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워싱턴이 관세라는 강력한 수단을 앞세워 ‘무역 불균형 시정’을 공언하던 바로 그 순간, 최신 경제 지표는 정반대의 현실을 드러냈다. 지난 19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상품 무역적자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상품 무역적자는 전년 대비 255억 달러 증가한 1조2409억 달러로 집계됐다. 서비스 무역을 포함한 전체 무역적자 역시 9015억 달러로, 2024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며 여전히 역사적 고점에 머물렀다. 이 같은 수치는 ‘관세가 무역적자 축소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 결과는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관세 인상을 통해 글로벌 무역 구도를 바로잡겠다는 구상을 내세웠지만, 시장의 반응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2025년 미국의 대(對)멕시코 상품 무역적자는 1969억 달러, 대베트남 적자는 1782억 달러로 각각 전년보다 254억 달러, 547억 달러 늘었다. 높은 관세에도 불구하고 대중(對中) 무역적자가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전체 무역적자 규모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각에서는 관세 정책이 무역 흐름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월별 통계의 변동성을 키우는 ‘증폭 장치’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관세 인상 가능성에 직면한 미국 수입업체들이 2025년 1분기에 선제적으로 수입을 집중하면서, 이후 월별 무역 데이터는 급격한 등락을 반복했다. 이러한 재고 비축에 따른 ‘수입 선행’ 현상은 관세가 해외 상품에 대한 미국 시장의 의존도를 낮추지 못한 채, 수입 시기만 앞당기거나 분산시켰음을 보여준다.
더 주목할 대목은 줄어들지 않은 수입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치른 비용이다. JP모건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미국 중견기업이 부담한 관세 액수는 약 3배로 급증했다. 글로벌 공급망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견기업들은 제한된 가격 협상력 탓에 늘어난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관세의 실질적 부담을 분석한 연구들도 잇따르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관세 부담의 약 90%가 결국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3분의 2가 관세로 인해 생필품 구매 부담이 커졌다고 답하며 생활비 압박을 호소했다. 관세 수입은 재정 수입을 늘렸지만, 그 재원은 다름 아닌 미국 내 기업과 가계의 추가 지출이었다.
레이몬드 제임스 파이낸셜(Raymond James Financial)의 투자전략 책임자 오이게니오 알레만(Eugenio Aleman)은 “2025년 무역적자 데이터는 관세가 전체 적자 수준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는 보호무역주의의 한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평가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기본 법칙을 관세라는 장벽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대(對)EU 상품 무역적자는 여전히 2188억 달러에 달하며, 멕시코와 베트남 등에서의 적자는 오히려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제조업의 대규모 본국 회귀라는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수입 수요가 일부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관세는 목표 달성 수단이 되기보다는, 기업들 머리 위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검’처럼 불확실성과 추가 비용만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1조2409억 달러라는 상품 무역적자 신기록은 ‘관세 만능론’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다.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정책 수단이라면, 실행 방식보다 그 방향성 자체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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