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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막으려던 반도체 봉쇄의 역설…“유럽, 중국 시장부터 잃을 수도”

  • 화영 기자
  • 입력 2026.08.0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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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웨이퍼와 첨단 노광·검사 장비를 형상화한 이미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가 장기적으로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이 주도해 온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가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늦출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하고 유럽 기업의 중국 시장 입지를 약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 파리1대학의 에마뉘엘 콩브(Emmanuel Combe) 교수는 최근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Les Echos)》 기고문에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중국의 노광장비 개발을 사례로 들어 첨단기술 수출통제가 가져올 수 있는 ‘봉쇄의 역설’을 짚었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심자외선(DUV) 장비 분야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은 ASML 한 기업만의 성과라기보다 독일 자이스의 초정밀 광학기술과 트럼프의 고출력 레이저 등 유럽의 첨단 공급망이 수십 년간 축적한 기술이 결합된 결과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수출통제를 강화하면서 네덜란드도 중국에 EUV 장비를 공급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첨단 DUV 장비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국 입장에서는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기술 축적과 생산 경험을 동시에 제한받는 셈이다.


실제 양산 능력에서는 아직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콩브 교수는 중국산 DUV 장비 공급이 올해 수 대, 2027년에도 약 20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ASML은 2025년 한 해에만 131대의 DUV 장비를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당장 중국 업체가 ASML의 시장 지위를 흔들 단계는 아니라는 의미다.


문제는 규제가 장기화할 경우다.


콩브 교수는 해외 첨단장비를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될수록 중국 기업에는 결국 자체 기술을 개발해야 할 강력한 동기가 생긴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외국 경쟁업체의 중국 시장 접근이 제한되면서 중국 장비업체들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연구개발과 제품 개선을 반복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일종의 ‘의도하지 않은 산업 보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거 중국 업체들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장비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ASML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 직접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수출규제로 외국산 첨단장비 공급이 제한될수록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국산 장비를 채택할 유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초기 제품의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실제 생산라인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 데이터와 경험이 축적되고, 다시 기술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단기간에 EUV 기술까지 따라잡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첨단 노광장비는 광학·레이저·정밀제어·소재·소프트웨어 등 수많은 기술이 결합된 대표적인 초고난도 산업이다. 특히 EUV는 수십 년에 걸친 연구개발과 글로벌 공급망이 축적한 결과물인 만큼 시제품 개발과 안정적인 상업 양산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럽의 고민도 깊어진다. 미국의 대중국 기술통제에 동참하면 안보·동맹 정책에서는 보조를 맞출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럽 기업들이 중국 시장의 일부를 현지 업체에 넘겨줄 가능성이 있다. 한번 국산 장비 중심의 공급망이 자리 잡으면 향후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유럽 기업이 과거의 시장점유율을 그대로 회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수출통제는 중국이 최첨단 장비와 기술에 접근하는 속도를 늦추는 데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중국 정부와 기업이 반도체 장비·소재·부품의 국산화에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도록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결국 반도체 수출통제의 성패는 중국의 기술 발전을 몇 년 늦췄느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중국이 독자적인 장비와 공급망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봉쇄 전략은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대로 중국 기업들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기술 격차를 지속적으로 좁힌다면 단기적인 봉쇄가 장기적인 경쟁자를 키운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노광장비를 둘러싼 경쟁은 이제 ASML과 중국 업체 간 시장점유율 싸움을 넘어섰다. 미국의 기술통제가 중국의 추격을 차단하는 ‘장벽’으로 남을지, 아니면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앞당긴 ‘촉매제’로 기록될지는 앞으로 중국산 장비가 연구실을 넘어 실제 생산라인에서 어느 수준의 성능과 수율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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