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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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지] 용정 3.13 반일의사릉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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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선족의 역사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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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만주독립군 활동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2.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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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조선족학교 수는?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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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문 보내라"
-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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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에 묻힌 옛 동네의 이야기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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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외국인 장군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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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④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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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②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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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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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울령 저쪽에 고려마을이 있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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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과 포대 그리고 장성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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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해변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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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 한반도 전쟁과 그것이 남긴 기나긴 여운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6.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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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항일명장 왕일서, 그는 한국인이였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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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지] 용정 3.13 반일의사릉
[동포투데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 합성리촌에 자리한 3.13반일의사릉에는 1919년 3.13반일운동에서 희생된13명의 의사가 묻혀있다. 약 500평방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릉원은 앞줄에 9자리, 뒷줄에 4자 리로 이뤄졌다. 14명 의사 중 한명의 묘소는 유가족에 의해 이장됐다.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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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선족의 역사
● 김 규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한민족으로 대개 조선시대 말부터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형성된 역사가 짧기에 여기서 잃어버린 역사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조선족 지식인들이나 역사학가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백여 년밖에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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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만주독립군 활동
● 김 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선의용군’을 검색해보면 만주에서 싸우던 독립군 부대라고 버젓이 나온다. 해서 만주에서 조선의용군 혹은 조선 의용대가 싸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이 곧 조선독립군이고 만주에서 만들어진 조선독립군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2.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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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조선족학교 수는?
[동포투데이] 중국 조선족 교육의 기원은 1906년 연변 용정에 세워진 서전서숙이다. 그 후 연변의 서전서숙을 시작으로 하여 요녕, 길림, 흑룡강 등지에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기 시작하였다. 1949년 신 중국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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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문 보내라"
▲2013년에 공개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동포투데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올해도 보내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큰 논란이 예상된다. 매년 9월 1일에는 도쿄도 내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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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에 묻힌 옛 동네의 이야기
●김호림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 때문이었다. 용정은 1886년 조선인들이 지은 이름이지만 최초의 주민은 조선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동네 지명 역시 이 용정이 첫 이름이 아니라고 한다. 용정에 처음으로 조선인 마을이 생긴 것은 1877년 봄이었...-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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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외국인 장군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노농홍군이 강행한 2만5000리 장정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외국인들도 있었다. 거기에는 저명한 외국국적 공산당원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남기지 않은 ‘무명영웅’도 있었다. 또한 장정도중 홍군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을 한 외국인 전도사도 있었다. 그럼 오늘 이 글에...-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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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④
