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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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견문 시리즈(7)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 김철균 1991년 6월초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을 출발한 우리네 원양선박 “코리안스타”호는 스페인 카나리아군도의 항구도시 라스팔마스를 향해 22노트 속도로 줄기차게 항행하고 있었다.그 때 나는 싸롱뽀이라고 일컫는 주방장조리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승선한지 얼마 되지 않는지라 선박 상식 및 본선시스템 장악에는 거의 마이너스나 다름없었다.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었다. 설겆이를 금방 끝낸 나는 이튿날 선원들이 마실 보리차물을 엘리베트에 싣고 주방아래층에 있는 냉장고로 가져가게 되었다. 그 100킬로그램도 잘되는 물통을 간신히 움직여 영하 10도가 넘는 생선고에 넣고 돌아서는 순간 나는 “아차!” 하고 비명을 질렀다. 워낙 이 냉장고의 출입문은 안쪽에도 비틀어 여는 손잡이가 있었댔는데 얼마 전에 그것이 끊어지는 통에 밖에서는 열 수 있지만 안에서는 도무지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와 주인장인 성이악씨는 조기장한테 용접해서 달아달라고 몇번이나 청구했으나 그가 바쁘다는 구실로 달아주지 않았기에 잠시 문틈에 각목을 끼워놓고야 드나들군 했다. 헌데 그날 밤 내가 깜빡 잊고 그것을 끼워놓지 않았기에 배가 파도에 흔들리면서 그만 문이 꽁꽁 닫겨버리고 말았다.그 때 내가 입고 있은 옷은 반팔적삼에 반바지었고 신은 슬리퍼, 그것도 오전이나 오후같으면 주방에서 일하던 내가 잃어졌다고 선내가 후닥닥 뒤집히도록 찾을 것이었으나 저녁식사까지 끝난 그 때에 와서 선원들이 나를 찾을 까닭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튿날 아침에야 실종된 나를 찾는다면 영하 10도가 넘는 냉장고안에서 속옷 바람인 내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뒤이어 나의 몸은 추위보다도 죽음이라는 공포 때문에 무섭게 떨리었다. 일찍 어리적부터 갖은 고생을 다 겪어오면서도 삶에 대한 애착만은 그만큼 집요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또한 고생끝에 낙이라는 말만을 믿었지 죽음이란건 생각조차도 해보지 못한 나였다. 아니, 나의 일생에는 죽음이라는 개념조차 영원히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터였다.헌데 이것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것도 33살이라는 한창 나이에, 눈을 질끈 감고 2년만 참고 견디노하면 외화를 벌어 환고향해서는 옛말하며 살겠는데 운명은 왜 이다지도 나를 괴롭히는지. 죽기에는 너무나도 값없었고 슬프고 아까왔다. 며칠 전만 해도 몬테비데오의 디스코클럽에서 한 밤색머리 아가씨가 그렇게 칭칭 감겨드는 것도 그 개도 안먹는 돈과 서푼어치도 안가는 정조 때문에 오입 한번 못해보고 죽은 후에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얼마전에 나는 김아무개라는 고향친구 한명이 포클랜드바다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역시 나처럼 주방에서 일했다는 그 친구, 얼마 안되는 땅만 부쳐서는 앓는 어머님과 두 자식의 뒤바라지를 도무지 할 수 없어 나이 40살 넘어 배에 올랐고 집에서는 다쳐보지도 못했던 칼도마와 식칼과 밥주걱을 잡아보게 됐던것이다. 성정이 고지식하고 말수가 적으며 남들이 말보루나 “8.8”표 담배를 피울 때도 “나야 뭐 자네들보다 입장이 다른게 아닌가”하며 몰래 집에서 갖고간 엽초를 굵직히 말아서 피우던 사나이, 하지만 마음씨만은 비단결처럼 고왔는바 누가 촐촐해하면 한밤중에라도 일어나 라면이나 빵같은 참을 만들어주군 한데서 연변선원들은 물론 밥투정을 많이 하는 한국선원들마저도 “모두가 김씨처럼 일한다면야”하며 좋아해주던 친구였다. 그 날밤도 그는 같은 회사의 선박끼리 접선하자 본선 선원들한테 김치라도 얻어다 먹이겠다고 두 선박사이에 임시로 놓은 다리를 건너갔던 것이다. 그런던 그 친구가 김치통을 들고 다리를 건너 돌아오다 바다에 떨어졌는지 아니면 그 무슨 꿈같은 환각에 빠져 스스로 차디찬 바다물속에 뛰어들었는지? 