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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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U-17 여자축구, 아시안컵 준결승 진출
    [동포투데이] 중국은 14일 일본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4-0으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2024 AFC U17 여자 아시안컵 4강에 진출했다. B조에서 호주, 태국에 2연승을 거두면서 중국은 이미 조 선두 일본과 함께 4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였다. 일본은 이날 중국을 상대로 4골을 퍼부으며 조 1위를 차지했다. 조별리그 다른 경기에서는 태국이 호주를 3-1로 이겼다. 중국은 16일 준결승에서 A조 1위인 북한과 맞붙고, 일본은 같은 날 한국과 맞붙는다. 5월 6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는 총 8개 팀이 참가하며, 상위 3개 팀이 10월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2024년 FIFA U17 여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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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5
  • 마라도나 ‘신의 손’ 골든볼 트로피 경매에 나온다
    [동포투데이] 수십 년 동안 사라졌던 마라도나가 1986년 월드컵에서 수상한 골든볼 트로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7일 BBC 보도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아구테스 경매회사는 이 트로피가 6월 6일 파리에서 경매될 예정이며 입찰자는 15만유로를 지불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매회사에 따르면 이 트로피는 독특함 때문에 수백만 달러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트로피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트로피가 와일드 포커 게임에서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라도나가 빚을 갚기 위해 트로피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마라도나가 나폴리의 한 은행 금고에 트로피를 보관했다가 1989년 현지 괴한들에게 강도를 당한 후 금덩어리로 녹아내렸다는 설도 있다. 아구테스 경매사는 "트로피가 금-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주장이 터무니 없다고 지적했다. 2016년 프랑스 경매에서 골든볼 트로피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익명의 구매자가 구입했다. 구매자는 자신의 컬렉션에 많은 트로피를 보유하고 있었고, 온라인으로 검색한 결과 자신이 마라도나의 골든볼 트로피를 구입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주장으로서 '축구왕'은 아르헨티나 팀을 이끌고 결승전에서 독일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5골 5도움을 기록하며 이번 월드컵 최고의 선수가 됐다. 특히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두 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하나는 논란이 된 '신의 손'이었고, 다른 하나는 5연속 득점을 뛰어넘는 '세기의 골'이었다. 마라도나가 그날 입었던 유니폼과 경기 공은 이전에 수백만 달러의 가격에 경매에 부쳐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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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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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북한, 일본 2-1로 꺽고 U20 여자 아시안컵 우승
    [동포투데이] 16일 막을 내린 20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1-1로 비기고 일본에 0-2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편 호주 여자축구는 3,4위 결승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두 팀은 일본, 북한 등 4개 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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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7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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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실시간 스포츠 기사

