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본 적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밤이 되면 유리처럼 반짝이는 도시, 완벽한 얼굴을 한 사람들,
사랑과 성공이 정교하게 배치된 이야기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은 어딘가 더 정돈된 세계일 것이라고,
노력하면 그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나라일 것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이곳에서 처음 맞이한 아침 지하철 안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사람들은 많았다.
너무 많아서 숨이 막힐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누군가 웃지도 않았고,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이곳은 단순히 바쁜 도시가 아니라,
어딘가 긴장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며칠이 지나고,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강남의 거리에서, 대학 근처의 식당에서,
좁은 골목의 고시원 앞에서 마주친 사람들.
그들은 모두 단정했고, 세련됐고,
놀라울 만큼 깔끔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여유’가 아니라 ‘압박’으로 다가왔다.
마치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안 되는 세계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이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다는 것을.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
얼굴은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까지.
사람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합된 결과’처럼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다듬고 있었다.
어느 날, 편의점 진열대를 바라보다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항우울제, 기능성 음료, 피로회복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사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지치지 말고 계속 버텨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젊은 사람들은 특히 더 그랬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오히려 그 모습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 정도였다.
지하철 안에서 그들은 공부를 하고 있었고,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고,
밤이 깊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들의 하루는 길었고,
쉼은 짧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열심 속에서 ‘확신’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계속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멈추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퇴근길에 나는 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지하철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 것은
‘비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잊지 못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들은 더 힘든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누가 더 힘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지쳐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곳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일까.
모든 것이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인 이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 수 있을까.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계단은 너무 가파르고,
너무 길어서
오르는 동안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밤은 여전히 빛나고,
거리에는 생기가 있다.
하지만 그 빛 속에서 나는
다른 종류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비교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나며
하나의 문장을 마음속에 남겼다.
이곳은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는 나라다.
하지만 그 열심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않는 나라.
나는 여전히 이 나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어떤 사회를 진짜로 이해하려면,
그곳의 야경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얼굴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생각보다 더 깊고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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