여하튼 두 선박을 발칵 뒤집었으나 없는걸 보면 바다에 떨어진 것이 분명했고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 후 아무리 선박에서 의연금이 모아지고 고동을 울리며 애도를 표시하고 또한 보험회사측으로부터 거액의 보험금이 조달될테었지만 그것이 죽은 이한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며칠 안지나 선원들은 또 다시 웃고 떠들고 즐거움과 쾌락을 만끽할테고 선박 역시 스켓줄에 따라 제나름대로 운행했을 것이 아닌가!!…그러니 죽지 말아야 했다. 나는 위에서 듣지 못할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밖으로부터 어슴프레 들려오는 것이란 기관실의 엔진동음뿐 인척기라고는 없었다.나는 다시 냉정해졌다. 이렇듯 험악한 환경에서 살아나자면 몸이 얼지 말아야 했고 그러자면 몸을 움직이며 일해야 했다. 오직 그렇게 연장하는 시간이 길어야만이 구원될 희망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나는 냉장창고안에 채곡채곡 쌓여있는 생선박스를 나르기 시작했다…사람의 삶의 의욕이란 참으로 놀라왔다. 근 한시간이나 되는 사이에 나는 35킬로그램이나 되는 생선박스 100여개를 몇번이나 옮겨놓았는지 몰랐다. 이 구석의 것을 저 구석으로, 저 구석의 것을 다시 이 구석으로 이렇게 몇번 반복하니 얼굴에서는 땀이 흘렀고 반팔적삼도 흠뻑 젖었다.허나 삶의 희망은 갈수록 묘연하기만 했다. 게다가 땀이 흐르는 몸과는 달리 팔과 다리의 살은 닭살처럼 되었고 배가죽이 뒤잔등에 가 붙을 지경이었다. 또한 아무래도 죽겠는데 공연히 신고한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도무지 힘이 나지를 않았다. 나중에는 팔과 다리의 살이 퍼렇다 못해 검푸른색을 띄더니 힘줄이 몽땅 한곬으로 굳어지는듯 했고 아래윗 입술이 꽛꽛해나면서 소리도 잘 나가지 않았다.사람이 죽는 과정이란 과연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 다음부터는 내 인생이 슬픈지 아까운지를 분별할 수 없었고 그닥 고통스럽지도 않았으며 살려달라고 소리치고도 싶지 않았다. 다만 지나간 회포들이 활동사진처럼 되살아나면서 마음은 몹시 괴로와났다. 어릴 때 남의 집 살구나무에 올라가 살구를 훔치고도 나무가지까지 꺾어놓던 일, 평소에 친구들 사이에 이득을 더 보겠다고 옴니암니하던 일, 선박에 승선해서도 밥이 설었다고 투정질하는 기관장과 싸우던 일 모든 것이 마음에 걸렸다.인생이란 한번 가면 영영 다시 오지 않는 일장춘몽이라 살아있을 때 모든 애락을 즐기라고는 하지만 죽음과 시간을 다투는 그 때에 와서는 이승에는 뭘 남기고, 저승인 염라국에 가서는 뭘 선물하겠는가 하는 것이 몹시 걱정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세상의 모든 이들한테 사랑을 주기 위해 진짜 자신을 희생할 것만 같았다. 병든 사람, 장애인, 버림받은 사람과 지어는 나와 등졌던 사람들과도 서로 아껴주고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울고 웃으며 살고 싶었다. 아, 나한테 다시 한번 삶의 권리가 부여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죽음이란 거의 결정해 놓은거나 다름 없었다. 헌데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 나한테있어서는 자못 중요한 마지막 과제로 남아 있었다. 남들이 말을 빈다면 죽을 바엔 심술이라도 피우고, 예하면 보리차물안에 오줌이나 똥이라도 내갈기고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그건 그렇다 하고 나는 거리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시체처럼 몸을 꼬부리거나 네각을 쫙 벌리고 죽을 수가 없었고 그런 몰골을 찍은 사진을 고향사람들한테는 더욱 보일 수가 없었다. 죽어서 저승으로 가더라도 어엿한 모습으로 염라대왕과 만나야 했다.나는 카톤박스를 냉장고바닥에 몇벌 펴놓고는 억망이 된 옷과 몸과 머리칼을 다듬었다. 그러고는 비장한 결심으로 죽기 전의 제일 마지막 일, 쇠꼬챙이로 페인트칠을 한 벽에 유서란것을 쓰기 시작했다.유서 곧 닥쳐오게 되는 죽음을 앞두고 나는 죽음이 무서운 것보다 살아생전에 계획했던 일들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하여 몹시 괴롭다. 바로 이 시각 나는 시간을 헛되히 흘러보낸 그제 날이 몹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하루의 한시간과 1분 1초과도 소중히 여기고 좋은 생각과 좋은 말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면 죽더라도 조금은 위안이 되겠지만 인젠 늦었다…여기까지 써내려가던 나의 눈앞은 급기야 밝아졌다. 글쎄 내가 유서라고 쓰던 벽 오른쪽에 숱한 버저들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치 힘으로 되는 일처럼 그 버저들을 죽어라고 눌러됐다. 