  • 연변천양천 청도중능에 2 : 2무승부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이 마지막 1분간의 집중력 부족으로 입안에 들어온 “비게덩이”를 놓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24일, 연길인민경기장에서 있은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11라운드에서 연변팀은 강호 청도중능과 서로 골을 주고 받으며 2 : 2로 손잡았다. 경기초반 연변팀은 거센 폭풍우같은 공격을 연속 퍼부으면서 기선을 제압, 경기 5분만에 신진 6번 이군 선수가 상대방 문전혼전 중 챤스를 잡아 선제골을 터트렸다. 3분 뒤 청도중능팀이 거센 반격을 조직, 중능팀의 외적용병 달나라크가 요강산의 패스를 이어받아 연변팀의 수비를 뚫으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그뒤 쌍방은 밀고 밀리우는 공방을 계속하던 중 37분경 연변팀한테 페널티킥 기회가 생겼고 11번 김기수가 침착하게 공을 날려 상대방 골네트에 가 박히게 했다. 후반들어 7분경, 연변팀 10번 지충국의 롱슈팅(远射)가 상대방 골키퍼에 의해 와해됐고 14분 뒤 중능팀 외적용병 달나라크가 때린 슈팅 또한 연변팀의 골키퍼 윤광에 의해 와해되기도 했다. 특히 그날 연변팀의 수문장 윤광은 비범한 재주를 과사 선후하여 4-5차에 달하는 상대방의 위험공을 받아안거나 쳐내면서 실점위기를 막아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연변팀은 지꿎게 상대방 공격수들한테 달라붙으며 잘 버티다가 최후 경기보충시간에 마지막 1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허락, 경기 집중력을 두고 과제를 남기었다. 한편 그날 연변팀은 입에 다 들어온 “비게덩어리”를 놓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전반 경기를 볼 때 지면배합의 풍격과 정신력이 살아났다는 것이 축구팬들의 평가였다. 연변팀 선발출전멤버: 1번 윤광, 5번 진효, 6번 이훈, 7번 최인, 8번 이호, 10번 지충국, 11번 김기수, 12번 강홍권, 17번 고만국, 20번 최민, 32번 박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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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4
  • 북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공식 발표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북한은 23일 오는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위원회는 평화와 단합, 친선을 이념으로 하는 아시아올림픽이사회 성원국으로서 오는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남조선 인천에서 진행되는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조선선수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인천시는 북한이 지난 1월20일 축구 종목 참여 입장 발표에 이어 이번에 전 종목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한데 대해 환영을 표시, 이번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가 남북한 긴장을 해소하고 화해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천AG조직위원회와 협조해 북한 선수단 참가에 따른 사전 준비와 선수단, 임원, 응원단 등의 안전문제, 숙박, 공동 응원 등 북한 선수단이 머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 선수단의 참가에 대비해 전지훈련 예산을 이미 확보해 놓은 만큼 앞으로 통일부 승인절차 및 실무 접촉을 통해 북한 선수단의 전지훈련 종목과 인원 등에 대해 협의를 추진할 예정이다. 북한은 한국에서 개최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도 선수단을 파견했었다. 인천에서 개최되는 제 17회 아시안게임은 48개 36개 스포츠 종목에서 439개 경기가 펼쳐질 예정인 가운데 약 44개국에서 15,000 여명의 스포츠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참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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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4