▲김염과 왕인미.ⓒ인터넷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왕인미는 1914년 호남 장사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부친 왕정권(王正权)은 일명의 교사로서 지식이 연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고귀한 것은 사상이 아주 개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왕인미한테 몇 명의 언니가 있었지만 왕정권은 딸...-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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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②
▲진의와 유명 영화배우 김염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혼 후 진의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모든 정력을 쏟겠노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맹세는 어디까지나 맹세에 그쳤고 실행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의의 그러한 맹세는 조선인 남자 김염(金焰)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렸다. 김염(원명: 김덕린) ㅡ 1910년 조선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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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김호림 창동학교는 8.15광복을 맞은 후 다시 와룡동에 부활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서쪽 산비탈의 옛 터를 버리고 마을 북쪽의 평지에 따로 학교 건물을 세웠다. 김동욱옹은 어릴 때 새로 지은 이 창동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학교를 내놓고 또 과외처럼 즐겨 다니던 곳이 있었다. 그와...-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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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울령 저쪽에 고려마을이 있었다
예전에 도문에서 훈춘으로 가려면 꼭 그 산마루를 넘어야 했다. 일명 까울령, 그 무슨 까마귀가 날아가다가 울음을 떨어뜨린 이름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산이 하도 가파르고 높아서 새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었을까. 까울령은 두만강 기슭까지 머리를 쭉 내밀고 장벽처럼...-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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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과 포대 그리고 장성
●김호림 마을 한복판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반듯한 돌로 둘레를 쌓아올렸고 용두레를 잣아 드레 박으로 물을 퍼서 올렸다. “물이 많고 맑았는데 맛 또한 좋았지요.” 최흥수씨는 우물처럼 깊은 기억을 퍼서 다시 눈앞에 떠올렸다. 그는 이 우...-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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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해변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전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장 결정적인 의의가 있는 중대한 전역이었으며 영미동맹군이 상륙작전에서 성공하여 제 2의 전장을 개척한 전역이기도 했다. 하다면 당시 가령 노르망디 해변을 지킨 군대가 일본군이었다면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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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 한반도 전쟁과 그것이 남긴 기나긴 여운
●철 민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아ㅡ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 이 노래는 우리 민족 분단의 괴로움을 잘 반영한 노래이고 무려 70여 년간 불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6.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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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항일명장 왕일서, 그는 한국인이였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조선을 강점해 버리자 망국노로 되기를 원치 않는 많은 조선인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건너갔으며 이 두 나라를 광복을 위한 기지로 삼고 일련의 굴곡적이고도 간고하게, 그리고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조국광복을 위한 피에 얼룩진 범상치 않는 투쟁을...-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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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지] 용정 3.13 반일의사릉
[동포투데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 합성리촌에 자리한 3.13반일의사릉에는 1919년 3.13반일운동에서 희생된13명의 의사가 묻혀있다. 약 500평방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릉원은 앞줄에 9자리, 뒷줄에 4자 리로 이뤄졌다. 14명 의사 중 한명의 묘소는 유가족에 의해 이장됐다. 조선인들이 항일무장투쟁의 길로 나아가게 된 계기로 볼 수 있는 용정 3.13반일운동은 조...-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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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선족의 역사
● 김 규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한민족으로 대개 조선시대 말부터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형성된 역사가 짧기에 여기서 잃어버린 역사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조선족 지식인들이나 역사학가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백여 년밖에 안되는 조선족 역사에 그 무슨 비밀 같은 것이 있으며 잃어버린 것이 있을쏘냐고...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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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만주독립군 활동
● 김 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선의용군’을 검색해보면 만주에서 싸우던 독립군 부대라고 버젓이 나온다. 해서 만주에서 조선의용군 혹은 조선 의용대가 싸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이 곧 조선독립군이고 만주에서 만들어진 조선독립군 백두산 독립군이나 만주 독립군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서 항일연군에도 가담하지 않았나 혹은 항일연군에 속...-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2.20 14:53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2.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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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조선족학교 수는?
[동포투데이] 중국 조선족 교육의 기원은 1906년 연변 용정에 세워진 서전서숙이다. 그 후 연변의 서전서숙을 시작으로 하여 요녕, 길림, 흑룡강 등지에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기 시작하였다. 1949년 신 중국 창립 이후 조선족 교육은 중국 정부의 민족정책하에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는 1979년 개혁개방 이후...-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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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문 보내라"
▲2013년에 공개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동포투데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올해도 보내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큰 논란이 예상된다. 매년 9월 1일에는 도쿄도 내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이 40년 이상 개최돼 왔다. 과거 이노세 나오키, 마스조에 요이치 등 도쿄지사들은 재직 중 이 ...-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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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에 묻힌 옛 동네의 이야기