아니나 다를가 이윽해서 윗층으로부터 투닥투닥하는 발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냉장고문이 확 열리였다.제일 먼저 뛰어들어온 사람은 통신장 이덕수씨와 용정에서 간 기관원 김영림군, 그 다음의 일은 나는 감감부지었다……워낙 본선의 냉장창고, 어창, 기름탱크안, 기관실 등 위험구마다에는 모두 비상용버저들이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SOS란 영문으로 된 구조신호 표시까지 적혀 있었고 그 소리는 또한 사무실, 조타실과 1항사의 침실에까지 울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기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숱한 신고를 하며 유서를 쓰는 추태극까지 벌였으니 누구를 탓하랴. 무식한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모든 행동에서 술덤벙 물덤벙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죽음과 연결시키면서 조심하게 되었고 항상 앞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그날 밤도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무슨 충동을 받았는지 후닥닥 일어나서는 되는대로 글줄을 내갈기기 시작했다.하나님한테 올리는 편지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아들인 기독교신자는 아니지만 저의 일생은 철두철미한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못지 않는 색채를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초년에 조실부모하고 중년에 상처하고, 만년에 자식을 앞세우는 것이 인생의 3대 불행이라 했은 즉 저의 인생이 아마 그런가 봅니다.비록 비천한 인생이었건만 저의 삶의 의욕은 그 어느 인간보다도 강했습니다. 의사로 돼보고도 싶었고 미술가와 음악인으로도 돼보고 싶었으며 커서 자립해서부터는 작가로 돼보려는 꿈에 자리를 굳히고 대학 통신학부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헌데 모든 것은 그 개도 안 먹는다는 돈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이룩된 결혼, 무직업자인 안해와 제 2세의 탄생,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돈과 인생이 그토록 얼기설기 얽혀있을 줄은 저는 참으로 몰랐습니다.그 뒤 저는 잠시 작가로 되려는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가정도 이끌지 못하는 주제에 글을 쓰는 작가로 된다는 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깐요. 하기에 저는 먼저 경제혁명부터 해야 했었습니다. 또한 문학탐구에 노력한 대가면 저는 장사도 훌륭히 잘해낼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터였습니다. 허나 문학수업이 힘든가 하면 경제혁명 역시 뜻밖으로 곱절 힘들었습니다. 등치고 간 뻬먹는 각양각색의 간상배들, 저의 처세술로는 도무지 그들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는 뻔했습니다. 여편네와의 이혼과 엄마와 떨어진 불쌍한 자식, 매일 술과 한숨으로 희스테리적으로 살아온 인생, 벌자던 돈은 못벌고 명성만 납작하게 된 것이 그 때의 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사회는 물론 저의 친척과 형제들마저 저를 외면하였습니다.개도 급하면 담장을 뛰어 넘는다고 결국 저는 작가가 아닌 “배놈”으로 되고 말았습니다.며칠 전에도 저는 죽을번한 고비를 넘었습니다.마도로스 “배놈”으로 있는 동안 앞으로 또 이런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어야 할는지? 허나 저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모험이 있어야 성공이 있고 세상을 돌아보아야 안계도 트이는 것이 아니겟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요. 이 세상 여러 인종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저처럼 비행기를 수십시간씩 타고 대양 건너 대륙을 가로 지른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며 그 중 저처럼 글깨라도 되는 사람은 더욱 몇이나 되겠습니까? 특히 제가 승선한 “코리안스타”호는 비정기선으로서 세계의 그 어느 곳이든지 다 갈 수 있으니 저한테 이처럼 좋은 기회가 두 번 다시 없을 줄을 저는 잘 알겠습니다.