  • 연변팀 이광호 감독, 준엄한 갑급잔류 임무 사활 걸고 완수할터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일전 연변장백산천양천 축구구락부에서 만난 연변팀 신임감독 이광호씨, 워낙 좀 마른 얼굴이었는데 요즘 들어 더욱 축간 것 같았다. 갑급잔류임무가 너무 과중해서였을까? “전임감독에 대해 크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호은씨는 나의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하다. 그가 큰 고생을 했다. 그가 구단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또 열심히 노력했건만 이러저러한 여건이 풀리지 않아 성적을 올리지 못해 결국 희생자가 됐다. 현재 연변팀의 상황에서 별로 뽀족한 수는 없다. 그저 사활을 걸고 그 어떤 강팀한테도 굴하지 않고 맞선다면, 거기에 답이 있을 것이라 보아진다.” “뭐니뭐니 해도 공격라인에 차질이 많이 생기던데?” 하는 물음에 이광호 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현재 보다 순발력에 충격력까지 겸비한 스트라이커(前锋) 물색에 나섰는바, 이제 수준급 스트라이커를 영입하고 이전의 상병들의 컨디션이 회복되노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일축했다. “지난해에는 제 10 라운드까지 9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제 10 라운드까지 단 4점을 기록한데 불과하다. 팀이 이토록 부진해보기는 갑급참전 사상 처음이다. 주어진 형세는 아주 준엄하지만 그 난관들을 하나 하나씩 타개하며 팀을 안정시키고, 반전을 꾀하며 최종 팀을 갑급에 잔류시키는 것이 아내 감독이 해야 할 임무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이광호 감독에 따르면 올해의 갑급잔류 점수가 지난해와 비슷한 승점 30 정도로 추측, 하다면 이제 남은 20경기에서 적어도 7경기는 이겨야 하고 5경기 이상 비겨야 갑급잔류가 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10경기에서 겨우 한번 이겼는데 이제 남은 20경기에서 7경기 정도 이긴다? 도박과 비슷한 아주 간고한 승부걸기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고도로 되는 집중력을 가지고 무릇 어떠한 상대이든간에 사활을 걸 것이 필요한 것이다. 마침 오는 24일과 6월 1일, 연속 2차례의 연변홈장에서 제 11 라운드와 제12 라운드가 치러진다. 모든 경기가 관건이겠지만 이번 2경기가 관건의 관건적인 경기가 될 전망이며 이광호 감독의 능력을 테스트할 시험대로 될 수 있는 경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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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2
  • 여자 아시안컵, 韓,中대표팀 월드컵 본선 진출권 획득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은 17일 베트남 호찌민 통낫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AFC 여자 아시안컵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태국을 4-0으로 꺾으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조별리그 2연승으로 4강에 오르는 동시에 내년 여자 월드컵 본선 티켓을 확보했다. 한편 중국 대표팀도 이날 3-0으로 미얀마 대표팀을 이기고 조별리그 2연승의 기록으로 미리 월드컵 진출권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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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8
  • 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 (6)
    옌볜 지역에서 축구는 100여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한다. 중국에서 옌볜은 ‘축구의 고향’이라고 불릴 만큼 오랜 시간 축구가 성행했다. 또한 축구는 하나의 문화로서 중국 조선족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연변 FC는 중국축구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중요한 존재다. 또한 지린성을 대표하며 중국축구무대를 주름 잡은 팀이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그렇기에 옌볜 FC는 중국 조선족의 가장 큰 자랑이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을 모시고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 편집자 연변프로축구는 크게 두개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1994년부터 2001년까지의 갑A 단계이고 다시 2001년부터 현재까지의 갑급단계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싶이 2001년 원 갑A권 구단이던 길림오동팀이 갑B로 강급되면서 절강에 매각, 그 뒤 연변에서는 82-83 연령단계 선수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연변팀을 구성해 중국축구을급리그에 참전했는데 그 때부터 연변축구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00년 길림오동팀이 갑A에서 분전하고 있을 때 2선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팀은 조선 평양에서 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연변 주 체육국에서는 프로축구초창기 연변삼성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이호은 감독한테 이 팀을 맏겨 팀구성을 완성하게 했다. 