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사상 최악의 폭염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중국산 에어컨이 현지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기록적인 고온으로 냉방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설치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 현지 규제에 맞춘 제품을 앞세워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판매 호조를 단순한 계절 특수가 아닌 기후변화와 산업 경쟁력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한다.
중국 세관 통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중국의 대(對)유럽연합(EU) 에어컨 수출액은 37억6,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3.2%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6월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72.8% 늘어 폭염이 본격화된 시기와 맞물려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중국 브랜드의 유럽 시장 점유율도 2023년 27%에서 올해 41%까지 상승하며 최대 공급원으로 부상했다.
브랜드별 실적도 두드러진다. 메이디(Midea)는 상반기 유럽 판매량이 70% 이상 증가했고, 유럽 전용으로 개발한 이동형 분리식 에어컨 '포르타스플릿(PortaSplit)'은 독일에서 출시 반년 만에 6만 대 이상 판매됐다. 하이얼(Haier)은 유럽 판매량이 30% 늘었으며 동유럽 시장 점유율 34%로 선두를 유지했다. 하이센스(Hisense)는 판매량이 11만3,000대를 기록해 전년 대비 117% 증가했고, 프랑스 시장에서는 900%의 성장률을 보였다. 그리(Gree)는 프랑스 판매량이 50% 늘었으며 이동식 제품은 품절 사례가 이어졌다. 일부 소비자는 "200km를 이동해 마지막 제품을 구했지만 가격은 이미 100유로 이상 올랐다"는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유럽 시장의 구조적 특성도 중국 기업들에는 기회가 됐다.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로 미국의 90%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이는 수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높은 설치 비용과 까다로운 규제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역사적 건축물은 외벽 천공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설치 허가 절차도 복잡하다. 설치 비용은 대당 1,000~2,000유로에 달하며 성수기에는 설치 예약만 수주에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반면 유럽의 연간 에어컨 생산능력은 약 320만 대에 그치는 반면 시장 수요는 1,000만 대를 웃돌아 공급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공백을 중국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중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보다 현지 환경에 맞춘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메이디는 천공 공사 없이 약 15분이면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고, EU의 친환경(F-gas) 규정을 충족하도록 냉매 사용량도 최적화했다. 하이얼은 전원만 연결하면 사용할 수 있는 이동식 제품을 300유로 초반대 가격에 출시했으며, 하이센스는 다양한 주거 형태에 적용 가능한 일체형 브래킷을 도입했다. 그리는 친환경 냉매 R290과 폭넓은 온도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기술을 앞세워 경쟁력을 높였다.
이 같은 변화는 기후변화와도 맞물린다. 최근 유럽에서는 폭염이 반복되면서 에어컨이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 생활가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냉방 수요 확대와 함께 에너지 효율, 친환경 냉매, 설치 편의성을 모두 갖춘 제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들은 유럽 냉방시장이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의 공급망 경쟁력도 판매 확대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은 세계 에어컨 생산능력의 8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압축기와 열교환기 등 핵심 부품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부품 생산부터 완제품 조립, 물류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급망을 바탕으로 중유럽 철도와 해상 운송망을 활용해 추가 물량도 약 2주 안에 유럽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럽 시장 판매 급증을 단순한 폭염 특수로만 보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냉방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현지 규제와 소비 환경에 맞춘 제품 개발, 안정적인 공급망, 브랜드 경쟁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례는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넘어 기술력과 현지화 전략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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