그러니 제가 작가로, 되려 하는 것보다도 저의 모든 생활이 서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핍박하는 것 같습니다.저는 꼭 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아니, 제가 다 쓰지 못하면 후세들이라도 계속 쓰게 할 것입니다.지금 북으로 가면서 날씨는 점점 무더워집니다.이제 며칠후면 곧바로 라스팔마스에 입항한다는데…아, 피곤하군요. 열렬한 기독교신자가 아닌 이상 저도 내일의 근무 때문에 잠을 자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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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5-30
  • 중국인 관광단 7000명 미국서 중국 국가 부르고 국기 게양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의 관광단 7000명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해 집단촬영을 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를 목청 높이 부르며 중국의 국기 오성붉은기를 하늘 높이 게양했다고 중국 텅쉰망이 29일 전했다.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이 7000명에 달하는 상무관광단은 70여대의 항공기에 나누어 탑승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 중국공민 미국관광 단일 단체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관광단 성원들은 대부분 중국 광동성 한 회사의 종업원들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는 회사 년차 상업회의 참가 차 미국으로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일행은 로스앤젤레스의 30개 호텔에 나누어 투숙했는데 예약한 방은 1만 2000여개 밤을 초과, 현지에 8500만달라의 수입을 올려주게 된다. 초보적인 통계에 따르면 아직 여정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 관광단 인당 카드소비는 이미 1만달러에 달해 평소 중국 관광객 인당 캘리포니아주에서의 소비 2500여달러의 4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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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14-05-29
  • 中 장춘시 4000명 사생 학부모 “중즈” 빚기 기네스북에 도전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장춘시 제1실험소학교(초등학교)에서는 단오절과 “6.1” 국제아동절을 맞아 5월 28일, 별다른 운동회를 개최했다. 운동회에서는 전교 4000여명의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집단적으로 중국 단오절의 대표음식인 “중즈”를 빚으며 “중즈” 빚기 기네스북에 도전했다고 중국 장춘신문망이 29일 전했다. 운동회에서는 중국 단오절운동의 한가지인 용주경기가 펼쳐져 학생들의 집단정신을 고양했고 전교 4000명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참가한 가운데 3분동안 “중즈” 빚기가 펼쳐졌다. 어린 학생들은 한손에 댓잎을 쥐고 다른 한손에 차입쌀을 쥐고 열심히 “중즈”를 빚어 현장의 분위기를 고조에로 이끌었다. 아이들은 “중즈” 빚기 기네스북에 도전하기 위해 두 주일간 과외시간에 “중즈” 싸기 연습을 했다고 이 학교 왕건훈 부교장이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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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4-05-29
  • 인천AG, 역대 AG최초 스마트 토치 릴레이 시행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영수, 이하 조직위)는 역대 AG 최초로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성화봉송 이벤트인 ‘스마트 토치 릴레이(Smart Torch Relay)'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6월 1일(일)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개장기념 AG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처음 선보이는 온라인 성화봉송 앱 ‘스마트 토치릴레이’는 김영수 조직위원장의 최초 점화에 이어 OCA, 대회관계자, 시민 대표 등에게 전달된다. 