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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뒤에 숨은 극단주의의 얼굴

  • 김준하 기자
  • 입력 2026.06.0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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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극우는 더 이상 주변부 현상이 아니다.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와 일부 집회 현장에서만 목격되던 극단주의 담론은 이제 정치권과 종교계, 유튜브 생태계, 거리 시위까지 확산되며 공적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벌어진 계엄 논란과 탄핵 정국, 부정선거 음모론, 법원 난입 사태 논란 등은 한국 민주주의가 극단주의 정치의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극우는 단순히 강경한 보수와 다르다. 보수는 기존 질서와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경쟁한다. 반면 극우는 정치적 경쟁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보기보다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들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사법부가 불리한 판단을 내리면 정치적 음모를 의심하며, 언론이 비판하면 편향된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신뢰와 절차적 정당성은 훼손된다.


실제로 국내외 연구자들은 한국 극우의 성장 배경을 단순한 정치 현상이 아니라 분단 체제와 냉전 문화, 특정 종교 세력의 정치화,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 그리고 세계적 우익 포퓰리즘의 영향이 결합된 복합적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 극우를 단순한 보수 정치의 급진화가 아닌 역사적·사회적 구조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극우의 가장 큰 특징은 반공주의와 종교적 신념, 그리고 국가주의적 담론이 결합한 독특한 정치 문화에 있다. 유럽 극우가 이민 문제와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한국 극우는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됐다. 반공주의는 오랜 기간 안보 정책을 넘어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가치로 기능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냉전적 사고가 오늘날에도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석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정치적 반대 세력은 물론 시민단체와 노동계, 학계, 언론까지도 쉽게 '친북', '종북', '친중'이라는 낙인의 대상이 된다. 복잡한 사회 갈등을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음모론적 프레임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특히 일부 종교 세력이 정치 영역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정치는 점차 선과 악의 절대적 대결 구도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정 정치인은 국가를 구할 지도자로 신격화되고, 반대 세력은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타협과 공존, 숙의와 설득은 설 자리를 잃고 진영 간 적대감만 남게 된다.


오늘날 일부 극우 집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이러한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친미 감정을 넘어 한국 사회를 냉전 안보 질서의 상징 공간으로 인식하는 시각을 반영한다. 경우에 따라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하는 현상 역시 정치적·종교적 가치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정체성 정치의 단면으로 해석된다.


최근에는 미국 MAGA 운동과의 공명 현상도 눈에 띈다. 미국 극우 진영에서 유행한 부정선거론, 정치 지도자 우상화, 반이민 정서, 반페미니즘 담론 등이 국내 일부 세력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유튜브와 SNS는 이러한 담론의 확산을 가속화했다. 사실과 검증보다 감정과 확신이 우선하는 정치 문화가 형성되면서 사회적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극우 세력이 젊은 세대를 흡수하는 방식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취업난과 주거 불안, 경제적 양극화로 누적된 불만을 여성, 이주민, 중국인, 진보 세력 등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희생양을 설정해 분노를 조직하는 방식은 세계 각국 극우 포퓰리즘이 보여준 전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극우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혐오 표현 자체보다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직적으로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선거를 믿지 않고, 법원을 믿지 않으며, 언론과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결국 남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특정 지도자와 집단에 대한 맹목적 충성뿐이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체제가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원칙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제도를 부정하고, 정치적 반대자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며, 종교적 신념을 국가 운영 원리로 강요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극우 현상의 성장에는 정치권의 무능과 사회경제적 불안이라는 현실적 배경도 존재한다. 따라서 극우 지지자 전체를 조롱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이용해 혐오와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 세력과 선동 구조를 정확히 바라보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한 번 성취했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거짓이 진실을 대체하고, 혐오가 공존을 압도하며, 음모론이 상식을 밀어낼 때 민주주의는 서서히 침식된다.


오늘날 한국 극우의 문제는 단순히 특정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신뢰와 관용, 다원주의를 약화시키는 구조적 위험 요소다. 진정한 애국은 다른 시민을 적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같은 헌법과 제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이 아니다. 민주주의보다 증오를, 사실보다 음모론을, 공존보다 적대를 앞세우는 극단주의 정치 그 자체다. 민주주의는 외부의 적에 의해 무너지기도 하지만, 더 자주 내부의 불신과 광신, 혐오에 의해 흔들린다. 한국 사회가 극우의 확산을 단순한 정치적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국내외 학술연구와 언론보도를 참고해 작성됐으며, 해석과 평가는 필자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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