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형성
조선족이란 중국에 정착해서 사는 한국인 후예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족이란 개념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시각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동포”이고 “겨레”이고 하며 “피는 못속인다”는 것으로 동질성을 크게 떠들어대고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요,“조선족동포”라고 하며 “중화민족 대가정의 일원”라며 역시 목소리가 높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조선족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시각상 모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중국내에서 조선족이 형성된 그 시대와 역사적 배경을 분석해보면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국조선족의 그 대규모로 되는 인구유동을 말하면 아마도 “한일합방” 전후인 지난 세기 초엽으로 잡을 수 있다. 당시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온 조선인들은 주로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한가지 부류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투사 및 그 가족들이었고 다음 한가지 부류는 먹고 사는 생계를 위해 건너온 사람 및 그 가족들이었다. 이 두가지 부류의 공통점이라면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고 난 뒤, 또는 돈을 벌어 크게 한몫 잡게 되면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헌데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자면 약소민족인 조선인들은 자아의지와는 별도로 중국인과 손잡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중국 또한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항일을 위해 통일전선을 구축했지만 정치적 대립은 여전히 첨예했다. 그 와중에 중국으로 진출한 조선인들 역시 중경의 한국독립군과 연안의 조선의용군 및 동북의 항일연군 등으로 여러개 파로 나뉘었다.
그 뒤 1945년 드디어 조선은 광복되었다. 하지만 이 광복은 조선인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구 소련의 힘에 의해 즉 남들의 도움으로 얻어진 것이었다. 한반도 중간지대에 38선이 그어졌고 남과 북에는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했다. 이는 약소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귀국하였지만 중국,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 등 나라에 널려있던 한민족동포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귀국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38선과 두동강이 난 조국이 싫어진 이유도 적지 않게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중국의 조선인한테는 농민들한테 토지를 나눠주고 조선인을 중용(군부대에 조선인이 많았음) 크게 중용해주고 약소민족을 차별시하지 않은 공산당의 정책도 크게 작용했다.
이렇게 귀국하지 않은 조선인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과 더불어 중국의 소수민족 즉 중국조선족으로 확정되게 되었다.
중국조선족을 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은?
중국조선족을 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은 그닥 곱지 않다. 공산권 나라에서 생활하는데다 지난 세기 50연대에 있은 “6.25” 전쟁에 중국 조선족출신 부대 3개 사단이나 북측 인민군에 편입되어 낙동강까지 진격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한테 있어서 “6.25”의 상처는 오래갔다. 필자가 제일 처음 한국에 갔을 때 한국인 강××는 “당신들이 공산권에서 왔기에 머리에 뿔이라도 났는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군”하며 농조로 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중화권에서 생활하는 조선족들은 토배기 중국인을 닮아 돈에 너무 집착한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지러운 작업도 꺼리지 않고, 사기치고 등쳐먹고, 여인들은 또 돈이라면 60~70대의 노인하고도 함께 침대에 오른다고 말이다.
한편 한국인들은 색안경을 끼고 조선족을 보면서도 자주 이용하기도 했다. 드넓은 중국대륙을 진출하기 위해서는 조선족이란 “지팽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이들도 많다.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본토인들과 “인맥”이 큰 조선족들의 힘을 빌어 사업체를 활성화시키고 하여 한국인들은 조선족에 감사해하고 있고 거기에서 한몫 크게 덕을 본 조선족도 많다. 반면에 중국 조선족사기군에게 크게 당해 빈털털이로 나앉은 한국인도 많다. 아마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사례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도 엇비슷한 희로애락이 많다. 다르다면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 거개가 힘들고 기시는 받았지만 그래도 부를 축적하고 환고향 뒤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의 갈등이 많이 생겼고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호 좋은 점만 생각하고 말하면 갈등이 작아지겠으나 나쁜 점만 골라가며 목청을 높이니 그 갈등의 벽은 높아만 가는 것이다.
