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연변 기행의 마지막 여정은 우리 민족의 성산 백두산으로 향한다. 백두산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을 잇는 거대한 산줄기의 중심이자,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신세계 속에 깊이 자리해온 상징적 공간이다. 애국가의 첫 구절에 등장할 만큼 백두산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산을 넘어 민족의 뿌리와 기상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연길을 비롯한 연변 지역을 지나 백두산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달라진다.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던 길은 어느새 울창한 숲과 산악지대로 접어들고, 멀리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야를 채운다. 백두산을 향해 올라갈수록 평지의 풍경은 사라지고 고산지대 특유의 거칠고 장대한 자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두산 여행의 절정은 단연 천지다. 해발 2천m를 넘어서면 숲은 차츰 자취를 감추고 화산활동이 빚어낸 지형이 펼쳐진다. 정상부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한여름에도 공기가 서늘하다.
그러나 천지는 누구에게나 쉽게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 일대는 날씨 변화가 심해 조금 전까지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구름과 안개로 뒤덮이기도 한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천지를 보는 것도 운”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구름이 걷히며 천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눈앞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거대한 화산 분화구를 에워싼 봉우리와 그 아래 깊숙이 자리 잡은 짙푸른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지 수면의 해발고도는 약 2,189m이며 남북 길이는 약 4.4㎞, 동서 폭은 약 3.37㎞에 이른다. 높은 봉우리와 푸른 수면이 맞닿은 풍경은 사진 한 장만으로는 그 규모와 깊이를 온전히 담기 어렵다.
천지는 백두산이 지나온 장구한 지질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오랜 지각운동과 화산활동을 거치며 거대한 화산체가 형성됐고, 정상부 분화구에 물이 고이면서 오늘날의 천지가 만들어졌다. 천지 북쪽에서 흘러나온 물은 승사하(乘槎河)를 지나 약 68m 아래로 떨어지며 장백폭포를 이룬다. 인근에는 온천지대도 자리해 차가운 고산의 풍경 속에서 지금도 지열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백두산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장대한 자연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백두산은 국토와 민족의 기원을 상징하는 산으로 끊임없이 등장해왔다. 문학과 노래, 역사적 기억 속에 백두산이 반복해서 새겨지면서 세대를 넘어 공유되는 민족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 역시 이러한 상징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백두산 일대에는 오랜 세월 수많은 설화도 전해졌다. 하늘의 보배로운 거울이 인간 세상으로 떨어져 천지가 됐다는 이야기와 불을 뿜는 괴물을 물리친 뒤 산 정상에 호수가 생겼다는 전설 등이 대표적이다. 천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이 산다는 이른바 ‘천지 괴물’ 이야기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다만 이러한 목격담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라기보다 백두산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더해온 현대적 전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천지에서 내려오는 길에서는 백두산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난다. 정상부의 거친 화산지형에서 고산초원과 울창한 숲으로 이어지는 자연환경은 고도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여름의 짙은 녹음과 가을의 단풍, 긴 겨울의 설경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백두산을 만들어낸다.
이번 연변 기행은 둔화와 발해의 흔적을 시작으로 연길의 조선족 문화와 서시장, 훈춘 방천과 두만강, 화룡 일송정, 용정 윤동주 생가를 지나 마침내 백두산에 닿았다. 산과 강, 도시와 마을을 따라 이어진 길에는 연변의 오늘뿐 아니라 이 지역에 켜켜이 쌓여온 역사와 우리 민족의 삶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 긴 여정의 마지막에서 마주한 백두산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장대한 산이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이 역사와 문화,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성산이었다.
구름이 봉우리를 넘어가고 햇빛이 천지의 푸른 수면 위로 내려앉는다. 연변에서 시작해 산과 강, 도시와 마을을 지나온 여정은 이곳 백두산 천지에서 끝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하나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간직해온 역사와 기억, 그리고 성산 백두산이 품고 있는 깊은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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