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력 피해자 안락사… ‘죽을 권리’ 다시 불붙은 논쟁
[인터내셔널포커스] 스페인에서 반복된 성폭력 피해와 그 후유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온 20대 여성이 결국 합법적 안락사를 선택해 숨지면서,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죽을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27일(현지 시각) 유럽 언론에 따르면, 스페인 여성 노엘리아 카스티요(25)는 전날 바르셀로나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사망 하루 전 진행된 마지막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년간 세 차례 성폭력을 겪었다고 처음으로 공개하며,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휠체어에 앉은 채 인터뷰에 나선 그는 “세 번의 성폭력이 내 인생을 완전히 파괴했다”며 “마비 이후의 고통은 끝이 없다”고 말했다.
첫 번째 피해는 4년간 교제했던 남자친구로부터 시작됐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후 삶 전체를 뒤흔드는 출발점이 됐다. 두 번째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했다. 두 남성이 가해를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지만, 정신적 충격은 더욱 깊어졌다. 세 번째는 2022년 10월 자살 시도를 앞둔 시점, 유흥시설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생존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요추 3번(L3) 척수 완전 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신경병성 통증과 감각 이상, 배뇨 장애 등이 동반됐고, 일상생활 대부분을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가 됐다.
그는 약 2년간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지속적인 신체적 고통과 함께 우울·불안 장애, 강박 증상 등이 겹치며 삶의 질은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그는 사고 약 10개월 뒤 ‘조력 사망(안락사)’을 공식 신청했다. 의료진은 그의 상태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며, 고통이 지속적이고 중대한 상태라고 판단했다. 정신과 평가에서도 의사결정 능력을 저해할 정도의 중증 우울증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법적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됐다.
스페인은 2021년부터 일정 조건을 충족한 성인에게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불치병 또는 심각하고 만성적인 장애로 인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외부 압력 없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경우에 한해 허가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가족과 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부친은 안락사에 반대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고, 사건은 헌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까지 이어졌으나 모두 기각됐다. 일부에서는 그의 장애 정도를 두고 “보조를 받으면 일부 활동이 가능한 만큼 안락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의 사망 이후 시민들은 그가 마지막 시간을 보낸 병원 앞에 모여 애도를 표했다. 스페인 제1야당인 국민당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대표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한 개인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성폭력 피해자 지원 체계의 한계와 안락사의 윤리적 기준, 국가의 보호 책임을 둘러싼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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