이 팀은 2001년부터 중국축구 을급리그(3부 리그)에 참가했다. 그 때는 원 연변 현대자동차팀에서 활약하던 방근섭, 이찬걸, 이시봉 등 선수들이 주축으로 되었지만 첫해의 전적은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노장선수들의 경험과 신진들의 활약이 유기적으로 잘 배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1993년 전국운동회에서 “전면 진공 전면 방어”의 축구로 “흑마”로 부상했던 이호은 감독의 축구운영사상도 어딘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듬해 역시 노장과 신진들과의 배합의 미숙으로 역시 갑급진출이 무산됐다. 다음 세번째 해인 2003년 연변팀은 방근섭, 이시봉과 이찬걸 등 노장들이 퇴역하고 순 신진들로 구성돼 을급리그에 뛰어들었지만 성적이 이상적이었다. 그만큼 정림국, 한송봉, 문호일, 배육문, 윤광, 한광화 등 신진들의 기량이 제고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해 연변팀은 을급 8강까지 진출했다. 8강전 제1라운드의 2회전에 달하는 경기에서 연변팀은 상대방을 물리치고 4강에 합류했다. 4강전에서 연변팀은 광동일지천과 상대했다. 1회전에서 연변팀은 광동일지천과 2 : 2로 비겼다. 2회전에서 이기면 연변팀의 갑급진출이 성공되는 판이었다. 2회전 전반 연변팀은 1 : 0으로 앞섰다. 당시 연변팬들은 축하파티를 마련할 준비를 했고 스포츠기자인 필자는 연변팀 갑급진출을 축하하는 언론을 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후반들어 연변팀이 상대한테 연속 2골을 허락하며 패할줄이야. 갑급진출 무산 뉴스에 팬들은 낙심했다. 축구파티상에 오른 요리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 축하 언론을 쓴 원고지는 구겨진 채 파지통에 들어갔다. 그 뒤 이호은 감독은 사표를 냈다. 3년동안 애를 쓰며 연변축구의 갑급진출을 위해 노력했으나 역시 자신의 한계를 감안한 모양이었고 또 지치고 서글픈 모양이었다. 그 이듬해 연변 주 체육국에서는 당시 상해에서 상해천나팀의 감독을 맡고 있던 고훈 감독한테 러브콜, 이에 고훈 감독은 상해에서의 모든 우월한 조건도 송두리채 버리고 고향축구를 위해 연변으로 달려왔다. 그 이듬해 즉 2004년의 을급리그 연변홈장은 화끈한 분위기었다. 매 경기마다 수만명의 관중들이 동원, 당시 길림신문의 최승호 기자는 연변홈장을 “을급리그의 슈퍼리그 분위기”라고 표현했다. 그 해 10월 말, 연변세기팀은 을급리그 북방구의 우승(무패행진)으로 하남성 정주에서 있은 8강전에 참가했다. 당시 연변팀은 제1라운드의 2경기를 거쳐 산동구거룡팀을 격파하고 제2라운드의 2경기를 거쳐 운남 여강팀을 완승하여 갑급진출에 성공하여 연변축구의 비장한 한페지를 기록했다. 그 이듬해 즉 2005년부터 연변팀은 전국축구 갑급리그에 참전하게 됐다. 사령탑은 자연스럽게 고훈 감독이 맡게 됐다. 고훈 감독이 연변팀을 맡고 갑급리그에서 올린 성적은 다음과 같다. 2005년 갑급 5위, 2006년 갑급 6위, 2007년 갑급 6위었다. 그 시기 연변축구구락부는 선후로 3명의 주인이 교체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또한 일련의 혼란과 손실을 보았지만 구단성적은 갑급리그 참전 이래의 가장 양호했고 구단도 가장 안정되던 시기었다. 헌데 갑급리그가 결속된 뒤인 그해 11월 20일, 연변축구사상에 전례없던 변고가 생겼다. 이른바 축구계의 사업일군과 축구원로, 심지어 축구선수들까지 참여하에 “투표의 방식”으로 감독을 선거했다. 후에는 다 밝혀졌지만 이는 주체육국 골간층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당시 이호은, 조영원, 고훈 등 3명이 경쟁발언을 한 가운데 조영원씨가 가장 많은 투표수로 감독지휘봉을 받아안게 됐고 연변축구의 공로자인 고훈한테 준 투표수는 고작 3표에 불과했다. 고훈감독을 놓고 말하면 주견이 있는 축구인이었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면 상급 지도일군의 권고 등은 듣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정치와 개인적용망 및 그것을 둘러싼 “외교” 등이 참여하는 중국축구계ㅡ 당시 고훈은 최은택, 이장수와 더불어 이런 현상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 해 연변에서는 조영원 감독을 내세워 이듬해 즉 2008년에 슈퍼리그 진출성공과 전국운동회 우승을 쟁취하여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하지만 그것은 근근히 욕망뿐이었다. 