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5000년의 전통을 가진 봉건국가였다. 자고로 나라적으로는 여성을 기시하고 학대해왔다. 그 사례로 여인한테 쫑발(전족)을 하도록 했고 황제가 죽으면 그 궁녀들도 함께 매장다는 관례도 있었으며 여성을 크게 중용도 하지 않았었다. 중화민국이 건립되기 전 청조말년까지 중국에는 크게 벼슬을 한 여성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공화국 시대인 20세기에 와서도 정부나 사회적으로 크게 활약하는 여성거두들이 많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중국의 공산당 중앙이나 국가정부내의 여성지도일꾼 비율은 아주 가련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나 정당 내에서 내노라 하는 위인들도 가정 내에서는 부인의 말을 곧 잘 듣는 <로봇>으로 되기가 일쑤이다. 언젠가 한편의 글을 번역하다가 이런 내용을 본적이 있다.
“민국의 첫 외교장관의 부인 황혜란은 남편 고유균의 내연녀한테 질투한 나머지 마작을 놀고 있는 고유균의 머리에 찻물을 쏟아 던졌다. 이에 고유균은 그녀의 그런 막된 행위에도 꾸중 한번 하지 않았으며 그냥 마작 쪽만 만지었다고 한다.”
그럼 나라 적으로는 크게 중용하지 않으나 왜 가정 내에서는 여성한테 고분고분할까?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남성들은 여인을 감상용으로 볼 때가 많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민국의 외교장관 고유균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그리고 여인에 대한 남편들의 기대란 밤생활 배동을 잘해주고 자녀나 잘 낳아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남성들의 말을 따르면 중국 여인은 밤 생활에서 아주 주동적이고도 적극적이어서 남편한테 아주 큰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낮에 남편을 대하는 행위와는 정반대되는 중국여인들의 밤생활 모습이다. 또한 중국 여인들의 말을 빈다면 낮에 보는 남편은 마치 자신의 남동생이나 아들 같기에 욕도 하고 심지어 때리기도 한단다. 이 외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중국 여인들은 남편만 요구하면 언제든지 애를 낳아줄 각오로 산다고 한다. 이렇듯 중국 여인들이 자녀출산에 적극적이기에 중국 인구가 14억으로 육박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죽했으면 중국에는 <생육유격대>란 소품도 있다. 즉 계획생육을 제창하던 시기, 산아제한을 피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출산을 견지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아내의 동조가 없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중국 여인들은 남편을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지금은 많이 개방되었지만 아직도 그 옛날 전족전통의 뿌리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는 쩍하면 <이혼>이요, <졸혼>이요 하면서 가출을 밥먹 듯 하는 한국 여인(조선족 여인 포함)들과는 판판 다른 모습이다. 현재 중국에는 결혼적령기 독신자가 약 2억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 14억의 약 7분의 1에 달한다. 아직 통계를 보지 못했으나 이런 폐단은 한국이나 중국 조선족의 경우는 몇 배 더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이 외 중국인들 중에는 용감하고 견정하며 재능이 출중한 여인들이 많다. 그제 날 항일전쟁 시기에는 유격대 대장으로 조일만(赵一曼)처럼 모젤 권총을 뽑아들고 진격에 앞장서는 여장군을 흔히 볼 수 있었는가 하면 그 뒤 제4차 국내전쟁 시기에는 강죽균(江竹筠)이나 유호란(刘胡兰)같은 견정한 의지의 여 영웅이 자주 나타나기도 했다. 또 있다면 건국 후에는 수많은 여성 노동모범 혹은 선진일꾼이 출현했으며 특히 문화예술 및 스포츠 분야에는 출중한 여 스타들이 많았다. 이 중 중국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대형 경기에 나가 따낸 메달 가운데서 여성선수들이 따낸 메달(금, 은, 동)이 3분의 2정도가 된다는 집계도 있으니 중국 여인들의 활약상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남자배구나 남자축구와는 달리 중국의 여자축구와 여자배구는 그래도 한동안 세계를 석권한 자랑할 만한 역사도 있었다.
이 글의 서두에서는 고정관념으로 말하면 중국 여인들은 나태하고 구질구질…어떻고 어떠한 것으로 전해져 왔다고 썼다. 헌데 이렇게 전해온 것과는 달리 현재의 중국여인들은 대단히 부지런하다. 중국 여인들이 게으르다는 것은 그제 날 부지런해도 그 수입, 게을러도 그 수입이던 때의 얘기다. 지금의 중국 여인들은 대단히 부지런하다. 그 사례로 중국 연변의 서시장이란 곳에 가보면 곧 알게 된다. 새벽부터 도매시장에 가 물건을 구입해서는 하루 동안 매장에서 부지런히 물건을 팔며 조선족을 대상으로 “아바이(할아버지), 물고기를 삽소”, “아재(이모), 이 옷을 사우다”라고 하며 조선말도 아주 유창하게 잘한다. 이런 중국 여인들을 두고 근로하고 부지런하다고 칭찬은 못해줄망정 게으르다고 비양 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중국 여인들이 입이 쌍스럽다는 말도 주로 북방의 여인들을 두고 하는 얘기지 남방으로 가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중국에서의 여인의 역할은 대단하다. 각 분야별로 보면 특히 경제 ‧ 서비스 분야 ‧ 문화스포츠 분야와 교육 ‧ 의료 ‧ 위생 분야 등은 여성인구가 50% 혹은 그 이상의 비율을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중국의 건국 수령 모택동도 <여성은 절반 하늘>이라고까지 평가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중국 인들은 여성한테 큰 벼슬은 주지 않는다.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여성 대통령 혹은 여성 총리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봉건전통이 심했던 한국에서도 여 대통령(박근혜)이 선거된 적이 있다. 그럼 개혁개방이 된지도 40년이 된다는 중국에서도 여성 주석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림도 없다는 분석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자주 모 기관의 여성간부 비율이 얼마요 하며 그 집계를 공개하고 있지만 그것은 기층의 집계이지 당 중앙이나 국가정부 기관의 여성 지도자 비율은 그저 <흉내>를 내는데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 좋다. 그것도 정급은 별로 없고 부급(한국의 차관)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국 남성들은 여인을 감상용으로 대할 때가 많다고 위에서도 언급됐다. 그네들의 말을 빈다면 화를 내는 여인을 보면 귀여우며, 우는 여인을 보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남성들은 “당신의 부인은 진짜 아름답습니다”란 말을 들으면 매우 기뻐한다. 부인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하지 않을 남편이 어디 있으련만 중국 남성들은 각별하다. 반면에 중국 남성들은 “당신의 부인의 실력이 대단합니다”라는 말에는 썩 내켜하지 않는다. 중국 남성들은 의심이 많으며 속이 검은 사람이 적지 않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직설적인 여성의 성격에 비해 중국 남성들은 흔히 속이 좁고 음흉하며 말을 해도 에둘러대기가 일쑤이다. 중국에는 <남자의 재능에 여인의 미모(男才女貌)>란 사자성구가 있다. 하다면 의심이 많고 속이 좁으며 음흉하고 말을 에둘러대는 것도 남자의 재능이라면 그 범주에 속할 수도 있으리라.
지난 세기 80년대 초까지도 중국의 연변에서 조선족 여인이 한족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한족여인과 결혼하는 조선족 남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젠 한족여인과 결혼하는 남성의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건 조선족 여인의 유출인구가 많아지는 원인도 있겠지만 한족여인을 보는 조선족 남성들의 고정적인 관념이 그만큼 깨어졌으며 또한 그만큼 한족여인이 좋아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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