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족에게 무례한 한국영화
●석운우
어김없다. 한국영화에 또 다시 조선족이라는 클리셰가 사용됐다. 지난 수년간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족은 어김없이 범죄자였으며 그 모습 또한 점점 뚜렷하고 과감하게 묘사되고 있다. 결국 한국영화에서는 어째서 조선족을 악랄한 범죄자로 묘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이성적인 판단이 조금은 흐려지는 분노감마저 유발한다. 무책임하게 자행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조선족 이미지 사용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얼마 전 액션/코믹 장르라는 '청년경찰'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액션과 코미디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아무리 웃음으로 장면들을 승화시키려고 해도 쉽게 되지 않았다. 불가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청년경찰은 무례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독하게 무례한 영화다. 영화 줄거리는 두 명의 경찰대생이 납치당하는 여자를 구출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남자의 도움이 없으면 탈출이 불가능한 여자를 내세움으로써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치부하는 이 영화는 젠더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현대 사회의 방향성과 정반대를 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종이나 민족을 차별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 요소에서 기인한다. 위에 말한 대로 이 영화는 액션 장르가 포함되어 있다보니 주인공과 싸울 악당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악당이 뜬금없이 조선족이라는 것이다. 대체 조선족을 사람이나 납치하고 죽이려고 하고 장기적출까지 서슴지 않는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이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생각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라는 물음이 들게 한다.
조선족은 영화 '황해'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에서 그릇된 시선을 받으며 등장했다. '황해'의 주인공이 돈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청부업자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영화 '신세계'에서는 이름도 없는 그냥 연변 거지다. 이 인물들 역시 돈을 위해서 여자를 잔인하게 폭행하고 납치에 살인까지 자행하는 인물들이다. 다른 영화에서도 조선족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쯤 되니 문제가 심각해졌다. 조선족을 멋대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잣대질하면서 전부를 싸잡아 시궁창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자국인을 해하는 악당이 타국인이었으면 하는 이기적이면서 터무니없는 욕심으로 만들어진 피해자는 조선족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황해'나 '신세계'가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이견이 없다. 인간의 본성과 탐욕, 배신 등 감정표현들이 괜찮은 방식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와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하여도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남았던 찝찝함은 가시지를 않았다.
'황해', '숨바꼭질', '신세계'로 이어진 조선족의 악당 이미지는 이번 청년경찰에 들어서서 결국 정점을 찍어버렸다. 애꿎은 대림동까지 범죄자들이 거주하는 소굴로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각인을 누구도 책임지지는 않고 있다. 물론 조선족을 경계하는 한국사회의 사고를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한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조선족 출신에 의해 자행됐다는 사실을 묵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이 조선족의 연대책임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지금의 한국영화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상처는 다른 영화를 통해 약간이나마 치유를 받는 것이 전부이다. '내 이름은 칸'이라는 영화는 인종이나 민족이 차별을 당함으로써 겪는 아픔에 대해서 조선족을 대신해 말해준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내에서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주인공과 가족들은 그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줄거리의 영화로써 악행을 저지른 그 당사자나 집단이 아님에도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탄압과 멸시를 받는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묘사한 이 영화야 말로 한국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청년경찰'을 연출한 김주환 감독은 시사회 때 “냉전 때의 미국은 늘 구소련을 적대자로 그려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얼어붙게 하는 대상을 찾다 보니 극적 구조상 이렇게 됐다. '신세계' 이후 많은 영화들에서 이런 묘사들이 등장한다. 편견이라기보다는 영화적 장치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본인이 만들어 놓은 무책임한 장치가 조선족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 영화적 장치로 인하여 생긴 편견들과 싸우는 것은 온전히 조선족의 몫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냉전시대의 미국이 소련을 바라봤던 시점을 한국이라는 국가가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점에 대입하는 것 또한 비이성적인 대입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조선족을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보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영화는 진지하게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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