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 훈
중국 국적의 아이돌 저우신위(周心语)가 팬 커뮤니티에서 남긴 말 한마디가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마카오, 홍콩, 타이완은 모두 중국의 일부”라는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통상적인 중국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지만, 한국의 온라인 공간은 삽시간에 ‘폭발’했다. “정치적 망언”이라는 비난에서부터 “즉각 퇴출” 요구까지, 감정의 수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 발언은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었다. 그럼에도 왜 이토록 격하게 반응했을까. 무엇이 한국 누리꾼들의 ‘감정 방화선’을 이렇게 짧게 만들었을까.
겉으로는 한 아이돌의 정치적 감수성 부족을 문제 삼는 듯 보였지만, 실은 더 깊은 지점에 원인이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집단적 불안감이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 미국 중심 질서의 균열, 일본과의 애매한 ‘화해’, 그리고 자국의 정체성에 대한 지속적인 혼란. 이 복합적인 불안이 ‘중국인이 한국에서 발언했다’는 사실 하나에 집중되어 터져버린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경제적 현실’과 ‘감정적 정체성’의 괴리다. 한쪽에서는 “그녀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다른 한쪽에서는 “그녀가 돌아가면 중국에서 오히려 더 잘될 것”이라는 체념이 공존했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경제 현실이 감정의 앞마당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다는 반증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반응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은 중국 국적 연예인에게 유독 예민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들이 말하는 ‘중국의 입장’은 한국에서 ‘정치적 선동’으로 간주되고, 팬심은 순식간에 배신감으로 바뀐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이라는 시장이 갖는 영향력, 중국 자본의 유입, 그리고 글로벌 K팝의 확장 가능성. 한국은 이 양날의 칼을 쥐고 스스로를 베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에서 언론의 역할도 자유롭지 않다. 발언의 맥락과 국제사회의 일반적 인식은 제쳐두고, ‘논란’, ‘충격’, ‘망언’ 같은 단어로 자극적인 소비만 부추긴 기사들이 넘쳐났다. 그 결과, 대중은 더욱 단순한 이분법으로 사건을 이해하게 되었고, 갈등은 더욱 선명한 형태로 고착되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의 정체성 불안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외교 전략을 취할 것인가, 자국의 경제 구조는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문화적 주도권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부재한 상태에서, 외부의 작은 자극이 곧 내부의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이 외국인의 입에서 나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마카오, 홍콩,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라는 문장은 국제적 컨센서스에 가깝다. 그러나 그 사실을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감정적 국경선’이 무너진다. 결국 이는 우리가 외부의 시선보다, 내부의 자존감 회복이 더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우신위는 한국을 비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발언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추어냈다. 그것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는 한 나라의 불안한 시선, 그리고 감정과 이성이 부딪치는 경계에 선 공동체의 초상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쉽게 요동치는 사회라면, 그 말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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