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된 미중 경쟁' 기조 유지…동맹국 향해선 "안보 무임승차 시대 끝났다" 경고
[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긴장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 억지력을 강화하고, 동맹국들에는 국방비 증액과 안보 책임 확대를 요구하는 이른바 '이중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 기조연설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서는 "안보 무임승차 시대는 끝났다"며 강도 높은 압박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번 연설은 최근 미중 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관계 안정 기조 속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향해선 수위 조절…군사 억지는 강화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현재 미중 관계는 수년 만에 가장 안정적인 상태 중 하나"라며 양국이 안정적 관계와 공정한 교역, 상호 존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인도·태평양 지역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역내 억지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며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을 중심으로 동맹국과 군사 협력을 확대하고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이 군사력을 통해 역내 질서를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상황을 차단하겠다는 기존 전략을 유지했다.
다만 지난해 같은 행사에서 미국 측 인사들이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연설은 상대적으로 절제된 분위기였다.
헤그세스 장관은 약 25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대만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며, 이후 질의응답에서도 대만 무기 판매 계획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외교가에서는 최근 미중 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관계 안정 기조가 이번 발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식 대중 전략…"대화하되 힘은 유지"
전문가들은 이번 연설에서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현실주의 외교 노선이 다시 드러났다고 평가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가치와 이념을 앞세워 중국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데 무게를 뒀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와 안보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중국과 무역·투자 협력 논의를 이어가면서도 군사 분야에서는 억지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연설 역시 "대화는 하되 힘은 유지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전략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이상 공짜 안보는 없다"…유럽 향한 압박
동맹국들에 대한 메시지는 훨씬 직설적이었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이 앞으로 자국 안보를 위해 충분히 투자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국가들과 협력을 우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납세자의 부담에 기대 안보 혜택만 누리는 시대는 끝났다"며 공동 방위를 위해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는 동맹국들은 미국과의 협력 방식 변화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NATO 회원국들을 겨냥한 발언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부터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 지출 부족을 강하게 비판해 왔으며, 재집권 이후에도 같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국방비를 GDP의 최소 3.5% 수준까지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일본도 영향권
헤그세스 장관은 한국과 필리핀, 호주, 싱가포르 등을 언급하며 아시아 동맹국들이 안보 책임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더 큰 역할을 요구하는 메시지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의 방위비 분담 확대 요구에도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도 헤그세스 장관은 국방력 강화 노력을 평가하면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향후 추가적인 방위비 증액과 군사적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우회적 압박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수년간 방위비를 크게 늘려 GDP 대비 2% 수준에 근접했지만 미국은 보다 적극적인 안보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
동맹 재조정 본격화
이번 샹그릴라 대화 연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안보정책의 핵심 방향을 보여줬다.
중국과는 충돌을 피하면서도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관리된 경쟁' 전략을 추진하고, 동맹국들에는 안보 비용과 책임을 더욱 분담시키는 '동맹 재조정' 전략을 병행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국제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국가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유지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 재정 부담 등을 고려해 동맹국들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 유럽 주요국들이 미국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국제 안보 환경의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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