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 아버지가 체험한 “6.25”
■ 김철균
“1950년 6월 25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평소같으면 일요일엔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었으나 그날은 새벽 날이 밝기전에 모두 기상하게 했다…”
적정이 있으니 전시상태에 진입하라는 명령이었다.
아버지에 따르면 그날은 새벽부터 비가 구질구질 내렸다고 한다. 그렇듯 지꿎은 날씨에 아버지네가 진지에 들어가 전투태세를 마친 뒤 얼마 안되어 마침내 새벽 4시가 되자 천둥이 울듯 포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붉은 신호탄들이 38선 상공의 여기 저기서 하늘로 올랐다.
“1950년 6월 25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평소같으면 일요일엔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었으나 그날은 새벽 날이 밝기전에 모두 기상하게 했다…”
적정이 있으니 전시상태에 진입하라는 명령이었다.
아버지에 따르면 그날은 새벽부터 비가 구질구질 내렸다고 한다. 그렇듯 지꿎은 날씨에 아버지네가 진지에 들어가 전투태세를 마친 뒤 얼마 안되어 마침내 새벽 4시가 되자 천둥이 울듯 포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붉은 신호탄들이 38선 상공의 여기 저기서 하늘로 올랐다.
한동안 지축을 뒤흔드는 포격이 지속되더니 뒤이어 또 탱크들이 굉음을 울리며 남으로 향했다. 드디어 최고사령부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한다.
“남조선 괴뢰군 옹진반도로 북침 개시, 전 전선에 거쳐 반격할 것!”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때의 진격개시 암호는 “폭풍”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상급 작전지휘부에서는 알 일이고 아버지네는 그런 건 알리 만무했다. 그저 명령에 따를뿐이었다.
인민군은 탱크의 뒤꽁무니를 따르며 남으로 쳐내려갔다.
얼마 뒤 “38선”이라고 쓴 나무패쪽과 철조망이 나타나자 진격의 선두에 선 탱크들은 그것을 짓뭉개면서 진격로를 개척했다. 한국군의 진지는 인민군 포병들의 조준사격에 하나 둘씩 하늘로 날아났고 군인들은 죽은 건 죽고 살아남은 사병들은 뿔뿔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인민군의 진격은 파죽지세였다.
38선을 돌파한 뒤 미구에 진격하는 인민군 앞에는 웬 강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아마 그 강이 소양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인민군 선두부대가 강을 건너려고 하니 포탄이 우박처럼 날아왔고 강 남안에서는 한국군들이 진을 치고 인민군의 도하를 막고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 인민군은 탱크부대의 엄호하에 한국군을 쉽게 물리치고 강을 건넜다. 이렇게 38선을 돌파한 그날로 인민군은 춘천, 홍천을 지나 원주의 북쪽고지 코밑까지 밀고 내려갔다.
이어 진격부대 앞에는 또 한갈래의 강물이 나타났다. 강물은 깊고도 물살에 몹시 거세여서 진격로에 있어서의 커다란 장애로 됐다. 당시 38선에서 후퇴한 한국군은 바로 이 강을 천연방어선으로 간주하고 진지를 구축했던것이다. 한국군은 이 천연방어선을 이용하여 결사적인 저항을 했다. 미구에 어디선가 미군기까지 날아와 마구 기관총소사를 했다. 미공군은 인민군의 진격을 저애했을뿐만 아니라 보급로를 마구 끊어놓을 잡도리었다. 더군다나 인민군의 진격을 가로막는 한국군은 명성이 자자한 “왕패부대”인 한국군 “백호부대”었다. 맹목적으로 공격만 하다간 사상자만 낼뿐이었다. 인민군은 날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별동대를 조직하여 몰래 강을 건너서는 한국군진지 코밑까지 침투해들어갔다.
새벽녘이 되자 한국군은 다리를 폭파하려고 폭약을 나르는 것이었다. 인민군별동대는 즉각 따발총을 휘두르면서 다리를 폭파하러 나온 한국군을 섬멸했다. 뒤이어 강북쪽에 있던 주력부대도 총 공격을 발동했다. 인민군 별동대는 주로 교두보에 진을 치고 있는 한국군을 조준사격으로 섬멸, 주력부대의 교두보 탈환을 유력하게 지원했다. 한국군은 다리폭파목적이 뜻대로 되지 않자 다리위에 폭약을 되는대로 던지고는 퇴각했다. 다리는 한쪽모퉁이만 조금 파괴되었을뿐이었다. 인민군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다리를 건넜다.
계속해서 인민군 선두부대가 파죽지세로 원주시가지에 쳐들어가니 미처 퇴각하지 못한 국군만이 남아 건물을 엄페물로 저항할뿐이었다. 하지만 인민군포가 조준사격으로 몇개 거점을 날려보내자 나머지 국군들은 모두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인민군은 계속 승승장구로 진격하여 전쟁이 터진 이튿날 저녁 무렵에 원주를 완전히 장악했다. 뒤이어 아버지네 부대에는 휴식정돈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밤 아버지네가 원주 시가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무기와 탄약을 정리하는 한편 휴식을 취할 때 갑자기 콩볶는듯한 총소리와 더불어 포탄이 여기저기에 날아와 터지었다. 아버지네는 한국군의 꼬임에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군단지휘부에서 아버지네더러 원주 시가지에서 휴식하게 한 것은 “범을 굴에서 끌어내기 위한 전술”이었다.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인터내셔널포커스 & 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에프스타인 파일 공개… 300만 페이지로 가린 서구 체제의 불투명성
2026년 1월 30일, 미 법무부 차관 토드 블랜치는 에프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30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와 2000여 개의 동영상, 18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대중에 공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개는 2025년 11월 ‘에프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 발효 이후 이뤄진 최대 규모의 기록물 공개로 알려졌다. 그러... -
‘청와대의 저주’는 미신이 아니었다
글|안대주 무기징역.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게 내려진 형량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이보다 더 추락한 대통령은 없다. 흔히 ‘청와대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이번 사안은 미신의 영역이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결과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준 정치적·사법적 결론이다. 윤석열은 끝까... -
야당이 된 보수의 기이한 충성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사과였고, 최소한의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법부에 대한 공격과 “계엄은 곧 내란이 아니다”라는 궤변이었다. 보수 정당 대표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 -
“여성을 수입품으로 부른 공직자, 그 말이 정책인가”
인구가 아니라, 사람을 모욕했다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사람을 모욕하는 순간, 그 정치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다. 전남 진도군수 김희수의 발언은 그 선을 명확히 넘었다. “스리랑카나 베트남 쪽 젊은 처녀를 수입해 농촌 총각 장가를 보내자”는 말은 정책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폭언이다. 인구 소멸을 걱정한... -
왜 중국인은 설이면 해바라기씨를 까먹을까
[인터내셔널포커스]설이 오면 중국의 거실 풍경은 묘하게 닮아 있다. 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오르지만, 대화의 중심에는 늘 차탁 위에 놓인 해바라기씨 한 접시가 있다. 손에 쥐고 하나씩 까먹는 이 단순한 간식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 설날의 배경음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의 화가이자 산... -
‘한국인 vs 조선족’ 논쟁에 가려진 윤동주의 정체성
최근 윤동주를 둘러싼 논쟁은 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쟁점은 단순해 보인다. 윤동주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조선족인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정확한 정체성인 ‘조선인’이 논의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윤동주를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라고 주장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