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중국조선족축구원로시리즈(3) 벅차던 축구선수의 나날에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중국조선족축구원로시리즈(3) 벅차던 축구선수의 나날에

그제날 길림성 축구팀의 “제비”- 동경춘편
기사입력 2014.03.21 09: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dspdaily_com_20140321_095447.jpg

[동포투데이 연변 리포터 김철균] “축구란 체능, 기술과 정신력을 토대로 하는 종합스포츠이다. 또한 하나의 축구팀한테 있어서 총체적 배합도 중요하겠지만 속도가 빠르고 돌파능력이 강하며 슈팅성공율이 높은 스트라이커를 육성해 내는 것도 자못 중요한 고리이다.”


이는 지난 50-60년대 중국축구무대에서 “제비”라 소문놨던 길림성축구팀 동경춘 원로의 축구운동에 대한 일가견이다.


1937년 왕청현 쌍하촌 태생인 동경춘은 체력이 왕성하고 한번 뛴다고 하면 군마를 탄 일본헌병마저도 붙잡지 못했다고 하는 할아버지 (동경춘 원로의 할아버지가 뛴다고 하면 한번에 밭고랑 세고랑씩 건너 뛰었다는 설도 있었음)를 닮아서인지 어릴 적부터 축구, 농구, 스피드 스케이팅, 육상 등 체육운동을 몹시 즐겼는데 그 중 제일 큰 장끼는 그래도 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그의 속도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늘 어머니의 심씨와 동네 어른들의 총애를 받음과 더불어 자주 어른들이 치르는 축구경기에도 선수로 뽑히군 했다. 


동경춘의 속도는 1952년 길림시에서 있은 전 성 중학교육상경기대회에서 재능이 과시됐다. 100미터를 11초 06(후에 11초 03이 절정이었음)에 달렸다. 그리고 만메터경주에서도 5등을 하여 내력이 강함도 보여줬다.


동경춘의 이런 장끼는 선후로 있은 성, 주와 국가급 축구경기에서는 물론 1957년 길림성 축구팀에 가입해서부터 더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시기 동경춘은 키가 고작 1.65미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그가 공을 몰고 달린다 하면 상대방 선수들은 따를 수가 없어 혀를 내두르기가 일쑤였고 경기장 아나운서도 늘 길림성팀의 키가 작고 고수머리인 동경춘에 대해 일장소개를 늘어놓군 했다. 그래서인가. 허느 한번 길림성팀이 경기를 관람하고 난 국가체육운동위원회 주임이었던 하룡원수는 동경춘한테 “모터찌클”이란 별호를 달아주었으며 당시의 축구팬들 또한 그를 길림성팀의 “제비”라고 정답게 불러주군 했다.


동경춘이 이렇게 불이우게 된데는 물론 천성적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속도장끼”가 작용한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 훈련양을 견지하고 소화해 낸 그 정신력의 결실이라고 함이 더 지당할 것 같다. 당시 길림성팀의 많은 선수들은 매일 3 - 4시간씩 되는 집단훈련외에도 늘 시간을 이용하여 산길달리기를 견지, 그야말로 흐르는 땀이 염분으로 되어 몸에 하얗게 내돋기가 일쑤였다. 하긴 그 시기엔 누구 하나 돈을 보고 고생을 사서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당과 인민이 선수로 되게 한 영예와 집에서 고생하는 아내 때문에 모두가 하나같이 경기에서 정신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연고로 동경춘은 해마다 체능시험 때면 1등으로 뽑히워 인민일보, 해방군보, 광명일보 등 많은 보도매체들에서도 앞다투어 그의 사적을 대서특필하군 했다.


1965년은 동경춘의 축구생애에 있어서의 전성기라 할 수 있었다. 그 해에 길림성팀이 전국우승을 한 것과 더불어 그는 건장칭호를 받았고 간염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낙선됐지만 국가팀에서 가장 욕심을 내는 선수로 되기도 했다.


헌데 그가 계속 경기장에서 청춘을 빛낼 무렵 문화대혁명이 터지었다…


문화대혁명 후 동경춘 원로는 길림성 청년팀 감독, 연변 여자축구팀 감독, 연변 체육공작대 기술통계원 등 사업에 종사하면서 후대양성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그중엔 당년에 길림 오동팀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광주, 고종훈, 이광호, 황동춘, 김영수, 장경화 등도 망라됐다. 또한 동경춘 원로 역시 1967년에 국가 고급감독증서를 수여받았고 선후로 “중외 축구명인 사전”, “중국 체육인재 사전”, “중국 전문가 사전” 등 명인록에도 수차 수록됐었다.


한편 동경춘 원로는 선수생애가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늘 연변축구에 대해 관심하고 있는 몸이다.


“연변팀이 아무리 시골팀이라지만 정신력은 옛날과 변함이 없으며 핵심인 많은 새로운 스타들이 속출돼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축구무대에서 생존하는 비결이 아닌가 본다.”


그러면서 그는 한개 축구팀이라 할 때 우수한 스트라이커 1 - 2명은 꼭 있어야 하는바 연변팀도 이런 기둥선수양성에 보다 진력했으면 하는 마음도 털어놓았다.

<저작권자ⓒ동포투데이 & 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