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 훈
중국은 분명 강해졌다. 경제 규모로는 세계 2위, 고속철도는 세계 최장, 모바일 결제는 일상 속에 완전히 뿌리내렸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더 이상 '개발도상국의 수도'가 아니며, 샤오미와 화웨이, 알리바바와 틱톡은 이미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도 해외에 나간 중국인들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의문은 단지 외국에서 겪는 불쾌한 개인 경험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 밑바닥에는 오늘날 '국가의 성장'이 곧바로 '국민의 대우'로 이어지지 않는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이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꼽는 첫 번째 이유는 '돈은 있어도 예의가 없다'는 인식이다. 이는 다분히 일반화된 편견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강화하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해외 명품 매장에서 물건을 놓고 몸싸움을 벌이거나, 비행기 안에서 신발을 벗고 발을 의자에 올리는 사진, 혹은 단체 관광객들이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모습은 '소비자는 왕'이라는 태도가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소수에 국한되어 있음에도, 집단 전체의 인상을 결정지을 만큼 상징적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중국인이 또…”라는 문장이 매번 반복되며 집단 정체성을 덧씌운다. '돈'으로는 서비스를 살 수 있지만, '존중'은 살 수 없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서구 언론의 구조적인 편견이다. 서구 매체는 중국인을 ‘부유하지만 무례하다’거나, ‘위협적이고 통제적인 체제의 일원’으로 그리는 데 익숙하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성장과 개방을 보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인을 묘사할 때 클리셰(틀에 박힌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일본인 관광객이 해외에서 실수하면 “예외적인 해프닝”이라 여기고, 미국인 음주 난동은 “자유로운 젊은이”로 포장하지만, 중국인에게는 이를 국가적 문화 결핍으로 연결지으려 한다. 이런 보도 태도는 대중의 인식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미국의 피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서구권 시민이 중국을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로 본다고 답했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한 번도 중국을 방문해본 적이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상의 중국인'이 세계 무대에서 하나의 고정 이미지가 된 셈이다.
문제는 외부만이 아니다. 일부 재외 중국인들은 현지에 잘 적응하기 위해, 혹은 현지 사회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중국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자기 정체성을 낮추는 태도는 때로는 '자기비하적 동화'의 형태로 나타나고, 이는 오히려 외부의 멸시를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일부 해외 화교들이 '바이러스는 중국 탓'이라는 메시지를 앞장서 전파하면서, 동양인을 향한 혐오가 정당화되는 데 일조한 사례는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친중'이든 '반중'이든 상관없이, 인종 혐오라는 뿌리 깊은 문제 앞에서는 모두가 대상이 되었다.
경제적 힘과 문화적 설득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중국은 현재 미국을 능가하는 성장세를 자랑하지만, 소프트파워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한계에 봉착해 있다. 세계가 기억하는 중국의 문화는 아직도 쿵푸, 공자, 싸구려 공산품이라는 오래된 도식 속에 갇혀 있다. 최근 TikTok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전 세계 젊은 층에 파고들었지만, 한류나 일류(일본 문화 콘텐츠)의 파급력에 비하면 여전히 제한적이다. 문화는 강요가 아니라 매혹을 통해 퍼진다. 현대 중국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혁신하는 중국’일지 모르지만, 세계가 보는 중국은 여전히 ‘전통과 권위’ 혹은 ‘통제와 권력’에 집중되어 있다. 외부 세계에 현재의 중국을 전달하는 통로는 아직 협소하다.
중국에 대한 냉대는 질투와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취급받던 중국이 이제는 기술, 군사, 외교 영역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수준이 되자, 이를 경계하는 움직임이 노골화됐다. 화웨이의 5G 기술은 보안 위협으로 몰렸고, TikTok은 '청소년을 세뇌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는 중국의 강함 자체가 곧 도전과 위협으로 읽히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결국 중국인이 해외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데는 외부의 편견과 내부의 한계가 얽혀 있다. 이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만의 문제도, '중국인'이라는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존중은 타인에게 구걸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태도, 그리고 일관된 자존을 통해 '얻어내는' 결과라는 점이다.
중국인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 더 품격 있는 태도를 유지하고,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차별과 혐오에는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히 대응하는 것. 이 모든 행동이 ‘국격’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전달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존중은 해야 한다.”
이 말이야말로, 지금의 중국이 세계 앞에서 가져야 할 태도이자, 오늘날 모든 국가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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