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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프로축구, 결국 역사 속으로…
[동포투데이] 새 시즌을 위해 동계훈련을 펼치고 있어야 할 중국 축구 을급리그 연변북국축구구락부가 20일 오전 갑작스레 해산을 선포하였다. 이날 전임 연변북구축구구락부 총경리 김영춘과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더는 팀을 운영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축구팀을 해산한다”고 선포하고 선수들에게 발급하지 못하고 밀린 4개월간의 로임은 단 시일내에 정부에서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변부덕 해산에 이어 연변북국까지 해산되면서 연변 프로축구는 역사 속으로 초라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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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법원, 연변부덕축구구락부 파산 공식 선고
[동포투데이] 13일, 연변주 중급인민법원에서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공사의 파산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법원은 지난 3월 27일,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회사의 신청에 근거하여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회사의 파산 청산에 관한 신청을 접수. 조사를 거쳐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회사의 자산총액은 39,464,572위안이고 채무총액은 376,608,414.10위안인 것으로 확인되었는 바 자산으로 채무를 청산할 수 없었고 채무를 납부할 능력도 부족하였기에 파산 사유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고 밝혔다. 2019년 2월 25일, 2.4억 위안의 세금과 벌금을 체납한 연변부덕구단은 연변주 중급인민법원에 파산 청산을 신청하였다. 연변부덕구단은 중국에서 역사상 세금체납으로 해체된 첫 번째 구단으로 되었다. 연변부덕 전신(前身)은 1955년에 성립된 길림성 축구팀이다. 연변부덕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슈퍼리그에서 활약하였고 2016시즌 9위를 기록하였다. 2017시즌 슈퍼리그에서 갑급리그로 강등되었고 2018시즌 갑급리그에서는 11승 5무 14패 승점 38점으로 10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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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FC, 김승대 · 윤빛가람 선수와 입단 계약 체결
[동포투데이] 연변FC는 16일, 한국 포항 스틸러스 공격수 김승대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윤빛가람 선수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윤빛가람 선수는 5년, 김승대 선수는 3년 계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항 유소년 시스템에서 성장한 김승대는 지난 2013년 K리그 클래식에 데뷔했다. 3골 6도움을 올리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엔 10골 8도움을 올리며 팀 주축으로 떠올랐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표로 발탁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엔 외국 선수들과 경쟁 속에서 리그 34경기 8골 4도움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K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중 한명인 윤빛가람은 2010년 데뷔와 동시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후 A대표팀 승선하는 등 최고의 주가를 달렸다. 윤빛가람은 올 시즌 7골-6도움을 올리며 K리그 대상 중앙 미드필더 부분 후보까지 올랐다. 윤빛가람 선수는 비자 발급후 곧바로 해남도에 가서 팀과 합류하게 되며 김승대 선수는 내년 1월쯤 합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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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하 감독의 도전 또 통할가?
[동포투데이] 축구결책층은 물론 연변FC 상하가 슈퍼리그 체제로 편입되면서 연변팀의 관련 행보가 또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내년 시즌 박태하 감독과 함께 할 감독진 인선 구성이 완료되고 선수단 보강, 영입 작업이 일사분란하게 추진되면서 올시즌 갑급리그에서 기가 막힌 신화를 써낸 박태하 감독이 여세를 몰아 슈퍼리그에서도 그 도전이 통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태하 감독은 새 감독진 구성에서 선수시절 수비수였던 이림생감독(심수우항팀 전임 감독)을 수석코치로 불러들였고 김성수 전 울산현대팀 키퍼 코치, 연변FC 선수들과 친화력을 자랑하는 문호일, 다년간 심수에서 사업(축구 관련)하며 차범근감독과도 친분을 쌓은 류건강을 체능코치로 발탁, 코칭스태프에 합류시켰다. 이외 박태하 감독은 2명 정도의 한국적 공격수의 추가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외적용병 5명 가운데 3명을 한국인 선수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박태하 감독은 내년 시즌 목표를 소박하지만 현실적으로 잡았다. 