스마트 토치릴레이 앱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국어로 제공되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라인, 웨이보, 웨이신 등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전달될 계획이다. 또 스마트 기기 간 근거리무선통신(NFC)기능을 이용해 점화할 수도 있으며 이를 통해 전세계인이 쉽고 재미있게 온라인 성화봉송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앱에는 게임 기능이 추가되어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한다. 특히국가/개인별 랭킹을 통해 경품 제공 등의 이벤트도 실시한다. 스마트 토치릴레이는 최첨단 IT 아시안게임을 표방한 조직위의 대회 목표에 부합하는 콘텐츠인 동시에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의 승인을 받은 공식 프로그램이다. 스마트 토치릴레이 앱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에 맞게 개발되어 구글 플레이에서 다운받을 수 있으며 일반인 참여는 6월 1일 17:00시 이후부터 가능하다. 조직위 권경상 사무총장은 “앱을 통한 대회 홍보효과 극대화를 위해 대기업, 주요 포털사 등을 후원사로 유치해 글로벌 프로모션을 시행할 계획”이라며 일반 대중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당부했다.
    • 스포츠
    2014-05-29
  • 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7)
    편집자의 말: 연변축구는 전통이 있고 역사가 길며 중국 축구사상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과 예약하여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편집자 ■ 민 함 연변은 역사적으로 북경, 상해, 대련, 광동 등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만큼 축구스타들을 많이 배출한 “축구의 고향”이다. 아니, 연변을 포함한 중국조선족의 인구는 해방초기나 지금이나 여전히 200만명의 미달…인구비례를 따지만 연변 아니 중국조선족축구는 북경이나 상해의 축구보다 엄청 더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배출해낸 선수들중에는 유명한 중국이나 조선내지에서 소문난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선수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세기 20년대 가장 유명한 선수들로는 정수원(별명: 숫캐)과 박주환, 그리고 이종갑과 김응세, 차금돌, 이영광, 유시율, 허죽산, 박익환, 박노석, 김호주 등이었다. 그 중 박노석, 차금돌, 이영광, 유시율, 허죽산 등은 조선축구계에 족적을 옮겼고 요정 광명중학교 출신인 이종갑은 광복 후 한국 서울로 나가 축구계에서 적극 활약, 지난 세기 60연대에는 한국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취임되기도 했다. 또한 조선으로 나간 김응세는 1966년 제8회 잉글랜드월드컵 조선대표단 단장으로 되기도 했다. 그외 연변에 남은 박노석은 1956년에 발족된 중국축구심판위 위원으로 당선되었으며 그 이듬해 연변축구협회가 설립된 뒤 지난 1986년까지 줄곧 협회 부주석으로 있었다. 그 시기 특수하게 유명한 선수들을 선택하자면 딱히 지정할 수 없지만 정주원, 박주환, 박익환, 박노석 등이 아닌가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쩐지 축구선수 중 박씨가 많은 감이 든다. 박씨, 한편 곰곰히 생각해보면 박씨들 중 확실히 축구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연변의 박익환, 박노석, 박상복, 박만복, 박문호, 박성 등이 있는가 하면 조선에는 월드컵 영웅 박두익이 있으며 한국 또한 박종환, 박지성, 박주영 많다고 꼽이니 진짜 많이 꼽을 수 있을 지경이다. 한편 지금까지 연변내 축구팬들한테 가장 인상속에 남는 축구인 인물은 그래도 박만복과 이광수인 것 같다. 그렇다. 박만복 선생과 이광수 선생은 지난 세기 50연대부터 2000연대 초엽까지 연변축구권내에서 큰 영향력을 일으키면서 쌍벽을 이룰만한 인물이다. 그 중 박만복 선생은 중국의 제 1 대 헝가리축구유학생에 들어간 인물(당시 20여명 중 조선족 7명)이였으며 당시 그가 중앙수비로 지키는 중국청년팀은 공산권국가의 축구인들로부터 “무너지지 않는 만리장성”이란 명예를 받아안기도 했다. 