 경기에서 우승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헌데 애써 준비했던 경기에서 최후 연장전에서의 경기종료 2분을 앞두고 상대방한테 동점골을 허락해 홈장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면 원정팀이 이긴걸로 한다는 축구협회의 규정에 의해 결승권을 상대방한테 넘겨줄 때 고훈은 형언할수 없는 아픔이 온몸으로 하여금 전률케 했다. (주: 그해에 산동노능팀은 과연 중국축구협회컵의 우승보좌에 올랐음) 축구인 생애에 전국우승을 할 기회가 과연 몇번이나 있단 말인가! 이날 밤 고훈은 수년간 입에 대지도 않던 술병을 꺼내들었다. 안주도 없이 위스키의 병뚜껑을 연 그는 그대로 입에 대고는 꿀꺽꿀꺽 굽까지 바닥이 나게 깡그리 마셔버렸다. 그러나 선수들을 원망하거나 질책할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실력차이가 엄연한 경기에서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으니 말이다. 반대로 산동노능팀이란 우승후보도 별 것이 아니라는데서 얼마간의 희열도 맛봤고 자신심도 생겼다. 지난해 12월 25일 새천년을 일주일 앞두고 광동성 조경의 훈련기지로 향하는 고훈은 또다시 시간의 긴박감을 느꼈다. 외국인감독이 쓸어 들어오는 중국축구계의 현실, 고훈은 또다시 신들메를 조이고 여느 감독보다도 더 생각하고 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부모님을 잘 모시고 아들 학파한테 관심을 보다 더 돌리고… 하지만 고훈의 이러한 가정사업계획은 또 한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연변일보》 2000년 1월 24일 축구인의 재도약 꿈꾸며 오동팀 전임감독 고훈 축구왕국 브라질로 향발 10일, 길림오동팀의 전임감독 고훈씨가 드디어 축구인생에서의 재충전을 목적으로 연길을 떠나 축구왕국 브라질로 향발했다. 일찍 “이 내 남아의 한생을 축구에 바치리라”고 굳은 결심을 다져왔던 고훈씨, 다년간 오동팀과 함께 중국 축구무대에서 남정북전하면서 축구에 혼신을 쏟았고 최은택 교수의 뒤를 이어 재차 오동선풍의 “계렬브랜드”인 “거물사냥군” – 오동팀을 지휘했던 고훈씨이다. 하지만 세상의 풍운조화란 예측키 어려운 것, 새천년 시즌초기 오동팀이 겪은 부진은 끝내 억대우같은 사나이었던 고훈씨로 하여금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했고 병상에서 몸부림치게 했다. 인생의 갈림길 – 축구냐,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냐 하는 선택 중에서 고훈씨가 골라잡은 것은 그래도 축구였다. 그만큰 그의 인생은 축구와 끈끈한 인연을 맺았고 더는 떨어질 수가 없었다. “한국의 352전법이 중국에서 큰 소리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을 포함한 전반 아시아 축구가 기술축구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축구인으로서의 나는 아직 젊고 더 배워야 하며 연변축구계에 새로운 축구사상을 주입시킬 사명감이 있다. 이는 어려운줄 알면서도 끝까지 브라질고찰연수를 선택하고 고집한 이유이다.” 이번에 고훈씨를 초청한 브라질측은 상파울루 이로만축구클럽이다. 고훈씨에 따르면 이 축구클럽은 브라질내에서 실력있는 축구팀이 있는 외 감독대오와 모든 훈련 및 경기 시설이 비교적 완벽한바 고찰과 연수에 대단히 유리할 것이라 한다. 또한 브라질의 기후상황으로 보아 축구운동을 펼침에 있어서 지금부터가 가장 좋은 계절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브라질행을 위해 고훈씨는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지난 8월부터 출국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여건이 풀리지 않아 북경에만도 8차 다녀왔다. “순 자비로 출국연수를 떠나는 이는 중국축구계에서 아마 내가 첫 사람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조금도 후회같은 건 하지 않는다. 