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말기 외교 무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남긴 인물로 증기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창사일보와 창사박물관 전시에 따르면, 그는 국력이 약화되고 외교적 수세가 이어지던 시기에도 서구 열강과의 협상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끌어낸 대표적 외교관으로 평가된다.
증기택은 증국번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가문의 배경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외국어를 익혀 외교 무대에 진출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는 협상 테이블에서 논리적으로 대응하며 당시 청나라의 외교적 입지를 일정 부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창사박물관 ‘가국천하 호상정(湖湘情)–근대 호남 명인전’에 전시된 유물은 그의 학문적 기반과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전시된 전서 대련(207.5cm×39cm)에는 “书不误人,深悔昔年曾释卷;墨原磨我,甚惭今日尚临池(책은 사람을 속이지 않으니, 지난날 공부를 중단했던 것을 깊이 후회하고, 먹은 나를 갈고닦는 것이니 오늘도 붓을 잡는 자신이 부끄럽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고풍스럽고 힘 있는 필체는 그의 깊은 국학적 소양을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1886년 숙부인 증국전에게 보낸 서한도 전시돼 있다. 그는 편지에서 “八年远役,安稳回华,不禁心神先驰矣(8년간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한 뒤 무사히 귀국하게 되니 마음이 먼저 고향으로 달려간다)”라고 적어 장기간 외교 임무의 고단함과 귀국에 대한 절실함을 표현했다.
이어 영국·러시아 관련 직무 인계와 미얀마 문제 처리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며 외교 활동 전반을 보고했다.
특히 그는 “于缅事始终未轻许英廷一言,虽补苴愧无成功,亦差足免于罪戾耳(미얀마 문제에 있어 끝까지 영국 측에 쉽게 양보하지 않았으며, 비록 뚜렷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최소한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혀 협상 과정에서의 원칙과 신중함을 강조했다.
당시 인물인 팽옥린 역시 서신에서“劼侯能了缅事,实属不易(결후가 미얀마 문제를 마무리한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라고 언급하며 그의 성과를 평가했다.
증기택의 외교적 성과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리(伊犁) 교섭이 꼽힌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 협상 대표로 나서 언어 능력과 논리적 대응을 바탕으로 협상에 임했고, 그 결과 이리 9성 및 텍스강 유역의 상당한 영토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당시 청나라 외교에서 비교적 성과가 뚜렷한 사례로 평가된다.
전시 유물은 그의 일상과 관심사도 함께 보여준다. 그는 서한에서 “游历有名的厂局(유명한 공장과 시설을 둘러보았다)”고 기록하며 서구 기술과 산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시에 꾸준한 서예 연습을 통해 전통적 수양을 이어간 점도 확인된다.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외교 역량을 키운 그는 전통 유학자에서 근대 외교관으로 전환한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동양적 학문 기반과 서구적 언어 능력을 함께 갖춘 그는 국제 협상에서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서신과 서예 작품은 한 시대 외교관의 활동과 사고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증기택이 보여준 외교적 대응과 학습 태도가 당시 동아시아가 서구와 마주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사례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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