그리고 길림성팀 창립공로자의 한 사람인 이광수 선생은 중국축구권내에서 조직형축구를 만들어낸 인물로서 그가 주도하는 길림성팀의 공격라인의 이광수, 손중천, 지운봉은 일찍 지난 세기 50연대 중국 국가체육운동위 하룡주임으로부터 “삼각폭격기편대”란 명칭을 얻기도 했다. 또한 박만복 선생은 감독신분으로 1965년 또 조선족으로 구성된 길림성팀을 이끌고 중국축구갑급리그 우승고지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고 이광수 선생은 연변대 체육학부 주임으로 수많은 학자형 축구인재들을 육성해내기도 했다. 후에 이 두 축구원로는 손잡고 중국 동북조선족축구친목회를 창설, 연변축구의 전국화와 글로벌화하는에 있어서 마멸할 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쌍벽을 이루는 두 인물 중 박만복 선생은 아직도 생전이다. (다음기 계속)
    • 스포츠
    2014-05-29
  • 공주대학교 ‘재외동포 모국수학교육과정’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함양한 글로벌 리더 양성 국립공주대학교의 ‘재외동포 모국수학교육과정’은 동포 2-3세에게 모국 이해에 필요한 한국어, 한국사와 한국문화를 중점적으로 교육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함양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재외동포 모국수학교육과정’은 교육부 소속의 국가기관인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고 공주대 한민족교육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은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운영하던 재외동포교육이 대학 위탁운영 체제로 변경되면서 공주대가 2008년 재외동포 장기교육과정 위탁기관으로 선정, 2009년 재외동포교육센터를 설립한 후, 2014년 현재까지 공주대학교에서 6년째 운영하고 있다. 공주대 한민족교육문화원은 2010년 국가, 충청남도, 공주시, 공주대학교의 공동 투자로 전용 강의동, 첨단 시설을 갖춘 기숙사 시설, 전용식당, 컨벤션 센터 등 4개의 전용시설을 갖춘 한민족교육문화센터로 재정비해 세계적인 한민족교육의 메카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와 같은 교육 인프라를 기반으로 현재까지 964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다. 입학목적에 따라, 대학진학ㆍ취업ㆍ모국연수 등 교육과정 분류 운영 재외동포 모국수학 교육과정은 모국 이해에 필요한 실용 한국어 구사 능력과 미래 국제사회 적응 능력을 배양하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익혀 한민족으로서의 폭넓은 소양을 갖춘 세계인 양성을 목표로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사를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아울러 정체성 함양을 위한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현장체험학습, 동아리, 버디프로그램 등)을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공주대 한민족교육문화원에서는 모국수학생의 입학목적을 △대학진학 △진로(취업) △모국연수로 분류하여 대학진학 희망자를 위한 대학입시 전형 지원 및 TOPIK 캠프, 국내외 취업 희망자를 위한 취업특강, 취업캠프 등을 운영한다. 모국수학생을 위한 특전으로 수학 기간 중 성적, 출석, 생활태도 등을 감안하여 모국수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모국수학생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재외동포 모국수학교육과정’ 학생모집 미래 한민족 리더를 양성의 요람인 공주대 한민족교육문화원에서 운영하는 2014 재외동포 모국수학 교육과정의 신입생을 모집한다. ‘재외동포 모국수학 교육과정’은 외국에서 9년 이상의 교육과정을 마쳤거나 이와 같은 수준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재외동포로서 공관장의 추천을 받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며, 지원서 교부 및 접수처는 거주국 한국 공관(대사관/총영사관/한국교육원)이며, 일본의 경우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서도 접수가 가능하다. 재외동포 모국수학교육과정은 장기교육과정(8개월)과 단기교육과정(3개월) 등이 있다. 단기교육과정(2)과 단기교육과정(3)의 신입생 모집 기간은 각각 오는 5월 12일과 7월 11일까지이다. 교육과정, 지원자격, 교육경비, 입학절차 장학금 등은 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hansaram.kr) 또는 전화(+82-41-850-6030~1(공주대학교 한민족교육문화원))로 확인할 수 있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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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9
