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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로에서 사라진 한국차, 기술의 한계일까 시장의 변화일까”

  • 허훈 기자
  • 입력 2025.10.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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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투데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베이징 시내와 각 지방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현대차 ‘쏘나타’나 기아 ‘K5’를 쉽게 볼 수 있었다. 2016년 당시 한국차는 중국 시장에서 연간 180만 대 가까이 팔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2023년에는 그 수치가 30만 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불과 몇 년 사이 벌어진 급격한 하락이다.


일각에서는 ‘사드(THAAD) 사태’ 이후의 정치적 여파를 주요 원인으로 꼽지만, 업계에서는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제품 경쟁력, 브랜드 전략, 시장 대응 능력 등 복합적인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차가 한때 중국 소비자에게 어필했던 요인은 ‘가성비’였다. 독일차나 일본차보다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외관과 풍부한 편의사양을 갖춘 모델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자국 브랜드의 기술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졌다. 지리자동차, 비야디(比亚迪), 장안(长安) 등은 핵심 부품인 엔진과 변속기 성능을 개선하며 ‘값싸고 품질 좋은’ 이미지를 한국차 대신 차지했다.


한 예로, 15만 위안대의 국산 SUV ‘지리 스타레이(星越)L’은 2.0T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주행감과 승차감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비슷한 가격대의 현대차 ‘쏘나타’는 여전히 변속 충격 논란이 있는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유지해 차이를 보였다. 소비자들이 “같은 돈이면 기술적으로 더 완성된 차를 사겠다”고 옮겨간 이유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한국 브랜드는 출발이 늦었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이미 비야디, 니오(蔚来), 샤오펑(小鹏) 같은 토종 브랜드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한 번 충전으로 6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고, 인공지능 음성인식과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 등 첨단 기능을 갖춘 모델을 속속 내놓고 있다. 반면 기아의 ‘EV6’는 중국 출시가 늦은 데다 내연기관차 플랫폼을 개조한 ‘유가전(油改电)’ 모델로 평가받으며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브랜드 정체성의 혼란도 문제로 지적된다. 독일차는 ‘정밀함’, 일본차는 ‘경제성’, 미국차는 ‘파워’라는 뚜렷한 이미지가 있지만, 한국차는 뚜렷한 인상이나 차별화된 메시지를 만들지 못했다. 가격 경쟁에서는 중국차에 밀리고, 프리미엄 전략에서는 독일·일본 브랜드에 가로막히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었다. 잦은 할인 행사와 재고 소진 중심의 판매 전략은 오히려 브랜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중국 소비자들의 ‘감정 요인’도 작용했다. 사드 사태 이후 한국 제품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이후에도 “한국차가 중국 시장을 차별한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동일한 모델이라도 유럽판에는 적용된 안전·편의 장치가 중국판에는 빠져 있거나, 일부 차량에서 비정품 부품이 사용됐다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반면 독일과 일본 브랜드들은 중국 시장 전용 모델을 개발하거나, 현지 도로 환경에 맞춘 사양을 내놓으며 소비자 신뢰를 높여왔다.


결국 한국차의 부진은 단순히 특정 사건 때문이 아니라 시장 전반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기술 발전이 빠른 중국 브랜드가 부상하면서, 한국차의 예전 경쟁력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기아는 북미와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는 여전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수출 실적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에서만 부진한 이유는, 현지 시장의 변화 속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전략 실패라는 지적이 많다.


중국의 한 자동차 전문가는 “예전에는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차를 배우려 했다면, 이제는 한국차가 중국 시장을 배워야 할 때”라며 “중국 소비자의 눈높이는 이미 글로벌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은 기술, 브랜드, 감성—all 세 가지를 요구하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격전장이 됐다. 그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브랜드는, 어느 나라든 조용히 도로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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