축구감독한테 있어서 성공과 실패만이 있다고 할 때 성공하는 비결이란 오직 부단히 배우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훈씨의 브라질연수기간은 약 1년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연수를 계기로 고훈씨가 재차 중국축구계에 새로운 돌풍을 말아올릴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연변일보》 2000년 11월 13일 70일 - 축구왕국 브라질에서 원 오동팀 감독 고훈씨의 해외축구견문기 조선족축구인 고훈씨가 해외축구연수를 마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 약 1년간을 목적으로 브라질연수행을 떠난 고훈씨였으나 브라질내에서의 프로 1부 경기의 결속, 국내에서의 처리해야 할 몇몇 사항 등으로 하여 원 계획보다 크게 앞당겨 귀국했다. 비록 70여일이란 짧디 짧은 해외연수였건만 그 70여일 사이 그가 보고 느낀 세계축구조류와 브라질의 축구분위기 – 고훈이 받은 감수는 실로 대단히 컸다 장시간의 비행끝에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에 여장을 푼 이튿날부터 고훈씨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개최한 축구고급감독 강습반에 참가, 강사들로는 국제축구연맹에서 파견한 고급강사와 브라질 본토의 유명한 축구감독 10여명이 됐다. 강습내용은 경기에서의 기전술구사, 후비력 양성에서의 인재발견 및 기둥선수양성 등이었다. 강습반에서 고훈은 기전술구사에 대한 강의도 의미심장하게 들었지만 후비력양성에 대한 주요 환절과 세계축구의 흐름세에 대해 그 마디 마디를 빼놓지 않고 귀담아 들으면서 그 전부를 상세하게 필기를 하기도 했다. 강습심도가 깊어짐에 따라 고훈씨는 연변의 후비력양성수단과 그 방법 및 그 환경에 대해 재반성해보게 됐다. 남들이 다 한다는 후비력양성절차, 연변축구는 왜 청소년시기에 우쭐하다가 성년기에 와서는 남한테 뒤지는가? 외국의 선진축구가 연변에서는 어느 정도 실행되고 있으며 아직 존재하는 치명적인 허점은 무엇인가 하는것 등등이었다. 강습반이 끝나자 고훈씨는 브라질에서 유명한 축구클럽들인 싼토스클럽, 상파울루클럽, 포르투갈클럽, 고린챠스클럽 등을 돌면서 브라질의 축구환경, 클럽경영 및 프로선수들의 직업자질 등을 고찰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축구클럽은 1선팀 외 2선팀과 3선팀까지 보통 있었는데 그런 팀들에서 1선팀에 정품선수를 수송하는 것은 중국과 대체로 비슷했다. 그리고 비교적 큰 축구클럽들은 일반적으로 홈경기장 1개, 5 - 6개의 훈련장과 80-90명의 선수대오를 갖고 있는 상황, 1선팀 즉 프로 1부(중국의 갑급팀에 해당)의 선수로 되자면 만명당 1명꼴로 겨우 성공할 수 있었으며 그 경쟁이 치열하기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 없었다. 특히 펠레, 리와우도 등 세계급 정상스타를 산출해낸 싼토스클럽은 그 경제력이나 감독진영 및 선수대오가 아주 막강하여 브라질 내의 프로선수 거의 모두가 이 클럽에서 선수로 뛰어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선수자질은 우리 중국과는 천양지차를 보였다. 사회치안이 비교적 어지러운 브라질 환경에 비해 프로선수들의 문명의식과 직업도덕수준 대단히 높았다. 훈련시간만 되면 모두 절로 옷을 바꿔입고 훈련하는 모습, 감독이 지켜보건 말건 마찬가지었고 강요나 책벌을 당하는 선수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고훈은 진짜 차원이 높은 구단일수록 감독의 선수관리가 쉽다는 것을 절감, 그도 그럴 것이 고훈이 본 브라질 축구클럽의 감독들 거개가 선수들한테 훈련내용이거나 전술포치에 대해 한번 말해주면 감독으로서는 그 것으로 끝이었고 그 다음은 선수들 자신이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었다. 다음 프로축구경기의 열광 정도는 우리 중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화끈한 분위기었다. 축구라 하면 우선 정부차원의 중시부터가 컸다. 매번 국제경기나 프로 1부의 8강전같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정부에서 이 날을 휴일로 정하고 모두가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농후한 축구분위기는 경기장뿐이 아니었다. 도시의 건물과 길옆의 공터만 있어도 거기에서 공차기를 하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었고 휴일이면 직장끼리, 가족끼리 야외에서 축구유희를 했으며 동료 5-6명만 모여도 축구게임이 조직되군 했다. 