바로 슈퍼리그 잔류다. 그는 래년 시즌 팬들의 기대가 크겠지만 오랜만에 1부리그(슈퍼리그)에서 뛰는만큼 슈퍼리그 잔류가 최종 목표라며 무엇보다 슈퍼리그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태하 감독은 내년 시즌을 대비해 해남 전지훈련에서 45명 내지 50명 정도의 선수단을 꾸려 면밀한 관찰을 통해 팀 골격을 짤것으로 보이며 일본 전지훈련에서는 40명 정도, 한국 전지훈련에서는 35명 정도의 선수단 규모로 축소해나가며 최종 30명으로 옥석을 가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태하 감독이 중국 축구무대에서 일으킨 신드롬으로 한국적 감독들의 중국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연변의 히딩크”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연변FC가 내년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감독 박태하의 도전이 또 한번 통할수 있을지에 수많은 사람들은 흥분에 떨기도, 가슴을 졸이기도 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 연변FC가 가야 할 길은 더욱 힘들 것이다. 갑급리그 우승, 슈퍼리그 진출은 이제 모두 지나간 역사이다. 내년을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지만 절대 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라면 도전하는 것이야 말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태하 감독의 말이다. 220만 연변시민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그런 경기를 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박태하 감독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연변일보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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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박태하 감독의 인간 향기
■ 소나 지난 10월 24일, 연변팀은 연길 홈장 스타디움에서 호남상도팀을 4대0 으로 쾌승하면서 끝내 갑급리그 “우승컵”을 확 거머쥐였다. 이로써 연변은 물론 중국 전역과 지어 해외의 조선족들도 열광했다. 불도가니같이 들끓는 경기장내서 박태하 감독을 소소리 높이 들어올리는 선수들의 헹가레는 그런 마음마음을 담은 감격의 세러머니였다. 그날 경기뒤 박감독은 언론을 통해 연변팀 잔류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더 관심을 끌고 감동적인 사실은 박태하 감독이 시합 전날 23일에 스스로 연변팀에 남겠다는 의지를 굳이고 먼저 구단(구락부)에 재계약을 서두룬 것이다. 다 알다싶이 지난 한동안 연변팀은 너무나 처절했고 파란만장했다. 올해초 3부리그에 빠질번 하다 겨우 리그에 남은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였다. 그런 팀을 누군가 맡는다는게 참으로 어찌 보면 바보취급을 받을 정도로 비쳐지기도 했을런지 모른다. 그런데, 박태하 감독이 선뜻 맡았다. 그때 모습은 너무다 담담했다는게 후문이다. 거창한 선언도 없어 너나가 긴가민가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기적을 낳았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끝내는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참으로 피땀으로 일궈낸 어거리 대풍이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드라마를 쓴것이다. 슈퍼리그 진출이 결정되자 사실 우리는 감동과 불안이 반죽됐다. 그에 대한 러브콜은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끊기지 않았다. 그로서도 참으로 고민할만했다. 더구나 큰 아들이 축구를 해서 안해는 한국에 남아야 하는 사정이다. 언론이나 누가 재계약을 물어도 그는 “소이무답(笑而無答)”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더 궁금한 것이다. 과연 그가 뭘 생각했을가가 더 궁금한 터였다. 하지만 그는 단연이 잔류를 결정했다. “한해 동안 내가 팀을 만들었는데 선수 한사람 한사람의 강점과 잠재력을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도 나다. 그런데 내가 떠난다면 내게도 손해다. 아까워서 떠날 수 없었다.” 어느 한 언론에서 한 인터뷰 내용이다. 한만디로 애틋한 사랑이였다. 그는 여느 감독들처럼 금전을 일순위에 놓는 인간이 아니였다. 사실 올시즌 중반부터 박감독에 눈독을 들인 한국과 중국의 팀이 한둘이 아니였다. 연변에서 재계약 할때 제시했던 년봉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한 팀도 있었다. 박감독은 부심하지 않고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그는 “다른 팀으로 가면 돈을 얼마나 더 벌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금전적인 보상은 여기서도 어느 정도 받았다. 돈을 최우선으로 보고 움직이면 일을 제대로 할수 없다. 실패로 가는것”(풋볼리스트)이라고 했다. 이래서 축구팬들이 그에게 열광하고 이래서 그는 다함없는 사랑을 받는다. 이국에서 온 사람이 이 고장에 얼마나 낯설었을가?! 글쎄 말은 통한다해도 그럼에도 그는 혁신으로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의 “3박자론”은 유명하다. 그게 바로 “축구행정과 구단 그리고 선수가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는 철언이다. 그걸 말로만이 아닌 현실로 이뤄내는데 성공했기에 빛이 나고 갈채를 받고있다. 그날 호남상서도팀을 이겨 슈퍼리그 진출로 스타디움은 불도가니인양 들끓었다. 하지만 박감독은 오히려 담담한 포즈. 그냥 눈꿉을 찍는 모습과 흥건이 고여있는 눈물만 역역했다. 도전과 희생 그리고 원칙과 의리! 박감독은 정신적으로 무장된 인간이다. 그의 인간적가치와 인간의 향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는 단순히 축구만이 아닌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사랑으로 축구를 품은 인간이다. 더불어 스스로만의 가치관과 철학으로 우리를 일깨준 그 의미는 참으로 깊다. 그의 인간승리의 드라마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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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7)
