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스페인 하원이 과거 자국의 통치를 받았던 서사하라 주민들에게 국적 취득 기회를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76년 스페인의 철수 과정에서 국적 선택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주민과 후손을 구제하려는 조치다. 다만 상원 심사가 남아 있어 국적 취득 절차가 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하원과 현지 EFE통신, 스페인 공영방송 RTVE에 따르면 하원은 10일 서사하라 출신 주민의 국적 취득 절차를 규정한 법안을 찬성 168표, 반대 31표, 기권 145표로 가결했다.
집권 사회노동당을 비롯한 좌파·지역 정당들이 찬성했고 보수 성향 국민당은 기권했다. 극우 정당 복스는 반대표를 던졌다.
적용 대상은 1977년 9월 29일 이전 서사하라에서 태어난 사하라위 주민이다. 해당 주민의 자녀와 손자녀도 법안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스페인 국적을 신청할 수 있다.
스페인 하원이 공개한 법안에 따르면 대상자는 스페인에 합법적으로 거주하지 않더라도 신청할 수 있다. 과거 스페인 행정기관이 발급한 신분증과 출생증명서, 1974년 인구조사 기록, 유엔이 작성한 서사하라 주민투표 명부 등이 출신을 입증하는 자료로 인정될 수 있다.
하원 통과만으로 국적이 즉시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법안은 상원 심사와 최종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상원이 내용을 수정하면 하원에서 다시 처리해야 하며, 원안대로 확정돼 관보에 게재되면 4개월 뒤 시행될 예정이다.
서사하라는 19세기 말부터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스페인이 1976년 철수하자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진입했고, 독립을 요구하는 폴리사리오전선과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모리타니는 이후 영유권 주장을 포기했지만 모로코는 현재도 서사하라 대부분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유엔은 서사하라를 주민들이 스스로 정치적 지위를 결정하지 못한 비자치지역으로 분류한다. 독립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주민투표도 추진됐지만 유권자 범위와 영토 지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수십 년째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법안 찬성 진영은 스페인이 철수할 당시 전쟁과 점령으로 현지 주민들이 국적 선택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조치를 역사적 책임을 바로잡는 과정으로 평가한다.
반면 서사하라를 자국 영토로 보는 모로코에는 민감한 사안이다. 스페인은 2022년 모로코가 제시한 서사하라 자치안을 지지하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국적법이 최종 확정되면 서사하라 문제를 둘러싼 스페인과 모로코의 외교적 갈등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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