  • 中외교부, 한반도 미사일 방어시스템 배치는 지역 안정에 불리
    [동포투데이]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28일의 정례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한반도에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배치하는 것은 지역의 안정과 전략적 균형에 불리하다며 미국 측이 이 지역 관련 국가의 합리적 관심을 충분히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표시했다. 친강대변인은 현재 한반도의 정세에는 불확정적이고 복잡하며 민감한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 중국 측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반도의 관련 문제를 해결할 것을 확고부동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정부와 인민은 중국의 대문 앞에서 정세가 긴장해지고 전란이 발생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다. 또한 중국은 관련 각측에 공동으로 노력해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중시하고 정세의 긴장을 가중시키는 행동을 삼가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사일 방어시스템에 관한 중국 측의 입장은 시종일관 명확하며 중국은 해당 지역에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배치하는 것은 지역의 안정과 전략적 균형에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이 지역 관련 국가들의 합리적 관심을 충분히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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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9
  • 중국 영주권 얻기 가장 어려운 국가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및 세계화싱크탱크는 일전 “세계이민보고서” 중국판을 발표, 보고서에서 중국은 날로 흡인력이 있는 이민목적지국가로 되고 있으며 본세기 10년간 중국의 이민은 35% 증가했다고 지적했다고 중국 언론 법치주말(法治週末)이 28일 전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왕휘요 주임은 중국의 발전속도에 비하면 이 수치는 너무 적다고 인정했다. 날로 흡인력 있는 이민목적지국가 국제이민기구의 “세계이민보고 2013”에 따르면 과거에 홀시했던 추세―고수입국가에서 저수입국가에로의 이민 수가 날로 증가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는 날로 뚜렷해 지고 있다. 보고서는 2010년에 중국에는 외국이민 775명이 있었는데 지난 10년간 35% 증가했다면서 “중국은 날로 흡인력이 있는 이민목적지 국가로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가장 흡인력 있는 이민목적지 국가로 꼽히는 원인은 경제기회로서 선진국의 금융과 경제 위기에 반해 중국과 같은 신흥경제체 국가들은 기술인재 수요가 많으며 생활원가가 낮은 등이었다. 데이터에 따르면 외국에 나간 중국 유학생들의 귀국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바 2011년의 귀국유학생 수가 처음으로 출국유학생 수의 50%에 달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의 이민 추세는 물론 주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이민은 전 세계 이민의 3%―6%(700만―1300만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린카드(영주권) 얻기 가장 어려운 국가 목전 중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그린카드를 얻기 어려운 국가로 꼽히고 있다. 2004년에 “그린카드” 제도를 실시해서부터 2011년 말까지 중국은 그린카드 도합 4700여장밖에 발급하지 않았는바 년 평균 248장밖에 발급하지 않은 셈이다. 