- 편집자의 말: 연변축구는 전통이 있고 역사가 길며 중국 축구사상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과 예약하여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편집자 ■ 민 함 연변은 역사적으로 북경, 상해, 대련, 광동 등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만큼 축구스타들을 많이 배출한 “축구의 고향”이다. 아니, 연변을 포함한 중국조선족의 인구는 해방초기나 지금이나 여전히 200만명의 미달…인구비례를 따지만 연변 아니 중국조선족축구는 북경이나 상해의 축구보다 엄청 더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배출해낸 선수들중에는 유명한 중국이나 조선내지에서 소문난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선수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세기 20년대 가장 유명한 선수들로는 정수원(별명: 숫캐)과 박주환, 그리고 이종갑과 김응세, 차금돌, 이영광, 유시율, 허죽산, 박익환, 박노석, 김호주 등이었다. 그 중 박노석, 차금돌, 이영광, 유시율, 허죽산 등은 조선축구계에 족적을 옮겼고 요정 광명중학교 출신인 이종갑은 광복 후 한국 서울로 나가 축구계에서 적극 활약, 지난 세기 60연대에는 한국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취임되기도 했다. 또한 조선으로 나간 김응세는 1966년 제8회 잉글랜드월드컵 조선대표단 단장으로 되기도 했다. 그외 연변에 남은 박노석은 1956년에 발족된 중국축구심판위 위원으로 당선되었으며 그 이듬해 연변축구협회가 설립된 뒤 지난 1986년까지 줄곧 협회 부주석으로 있었다. 그 시기 특수하게 유명한 선수들을 선택하자면 딱히 지정할 수 없지만 정주원, 박주환, 박익환, 박노석 등이 아닌가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쩐지 축구선수 중 박씨가 많은 감이 든다. 박씨, 한편 곰곰히 생각해보면 박씨들 중 확실히 축구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연변의 박익환, 박노석, 박상복, 박만복, 박문호, 박성 등이 있는가 하면 조선에는 월드컵 영웅 박두익이 있으며 한국 또한 박종환, 박지성, 박주영 많다고 꼽이니 진짜 많이 꼽을 수 있을 지경이다. 한편 지금까지 연변내 축구팬들한테 가장 인상속에 남는 축구인 인물은 그래도 박만복과 이광수인 것 같다. 그렇다. 박만복 선생과 이광수 선생은 지난 세기 50연대부터 2000연대 초엽까지 연변축구권내에서 큰 영향력을 일으키면서 쌍벽을 이룰만한 인물이다. 그 중 박만복 선생은 중국의 제 1 대 헝가리축구유학생에 들어간 인물(당시 20여명 중 조선족 7명)이였으며 당시 그가 중앙수비로 지키는 중국청년팀은 공산권국가의 축구인들로부터 “무너지지 않는 만리장성”이란 명예를 받아안기도 했다. 그리고 길림성팀 창립공로자의 한 사람인 이광수 선생은 중국축구권내에서 조직형축구를 만들어낸 인물로서 그가 주도하는 길림성팀의 공격라인의 이광수, 손중천, 지운봉은 일찍 지난 세기 50연대 중국 국가체육운동위 하룡주임으로부터 “삼각폭격기편대”란 명칭을 얻기도 했다. 또한 박만복 선생은 감독신분으로 1965년 또 조선족으로 구성된 길림성팀을 이끌고 중국축구갑급리그 우승고지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고 이광수 선생은 연변대 체육학부 주임으로 수많은 학자형 축구인재들을 육성해내기도 했다. 후에 이 두 축구원로는 손잡고 중국 동북조선족축구친목회를 창설, 연변축구의 전국화와 글로벌화하는에 있어서 마멸할 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쌍벽을 이루는 두 인물 중 박만복 선생은 아직도 생전이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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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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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 승전만이 반전인 것은 아니다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최후 경기 보충시간 내의 동점골 허락, 무릎을 치고 혀끝을 차며 아쉬움을 토했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납득이 가는 무승부였다. 아쉬움도 남겼지만 상대를 봐야 했다. 상대는 슈퍼리그에서 굴러 떨어진 팀이었다. 지난해 시즌 슈퍼리그 제 5 라운드에는 4승 1무 무패행진으로 광저우헝다와 산둥루넝까지 제치고 슈퍼리그 선두에까지 올라섰던 강호였다. 이런 강호와 맞붙은 연변천양천팀이다. 그것도 두번 한골씩 앞서다가 최후에 말그대로 혀끝을 차는 아쉬움이었다. 경기내용은 더욱 화려했다. 한국용병 김기수와 7번 최인의 쌍변선은 날개가 돋친듯 상대방을 괴롭혔고 지면배합이 되살아났으며 최민과 진효를 위수로 하는 수비라인의 진보도 눈에 뜨이게 개선된 감을 주었다. 특히 수문장 윤광의 플레이는 월드컵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듯 싶었다. 