그 이듬해 연변팀은 시즌 초반 연속되는 부진으로 조영원 감독이 조기하차했고 전국운동회 리그도 중도에서 탈락되었으며 감독 지휘봉은 황용한테 넘어갔다가 성적부진으로 현춘호한테 다시 넘어갔으며 최종 김광주가 감독직을 대행했다. 당시 김광주는 구단의 “급시우”였다. 마지막 몇경기를 악전고투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2009년 연변팀은 김광주의 지휘하에 갑급 6위를 기록했고 그 이듬해인 2010년에는 12승 4무 8패 41점으로 갑급 제3위 차지, 갑급시즌 참여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을 따냈다. 2011년, 연변팀의 박성, 김경도, 한청송 등 많은 주력선수들이 이적해갔다. 그해 김광주감독이 아무리 애를 썼지만 연변팀은 부진을 거듭한 끝에 갑급 11위에 머울었다. 그 이듬해 2012년 연변팀은 또 감독풍파가 많은 해로 됐다. 초기 정상용이 사령탑을 잡았다가 그것이 한국인 조긍연한테로 넘어갔고 마지막 그래도 또 김광주가 동산재기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그해 연변팀의 성적은 8승 5무 13패었다. 그리고 지난해인 2013년 연변장백호랑이축구구락부에서는 재차 조긍연 감독을 초빙해 뭔가 시도했으나 여전히 실패, 나중에 이광호가 뒤수습을 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그 다음은 올해 2014년의 일이다. 이호은에 이어 이광호가 재차 사령탑을 잡게 됐다. <축구논평 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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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8
  • 연변 부진 연속 하북중기에 1 : 2 분패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연변장백산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의 연패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17일, 석가장시 유동경기장에서 있는 갑급리그 제10라운드에서 연변팀은 하북중기팀에 1 : 2로 뒤지며 지난번 대 이공전 참패의 설욕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경기초반, 약 5분간 쌍방의 시탐전이 있은후 하북중기팀이 홈장우세를 이용하여 공격에 나섰다. 경가개의 슈팅으로 득점을 시도했고 양보명, 장간, 왕상 등 선수들의 슈팅 역시 연변팀의 골키퍼 윤광의 선방에 맞거나 크로스바(球门)를 스쳐 지나갔다. 연변팀은 간헐적인 공격으로 상대방의 뒤공간을 노렸으나 스트라이커 라인(前锋线)의 활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변팀은 경기 30분경에야 겨우 10번 지충국이 첫 슈팅을 날렸을뿐이었다. 그러던 경기 36분경, 상대방은 연변팀 오영춘 선수의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 기회에 외적용병 마르케스가 헤딩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이어 연변팀은 정신을 가다듬고 공격력을 강화, 41분경 6번 이훈 선수가 날린 슈팅이 크로스바를 스쳐지나갔고 전반 종료를 앞두고 7번 최인 선수가 개인기를 이용해 동점골을 뽑았으나 주심에 의해 웹사이드로 판정되었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9번 김도형 선수 대신 17번 고만국 선수를 교체하면서 스트라이커선이 활약을 보이기 시작, 후반 3분과 15분, 최인 선수가 날린 슈팅이 각각 아쉽게 빗나갔고1분뒤 코너킥기회에 5번 진효 선수의 헤딩슈팅도 득점과 이어지지 못했다. 후반 17분 하북중기팀은 10번 두문휘의 센터링(传中)을 주해위가 헤딩으로 연변팀 꼴문을 재차 갈랐다. 후반 26분 연변팀의 최인 선수가 상대방 수비수 2명의 수비수를 따돌리며 한꼴 만회했다. 이어 연변팀은 연속 선수들을 교체멤버하면서 공격력을 강화했으나 항상 공격의 마지막 마무리가 미끈하지 못해 공점골에 실패했다. 17일까지의 갑급순위를 보면 석가장영창이 7승 2패(9경기) 21점으로 갑급선두를 달리고 있고 연변팀은 1승 1무 8패 4점으로 여전히 갑급꼴지에 머물러 있다. 오는 24일 연변팀은 연길홈장에서 청도중능팀과 제11라운드 경기를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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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7
  • 인도 프로리그의 재일조선인 선수