●김호림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 때문이었다. 용정은 1886년 조선인들이 지은 이름이지만 최초의 주민은 조선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동네 지명 역시 이 용정이 첫 이름이 아니라고 한다. 용정에 처음으로 조선인 마을이 생긴 것은 1877년 봄이었다. 조선 평안북도의 김언삼, 함경북도의 장인석, 박윤언 등의 식솔 열네 가구가 이곳에 초가를 짓고 화전...-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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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외국인 장군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노농홍군이 강행한 2만5000리 장정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외국인들도 있었다. 거기에는 저명한 외국국적 공산당원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남기지 않은 ‘무명영웅’도 있었다. 또한 장정도중 홍군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을 한 외국인 전도사도 있었다. 그럼 오늘 이 글에서는 주로 4명의 외국인 공산당원을 소개, 이들로는 소련에서 온 이덕(李德), 조선에서 온 필사제(毕士悌)와...-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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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④
▲김염과 왕인미.ⓒ인터넷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왕인미는 1914년 호남 장사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부친 왕정권(王正权)은 일명의 교사로서 지식이 연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고귀한 것은 사상이 아주 개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왕인미한테 몇 명의 언니가 있었지만 왕정권은 딸들에게 전족(裹脚)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지어는 보모로 들어온 어멈까지도 발이 큰 여인이었다. 그리고 왕...-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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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②
▲진의와 유명 영화배우 김염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혼 후 진의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모든 정력을 쏟겠노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맹세는 어디까지나 맹세에 그쳤고 실행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의의 그러한 맹세는 조선인 남자 김염(金焰)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렸다. 김염(원명: 김덕린) ㅡ 1910년 조선 서울에서 태어난 김염은 1912년 한의사이며 독립운동가인 부친한테 지명 수배령이 떨어지자 가족을 따라 중...-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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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2020.08.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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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김호림 창동학교는 8.15광복을 맞은 후 다시 와룡동에 부활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서쪽 산비탈의 옛 터를 버리고 마을 북쪽의 평지에 따로 학교 건물을 세웠다. 김동욱옹은 어릴 때 새로 지은 이 창동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학교를 내놓고 또 과외처럼 즐겨 다니던 곳이 있었다. 그와 또래들은 예배를 보는 날이면 학교 북쪽에 있는 교회당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전 씨 성의 집사...-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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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울령 저쪽에 고려마을이 있었다
예전에 도문에서 훈춘으로 가려면 꼭 그 산마루를 넘어야 했다. 일명 까울령, 그 무슨 까마귀가 날아가다가 울음을 떨어뜨린 이름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산이 하도 가파르고 높아서 새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었을까. 까울령은 두만강 기슭까지 머리를 쭉 내밀고 장벽처럼 앞뒤를 가로막고 있다. “겨울이 되면 어떤 차들은 산길을 버리고 얼음 위로 달렸지요.”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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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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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과 포대 그리고 장성
●김호림 마을 한복판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반듯한 돌로 둘레를 쌓아올렸고 용두레를 잣아 드레 박으로 물을 퍼서 올렸다. “물이 많고 맑았는데 맛 또한 좋았지요.” 최흥수씨는 우물처럼 깊은 기억을 퍼서 다시 눈앞에 떠올렸다. 그는 이 우물 근처의 동네에서 집을 짓고 살던 사람이다. 예전에 우물은 동네방네 소문을 놓았다고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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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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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해변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전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장 결정적인 의의가 있는 중대한 전역이었으며 영미동맹군이 상륙작전에서 성공하여 제 2의 전장을 개척한 전역이기도 했다. 하다면 당시 가령 노르망디 해변을 지킨 군대가 일본군이었다면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전역에서 영미동맹군은 도합 288만 명의 군대, 1200척의 작전함정, 4126척의 상륙함정, 5000척의 운수선...-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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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 한반도 전쟁과 그것이 남긴 기나긴 여운
●철 민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아ㅡ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 이 노래는 우리 민족 분단의 괴로움을 잘 반영한 노래이고 무려 70여 년간 불려 진 노래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한반도에는 전쟁이 터졌다. 외세와...-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6.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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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기고
2020.06.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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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항일명장 왕일서, 그는 한국인이였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조선을 강점해 버리자 망국노로 되기를 원치 않는 많은 조선인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건너갔으며 이 두 나라를 광복을 위한 기지로 삼고 일련의 굴곡적이고도 간고하게, 그리고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조국광복을 위한 피에 얼룩진 범상치 않는 투쟁을 벌였다. 이들한테는 해당 국가와 군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리하여 많은 조선...-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2 09:22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2 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