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허성운(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많은 방언학자들은 표준어 할아버지에 대응되는 함경도방언을아바이로만 거론하여 왔다. 함경도에서의 아바이(abai)는 부모의 아버지와 같은 항렬에 있는 남자들을 이르는 말에 반해 부모의 아버지에만 한정된 호칭인 커라바이(khabai)라는 토박이말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바이는 역사가 깊은 단어이다. 함경도에서는 할아버지를 의미하나 커라바이 맏아바이 아즈바이 오라바이 등 친족어 계열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연장자 의미가 내포되어 경상북도와 평안도 일부에서 아버지를 아바이로 부르는 호칭과도 일맥상통된다. 아바이(abai)이 방언은 만주어에서 하늘을 뜻하는 아바카(abka) 그리고 북방언어계통에서 신성한 사람 하느님을 뜻하는 안파견 아바칸과 하나의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실제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서 인명으로도 불리어왔다.

고유어의 화석 같은 존재인 아바이 단어는 생물유기체와도 같은 진화를 거듭하며 함경도 방언에서 커라바이 제주도 방언에서 할아방 강원도와 경상도방언에서 할배로 나타나고 있다. 몽골과 흉노 중앙아세아에서 지도자를 지칭할 때에는 한 (han) 또는 칸(khan)으로 부르며 “ㅎ”발음과 “ㅋ” 발음이 상호전환 되는 규칙을 감안해 보면 사실 함경도방언 커라바이와 타지방의 할아방 할배 등 방언들은 쌍둥이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여러 줄기로 노출되어 있는 모양새이다.

예전에 늘 쓰고 들어왔던 “커라바이”라는 말은 오늘날에 와서 “할아버지”라는 표준어에 밀리여 아주 제한된 세대에서 사용되고 있어 이제는 영어 일어 러시아어를 술술 배워내는 우리 아래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선인들이 써왔던 이런 모어가 울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는 외래어로 전락되고 있다. 연변과 함경도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넓은 땅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뼛속깊이 뿌리내린 함경도방언은 조상들이 살고 간 역사의 흔적으로서 마치 앙금처럼 숱한 역사가 누적된 우리문화유산이나 이제 이런 말들은 바야흐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오늘날에 와서도 일부 방언학자들은 연변과 함경도지역에서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르는 언어현상을 마치 바깥세상과 동떨어진 외딴 섬나라 미개인의 언어로 풀이하고 있지만 그 어원을 깊이 따지고 보면 중세 몽골어에서는 남편 혹은 친구 의미를 가진 너헤nehers라는 어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함경도 방언 올찌세미를 올케의 그릇된 표현으로 섣불리 해석하고 있지만 여진어와 만주어에서 올케는 단수 형태를 지니고 올찌세미는 복수 형태를 지닌다. 함경도의 안까이는 표준어 아내라는 말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쌍둥이 단어이다. 여러 쪽으로 갈라진 구리거울이 하나로 이어지며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옛날이야기처럼 지역마다 스며있는 방언가치를 깊이 발굴하고 동질성과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만이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 질수 있는 것이다.

우리언어의 가시밭길을 더듬어보면 근대에 들어와서 허다한 문명은 남에서 북으로 들어왔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강력한 북방문명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거쳐 끊임없이 남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쉬운 개성이 있는 방언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우리 방언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말을 마음속에 새길 때 장기간 밀폐된 언어의 창고에서 우리 방언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연변과 함경도 방언은 우리 과거 역사를 풀어내는 블랙박스이며 또 미래를 헤쳐 나가는 내비게이션이기도하다.
 
필자/허성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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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운 칼럼] 아바이와 커라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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