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는 유난히 “이웃 나라”를 향한 분노를 애국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특정 국가 이름만 나오면 자동 반사처럼 욕설과 조롱이 쏟아지고, 그 나라 국민 전체를 하나의 적처럼 묶어 비난하는 일도 흔하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단순한 감정 배출 수준을 넘어 점점 하나의 정치 문화처럼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 간 역사 갈등과 외교 충돌은 현실이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중국과의 안보·경제 갈등, 북한 문제 등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외교 문제와 특정 국가 국민 전체에 대한 혐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그 나라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고 몰아가는 집단 혐오는 구별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이 경계가 너무 쉽게 무너진다. 국제 뉴스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외교 갈등 기사 아래에는 곧바로 인종적 비하와 조롱, 집단 멸시 표현이 등장한다. 상대 국가 정부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열등하거나 악의적인 존재로 단정하는 식이다. 심지어 해외에서 살아가는 교민이나 유학생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혐오 감정을 정치권과 일부 유튜브·커뮤니티가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복잡한 경제 문제나 외교 실패를 설명하는 대신, 외부의 적을 만들어 분노를 결집시키는 방식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쉽다. 그리고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기에도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혐오 정치가 반복될수록 사회는 점점 더 극단으로 향한다. 상대 국가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면 현실적인 외교 전략도 사라진다. 냉정한 분석 대신 감정적 적개심만 남는다. 결국 국익보다 분노 소비가 우선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그렇게 타국 국민을 비난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해외에서는 “한국인 전체가 싸잡아 비난받는 것”에는 강한 분노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자신은 개별 인격체로 존중받길 원하면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조롱하는 이중잣대다.
국제사회에서 성숙한 국가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국익은 혐오가 아니라 냉정함에서 나온다. 정부는 강하게 대응하더라도 국민은 상대 사회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이성과 품격을 유지해야 한다. 국가 간 경쟁은 있을 수 있지만, 국민 간 증오까지 당연시될 이유는 없다.
애국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자신감 있는 사회일수록 타인을 향한 과도한 적개심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웃 나라를 향한 끝없는 증오를 애국으로 착각하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외교도 경제도 아닌 우리 사회의 품격이다.
BEST 뉴스
-
줄 하나 못 지키면서 관광대국을 말할 수 있나
인천국제공항은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이곳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첨단 시설이 아니라 '질서'다. 그런데 최근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일부 중국인 이용객 수십 명이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자 차단봉 아래를 통과해 한꺼번에 뛰어가는 장면이 공개됐다. 정상적으로 줄을 서 있던 승객들은 순... -
[연변 기행 ⑦]두만강이 들려주는 역사… 도문에서 만난 국경과 독립운동의 현장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국문(國門) 일대. 북한으로 이어지는 철도와 국경 관문이 나란히 자리한 중국 대표 국경도시의 모습. [인터내셔널포커스] 연변 기행 여섯 번째 이야기인 훈춘 방천이 '한눈에 3국을 바라보는 동북아의 끝'이었다면, 이번에는 두만강을 따라 서쪽으로 ... -
[연변 기행 ⑨] 별을 헤던 청년의 고향… 용정에 살아 있는 윤동주의 시와 민족의 혼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 위치한 윤동주 생가 입구. 윤동주 시인의 생애와 문학정신을 기리는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적이다. /사진=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화룡 봉오동에서 독립군의 함성을 뒤로한 채 북쪽으로 차를 달리자 풍경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첩... -
천년의 '해동성국'…훈춘 발해고진, 역사와 야경이 빚어낸 여름 명소
[인터내셔널포커스] 천년의 역사를 품은 발해 문화와 현대 관광 콘텐츠가 만난 중국 지린성 국경도시 훈춘의 발해고진이 여름 관광 성수기를 맞아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당나라 양식의 건축미와 다양한 역사문화 체험, 화려한 야간 콘텐츠가 어우러지며 중국 각지뿐 아니라 러시아 등 해외 관광객... -
하영에게 증조부의 죄까지 물을 것인가
배우 하영이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의혹과 관련해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논란 이후 관련 자료를 직접 ... -
[연변 기행 ⑧] 홍범도의 함성이 울려 퍼진 봉오동… 화룡에 새겨진 독립전쟁의 기억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봉오동 전투기념비.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이끈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격파한 봉오동 전투를 기리는 역사 현장이다. [인터내셔널포커스] 도문을 떠나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리자 두만강을 따라 이어지던 국경 풍경은 어느새 깊은 산세로 바뀌기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