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터널 안에서 전기버스에 불이 나면 차량과 터널 설비가 함께 대응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연구진이 길이 330m 시험터널에 실제 크기의 전기버스를 투입해 화재를 재현하고 새로운 진압방식을 시험했다. 한국에서도 전기차와 터널 화재 대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나온 실물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제학술지 「Transportation Safety and Environment」에 지난 12일 공개된 연구에 따르면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축소 모형이 아닌 1대1 규모의 전기버스를 이용해 터널 화재실험을 진행했다.
전기차 화재에서는 배터리 내부에서 열이 연쇄적으로 확산하는 ‘열폭주’가 발생할 수 있어 지속적인 냉각이 중요하다. 터널처럼 제한된 공간에서는 열과 연기가 축적돼 승객 대피와 구조·진압 작업도 어려워질 수 있다.
연구진이 시험한 핵심은 차량과 터널의 ‘공동 대응’이다.
버스에 설치된 장치로 배터리 주변을 집중적으로 냉각하는 동시에 터널에서는 고압 물안개를 분사했다. 차량 자체의 화재 대응에만 의존하지 않고 터널 설비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차량과 터널 곳곳에 106개의 온도센서를 설치해 화재가 진행되는 동안 열의 확산도 추적했다.
실험 결과 승객 호흡 높이에서 측정된 최고 온도는 54.3도로 연구진이 설정한 열 안전기준 60도를 넘지 않았다. 터널 천장의 최고 온도는 42.4도로 측정됐다. 화재가 억제된 상태에서 최대 열방출률은 약 2MW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고압 물안개가 증발하면서 화재에서 방출되는 열을 흡수해 온도 상승을 억제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실험은 한국의 교통안전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전국 300m 이상 터널 1284곳의 안전실태를 조사한 뒤 전기차 보급 확대에 대비한 화재 대응장비 확충과 비상방송·대피요령 개선 등을 관계기관에 권고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도 올해 전기차 특별안전점검 항목을 기존 9개에서 26개로 확대하고 전기버스까지 점검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안양에서 실제 전기버스를 활용한 소방당국의 화재 대응훈련도 진행됐다.
다만 이번 실험 결과를 모든 전기버스와 터널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배터리 종류와 충전상태, 화재 규모, 터널 구조와 환기조건 등에 따라 실제 사고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전기차 화재 대응을 차량 내부의 문제에서 도로 인프라의 문제로 확장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전기버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터널과 지하차도 역시 차량 화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안전시설로 바뀌어야 하는지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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