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선의용군’을 검색해보면 만주에서 싸우던 독립군 부대라고 버젓이 나온다. 해서 만주에서 조선의용군 혹은 조선 의용대가 싸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이 곧 조선독립군이고 만주에서 만들어진 조선독립군 백두산 독립군이나 만주 독립군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서 항일연군에도 가담하지 않았나 혹은 항일연군에 속하거나 관련된 거 아닌가 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 모처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건 맞으나 조선의용군은 1920년 좌우부터 진행된 만주의 독립운동 독립혁명 독립군 그리고 항일연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조선의용군은 1938년경에야 만들어졌으며 즉 급조한 것이며 광복이 될 때까지 300명 좌우였으며 게다가 대부분이 비전투원이었다. 조선의용군을 조선독립군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주의 조선 독립 세력은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1938년이면 김좌진이 가담한 청산리 전투도 끝난지 십수 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장소도 틀린다. 만주가 아니라 한구 즉 오늘의 중국 후베이성 무한시에서 의용군을 설립했다. 설립한 배경에는 장개석은 상하이에 있는 김구와 호흡이 맞았고 조선 독립을 돕고자 했으나 김원봉 같은 좌파랑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국공합작을 빌미로 김원봉 세력을 연안에 보냈는데 그게 조선의용군이다.
그 당시 동북의 항일연군에는 만주의 조선독립군 세력이 절반 넘어 포진해 있었으며 중국공산당의 입장으로 볼 때 조선인은 모두 한민족이고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였기에 김원봉의 조선의용군에 대해 접대를 잘해줬다. 1945년 항일 전쟁이 끝나자 항일연군에 속해있던 수만 명의(일설에 6개 사단 6만 명) 조선독립군과 화북 일대의 조선의용군이 조선 김일성 휘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정율성이라고 봐야겠다. 하여 모택동이나 중공의 입장에서는 조선인은 대단히 고마운 존재로 그것이 조선 의용대이든 만주 독립군이든 모두 동일시 하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학철에 대한 예우이다. 김학철은 나이를 보나 독립활동에 가담한 시기나 시간을 보나 항일연군과 다른 조선의용군에 비겨도 한참 떨어진다. 그러나 김학철이 중국에 왔던 시기는 중국에서 공을 세웠던 조선인들이 대거 조선반도로 회 괴하던 시기였으며 중국은 아직 그 감사함이 따뜻하게 몸에 배어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분대장에 불과한 김학철은 버젓이 모택동과도 이웃으로 잠깐 산 적이 있다.
그리고 해방 후 행정구역을 정할 때 원체 연변은 조선인의 공헌으로 볼 때 연변조선족 자치구로 해줄 수 있다는 게 중공의 공론이었지만 그 당시 주덕해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비교적 적은 조선족 인구와 지역을 감안하여 조선족 자치주로 하겠다고 겸손하게 결정하였으며 이것이 그 후 중공에서 조선족이라면 소수민족 중 최고로 취급하는 결정적 계기다.
말이 엇나갔지만 조선의용군은 만주 독립군 혁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원봉이 개인적으로 만주에는 자주 다녀갔지만 조선의용군은 한날한시라도 만주 땅을 디딘 적이 없었으며 전투나 혁명은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만주의 독립군이 조선의용군으로 버젓이 나오는데 이는 역사 왜곡이다. 만주의 독립군은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한 1912년경부터 중국과 조선의 접경지대인 백두산 약수동 근처에서 태동을 하였으며 1931년 만주가 일본의 손에 들어가자 일본 관동군을 상대하여 소탕당할 험악한 상황에 맞닥뜨려 일부는 소련 경내로 이동을 하였으며 대부분은 중공과 연합하여 항일연군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서 항일연군 중의 조선인이 곧 만주의 독립군 활동을 한 장본인이란 말이다.
조선 의용대는 그냥 조선인이라는 것 외에 활동 무대는 중국 화북 일대였으며 최고 인수가 300명에 그쳤다. 항일연군 중의 조선인은 나중에 조선에 들어간 것만 6만 명이다. 개중에 안 간 사람과 군인이 아니어서 못 간 사람(중국공산당 지하당원) 등을 포함한다면 만주 독립군 활동 세력은 십수만도 가능하다.
중국에서는 항일연군의 조선인 사적을 최대한 줄여 중공의 업적을 과시하는데 유리하므로...
이 세 세력은 조선족이라는 근대의 가장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적 업적을 가로채였으며 김원봉 같은 300명 부하를 거느린 하루라도 제대로 된 전투도 못해보고 테러분자 비스름한 행적을 기록한 사람에게 영광을 주었다.
누구를 탓하랴 우리 조선족 자신도 우리의 역사를 모르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설령 눈앞에 있다고 하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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