신임감독 이광호가 쌍방간의 실력차이를 면밀히 분석한 후 선발출전 멤버를 잘 구성했다는 생각이다. 상대가 강하나 좀 굼뜨다른걸 파악, 경기초반 빠른 몸돌림과 패싱플레이로 상대방 선수들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상대가 강하면 더 강하게 나온다는 기전술이었다. 출중한 스트라이커가 부재한 상황에서 쌍변선과 중앙선을 연속 부절히 교차시키는 밀물공세로 상대방이 궁지에 빠지게 하는 가운데 슈팅 기회가 자주 생겼고 3-4차의 슈팅 끝에 선제골에 성공했다. 올들어 가장 빠른 시간내에 작렬시킨 “핵폭탄”같은 선제골이었다. 그것도 한낱 신진인 6번 이훈이 성사했다. 그리고 두번째의 골도 부단히 밀물공세를 들이대던 중 페널티킥 기회도 생겼으며 역시 김기수의 주도로 골에 성공하며 재차 상대방보다 한골 앞서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날 경기장에 가본 팬들은 다 알겠지만 칭도중넝팀 선수들은 연변팀 선수들보다 평균 거의 10센치메터 가량 키꼴이 더 큰 상황이었다. 드리블 기술이나 충격력면에서 모두 연변팀 선수들보다는 한차원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반전 궁지에 몰린 건 연변팀의 지면배합 플레이에 의해서였다. 특히 김기수, 지충국, 최인 등 선수들의 몸놀림, 순발력과 침투 등은 아주 일품으로 상대방 선수들을 “뒤꽁무니에 끌고 다니며 조롱하기”엔 아주 보기가 좋았다. 여기서 이광호 감독의 기전술운영이 아주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한편 노출된 허점도 적지 않았다. 20번 최민이 수비선으로 처져 들어오면서 중원통제가 잘 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3선 탈절현상이 가담가담 보이었다. 그래서 쌍변선을 많이 이용했겠지만 중원조직에서는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교체멤버된 선수들의 실수가 자주 보이었다. 특히 이전의 주력이었던 이민휘의 컨디션이 아주 실망스러웠다. 실수가 너무 많았다. 지난번 대 이공팀전에도 그의 실수로 첫 골을 먹었고 이번에도 그의 실수로 궁지에 몰릴 때가 많았다. 다음 강조하여 지적하고 싶은것은 선수들의 체력문제이다. 이번 대 중넝전 후반들어 특히 우리 선수들의 체력한계가 현저하게 드러났다. 이전에는 “체력우세”라고 자랑할만하던 연변팀이었으나 올해는 그 정반대라는 생각이다. 만약 90분간의 왕성체력을 보장했더면 이번에 대승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으며 마지막 종료 직전의 실점도 피면할 수 있지 않았을가 생각한다. 하긴 이광호 감독이 팀의 그런 약점을 장악했기에 “선제강타”를 시도했으리라 충분히 짐작된다. 여하튼 이번 대 중능전이 승전이라는 결과는 안아오지 못했지만 경기내용이나 분위기를 볼 때 완전히 탈태환골이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 승전만이 반전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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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 승전만이 반전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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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천양천 청도중능에 2 : 2무승부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이 마지막 1분간의 집중력 부족으로 입안에 들어온 “비게덩이”를 놓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24일, 연길인민경기장에서 있은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11라운드에서 연변팀은 강호 청도중능과 서로 골을 주고 받으며 2 : 2로 손잡았다. 경기초반 연변팀은 거센 폭풍우같은 공격을 연속 퍼부으면서 기선을 제압, 경기 5분만에 신진 6번 이군 선수가 상대방 문전혼전 중 챤스를 잡아 선제골을 터트렸다. 3분 뒤 청도중능팀이 거센 반격을 조직, 중능팀의 외적용병 달나라크가 요강산의 패스를 이어받아 연변팀의 수비를 뚫으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그뒤 쌍방은 밀고 밀리우는 공방을 계속하던 중 37분경 연변팀한테 페널티킥 기회가 생겼고 11번 김기수가 침착하게 공을 날려 상대방 골네트에 가 박히게 했다. 후반들어 7분경, 연변팀 10번 지충국의 롱슈팅(远射)가 상대방 골키퍼에 의해 와해됐고 14분 뒤 중능팀 외적용병 달나라크가 때린 슈팅 또한 연변팀의 골키퍼 윤광에 의해 와해되기도 했다. 특히 그날 연변팀의 수문장 윤광은 비범한 재주를 과사 선후하여 4-5차에 달하는 상대방의 위험공을 받아안거나 쳐내면서 실점위기를 막아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연변팀은 지꿎게 상대방 공격수들한테 달라붙으며 잘 버티다가 최후 경기보충시간에 마지막 1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허락, 경기 집중력을 두고 과제를 남기었다. 한편 그날 연변팀은 입에 다 들어온 “비게덩어리”를 놓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전반 경기를 볼 때 지면배합의 풍격과 정신력이 살아났다는 것이 축구팬들의 평가였다. 연변팀 선발출전멤버: 1번 윤광, 5번 진효, 6번 이훈, 7번 최인, 8번 이호, 10번 지충국, 11번 김기수, 12번 강홍권, 17번 고만국, 20번 최민, 32번 박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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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천양천 청도중능에 2 : 2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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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팀 이광호 감독, 준엄한 갑급잔류 임무 사활 걸고 완수할터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일전 연변장백산천양천 축구구락부에서 만난 연변팀 신임감독 이광호씨, 워낙 좀 마른 얼굴이었는데 요즘 들어 더욱 축간 것 같았다. 