    부탄,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인도 변방의 프로 축구팀에서 전 J 리거 김성용(27) 선수가 활약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이라 해외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비자 취득 절차가 지연돼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장에서는 국적도 국경도 상관없다”며 그러한 역풍에 맞서고 있다.  도쿄도 아다치구(東京都足立区)에서 태어나 철이 들면서부터 축구공을 갖고 놀았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처음으로 북한 대표로 선발된 김광호(58) 씨가 부친이라 축구의 길로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조선대학교 체육학부(돜도 고다이라시=小平市)를 졸업하고 2009년 교토 상가(京都サンガ)에 입단했다. “오랫동안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일본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데 대한 공포심이 있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일본도 조선도 상관없었다.3년 후 ‘자스파쿠사쓰(ザスパ草津, 현재 자스파쿠사쓰군마=ザスパクサツ群馬)’로 이적해 포워드로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 활약이 주목을 받아 태국 프로팀의 부름을 받았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조선국적이라는 이유로 비자가 좀처럼 발급되지 않았다. 2013년 2월 태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현지에 들어간 것은 4월 중순. 이미 리그는 시작됐다.“팀원들은 화가 나 있는 상태였고, 1년 계약이었는데 3∼4개월로 단축하게 됐다” 계약이 끝나갈 때쯤 인도 북동부 메갈라야주(州)의 낯선 팀에서 이적에 관한 타진을 받았다.인도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축구 수준도 결코 높지 않다. “카레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팀의 본거지인 메갈라야주의 주도 실롱은 뉴델리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 자동차로는 약 4시간 소요된다. 그러나 “스포츠에 국경은 없다는 것을 내 힘으로 증명하고 싶다”고 결심, 프로팀 ‘Rangdajied United FC(랑그다지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비자 취득에 또 다시 시간이 걸려 리그가 시작된 지 한 달 이상 지난 11월 하순, 겨우 팀에 참가했다. 팀은 7 경기가 끝난 시점에서 최하위였다. 입단한 직후인데 제너럴 매니저(GM)에게서 “5 경기를 치를 동안에 결과를 내지 못하면 계약연장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기후도 음식도 달랐고 팀원의 경기 방식도 몰랐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실력과 경험뿐이다. 나선 경기에서 2골을 성공시켰고 팀에 남을 수 있었다.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메갈라야주에서 일본인의 모습은 거의 보지 못한다. “어려운 환경이니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클럽하우스와 라커 룸도 없는 이국에서의 생활을 계속해 왔다. 리그가 끝난 지금도 그러한 생각은 변함없다.국경을 넘은 이적으로 고생했다. 공항에서는 북한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방으로 불려간 적도 있다. “경기장 밖에서도 사람과 사람의 벽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기사출처: 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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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6
  • [ACL16강] FC서울, 홈장서 1:2 패...원정 다득점으로 8강 진출
    [동포투데이 스포츠] FC서울은 14일 오후 7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와의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1-2로 패했다. FC서울은 전반 8분 에스쿠데로가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전반 29분 한번의 실수로 동점골을 허용했다. 1-1로 후반전을 재개한 양 팀은 쉼 없이 하프라인을 오가며 공방전을 벌이던 중 가와사키는 모리시마가 후반전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성공하며 경기 승부를 뒤집었다. 경기는 2-1 가와사키의 승리로 끝났지만 1,2차전 합계는 양 팀이 4-4 동률을 이뤘고 원정 다득점에서 앞선 서울이 8강행의 디켓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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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5
  • [ACL16강] 광저우 헝다 홈에서 0-1 패... 원정 다득점으로 ACL 8강 진출
