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2014년 새해 벽두가 암울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월 14일에는 강원도 홍천에서, 엊그제 1월 23일에는 경남 양산에서 결혼이주여성 아내를 살해하고, 가해 남편 역시 자살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짧은 삶을 마감한 두 베트남 여성의 명복을 빕니다. 두 여성 모두 20대 초반의 나이로 각 각 어린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삶을 일구어온 그들의 마지막이 이렇게 무참하게 끝난 것에 대하여 슬픔을 가눌 수 없습니다. 한국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미 지난 2012년 3월 강원도 정선에서 발생한 사건에 이은 이번 두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순적 국제결혼의 빚어낸 무참한 결과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남편의 폭력적 살인은 지속적으로 있었으며, 이는 국제결혼의 문제라기보다 아내구타라는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사건들은 가해 남편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가정폭력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인 무한경쟁질서가 삶의 구석구석에 뿌리 내린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개발도상국 여성들과 결혼한 남성들이 경쟁적 질서에서 낙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회적 낙오를 경험하는 남성들, 양극화로 인한 생존의 짐을 견디기 힘든 남성들이 ‘유일하게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 외국인 아내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상실당한 권위를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적 기재가 깔려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문제로 한국인 배우자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외국인 아내의 취약성을 담보로 하는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다문화가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한 편에서 외국인 아내 구타와 살해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급기야 가해자 본인의 자살로 폭력의 책임도 물을 수 없는 이런 현실이 존재하고 있지만 ‘다문화’ 사회라는 요란한 포장 속에 국제결혼 가족의 구체적 어려움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살해당한 두 여성은 친언니, 혹은 사촌언니가 한국에 결혼이주해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힘겹게 한국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이주여성들보다 자원을 더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남 양산의 사망 여성 전티**씨는 친정어머니를 초청하여 같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가족 밖에서 보기에 ‘잘 지내고 있는’ 국제결혼 가족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부부 관계가 불안정하다면 남편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한 부모 초청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들은 ‘적응 잘하고 잘 살고 있다’는 국제결혼이 사실은 겉모습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한 겉모습에 열광하여 이제 다문화사회가 된 것 같은 사회적 착각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그 구성원들인 선주민들은 이러한 막막한 현실이 닥치도록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반복되는 결혼이주여성의 잔혹한 죽음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최근 계속해서 발생하는 국제결혼가정의 아내 살인과 남편의 자살 사건을 보며 남편의 폭력으로 죽임을 당한 베트남 여성 후안 마이 씨 남편의 재판정에서 한 한 재판관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한국사회가 상기해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재판관은 후안 마이의 사건과 같은 비극이 발생한 책임을 가해자 남편에게만 묻지 않고 한국 사회에 그 근본적인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탄을 피고인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결혼이주여성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당연시하고 있지 않은지, 권위적인 사회가 일상의 폭력을 묵인하고 있지 않은지, 사회의 남녀불평등이 부부관계의 불평등을 가져오고 있지 않은지, 아내를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사고가 손쉬운 형태로 국제결혼을 하였기에 외국인 아내를 때리고 죽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견고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차제에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위해 제대로 사회보장 제도가 펼쳐지고 있는지도 물어야 할 것입니다. 2014년 1월 14일 홍천에 발생한 사례는 아기 분유값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던 끝에 발생했다고 합니다. 차제에 정부는 다문화가족의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와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국제결혼의 현재 모습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회적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피해 여성의 어린 자녀들에게 안타까움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창졸간에 딸의 죽음과 동생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유가족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형식적인 유감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아프고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늘 뒷북치듯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여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죽임을 당한 결혼이주여성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한국정부와 사회에 요청합니다.
 
1. 한국정부는 국제기구의 권고에 따라 한국사회에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사회권을 확립하도록 하며, 결혼이주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2. 한국정부는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비롯해서 적극적인 사회안전망 구축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3. 한국사회는 인종차별이 이주민에 대한 폭력임을 인지하고 차별 없는 사회가 되도록 인식개선을 해야 할 것입니다.

4. 국제결혼을 이미 한 가족이나 희망자들은 외국인 배우자와 평등한 가족관계를 이루려는 노력과 더불어 외국인 배우자의 인격과 삶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2014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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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베트남 이주여성들은 왜 남편에게 살해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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