갑급잔류임무가 너무 과중해서였을까? “전임감독에 대해 크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호은씨는 나의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하다. 그가 큰 고생을 했다. 그가 구단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또 열심히 노력했건만 이러저러한 여건이 풀리지 않아 성적을 올리지 못해 결국 희생자가 됐다. 현재 연변팀의 상황에서 별로 뽀족한 수는 없다. 그저 사활을 걸고 그 어떤 강팀한테도 굴하지 않고 맞선다면, 거기에 답이 있을 것이라 보아진다.” “뭐니뭐니 해도 공격라인에 차질이 많이 생기던데?” 하는 물음에 이광호 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현재 보다 순발력에 충격력까지 겸비한 스트라이커(前锋) 물색에 나섰는바, 이제 수준급 스트라이커를 영입하고 이전의 상병들의 컨디션이 회복되노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일축했다. “지난해에는 제 10 라운드까지 9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제 10 라운드까지 단 4점을 기록한데 불과하다. 팀이 이토록 부진해보기는 갑급참전 사상 처음이다. 주어진 형세는 아주 준엄하지만 그 난관들을 하나 하나씩 타개하며 팀을 안정시키고, 반전을 꾀하며 최종 팀을 갑급에 잔류시키는 것이 아내 감독이 해야 할 임무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이광호 감독에 따르면 올해의 갑급잔류 점수가 지난해와 비슷한 승점 30 정도로 추측, 하다면 이제 남은 20경기에서 적어도 7경기는 이겨야 하고 5경기 이상 비겨야 갑급잔류가 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10경기에서 겨우 한번 이겼는데 이제 남은 20경기에서 7경기 정도 이긴다? 도박과 비슷한 아주 간고한 승부걸기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고도로 되는 집중력을 가지고 무릇 어떠한 상대이든간에 사활을 걸 것이 필요한 것이다. 마침 오는 24일과 6월 1일, 연속 2차례의 연변홈장에서 제 11 라운드와 제12 라운드가 치러진다. 모든 경기가 관건이겠지만 이번 2경기가 관건의 관건적인 경기가 될 전망이며 이광호 감독의 능력을 테스트할 시험대로 될 수 있는 경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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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팀 이광호 감독, 준엄한 갑급잔류 임무 사활 걸고 완수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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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 (6)
- 옌볜 지역에서 축구는 100여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한다. 중국에서 옌볜은 ‘축구의 고향’이라고 불릴 만큼 오랜 시간 축구가 성행했다. 또한 축구는 하나의 문화로서 중국 조선족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연변 FC는 중국축구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중요한 존재다. 또한 지린성을 대표하며 중국축구무대를 주름 잡은 팀이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그렇기에 옌볜 FC는 중국 조선족의 가장 큰 자랑이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을 모시고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 편집자 연변프로축구는 크게 두개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1994년부터 2001년까지의 갑A 단계이고 다시 2001년부터 현재까지의 갑급단계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싶이 2001년 원 갑A권 구단이던 길림오동팀이 갑B로 강급되면서 절강에 매각, 그 뒤 연변에서는 82-83 연령단계 선수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연변팀을 구성해 중국축구을급리그에 참전했는데 그 때부터 연변축구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00년 길림오동팀이 갑A에서 분전하고 있을 때 2선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팀은 조선 평양에서 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연변 주 체육국에서는 프로축구초창기 연변삼성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이호은 감독한테 이 팀을 맏겨 팀구성을 완성하게 했다. 이 팀은 2001년부터 중국축구 을급리그(3부 리그)에 참가했다. 그 때는 원 연변 현대자동차팀에서 활약하던 방근섭, 이찬걸, 이시봉 등 선수들이 주축으로 되었지만 첫해의 전적은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노장선수들의 경험과 신진들의 활약이 유기적으로 잘 배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1993년 전국운동회에서 “전면 진공 전면 방어”의 축구로 “흑마”로 부상했던 이호은 감독의 축구운영사상도 어딘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듬해 역시 노장과 신진들과의 배합의 미숙으로 역시 갑급진출이 무산됐다. 