한편 열광적인 축구분위기와는 달리 브라질의 사회치안은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비교적 어지러웠다. 한번은 고훈씨가 당지 축구인들과 함께 상파울루 해변가에서 산책을 하는데 불현듯 흑인장정 3명이 나타나 권총을 들이대며 돈을 내라고 협박, 너무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 고훈씨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돈지갑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내놓았었다. 액수가 꽤나 되는 금액이었다. 후에 숙소에 돌아와서 동료들한테 물어보니 그들의 말인즉 외출할 때면 남한테 줄 돈을 얼마간은 쉽게 꺼낼 수 있는 호주머니에 넣으며 다른 돈 역시 몸의 여러 곳에 감추고 다녀야 한다면서 강도를 만나면 적은 돈이나마 꼭 줘야 안전하다는 것을 들려주더라는 것이었다. 고훈씨의 브라질연수는 생각밖으로 빨리 끝났다. 약 70일간이 지나니 브라질 내의 1부리그가 끝나고 축구경기가 별로 없는데다 그냥 관광이나 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래서 고훈씨는 아마죤강 등 유명관광지나 돌아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도 마다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고훈씨가 북경 수도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연길행 비행기에 오르자 마침 음력설을 쇠려고 고향 연변으로 향하는 절강녹성팀의 현춘호, 김청, 천학봉 등 10명의 조선족선수들이 비행기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순간 고훈씨의 감정은 희와 비의 회포가 주마등마냥 흘러지나갔다. 타관땅으로 팔려간 뒤 그래도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있어 연변으로 향하는 선수들, 고훈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슬그머니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연변일보》 2001년 2월 12일 (다음기 계속)
    • 스포츠
    2015-02-18
  • [2015 그라나다동계U대회] 한국, 러시아에 이어 종합 2위 달성
    [동포투데이] 제27회 그라나다동계U대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선수단(남상남 선수단장)은 빙상 쇼트트랙에서 강세를 보이고 프리스타일 모굴,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에서 입상하는 등 빙상과 설상종목의 분전에 힘입어 종합 2위로 대회 참가를 공식 마무리했다. 남상남 단장(대한체육회 이사 및 한양대 교수)이 이끄는 한국선수단은 13일 개최된 빙상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2개(남여 1,000m), 은메달 3개(남여 1,000m 및 여자 3,000mR), 동메달 1개(여자 1,000m)의 무더기 메달을 쏟아내 금 5개, 은 9개, 동 2개로 모두 16개의 메달을 따내 러시아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이에 앞서 한국선수단은 빙상 쇼트트랙에서 금 3개(남여 1,500m 및 여자 500M), 은 4개(남여 1,500m 및 남녀 500m) 등 모두 7개의 메달을 따냈고 스키 프리스타일 모굴에서 서지원 선수가 3위,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최보근 선수가 2위,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에서 김광진 선수가 2위를 차지해 이번 대회 설상종목에서 3개의 메달을 따냈다. 