    [동포투데이 스포츠] 광저우는 지난 13일 중국 광저우의 텐허스타디움서 열린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세레소 오사카(일본)와 경기서 전반전을 0-0 무승부로 마친 광저우는 후반 4분 랴오링성의 자책골로 선제골을 내주면서0-1로 패했다. 하지만 지난 1차전 원정에서 5-1 대승을 거둔 광저우는 1, 2차전 합계 5-2로 8강에 무사히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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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5
  • 후세에 기록될 연변축구의 “애도일”
    ■ 민 함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에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대 이공팀과의 경기ㅡ 무너져도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승은 못하더라도 2 : 1정도로는 앞설 것으로 여겼었고 적어도 빅을 수는 있으리라 장담했었는데 어이없다. 실망이고 우려되며 비애로 엉켜진다. 시즌초반 원정이 많아서, 객관환경이 열악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홈장에서의 학생군단한테 1 : 5 대패! 이제 이길만한 팀은 과연 어느 팀?…연변축구가 대패한 기록- 1995년 10월 8일, 원정에서 사천전흥한테 0 : 6으로 대패한 적은 있었다. 그때는 원정이고 또한 “흑사심” 대위광이란 심판때문에 초래된 결과였지만 이번의 대패는 어이없는 참패이고 “인재(人灾)” 이다. 경기 15분까지의 연속되는 3골 허락,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많은 팬들이 기가 막혀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보니 당시의 천공은 노랗기만 했다. 교묘하게도 1995년 10월 8일, 원정에서의 대패와 이번 참패 때의 경기지휘자는 한사람이었다…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실력이 약해서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될 수 있었다. 톱라인이 어느 정도 미흡할뿐 골키퍼로부터 수비와 미드필더 라인은 상대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았다. 공점유율도 상대방보다 많은 것 같았다. 선수들의 플레이와 투혼도 화염방사기에 못하지 않았고 화려한 장면도 수차 있었다. 하다면 뭐가 모자랐던가? 상대한테 자신을 너무 노출시킨 것이 흠이었다. 상대는 우리를 알고 빤히 꿰뚫어 보고 북상했다. 변화가 없다. “비밀카드”도 없다. “전면진공, 전면방어”, 20여년전의 “카드”였다. 우리 연변축구 전통풍격에 너무 얽매였다. 전통을 계승하되 새로운 풍격 수립에도 남보다 한발 앞서야 할테지만 그것에 실패했다. 키가 작고 기술 또한 짝지며 거기에 체능우세가 없으며 기전술운영도 막말로 “생산대축구”와 근사했다. 백라인에서 변선으로, 변선돌파에 이어 센터링(传中) … 너무나도 단조롭다는 생각이다. 공연결 라인이 다양하지 못하고 선수의 속도와 공제공 사이의 차질이 잦았으며 득점할만한 화력망구축이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지난 제 6 라운드에서는 10여차의 코너킥 기회가 생겼지만 그것으로 단 1골도 만들지 못했다. 이에 대비한 전문적인 훈련미흡이라 볼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하지만 노상 “애도”하며 “제사”만을 지낼 수는 없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사령탑이 바뀌었다. 이는 일종 반전의 계기로 될 수도 있다. 그 사례는 많다. 2008년부터 김광주와 이광호 “소장파” 축구인들이 타인한테서 수차 감독직을 이어받으며 팀위기를 만회하기도 했다. 연변팀을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갑급 중위 권에는 속할 수 있는 팀, 절대 꼴지그룹에 처질 팀은 아니다. 연변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영단묘약”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연변팀은 꼭 반전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불현듯 오또기가 생각난다. 오또기는 넘어뜨려도 다시 절로 일어난다. 올해의 연변팀을 그렇게 비유하면 어떠할는지?2001년 여름, 당시 연길시에서는 원 시인민경기장으로 올라가는 길을 포장길로 만들었다. 그 때 국내의 어떤 매체들에서는 “연변에서 오동팀의 갑B로 가는 길을 수건한다”고 빈정댔다. 올해 연변팀은 새로 세운 현대화한 연길시인민경기장에서 홈장경기를 펼치고 있다. 하다면 연길시인민경기장이 우리 연변천양천팀의 “무덤”으로 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바이다.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고, 슬프고 또한 힘들더라도 지난간 일에 너무 빠져있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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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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