다음 세번째 해인 2003년 연변팀은 방근섭, 이시봉과 이찬걸 등 노장들이 퇴역하고 순 신진들로 구성돼 을급리그에 뛰어들었지만 성적이 이상적이었다. 그만큼 정림국, 한송봉, 문호일, 배육문, 윤광, 한광화 등 신진들의 기량이 제고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해 연변팀은 을급 8강까지 진출했다. 8강전 제1라운드의 2회전에 달하는 경기에서 연변팀은 상대방을 물리치고 4강에 합류했다. 4강전에서 연변팀은 광동일지천과 상대했다. 1회전에서 연변팀은 광동일지천과 2 : 2로 비겼다. 2회전에서 이기면 연변팀의 갑급진출이 성공되는 판이었다. 2회전 전반 연변팀은 1 : 0으로 앞섰다. 당시 연변팬들은 축하파티를 마련할 준비를 했고 스포츠기자인 필자는 연변팀 갑급진출을 축하하는 언론을 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후반들어 연변팀이 상대한테 연속 2골을 허락하며 패할줄이야. 갑급진출 무산 뉴스에 팬들은 낙심했다. 축구파티상에 오른 요리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 축하 언론을 쓴 원고지는 구겨진 채 파지통에 들어갔다. 그 뒤 이호은 감독은 사표를 냈다. 3년동안 애를 쓰며 연변축구의 갑급진출을 위해 노력했으나 역시 자신의 한계를 감안한 모양이었고 또 지치고 서글픈 모양이었다. 그 이듬해 연변 주 체육국에서는 당시 상해에서 상해천나팀의 감독을 맡고 있던 고훈 감독한테 러브콜, 이에 고훈 감독은 상해에서의 모든 우월한 조건도 송두리채 버리고 고향축구를 위해 연변으로 달려왔다. 그 이듬해 즉 2004년의 을급리그 연변홈장은 화끈한 분위기었다. 매 경기마다 수만명의 관중들이 동원, 당시 길림신문의 최승호 기자는 연변홈장을 “을급리그의 슈퍼리그 분위기”라고 표현했다. 그 해 10월 말, 연변세기팀은 을급리그 북방구의 우승(무패행진)으로 하남성 정주에서 있은 8강전에 참가했다. 당시 연변팀은 제1라운드의 2경기를 거쳐 산동구거룡팀을 격파하고 제2라운드의 2경기를 거쳐 운남 여강팀을 완승하여 갑급진출에 성공하여 연변축구의 비장한 한페지를 기록했다. 그 이듬해 즉 2005년부터 연변팀은 전국축구 갑급리그에 참전하게 됐다. 사령탑은 자연스럽게 고훈 감독이 맡게 됐다. 고훈 감독이 연변팀을 맡고 갑급리그에서 올린 성적은 다음과 같다. 2005년 갑급 5위, 2006년 갑급 6위, 2007년 갑급 6위었다. 그 시기 연변축구구락부는 선후로 3명의 주인이 교체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또한 일련의 혼란과 손실을 보았지만 구단성적은 갑급리그 참전 이래의 가장 양호했고 구단도 가장 안정되던 시기었다. 헌데 갑급리그가 결속된 뒤인 그해 11월 20일, 연변축구사상에 전례없던 변고가 생겼다. 이른바 축구계의 사업일군과 축구원로, 심지어 축구선수들까지 참여하에 “투표의 방식”으로 감독을 선거했다. 후에는 다 밝혀졌지만 이는 주체육국 골간층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당시 이호은, 조영원, 고훈 등 3명이 경쟁발언을 한 가운데 조영원씨가 가장 많은 투표수로 감독지휘봉을 받아안게 됐고 연변축구의 공로자인 고훈한테 준 투표수는 고작 3표에 불과했다. 고훈감독을 놓고 말하면 주견이 있는 축구인이었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면 상급 지도일군의 권고 등은 듣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정치와 개인적용망 및 그것을 둘러싼 “외교” 등이 참여하는 중국축구계ㅡ 당시 고훈은 최은택, 이장수와 더불어 이런 현상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 해 연변에서는 조영원 감독을 내세워 이듬해 즉 2008년에 슈퍼리그 진출성공과 전국운동회 우승을 쟁취하여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하지만 그것은 근근히 욕망뿐이었다. 그 이듬해 연변팀은 시즌 초반 연속되는 부진으로 조영원 감독이 조기하차했고 전국운동회 리그도 중도에서 탈락되었으며 감독 지휘봉은 황용한테 넘어갔다가 성적부진으로 현춘호한테 다시 넘어갔으며 최종 김광주가 감독직을 대행했다. 당시 김광주는 구단의 “급시우”였다. 마지막 몇경기를 악전고투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2009년 연변팀은 김광주의 지휘하에 갑급 6위를 기록했고 그 이듬해인 2010년에는 12승 4무 8패 41점으로 갑급 제3위 차지, 갑급시즌 참여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을 따냈다. 2011년, 연변팀의 박성, 김경도, 한청송 등 많은 주력선수들이 이적해갔다. 그해 김광주감독이 아무리 애를 썼지만 연변팀은 부진을 거듭한 끝에 갑급 11위에 머울었다. 그 이듬해 2012년 연변팀은 또 감독풍파가 많은 해로 됐다. 초기 정상용이 사령탑을 잡았다가 그것이 한국인 조긍연한테로 넘어갔고 마지막 그래도 또 김광주가 동산재기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그해 연변팀의 성적은 8승 5무 13패었다. 그리고 지난해인 2013년 연변장백호랑이축구구락부에서는 재차 조긍연 감독을 초빙해 뭔가 시도했으나 여전히 실패, 나중에 이광호가 뒤수습을 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그 다음은 올해 2014년의 일이다. 이호은에 이어 이광호가 재차 사령탑을 잡게 됐다. <축구논평 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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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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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부진 연속 하북중기에 1 : 2 분패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연변장백산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의 연패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17일, 석가장시 유동경기장에서 있는 갑급리그 제10라운드에서 연변팀은 하북중기팀에 1 : 2로 뒤지며 지난번 대 이공전 참패의 설욕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경기초반, 약 5분간 쌍방의 시탐전이 있은후 하북중기팀이 홈장우세를 이용하여 공격에 나섰다. 