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을 잃은 스크린, 허상의 가난
● 허 훈
가난한 사람을 다루는 드라마를 네 나라, 한국·미국·중국·일본의 작품을 함께 놓고 본다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네 나라 중 유독 한 곳만, 가난이 너무도 ‘예쁘게’ 포장돼 있다. 바로 중국이다.
요즘 중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미드·한드·일드나 본다”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건 복잡하지 않다. 조금 더 현실적이기를, 조금 더 진심이 느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 드라마는 그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가짜 가난’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배경은 화려하고, 집은 넓으며, 옷은 명품이다. 현실이라면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할 인물이, 정원 딸린 양옥에서 꽃차를 마시고 명품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첨밀폭격>의 남주인공은 부모를 여의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대학생이다. 당연히 삶이 팍팍해야 하지만, 그는 선전 한복판에서 2층짜리 단독주택을 임대해 살고 있다. 마당까지 있는 그 집의 시세를 생각하면, 이건 빈곤이 아니라 로망이다. 여주인공은 이 집을 보고 “아, 이게 진짜 가난이구나”라며 감탄한다. 보는 이들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환락송>이나 <겨우, 서른> 등도 다르지 않다. 갓 사회에 발을 들인 여성들이 고급 오피스텔에서 살고, 고가의 운동화를 아무렇지 않게 사고, 외제차 계약서에 단숨에 서명한다. 이들은 말한다. “나는 너무 힘들다”고. 그런데 그 말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서사가 젊은 시청자들에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인턴은 입사하자마자 고급 아파트에 살고, 쇼핑몰에서 수백만 원대 신발을 사고, 남자친구와 제주도 같은 곳에서 호화 휴가를 보낸다. 이를 보며 젊은이들은 착각한다. “나도 사회에 나가면 저렇게 살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갓 졸업한 이들이 마주하는 건 등록금 대출, 월세 압박,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전전이다.
이런 왜곡은 단순히 리얼리티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 회피'다. '드라마 속 현실'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하는 가난한 사람의 일상'만이 있을 뿐이다. 대사로는 가난을 말하지만, 배경은 부유하고 감정은 공허하다.
다른 나라 드라마는 다르다. 미국의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은 청소부로 일하면서도 천재성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일본의 <나기의 휴식>은 좁은 방, 전기 절약, 허술한 생활을 통해 ‘생존’의 감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한국의 <기생충>은 지하방의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화장실 위칸에 걸터앉아 있어야 하는 생활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는 미화가 없고, 있는 그대로의 삶이 있다.
반면 중국 드라마는 ‘가난도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을 가졌다. 그 결과, 드라마 속 ‘가난한 자’는 고급 커피를 마시고, 패션을 고민하며, 감성적인 음악에 젖는다. 이쯤 되면 이들은 진짜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체험형 가난러’에 가깝다. 그 삶을 진짜로 사는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게 현실이라고?”
현실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의 첫걸음이라면, 지금의 중국 드라마는 그 출발선에서 이미 멀어졌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화려한 배경이나 눈물 연기에 감동하지 않는다. 진짜 공감은 디테일에서 온다. 샤워도 아껴야 하는 월세방,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춘, 퇴근길에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엄마의 삶. 이런 장면 하나가, 말 한마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현실은 화려하지 않다. 그렇다고 삶이 초라한 것도 아니다. 그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담아낼 때, 드라마는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지금처럼 “나는 가난하다”며 대사만 외치고, 현실을 과잉 포장하는 ‘허상의 서사’는 누구의 삶도 대변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나도 중국 드라마 속 가난한 사람이고 싶다.”
그 말이 웃기면서도 슬픈 이유는, 그 안에 현실이 없기 때문이다.
ⓒ 인터내셔널포커스 & 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중국인 모욕하면 처벌?” SNS서 번진 논란, 법안을 들여다보니
“앞으로 중국인 욕하면 처벌받는다.”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중국을 비판해도 처벌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따라붙는다. 과장이라고 넘기기에는 실제 발의된 법안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SNS에 떠도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 -
‘미국의 소리’ 정치적 소동…비용은 납세자 몫
▲ VOA의 업무 중단과 재건 논란을 표현한 방송 스튜디오 이미지. 실제 VOA 시설 사진이 아닌 AI 생성 이미지. [인터내셔널포커스] 낭비를 줄이겠다며 축소했던 ‘미국의 소리’(VOA)가 업무 복구에 나섰다. 직원들을 유급 행정휴가에 보내고 계약을 취소한 뒤, 다시 사... -
한국은 탄핵에 재미 들었나…툭하면 꺼내 드는 ‘탄핵 카드’
한국 정치에서 ‘탄핵’이라는 말이 부쩍 흔해졌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장관, 감사원장, 검사까지 탄핵 대상에 올랐다. 최근에는 대법원장을 둘러싸고 탄핵 이야기가 나왔고, 야권에서는 ‘이재명 탄핵’이라는 말도 거듭 등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최근 “국... -
확인보다 빠른 의심…한국의 ‘가짜뉴스 시장’은 왜 사라지지 않나
▲ 한국과 중국을 배경으로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건강 이상설과 가짜뉴스 문제를 상징적으로 구성한 이미지. 실제 사건 현장 사진은 아니다. 사진=인터내셔널포커스 출처가 불분명한 영상 하나가 인터넷에 올라온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이 공유하... -
건보·국민연금 다음은 실업급여…왜 또 ‘중국인’인가
건강보험에 이어 국민연금, 이번에는 실업급여다. 논란이 생길 때마다 ‘중국인’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이번에 공개된 숫자도 눈에 띈다. 2025년 외국인 실업급여 수급자 가운데 중국동포와 중국 국적자가 77.9%, 지급액으로는 78.9%를 차지했다. 분명 높은 수치다. 그렇다고 ... -
[수필] 세월 저편에 두고 온 열두 살의 고향
고향집 앞에는 해탕나무와 살구나무가 있었고, 뒤뜰에는 앵두나무와 자두나무가 자랐다. 수십 년이 지났건만 어느 자리에 무슨 나무가 있었는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열두 살에 떠나온 집인데도 그렇다. 내 고향 중평촌은 중국 연변 안도현 석문진에서 약 6km 떨어진 작은 농촌마을이다. 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