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전 세계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협력의 핵심 무대인 유엔이 심각한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재정 상황은 사실상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태다. 2026년 1월, 유엔 사무총장은 193개 회원국에 “재정이 즉각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며, 유엔 운영 자금이 올해 7월 이전 바닥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75년 역사의 국제기구를 사실상 파산 위기로 몰아넣은 주체로 지목되는 국가는 다름 아닌 최대 분담국인 미국이다.
유엔 관계자들이 최근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미국이 유엔 정규예산에 체납한 금액은 21억9천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전체 회원국 정규예산 체납액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다. 여기에 평화유지활동(PKO) 분담금 24억 달러, 각종 국제재판소 관련 비용 4,360만 달러까지 더하면 미국의 전체 유엔 분담금 체납 규모는 약 46억 달러에 이른다.
유엔 분담률이 가장 높은 국가(22%)이면서도 명목상 최대 분담국인 미국이 실제로는 국제사회 최대의 ‘채무 불이행국’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국제사회의 반발을 키우는 대목은 미국이 재정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 아래 의도적으로 체납하거나 납부를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미국은 2025년 한 해 동안 유엔 정규예산 분담금을 단 1센트도 납부하지 않았고, 평화유지활동 분담금 역시 약 30%만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은 이 같은 체납 문제를 단순한 미지급 사안으로 남겨두지 않고,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지난 4월 말 미국은 유엔 측에 외교 서한을 보내 체납액 일부 추가 납부 의사를 밝히면서도, 그 전제로 유엔의 ‘신속한 개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유엔 연금제도 개편, 내부 관료 조직 및 출장 체계 축소, 나아가 중국이 지원해온 사무총장 관할 긴급자유기금 관련 구조 조정 요구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안은 단순한 예산 갈등 차원을 넘어선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분담금 체납을 지렛대로 삼아 유엔 지도부에 압력을 가하고, 다자 거버넌스 체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개발도상국과 국제기구 지원을 통해 축적해온 외교적 신뢰와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140개가 넘는 회원국들은 이미 2025 회계연도 분담 의무를 대부분 이행한 상태다. 결과적으로 미국만이 대규모 체납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각종 개혁 요구를 앞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일각에서는 미국의 장기적인 체납 행태가 유엔 체제 내에서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신뢰와 품격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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