헌데 이 시기 중국에 상주하는 외국인은 60만명에 달했다. “중국에서는 10년간 몇천장을 더 발급한 것이다. 다른 국가들에서는 1년에 그린카드 10여만―20여만장을 발급한다. 미국은 1년에 그린카드 100만장을 발급하는데 중국은 차이가 너무 많다” 왕휘요의 말이다. 왕휘요는 “중국 국제이민보고 2014” 청서에서 중국 인민은 거대한 적자를 보고 있다면서 “적자가 매우 크다.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에 이민온 외국인구는 현재 80여만명인데 반해 외국으로 이민간 중국인은 근 1000만명에 달하는바 10배가 넘게 더 많다”, “본 세기 전 10년간 중국의 이민적자는 확대될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외자에 개방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재에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에서 2004년에 발표한 “외국인의 중국 그린카드 획득 심사비준 방법”은 외국인이 중국에서 그린카드를 획득하는 한가지 상황으로 중국 공민과의 혼인관계가 만 5년간 지속되고 또 중국에서 연속 5년간 거주, 매년 중국에 거주한 기간이 9개월이 넘어야 하며 중국에 안정된 생활보장과 주소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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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9
  • 경찰, 마약 밀반입한 밀수입사범 및 조폭 등 63명 검거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서는 미국에서 국제특송으로 엑스터시와 필로폰을 밀반입하여 판매하고, 이를 구입하여 투약한 밀반입사범 · 조폭 등 피의자 63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하였다고 밝혔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M(28세)씨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A에게 부탁하여 마약을 믹서기로 분쇄하여 건강식품 캡슐에 담아 위장한 후, 국제특송(EMS)을 이용하여 밀반입하였다. 판매책 H(42세)씨 등 6명은 채팅어플에서 L(17세, 여) 등 5명의 미성년자들을 유인한 후 필로폰을 “살 빼는 약”이라며 투약토록 하였고, 그 중 1명은 이들의 요구로 필로폰을 판매하기도 하였다. 수사결과 이처럼 채팅어플로 만나 마약을 투약한 여성들이 23명에 이른다. 또한 밀반입한 마약이 조직폭력배와 그 추종세력에게 공급되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경찰의 검거에 대비하기 위해 회칼 · 정글도 등 흉기들을 소지하고 있다가 검거된적도 있다. 경찰은 앞으로 유관기관과 협조하여 국제특송을 통한 마약류 밀반입을 차단하고, 채팅어플을 이용한 마약류 유통 차단에도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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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9
  • 중국 의료보험 입원비 결산비례 75% 제고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국무원판공청은 일전, “의약보건체제 개혁을 심화할데 관한 2014년 중점사업 임무”를 발부했으며 문건에서 2014년에 도시주민 의료보험과 신형의 농촌합작의료보험의 정책 범위내 입원치료비 결산비례를 70% 이상과 75% 좌우에 달하게 함으로써 실제 입원비용 지불비례 간의 거리를 축소한다고 지적했다고 중국신문망이 28일 전했다. 문건은 2014년에 중대, 특대 질병 치료보장 기제를 더욱 완벽하게 하고 의료비 지불방식에 대한 개혁을 더욱 심화함으로써 전민 의료보험체계를 공고히 할 것을 요구했다. 문건에 따르면 2014년 종업원 기본의료보험과 도시주민 기본의료보험, 신형의 농촌합작의료보험 이 3가지 기본의료보험 참가률을 95% 이상에 달하게 하고 도시주민 의료보험과 신형의 농촌주민 의료보험 인당 정부보조금 표준을 40원을 올려 320위안에 달하게 하며 개인 의료보험금 납부액도 상대적으로 20위안을 인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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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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