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화영
재외동포 정책은 한 국가의 품격을 비춘다. 국경 밖에 사는 동포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 나라가 공동체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설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외교부·통일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행정 점검을 넘어, 재외동포 정책의 철학 자체를 묻는 문제 제기였다.
대통령은 “재외동포 또는 재외국민을 소재 국가별로 차별하는 느낌이 있다”며 비자와 체류 자격, 국적 정책 전반에서 형평성 문제가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외교부가 조선족과 고려인에게 서로 다른 비자·국적 정책이 적용돼 왔음을 설명하자, 대통령은 “소재 국가로 인한 차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가난한 나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고 느낀다면, 재외동포 입장에서는 서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은 ‘동포’라는 정체성보다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작동해 왔다. 같은 뿌리를 가졌더라도 거주 국가의 경제 수준과 외교 관계에 따라 비자 발급 조건과 체류 안정성, 국적 취득 경로가 달랐다. 행정 효율이나 외교 현실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동포 사회 내부의 구조적인 차별이었다.
조선족과 고려인 문제는 이러한 정책 구조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역사적 강제 이주와 냉전 체제를 거치며 형성된 집단으로, 선택이 아니라 운명에 의해 국경 밖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이들을 동포이되 ‘특수한 동포’,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분류해 왔다. 동포이지만 동등한 동포는 아니라는 인식이 정책 곳곳에 스며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차별이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차별적 제도는 합법적 체류와 안정적인 정착을 어렵게 만들고, 이는 결국 불법 체류, 취약 노동,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먼저 신뢰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개인에게 책임과 준법을 요구하는 것은 정책의 순서가 거꾸로 된 셈이다.
외교부가 내년 상반기 관련 비자 제도를 통합하겠다고 밝힌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제도 통합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통합된 형식’이 아니라 ‘같은 기준’이다. 동포를 더 이상 거주 국가나 경제 수준, 외교적 편의에 따라 구분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원칙이 정책 전반에 반영돼야 한다.
재외동포 정책은 시혜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대통령이 언급한 “서러울 수밖에 없다”는 표현은 동정이 아니라, 국가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감정을 직시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동포 차별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관행과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불편한 결단에 가깝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은 재외동포를 여전히 ‘국가 밖의 변수’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연장선으로 인정할 것인가. 그 답은 비자 제도 하나, 국적 규정 하나에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정책은 언제나 말보다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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