중국 조선족의 “서울”ㅡ 연길시
현재 연길시는 몰라보게 변했다. 여기에는 연길시가 중앙정부의 서부발전계획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수십만명 인력이 한국으로 진출해 벌어들인 재부의 힘도 막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더라도 한국으로부터 연변으로 송금되는 돈은 연평균 10억달러(2010년 기준) 이상으로 이는 연변 GDP의 35% 좌우가 된다고 한다. 35%ㅡ 대단한 것이다.
지금 연길시는 낮이면 승용차 행렬이 거리의 풍경선을 이루고 밤이면 매 고층건물마다 휘황한 네온싸인으로 반짝이면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의 차림새도 크게 달라졌다. 어제 서울에서 그 어떤 패션이 선보였다 하면 오늘 연길 서시장의 전문점에 그 패션이 진열될 지경이다. 사람들의 얼굴도 화기가 넘치고 걸음이 씩씩해졌다. 그리고 여름만 되면 진달래광장은 거의 매일 저녁 “맥주절”, “미식절” 등으로 인파가 붐비고 새로 만들어진 청년광장 또한 거의 밤낮으로 여러가지 축제가 열리면서 공연무대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렇듯 열광적인 축제의 뒤가 되면 사람들은 곧바로 조선족들의 삶을 반성한다. 한국의 덕으로 이만큼 생활이 다채롭고도 풍요로와 진 오늘 사람들은 중국경제가 한국을 따라잡고 있는 것에 대해 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다. 한국경제가 중국보다 우월했기에 현지의 조선족들은 본토중국인들보다 월등한 생활수준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경제가 한국을 따라잡거나 추월하면 조선족들의 이런 우월감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중국경제가 추락하는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중국에 큰 정이 있으니까.
중국조선족의 이중성
중국조선족은 그 형성된 자체거나 지나온 역사 등 요인으로 이중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사례로 중국축구대표팀과 한국축구대표팀이 축구경기를 펼칠 때면 그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필자의 한 친구는 한국에서 중한축구경기를 시청할 때면 중국팀을 응원하고 중국에서 중한축구경기를 시청할 때면 한국팀을 응원한다고 하였다. 이는 한국인 혹은 본토중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조선족 일원인 필자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중성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한국과 중국에 모두 정이 있고 두 나라를 모두 사랑하니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다음 한반도 북측과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조선족은 진짜 한국인도 혈육으로 대하고 조선인도 혈육으로 대한다. 혈육이라고 하면서도 “북한”이라고 욕하는 한국인이나 역시 같은 민족이라 하면서도 “남조선”이라 질책하는 조선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혈육이요, 같은 민족이라 하면서도 유엔에까지 등록된 국호 “대한민국”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쓰지 않고 왜 자기들이 만들어낸 상대방을 자극하는 “별명국호”를 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5~6살 되는 애들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개막되던 9월 19일, 북측대표단이 입장하자 사회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제대로 방송했다. 이는 아주 정상적이고 상대방의 국호를 존중하는 자세이다. “북한” 이란 “별명국호”가 한국의 일반 서민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으나 청와대 관원과 국회의원들의 입에서까지 스스럼 없이 나온다는 것은 심사숙고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느 해엔가 북측 또한 남북축구경기를 놓고 태극기게양과 한국국가 주악을 거부한데서 그 경기가 제3국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필자의 주견이라면 2006년도엔가 KBS와 조선중앙TV가 공동으로 금강산에서 펼친 “열린음악회”에서 사회자가 “남과 북”, “북과 남”이란 언어를 골라 사회하였다. 상대방의 진짜 국호를 제대로 불러주기 싫으면 이런 언어의 선택도 괜찮다는 분석이다.
중국조선족은 이런 수법은 쓰지 않는다. 조선이면 곧바로 조선이고 한국이면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이라 불러준다. 그래서 한국인들로부터 입장이 모호하다는 책망도 듣는다. 하지만 중국조선족의 이중성(삼중성이 될수도)은 한반도 남북에 유리할뿐만 아니라 중한 또는 한중 관계에 있어서도 유리하다. 중국이 한국의 제1무역파트너로 될 수 있은데는 중국조선족의 기여도 어느 정도 점한다는 생각이다.
/ 김철균 (동포투데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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