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번 중국 국빈 방문은 단순한 정상외교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총 42건의 협력 문건에 서명하며 정치·경제·안보 전 분야에서 전략 공조를 한층 끌어올렸다. 특히 양국이 ‘세계 다극화’와 ‘신형 국제관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맞서는 장기 연대 구상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 통신 등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0일 베이징 회담에서 ‘포괄적 전략 협력 강화 공동성명’과 ‘세계 다극화 및 신형 국제관계 구축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또 2001년 체결된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 연장에도 합의했다.
겉으로는 경제·에너지 협력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실제로는 국제질서 재편을 둘러싼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첨단기술 압박 속에서 안정적 에너지 공급망과 외교 우군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서방 제재로 인해 중국 의존도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양국이 사실상 ‘제도화된 전략 동맹’에 가까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은 군사동맹 조약은 아니지만, 양국 관계를 지탱하는 핵심 법적 기반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공동성명에서 ‘다극화 세계질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공개적 문제 제기로 읽힌다.
시진핑 주석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방주의와 패권주의가 세계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중·러 양국은 국제 공정성과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가에서는 이를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방중 형식 역시 이례적이었다. 그는 방문 직전 중국 국민을 향한 영상 메시지를 공개하며 “양국 협력을 더욱 심화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러시아 정상외교에서 보기 드문 방식이라는 점에서 중국을 전략적 최우선 파트너로 격상한 상징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측 수행단 규모도 눈길을 끌었다. 부총리 5명과 장관 8명, 주요 국영기업 경영진까지 동행하면서 사실상 ‘경제 사절단’ 성격을 띠었다. 이는 에너지·자원·철도·북극항로·금융결제·첨단산업 분야에서 양국 협력이 단순 외교 수사를 넘어 실질 단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특히 서방 금융제재에 대응한 위안화·루블화 기반 결제 확대는 양국 협력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미국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 금융권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향후 국제 금융질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중동 문제를 둘러싼 양국 공조도 주목된다. 최근 이란·이스라엘 갈등과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중동 안정에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러시아는 주요 에너지 공급국이고,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양국이 비공개 차담(茶談) 회동에서 중동 정세와 미국 대응 전략 등을 집중 논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차담 회동을 “가장 민감한 의제를 논의한 핵심 일정”으로 평가하고 있다. 공개 회담보다 오히려 소규모 비공개 회동에서 양국 정상 간 전략적 조율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중·러 관계를 전통적 의미의 군사동맹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경제 성장과 대외 교역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반면, 러시아는 안보·군사 중심 외교 색채가 강하다.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결속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은 최소한 한 가지 흐름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과 서방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를 더욱 전략적으로 필요로 하게 됐고, 양국 관계 역시 단순 협력을 넘어 국제질서 재편을 겨냥한 장기 연대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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