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 연변 리포터 김철균


꿈이 아닌것 같습니다. 아니 꿈이래도 좋습니다.

 

만고풍상의 사연을 안고흐르는 훈춘강! 나는 지금 비내리는 훈춘강가에 서있습니다. 훈춘강의 흐름과 더불어 한많은 인생을 힘겹게 사시다가 끝내는 이 훈춘강에 몸을 날려 속세를 떠났던 나의 어머니, 훈춘강은 곧바로 어머니의 넋이였습니다.

 

나는 지금 몸부림치며 흐르는 강심을 향해 목이 터지도록 부르짖습니다.

 

“어머니!∼”

 

 

순간 이상하게도 애절한 나의 목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듯 비바람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하늘은 맑게 개이였습니다. 미구하여 물안개가 피여오르는 강변의 백사장에 한 녀인이 나타났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소복단장하시고 이 땅에  소생한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바로 그 27년전의 그 모습으로 이 아들앞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내아들 똥돌아, 이게 과연 얼마만이냐?”

 

이렇게 부르짖는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더불어 눈물이 락수물처럼 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젠 어른이 되여 장가를 들고 어린애의 아빠노릇을 하는 지금까지도 나는 어머니앞에서만은 김아무개가 아니라 여전히 그대로 소시적의 똥돌이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껴안으려고 했습니다. 그 찰나,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도 참, 전 이젠 마흔살이 다 되여갑니다.”

 

“왜, 마흔살이면 다 자란것 같냐?!”

 

어머니의 그 자애로운 얼굴에서는 가벼운 책망이 스쳐지났습니다. 하긴 그렇다고 하겠지요. 어머니한테는 내가 항상 어린애로 보였겠으니말입니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힘겹게 언덕을 향해 걸으셨습니다. 한발자국 또 한발자국∼어머니는 끝내 기진맥진해 쓰러지셨습니다. 하지만 나를 껴안은 두손만은 여전히 놓지 않고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업었습니다.

 

“네가 다 엄마를 업다니.”

 

나는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육감으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어머니는 너무나도 가벼웠습니다. 왜소한 체구, 앙상한 뼈마디∼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뚱뚱하여진다는데 어머니는 왜 이다지도 가벼울가? 더군다나 문화혁명시기에 맞아서 끊어진 갈비뼈가 이따금씩 나의 잔등에 맞히면서 속까지 아릿해나게 하였습니다. 순간 나의 눈앞은 참회로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1968년의 여름, 그해의 여름도 비는 많이 내렸습니다. 훈춘강은 지리한 장마로 하여 평소보다 배이상 불어나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조이게 하였습니다. 헌데 당시 우리 집의 근심은 다만 불어나는 훈춘강물때문만이 아니였습니다.  “특무”란 감투를 쓰고 맞아서 세상을 뜬 아버지에 이어 “독재대상”이 된 어머니, 운명은 가갸거겨도 쓸줄 모르는 한 농촌녀인한테까지 무자비한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바로 나의 5촌숙부이며 영예군인인 김로교씨를 투쟁하던 그날밤, 한 아낙네가 “그 사실은 그년이 잘 알것이다”라고 고아대는통에 어머니는 대뜸 계급의 적으로 검거되였습니다. 그때 우리 촌에서 독재대상이 된 녀인은 유독 나의 어머니뿐이였습니다. 하느님도 무정하였습니다. 어머니한테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그토록 매정하고도 무자비하게 매를 들이댄단 말입니까?

 

어머니는 련며칠 시달리던 끝에 더는 그 매를 이길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어머니는 어린 나를 꼭 껴안고는 장밤을 우시였습니다.

 

“이 불쌍한것아, 엄마는 어쩔수 없구나. 부디 누나의 말을 잘 듣거라.”

 

허나 그때 나는 어머니말씀의 그뜻을 너무나도 몰랐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나 어리고 철이 없었습니다.

 

이튿날 어머니는 돼지풀을 캐러간다면서 누나 몰래 집을 나섰습니다. 집을 나설 때 문턱을 넘으면서 한번, 마루턱을 내려서면서 또 한번 나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고 또 갈팡질팡했겠습니까. 그때 설령 내가 단 한번이라도 어머니의 치마자락에 매달렸더라면 그 마음을 돌려세울수도 있었으련만∼

 

어머니가 떠난 약 두시간뒤 내가 누나의 손에 이끌려 훈춘강가에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강가에는 돼지풀을 반나마 캐놓은 광주리와 어머니가 싣던 고무신만이 가지런히 놓여있을뿐이였습니다.

 

우리 오누이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 엄마ㅡ”

 

 

하지만 어머니의 대답 대신 들려오는건 쏟아지는 비소리와 사품치는 강물의 노호뿐이였습니다∼

 

어머니, 그렇듯 억울하게 갔던 어머니가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이 시각 내가 서있는 훈춘강가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아니 이승에 두고간 이 아들이 그리워서 저승에서 돌아온것이 분명했습니다.

 


만약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바로 오늘같은 사연 두고 말할거야

그토록 듣고싶던 엄마의 목소리

그토록 부르고싶던 엄마란 그 부름

 

 

어머니, 어머니가 없던 그 사이 세상은 변했습니다. 문화혁명이란 그 말은 이미 력사책에서만 볼수 있고 이 땅에는 평화와 안녕이 깃들었습니다. 철없던 이 아들도 이젠 장가들어 자식까지 보게 됐고 사업에서 열성을 다하는 문화인으로 발돋음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어머니를 보는 이 순간, 이 마음은 형언할수 없이 저려납니다. 멍이 든 얼굴, 가로세로 드러난 채찍자국과 앙상한 뼈마디, 그토록 혹독한 고문에 시달렸던 어머니였기에 그 체중이 줄어든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하냥 자애롭던 어머니의 모습만은 여전히 그대로 안겨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가 제아무리 사나와도 따뜻한 몸으로 감싸주던 나의 어머니, 겨울이면 희미한 등잔불밑에서 이 아들의 솜옷을 한뜸한뜸 기워주던 나의 어머니, 그때는 미처 몰랐던것을 어머니를 잃은 다음에야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사무치게 그리게 됐습니다.

 

어머니, 이 아들은 다신 어머니를 잃고싶지 않습니다. 인생의 세파속에 헝클어지고 백발이 된 머리를 곱게 다듬어 파마도 해드리고 꽃도안 그려진 치마저고리도 사드리고싶으며 장백산유람도 시키고 비행기에 모시고 북경, 상해 관광도 보내드릴것입니다. 아니, 어머니의 소원이라면 힘들게 자리잡은 도시생활도, 쉽지 않게 차려진 편안한 일자리도 다 버리고 시골의 어느 한 골짜기에서 화전농사를 지으면서 살아도 달갑겠습니다.

 

아니, 금전과 지위와 사랑을 다 빼앗기더라도 오직 어머니많은 놓고싶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머니는 나한테 있어서 순수하면서도 거룩한 존재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 어머니가 지금 내곁에 있습니다. 정녕 꿈이 아닌것 같습니다. 아니 꿈이래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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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본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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