스키, 컬링, 아이스하키, 바이애슬론에서 고른 활약을 보인 러시아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 이어 2015 그라나다 동계U대회에서도 금 19, 은 17, 동 17개로 압도적 우위를 보인 끝에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선수단은 현지시간 14일 17시30분(한국시간 15일 01시 30분) 그라나다 스포츠 팰리스에서 개최된 폐회식에 참석한 후 곧바로 귀국길에 올라 16일 08시20분(한국시간, AF264편)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한국선수단은 이번 대회 참가를 통해 동계스포츠의 최강인 러시아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한 것 외에 내용 면에서도 큰 성과와 함께 3년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대비하여 경기력 향상 가능성을 확인한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설상종목인 스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과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에서 2위에 입상하고 프리스타일 모굴에서 3위에 입상한 것을 비롯하여 스키모굴의 서정화 선수와 김지헌 선수가 4위에 올랐고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의 이상호 선수도 4위에 오르는 등 스키 프리스타일과 스노보드에서 우리 선수들이 세계수준의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보여 우리나라 설상스포츠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였다. 또한 김아랑 선수 등 5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포함되긴 했지만 대학선수 및 대학을 갓 졸업한 선수들로 구성된 쇼트트랙 선수들도 이번 대회 8개 세부종목 중 5개 종목을 석권하여 향후 동계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한국 쇼트트랙의 강세를 이어나갈 저변을 확인했다. 이밖에도 이번 대회에서 아이스하키는 스웨덴과 대등한 결기를 벌였고 스페인을 물리치고 8강에 올랐으며 대회기간 중 러시아, 체고, 미국, 일본 등 세계 정상권의 국가들과 실전 경기를 가져 경기력 향상을 위한 귀중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컬링도 세계수준의 국가들과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친 끝에 5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 2. 3일부터 슬로바키아와 스페인 두 곳에서 분산 개최된 제27회 그라나다 동계U대회에 한국은 빙상 쇼트트랙, 스키, 바이애슬론, 컬링, 아이스하키 5종목에 선수 89명, 임원 42명 등 모두 131명의 선수단을 구성하여 참가했다.
    • 스포츠
    2015-02-15
  • [연변FC] “천재일우”의 기회, “동산재기”의 청신호
    ■ 김철균 연변대지에 봄이 서서히 다가서고 있다. 단지 자연계의 봄만이 아닌 연변축구에도 “새봄”이 오는 것 같다. 바로 연변천양천팀의 갑급권 복귀가 연변축구의 “새봄”인 것이 아닐까? 지난해 연변천양천팀이 갑급에서 강등한 것이 너무나도 억울하여 세상은 돌고 돌아 연변팀한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준 것 같다. 연변축구ㅡ 돌이켜보면 이렇쿵 저렇쿵 할 얘기들이 많고도 많다. 어떻게 보면 조선인들이 쪽박 차고 두만강을 건너왔을 때부터 당시 청국(清国)이라 불렸던 이 땅에는 축구란 것이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한민족(韩民族)을 놓고 너무 한(恨)이 많아 한민족이 됐다며 농담삼아 말했다 한다. 당시에도 아마 그러했던가 싶다. 한(恨)이 많아 그 걸 해소할 곳을 찾다가 축구란 놀이가 생기자 발끝에 힘을 주어 어금이빨을 옥물면서 공을 찼다는 설도 있다. 그러던 연변축구가 지난 세기 20년대에 들어서는 다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무쇠골격 돌근육 소년남아야/ 황황한 대한넋 발휘하여라// 다달았네 다달았네 우리 나라에/ 소년의 활동시대 다달았네// 반일대적 연습하세 후일 공훈 세우세/ 절세영웅 대사업이 우리 목적 아니더냐… 이 때의 연변축구는 반일이 목적이였다. 지금 국가간의 축구경기를 놓고 볼 때 한국대표팀은 일본대표팀한테만은 질 수 없다는 굴강함이 알게 모르게 나타나군 한다. 이는 아마도 지난 세기 20~30년대부터 조선인들한테 형성된 일종의 민족적 오기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만주국축구대회와 일만(日满)축구경기에서 늘 간도성축구팀이 우승을 차지, 이 중 일만축구경기시에는 일본이 형편없이 패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찰이 권총을 쥐고 심판을 봤다는 설도 있었다. 