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오늘날 세계는 ‘희토(稀土)’를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첨단무기와 전기차, 반도체, 스마트폰까지 — 희토류는 현대 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산업의 판도를 바꾼 인물이 있다. 중국 과학자 쉬광센(徐光宪). 그는 ‘희토의 중국 시대’를 열며 세계 산업 질서를 새로 썼다.
1970년대 초, 중국은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80%를 보유하고도 정제 기술이 없어 원석만 헐값에 내다팔던 ‘자원대국의 빈곤국’이었다. 1972년, 내몽골 바오터우 광산. 베이징대 교수였던 52세의 쉬광센은 손에 쥔 희토석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는 그의 동료이자 아내인 가오샤오샤(高小霞)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북경대 교수였지만, “이 귀한 자원을 우리가 가공하지 못한다면 과학자로서 부끄럽다”는 생각 하나로 그곳에 섰다.
쉬광센의 도전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희토류 분리’라는 당시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다. 그는 원래 양자화학을 전공했지만, 귀국 후 네 번이나 연구 분야를 바꿨다. 양자화학에서 배위화학으로, 이어 핵연료와 희토류 연구로 옮겨갔다. “국가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 다시 시작한다.” 그 신념이 그의 인생을 지탱했다.
1972년, 중국 정부는 쉬광센에게 프라세오디뮴과 네오디뮴 — 성질이 거의 같은 두 원소를 분리하라는 군수 명령을 내렸다. 당시 국제적으로 쓰이던 분리 기술은 복잡하고 비효율적이었다. 쉬광센은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연속 추출(串级萃取)’이라는 새로운 공정을 구상했다. 낮에는 실험실에서 하루 종일 추출기를 흔들며 데이터를 쌓았고, 밤에는 이론 계산과 설계를 반복했다.
그의 집념은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로 이어졌다. 그는 분리 효율을 기존보다 네 배나 높였고, 100일 걸리던 공정을 일주일로 단축시켰다. 197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 희토 회의에서 그가 발표한 ‘연속 추출 이론’은 즉시 산업 현장을 뒤흔들었다. 이후 중국의 희토 생산 공장은 모두 ‘서광헌식 공정’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들어 중국은 고순도 희토 제품을 대량 생산해 세계 시장에 쏟아냈다. 가격은 30~40% 떨어졌고, 미국·일본·프랑스의 희토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서방 언론은 이를 “CHINA IMPACT(중국 충격)”이라 불렀다. 그 한가운데에는 쉬광센의 기술과 그의 제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서방의 냉대를 똑똑히 기억했다. 1980년 프랑스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기술 유출 방지”를 이유로 실험실 출입을 거부당한 일이다. 그 경험 이후 그는 중국 과학의 특허화를 결심했다. “과학의 성과는 보호되어야 발전한다.” 그는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앞서 강조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아내 가오샤오샤가 있었다. 본래 분석화학의 권위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연구를 멈추고 남편의 실험을 도왔다. 영하 30도의 광산에서도 현장 조사를 멈추지 않았고, 밤샘 실험 뒤 남은 반쪽 만두가 두 사람의 저녁이었다. 1980년, 두 사람은 나란히 중국과학원 원사로 선출됐다. 중국 과학사에서 부부가 동시에 원사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쉬광센은 과학자이자 교육자였다. 그의 저서 『물질 구조』는 60년 넘게 중국 대학의 표준 교재로 쓰이고 있다. 박사와 석사 제자만 백 명이 넘고, 논문은 560편 이상에 달한다. 2009년, 그는 89세의 나이로 국가 최고 과학기술상을 받았다. “희토를 연구한 것은 즐거움이었다. 조국의 자원을 더 잘 쓰는 일이 곧 나의 행복이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2015년 4월, 쉬광센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화학회는 추모문에서 “그의 이름은 중국 과학의 역사와 함께 남을 것”이라 적었다.
그가 남긴 기술은 지금도 중국 전역의 희토 공장에서 돌아가고 있다. 원석이 한쪽에서 들어가면, 반대편에서는 고순도 희토가 쏟아진다. 이 시스템은 한 세대 전, 그가 종이 위에 그렸던 ‘꿈의 공정’이었다. 그 덕분에 중국은 ‘자원대국’을 넘어 ‘희토 강국’으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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