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사용되였는데 어느 결엔가 사람들이 쓰지 않게 되면서 사라지는 말들이 있다. 지난세기 50년대까지만 해도 나무배를 뜻하는 재비라는 말이 두만강 연안에서 허다히 사용되어 왔었고 모래톱을 의미하는 복새섬이라는 말도 넘치도록 흔하게 썼던 낱말인데 오늘날에 와서 이런 어휘들은 마치 근대 이전 아득하게 먼 옛날에 썼던 고어처럼 느껴진다.
역사적인 사실은 때로 당황스럽다. 이름을 가진 것이 이름 없는 것이 되어 우리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사라지고 이름이 없어야 할 것이 이름을 가진 것으로 되어 우리 역사의 길목에 나와 앉아있다. 두만강 유역의 지명 이름들을 살펴보면 원래 재비탄과 복새섬으로 불리어졌던 땅 이름들도 오늘날에 와서는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지명으로 사라졌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개산툰 선구 지명은 원래 나루터 의미를 지닌 재비탄을 한자로 옮긴 이름이고 사이섬이라고 불리는 간도도 복새섬이라는 이름에서 기원된 땅이름이다. 그리고 두만강 연안에 자리잡은 화룡시 남평 길지마을 지명도 복새섬에서 기원되는데 최초에는 복사평伏沙坪 표기되였다기 질땅을 뜻하는 길지마을과 통합하면서 풍수색채가 짙은 길지吉地라는 지명으로 불리어 지게 되었다. 화룡시 숭선 지명도 이주 최기에 복사평腹沙坪으로 새기였으나 나중에 숭선으로 지명이 굳어진다. 훈춘 두만강 연안 구사평九沙坪마을과 도문시 복새골 지명도 같은 사례이다.
연변 지명들은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이 만든 지명이 그대로 이전된 것이 많다. 과거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자라 불리어진 지명이라고 복새섬을 엉뚱하게 풀이한 글들을 우리는 요즘에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복새섬 복새밭 복새땅이라고 부르는 복새覆沙라는 말은 섬이나 강 연안에 위치해 있다가 강물이 범람하여 모래가 뒤덮인 땅를 가리키는데 과거에는 밭 세금이 면제되어 왔었다.
유유히 흐르는 세월 속에서 두만강 푸른 물은 수많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오랜 세월 두고 개산툰 평야를 무법으로 훑고 지난 간 옛터들은 폐허로 만들고 아픈 과거를 흔적 없이 지워놓았다. 과거에 두만강은 지배굽이로부터 노째굽이에 이르기까지 두 갈래 물줄기로 갈라지어 흘렸고 그 사이에 커다란 복새섬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선구 지명을 두고 사람들은 이 마을이 “처음 배를 들이댄 곳”이라고 해서 배 선(船) 자에 입 구(口)자를 달아서 “선구(船口)”라고 불렀다고 전하고 있지만 사실상 재비탄이란 말을 먼저 있었고 그후 줄촨이 놓여지고 한자로 선구라고 작명한 것으로서 나중에 마을의 지명으로 고착되였던 것이다.
재난과 가난이 먹장구름처럼 드리워 캄캄했던 그 옛날 강대 세력들의 다툼으로 난리가 났을 때 백성들은 험난한 삶에 쫓기어 두만강 강가에까지 밀려났다. 그때 백성들에게 등대처럼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이 바로 두만강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복새섬과 재비탄들이였다.
그 옛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두만강연안에서 군데군데 화전 밭을 일구어 가며 새 삶을 일구어야만 했던 민초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 두만강 강가에 자리 잡은 복새섬 곳곳에 고스란히 묻혀있다. 그리고 그 모래땅에서 수확한 감자 동배 (콩의 일종) 메싹 그리고 백사장에서 알을 쓸던 얘리(두망강 물고기 일종)로 차려진 밥상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으며 복새섬은 세상에 둘도 없는 무릉도원이 되여 왔다.
해와 달을 거듭하면서 민초들은 두만강 복새섬을 기점으로 하나 둘씩 연변 땅에로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두만강의 크고 작은 수많은 복새섬에서 시작한 연변 땅에로 얼기설기 실핏줄처럼 뻗어나간 오솔길들은 온갖 가시덤불속을 헤쳐 나아가 마침내 수백만 백성들의 이주경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빈손으로 고향을 버렸지만 그들에게는 세세대대로 물려받은 작물 재배 기술이 있었고 오랜 세월동안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한 태고의 언어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에 와서 연변역사 전체를 바꾸어 놓게 된 것은 그들의 막강한 경제적 실력과 정치적 세력을 지녔기 때문에가 아니라 방대한 대륙문화를 받아들이는 포용적인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변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힘은 우리 선인들이 놀랄 만큼 타자의 문화를 수용하여 새로운 사회공간을 확장하는 뛰어난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변 역사는 거대한 유물 속에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삶의 조각들 그들이 써왔던 대뜨베(파종도구 일종) .가대기. 밀찌 (유읍방언 사읍방언에서 후걸이). 물독에 그려진 다양한 물고기 문양 . 지팡살이 땅문서와 계약서들. 마적에게 붙잡혀간 아들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허리춤에 감싸고 감싼 동전잎 등과같이 생생한 증언들이 도도히 흐르는 력사의 흐름 속에 복새섬처럼 쌓이고 쌓여 연변의 력사가 이루어 진 것이다.
“복새섬이 맛이 마이 갔수꾸마” 그 옛날 복새섬에서 새둥지도 들추고 늪에서 조개도 줍던 소년은 벌써 80고개를 바라보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무산광철에서 버린 철분 찌꺼기와 한때 건설 붐으로 포크레인이 모래를 파헤치어 버림받은 복새섬은 잡초가 무성하고 봄이면 하늘높이 솟아올라 우짖던 노질(유읍방언 종다리 일종 사읍방언에서 예조리)이 울음소리도 뜸하다. 한때 물자를 유통시키고 수천만 백성들의 이주의 길목에 발판을 깔아주었던 재비탄과 복새섬은 쇠락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지만 오늘날 강가에 부는 바람만은 여전하다. 다만 그 시기 바람은 연변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던 바람이었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두만강 강가에 서서 사라진 재비탄과 잡초 무성한 복새섬을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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