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서울 이태원 한 식당 앞.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로 적힌 안내문이 서 있다. “길을 막지 마세요, 조용히 해주세요, 금연.” 얼핏 보면 평범한 문구지만, 중국어 문장에는 다른 언어에는 없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禁尿(소변금지)’. 그 한 단어는 마치 중국인만 따로 주의가 필요하다는 듯 낯선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이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자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분노와 허탈함이 뒤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이게 한국이 중국 관광객을 맞이하는 태도인가.”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실제로 올해 1분기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지난해보다 42%나 줄었다. 한류와 무비자 정책에도 불구하고 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업계에서는 ‘표지판 하나가 만든 이미지’가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원뿐 아니다. 제주도의 공공화장실에는 중국어로만 ‘금지 대소변’ 문구가 붙어 있고, 명동의 일부 상점에는 “중국 관광객 휴식 금지”, “침 뱉지 마세요” 같은 경고문이 오직 중국어로만 붙어 있다. 규칙을 알리기 위한 문구처럼 보이지만, 유독 중국어에만 단정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 쓰인다. “Please don’t”로 시작하는 영어 문장 옆에서, 중국어 문장은 “不得(해서는 안 된다)”로 시작한다. 정중한 요청이 아니라 일방적인 명령에 가깝다.
이런 식의 안내문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독일 베를린의 마르크스 생가에는 중국어로 쓰인 ‘금연’ 문구가 독일어보다 세 배 크고, 런던의 한 백화점은 한때 “중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으로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러나 중국 관광객이 한국 관광산업의 중요한 축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의 타격은 한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2022년 참사 이후 상권이 크게 위축된 이태원은 여전히 회복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 차별’이라는 이미지가 겹치며 손님 발길이 더욱 줄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현장을 방문해 “거리가 텅 비어 유령도시 같다”고 보도했다. 한 상인은 “중국 손님이 끊기자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표지판은 처음엔 농담처럼 세워졌지만, 지금은 장사에 진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은 질서를 안 지킨다”는 선입견이 이런 표지판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여행객의 사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불쾌감을 넘어 차별로 읽히고, 결국 관광시장 전체를 냉각시킨다는 점이다. ‘규율’을 세우려던 시도가 ‘배제’로 변질되는 순간, 관광객의 마음은 멀어진다.
중국 누리꾼들은 “만약 베이징 자금성 앞에 영어로만 ‘NO SMOKING’이라고 크게 쓰고, 중국어는 구석에 작게 넣는다면 외국인은 어떤 기분이겠느냐”고 되물었다. 시선의 높이가 다르면 존중도 다르다. 관광산업은 단순히 매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유지되는 신뢰의 구조다.
이태원의 한 골목 벽에는 지금도 “Remember 1029”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그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식당 앞에는 여전히 ‘禁尿’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참사의 기억과 함께, 또 다른 상처가 조용히 서 있다. 도시가 진정으로 회복하려면 기억과 함께 존중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 표지판은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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