경가개의 슈팅으로 득점을 시도했고 양보명, 장간, 왕상 등 선수들의 슈팅 역시 연변팀의 골키퍼 윤광의 선방에 맞거나 크로스바(球门)를 스쳐 지나갔다. 연변팀은 간헐적인 공격으로 상대방의 뒤공간을 노렸으나 스트라이커 라인(前锋线)의 활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변팀은 경기 30분경에야 겨우 10번 지충국이 첫 슈팅을 날렸을뿐이었다. 그러던 경기 36분경, 상대방은 연변팀 오영춘 선수의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 기회에 외적용병 마르케스가 헤딩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이어 연변팀은 정신을 가다듬고 공격력을 강화, 41분경 6번 이훈 선수가 날린 슈팅이 크로스바를 스쳐지나갔고 전반 종료를 앞두고 7번 최인 선수가 개인기를 이용해 동점골을 뽑았으나 주심에 의해 웹사이드로 판정되었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9번 김도형 선수 대신 17번 고만국 선수를 교체하면서 스트라이커선이 활약을 보이기 시작, 후반 3분과 15분, 최인 선수가 날린 슈팅이 각각 아쉽게 빗나갔고1분뒤 코너킥기회에 5번 진효 선수의 헤딩슈팅도 득점과 이어지지 못했다. 후반 17분 하북중기팀은 10번 두문휘의 센터링(传中)을 주해위가 헤딩으로 연변팀 꼴문을 재차 갈랐다. 후반 26분 연변팀의 최인 선수가 상대방 수비수 2명의 수비수를 따돌리며 한꼴 만회했다. 이어 연변팀은 연속 선수들을 교체멤버하면서 공격력을 강화했으나 항상 공격의 마지막 마무리가 미끈하지 못해 공점골에 실패했다. 17일까지의 갑급순위를 보면 석가장영창이 7승 2패(9경기) 21점으로 갑급선두를 달리고 있고 연변팀은 1승 1무 8패 4점으로 여전히 갑급꼴지에 머물러 있다. 오는 24일 연변팀은 연길홈장에서 청도중능팀과 제11라운드 경기를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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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부진 연속 하북중기에 1 : 2 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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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 기록될 연변축구의 “애도일”
- ■ 민 함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에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대 이공팀과의 경기ㅡ 무너져도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승은 못하더라도 2 : 1정도로는 앞설 것으로 여겼었고 적어도 빅을 수는 있으리라 장담했었는데 어이없다. 실망이고 우려되며 비애로 엉켜진다. 시즌초반 원정이 많아서, 객관환경이 열악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홈장에서의 학생군단한테 1 : 5 대패! 이제 이길만한 팀은 과연 어느 팀?…연변축구가 대패한 기록- 1995년 10월 8일, 원정에서 사천전흥한테 0 : 6으로 대패한 적은 있었다. 그때는 원정이고 또한 “흑사심” 대위광이란 심판때문에 초래된 결과였지만 이번의 대패는 어이없는 참패이고 “인재(人灾)” 이다. 경기 15분까지의 연속되는 3골 허락,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많은 팬들이 기가 막혀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보니 당시의 천공은 노랗기만 했다. 교묘하게도 1995년 10월 8일, 원정에서의 대패와 이번 참패 때의 경기지휘자는 한사람이었다…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실력이 약해서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될 수 있었다. 톱라인이 어느 정도 미흡할뿐 골키퍼로부터 수비와 미드필더 라인은 상대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았다. 공점유율도 상대방보다 많은 것 같았다. 선수들의 플레이와 투혼도 화염방사기에 못하지 않았고 화려한 장면도 수차 있었다. 하다면 뭐가 모자랐던가? 상대한테 자신을 너무 노출시킨 것이 흠이었다. 상대는 우리를 알고 빤히 꿰뚫어 보고 북상했다. 변화가 없다. “비밀카드”도 없다. “전면진공, 전면방어”, 20여년전의 “카드”였다. 우리 연변축구 전통풍격에 너무 얽매였다. 전통을 계승하되 새로운 풍격 수립에도 남보다 한발 앞서야 할테지만 그것에 실패했다. 키가 작고 기술 또한 짝지며 거기에 체능우세가 없으며 기전술운영도 막말로 “생산대축구”와 근사했다. 백라인에서 변선으로, 변선돌파에 이어 센터링(传中) … 너무나도 단조롭다는 생각이다. 공연결 라인이 다양하지 못하고 선수의 속도와 공제공 사이의 차질이 잦았으며 득점할만한 화력망구축이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지난 제 6 라운드에서는 10여차의 코너킥 기회가 생겼지만 그것으로 단 1골도 만들지 못했다. 이에 대비한 전문적인 훈련미흡이라 볼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하지만 노상 “애도”하며 “제사”만을 지낼 수는 없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사령탑이 바뀌었다. 이는 일종 반전의 계기로 될 수도 있다. 그 사례는 많다. 2008년부터 김광주와 이광호 “소장파” 축구인들이 타인한테서 수차 감독직을 이어받으며 팀위기를 만회하기도 했다. 