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아니라, 사람을 모욕했다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사람을 모욕하는 순간, 그 정치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다.
전남 진도군수 김희수의 발언은 그 선을 명확히 넘었다.
“스리랑카나 베트남 쪽 젊은 처녀를 수입해 농촌 총각 장가를 보내자”는 말은 정책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폭언이다. 인구 소멸을 걱정한다며, 정작 사람을 숫자와 물건의 자리로 끌어내렸다.
‘수입’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이 발언 속에서 여성은 개인이 아니라 공급 대상이고,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배치 계획이며, 국경을 넘는 삶은 존엄이 아니라 행정 수단이다. 인구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보기에는, 사고의 수준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돌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2016년,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은 저출산 대책으로 “조선족 이민을 적극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리는 판박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사람을 데려오면 된다는 발상.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과 이주민의 삶을 땜질 자재처럼 끌어다 쓴다.
이 사고방식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저출산과 지역 소멸의 원인을 정책 실패가 아닌 개인의 결혼 문제로 전가한다는 점이다. 일자리는 없고, 주거는 불안하며, 교육·돌봄은 붕괴됐는데, 해결책은 늘 “누군가와 결혼하라”는 주문으로 귀결된다. 그 대상이 외국인 여성일 때는, 인권마저 사라진다.
이 발언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공개 행사에서 생중계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즉흥적 농담도, 사적 실언도 아니다. 지방 행정 책임자가 공식 석상에서 내놓은 사고의 결과물이다. 그 자리에서 강기정 광주시장이 손사래를 치며 “외국인 결혼이나 수입 발언은 잘못”이라고 선을 그은 것은, 상식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정책 언어는 곧 행정의 방향이다.
공직자의 말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권력의 신호다. 이 신호가 “사람도 없는데 산업만 살리면 뭐 하냐”는 식으로 흐를 때, 그 지역의 미래는 산업 이전에 존엄부터 무너진다.
인구 소멸은 심각하다. 그러나 심각하다고 해서 사람을 상품처럼 말해도 되는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인구는 숫자가 아니라 삶이고, 삶은 수입 대상이 아니다. 외국인 여성의 몸을 정책 카드처럼 꺼내 드는 순간, 그 지역은 이미 소멸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구를 데려올 것인가”가 아니라,
“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질문을 외면한 정치가,
오늘도 인구를 말하며 사람을 지운다.
BEST 뉴스
-
‘청와대의 저주’는 미신이 아니었다
글|안대주 무기징역.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게 내려진 형량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이보다 더 추락한 대통령은 없다. 흔히 ‘청와대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이번 사안은 미신의 영역이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결과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준 정치적·사법적 결론이다. 윤석열은 끝까... -
야당이 된 보수의 기이한 충성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사과였고, 최소한의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법부에 대한 공격과 “계엄은 곧 내란이 아니다”라는 궤변이었다. 보수 정당 대표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 -
‘한국인 vs 조선족’ 논쟁에 가려진 윤동주의 정체성
최근 윤동주를 둘러싼 논쟁은 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쟁점은 단순해 보인다. 윤동주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조선족인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정확한 정체성인 ‘조선인’이 논의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윤동주를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라고 주장한다. ... -
왜 중국인은 설이면 해바라기씨를 까먹을까
[인터내셔널포커스]설이 오면 중국의 거실 풍경은 묘하게 닮아 있다. 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오르지만, 대화의 중심에는 늘 차탁 위에 놓인 해바라기씨 한 접시가 있다. 손에 쥐고 하나씩 까먹는 이 단순한 간식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 설날의 배경음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의 화가이자 산... -
숫양이 새끼를 낳는 날까지… 소무, 19년 충절의 기록
소무(蘇武)는 한나라 시기의 사신(외교관)이자, 오늘날까지도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북해에서 양을 쳤다’는 유명한 일화 뒤에는, 개인의 삶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지켜낸 한 인간의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선택이 담겨 있다. 소무는 한무제 시대에 태... -
춘추시대 외교가 안영의 사신 외교와 정치적 유산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표적 정치가이자 사상가·외교관인 안영(晏嬰, 기원전 578~500)은 ‘안자(晏子)’ 혹은 ‘안평중(晏平仲)’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산둥성 고밀(高密) 일대 출신으로, 제나라 상경(上卿)이었던 안약(晏弱)의 아들이다. 안영은 기원전 556년 부친이 사망하자 상경의 지위를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