중국의 현대축구에 “헤이소(黑哨)”라는 것이 있었다면 당시의 축구경기장에는 “권총심판”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연변축구 ㅡ 연변축구는 “8.15” 광복과 더불어 비로서 조선민족축구로서의 기틀을 잡고 볕을 보게 시작, 1949년 공화국의 창립되면서부터는 광활한 중국대지를 주름잡으며 조선민족축구의 위력을 떨치기도 했다. 1952년 상해에서 있는 전국축구선수권에서 준우승, 1957년 길림성 전업축구팀(연변조선족 위주)의 고고성, 1965년 중국축구 갑급리그(1부 리그)에서의 우승고지 점령…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연변축구는 몇차례의 큰 좌절을 겪기도 했다. 가장 큰 재난은 “문화대혁명”이었다. 당시 “우승신화”를 엮었던 공신들이 모두 농촌과 공장으로 쫓겨갔다. 이들 중 훈춘시 어느 한족부락으로 하향했던 이광수 선생은 연변대학 체육학부로 올라오기까지 거의 10년이란 세월을 농촌에서 땅과 씨름해야 했다. 문화대혁명의 10년, 이는 연변조선족 축구인들한테 있어서도 힘들고 가슴아픈 10년이였다. 그리고 연변축구가 중국의 1부리그 갑급권(지금의 슈퍼리그)에 복귀하여 입지를 굳히기까지 거의 30년(1994년)이란 노력의 과정을 거쳤다. 그 뒤엔 또 경제상의 어려움으로 2000년엔 강등되어 타성에 선수진 전체가 매각되는 재난을 겪었고 다시 2004년에 갑급권에 복귀했다가 2014년에 재강등하는 등을 번복했다. 지난해 우리 연변축구는 다년간에 거쳐 누적되며 “곪고 곪아 오던 것”이 끝내 성적부진, 선수들의 사기저락, 단조로운 감독의 기전술 등이 강등이란 현실로 노출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꼭 나쁜 효과를 나타낸 것만은 아니었다. 피고름을 짜내고 심장이 마르는듯한 고통과 뼈저리는 교훈앞에서 연변의 축구인들은 정신을 차리었다. 연변축구가 지난 세기 50~60연대처럼 중국축구무대를 쥐락펴락하던 시대는 진작 역사로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였고 구단운영시스템이 내지의 규범화된 구단에 비해 떨어져도 한참은 떨어졌다는 것과 또한 본토감독들의 기전술운영술도 재삼 검토해봐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도록 하였다. 연변의 축구인들은 “산전진통)과 비슷한 몸부림속에서 연변축구의 현유페단을 진단했고 향후 진로를 모색하였다. 또한 국가 및 성 해당부문의 어르신들도 연변축구가 천애절벽 낭떨어지에 추락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다. 지난해 말 국가체육총국 유붕(刘鹏) 국장이 동북광야의 강추위도 무릎쓰고 연변을 찾아 연변축구를 부활시킬 대책을 강구하면서 많은 관심을 보이었고 성과 주의 지도일군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연변축구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리기도 하였다. 희소식은 연속 뒤를 따랐다. 침체되어 있던 연변 장백산천양천팀에 “기적”이 나타났다. 이는 필경 흔하지 않은 중국축구계에서의 “기적”이었다. 지난 1월부터 연변구단의 갑급복귀설이 솔솔 우리의 귀를 즐겁게 “희롱”하더니 드디어 그것이 현실로 되었다. 말그대로 “하느님”이 연변구단에 하사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었고 “동산재기”의 청신호였다… 올해 연변구단은 일찍2007년부터 2011까지 한국국가축구대표팀의 수석코치었던 박태하 감독이 사령탑을 맡게 되었다. 쟁쟁한 경력의 소유자 박태하 감독이다. 올해는 양띠해다. 필자는 “사자가 이끄는 양떼는 사자무리로 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써왔다. 한국대표팀을 맡았던 히딩크가 그랬는가 하면 연변팀을 맡았던 최은택과 고훈이 그랬다. 100%는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그랬다. 하다면 호랑이가 이끄는 양떼 역시 호랑이무리로 될 수 있다는 말로 정리된다. “호랑이가 이끄는 호랑이무리”ㅡ 참 그럴듯한 표현이다. 2015년 중국갑급시즌에서의 연변팀이 명실에 부합되는 “호랑이구단”으로 군림하기를 기대해본다.
    • 스포츠
    201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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