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안대주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이 끝나자마자,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 어김없이 재발했다. 외교 성과가 가시화될 조짐이 보이면, 내부에서 먼저 불을 지피는 장면이다. 제1야당 국민의힘이 들고나온 ‘댓글 국적 표시’와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제한’은 정책이라기보다 선거용 구호에 가깝다. 표현은 주권 수호지만, 실상은 공포 자극이다.
야당 지도부는 “국민 여론”과 “국가 주권”을 앞세운다. 중국에서 접속한 계정이 여론을 조작하고, 외국인 유권자가 늘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화법은 늘 그래왔듯 근거는 빈약하고 과장은 과하다. 댓글 국적 표시 의무화는 사적 플랫폼의 운영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전형적인 과잉 규제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라는 헌법적 문제를 외면한 채, ‘국적’이라는 낙인을 먼저 찍겠다는 발상부터가 위험하다.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수년간 시행돼 왔고, 그동안 보수 진영이 지금처럼 요란하게 문제 삼은 적도 없다. 선거 지형이 불리해지자, 갑자기 “주권 침해”라는 거창한 명분을 씌운 것일 뿐이다. 제도가 불리할 때만 ‘국가 위기’로 둔갑시키는 태도는, 정책 논쟁이 아니라 정치 기술에 가깝다.
더 노골적인 대목은 ‘중국’이라는 단어의 활용법이다. 한국 정치에서 반중 정서는 가장 값싼 동원 수단이다. 짧은 시간 안에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복잡한 정책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보다 효율적인 프레임도 드물다. 문제는 그 대가다. 외교는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가의 자산인데, 이를 선거용 소모품처럼 다루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아이러니는 태도의 급변이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야당 지도부는 중국 대사를 만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을 강조했다. 정세가 바뀐 것도, 중국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선거 일정뿐이다. 외교 언사가 선거 계산에 따라 이렇게 쉽게 뒤집힌다면, 그 말에 무슨 무게가 남겠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선택적 분노다. 중국에서 접속한 계정 하나를 근거로 ‘외부 개입’을 외치면서, 국내 극단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인신공격과 협박, 조직적 혐오에는 침묵한다. 같은 ‘댓글’이라도 진영이 다르면 잣대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여론의 순도를 걱정하는 태도인가, 아니면 불편한 목소리를 솎아내려는 시도인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박은 오히려 상식에 가깝다. 한중 관계가 조금씩 복원될 가능성이 보이는 시점에, 감정 정치로 불씨를 키우는 선택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관광·문화·산업 전반의 회복이 필요한 때, 선거 전략을 위해 외교 환경을 흔드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치는 갈등을 관리하는 기술이지, 공포를 증폭시키는 확성기가 아니다. 댓글 국적 표시와 외국인 투표권 제한은 문제 해결책이 아니라 ‘프레임 정치’의 전형이다. 선거를 앞두고 반중 정서를 흔들어 표를 모으려는 시도는 익숙하지만, 그 결말 역시 익숙하다. 남는 것은 상처 난 외교와 피로해진 민주주의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센 구호가 아니라, 더 단단한 원칙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가 자극으로 흐를수록, 국가의 손해는 커진다. 반중 선동은 쉬워도, 그 후유증을 감당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정치가 이 단순한 사실조차 외면한다면,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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