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모론이 민주주의를 좀먹을 때
선거가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증거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음모부터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투표소와 개표소 주변에서 "중국이 개입했다", "조선족이 선거를 조작했다", "북한이 배후에 있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그 주장들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다음이다.
증거가 없으니 사람을 공격한다.
투표 참관인에게 "중국인 아니냐", "조선족 아니냐", "연변 사람이냐"라고 몰아붙이고, 설명을 해도 믿지 않는다. 자신들의 믿음과 다른 사실이 나오면 받아들이는 대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다.
이쯤 되면 선거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음모론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에 가깝다.
음모론의 특징은 간단하다.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숨겨졌다"고 주장하고, 반박이 나오면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전문가가 설명하면 "매수됐다"고 말하고, 법원이 판단하면 "사법부도 공범"이라고 외친다. 결국 자신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만 진실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이 위험한 이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제도다. 선거에 문제가 있다면 증거를 제시하고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결과를 부정하기 위해 음모론을 끌어오고, 특정 민족과 국적을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사실과 증거가 아니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분노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마치 조선족이나 특정 외국인 집단이 투표권을 요구해 얻어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현행 제도는 대한민국 국회가 법률로 정한 것이다. 제도에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으로 만들어진 제도를 두고 특정 민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선동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혐오가 너무 쉽게 소비된다는 점이다.
선거에 불만이 생기면 중국 탓, 경제가 어려우면 외국인 탓,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조선족 탓이라는 식의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회를 더욱 분열시키고 진짜 원인을 가려버린다.
역사는 수없이 증명했다. 근거 없는 음모론이 득세하는 사회에서는 항상 누군가가 희생양이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진실도, 정의도 남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투표함이 아니다.
증거보다 망상을 믿고, 사실보다 혐오를 선택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문화야말로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가장 위험한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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