연변팀을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갑급 중위 권에는 속할 수 있는 팀, 절대 꼴지그룹에 처질 팀은 아니다. 연변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영단묘약”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연변팀은 꼭 반전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불현듯 오또기가 생각난다. 오또기는 넘어뜨려도 다시 절로 일어난다. 올해의 연변팀을 그렇게 비유하면 어떠할는지?2001년 여름, 당시 연길시에서는 원 시인민경기장으로 올라가는 길을 포장길로 만들었다. 그 때 국내의 어떤 매체들에서는 “연변에서 오동팀의 갑B로 가는 길을 수건한다”고 빈정댔다. 올해 연변팀은 새로 세운 현대화한 연길시인민경기장에서 홈장경기를 펼치고 있다. 하다면 연길시인민경기장이 우리 연변천양천팀의 “무덤”으로 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바이다.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고, 슬프고 또한 힘들더라도 지난간 일에 너무 빠져있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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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 기록될 연변축구의 “애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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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리광호”호에 힘 실어주자
- ■김철균 지난해 한국인 조긍연감독이 경질된 후 팀을 이끌고 연변팀 갑급잔류를 성공시킨 “선수파”감독 리광호가 재차 리호은감독으로부터 팀계주봉을 이어받았다. 리광호감독은 그제날 리호은, 최은택, 고훈 등 감독밑에서 다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연변팀의 중견이였고 또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고훈감독의 조리로 지도생활을 한적도 있으며 지난해에는 팀이 강등위기에 처하는 가장 간고한 시기에 감독직을 맡아 훌륭하게 주체육국과 구단에서 맡겨준 임무를 완성하였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리광호는 팀이 “만신창”이 된 어려운 시기에 감독을 맡게 됐다. 리광호감독의 어깨가 무거울수밖에 없으며 팀이 한동안 여전히 부진에서 헤맬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리광호를 선택한 주체육국 및 연변천양천축구구락부 결책층의 결정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연변축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리광호”호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것이다. 이 역시 연변축구를 위해서도 그렇고 축구를 좋아하는 너와 나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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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리광호”호에 힘 실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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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천양천팀 이호은 감독 해임
- 【동포투데이 김철균】10일, 연변천양천팀이 연길홈장에서 1 : 5로 패전한 뒤 연변장백산 천양천축구구락부에서는 연구를 거쳐 이호은 감독을 해임하고 원 코치였던 이광호가 감독계주봉을 이어받게 하기로 하였다. 현재 연변장백산 천양천축구구락부에서는 팀 성적의 부진에 대해 구락부 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 향후 연변천양천팀은 이광호 감독의 지도하에 하루 빨리 성적부진의 수렁에서 벗어 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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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천양천팀 이호은 감독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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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초대석] 이호은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
- 위안우이(북경이공팀 감독): 이전에 연변홈장에 와서 한번도 이긴 적 없었다. 오늘 선수들이 노력해주어 고맙다. 우리는 인차 대학생경기에 참가해야기에 현재 곤난한 상황에서 수준을 발휘해 기쁘다. 오늘 점수 차이는 두 팀의 실력 차이가 아니다. 경기시작과 경기마지막에 잘했기에 행운스럽게 이겼다. 아주 기쁘다, 희망컨대 연변팀도 리호은 감독의 지휘하에 남은 경기를 잘하기 바란다. 이호은(연변천양천팀 감독): 아주 중요한 홈장경기에서 5골이나 먹어 아쉽다. 모든 책임은 나 혼자 지겠다. 곤난한 상황에서 우리 선수들 발휘 잘했다. 오늘 선수들의 이런 정신을 표양하고 싶다. 아무튼 우리는 계속 노력하고 견지할 것이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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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초대석] 이호은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