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차가 몰려온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값싼 중국 전기차가 한국 시장을 파고들면 국내 자동차 산업과 생산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에서는 관세와 세제지원 등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가격표와 사양표를 나란히 펼쳐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차가 싸기만 한 게 아니다. 몇 년 사이 사양이 무서울 정도로 많아졌다. 대형 디스플레이와 차량용 AI, 음성제어, LiDAR, 각종 카메라와 센서, 후석 엔터테인먼트와 전동 편의장비까지 경쟁적으로 집어넣는다.
반대로 한국차는 많이 비싸졌다.
차값은 올라갔는데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을 넣으려면 상위 트림으로 올라가거나 옵션을 추가해야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상위급으로 갈수록 중국차와의 사양 비교가 오히려 더 불편해지는 이유다.

현대차의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9을 보자.
2027년형 6인승 익스클루시브는 세제혜택 후 6817만원부터 시작한다. 12.3인치 계기판과 12.3인치 내비게이션, 고속도로 주행 보조2 등이 들어간다.
하지만 HTRAC은 280만원부터 추가해야 한다. 파킹 어시스트는 135만원, BOSE 프리미엄 사운드는 119만원, 1열 릴렉션 컴포트와 2열 프리미엄 릴렉션 시트를 묶은 패키지는 130만원이다.
7374만원짜리 프레스티지로 올라가야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서라운드 뷰 모니터,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2, BOSE 14스피커 등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도 21인치 휠과 디지털 사이드미러, 일부 2열 고급사양은 선택품목으로 남는다.
7천만원 안팎의 차를 사면서도 옵션표를 계속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 상위 전기차를 옆에 세워놓으면 차이가 더 눈에 들어온다.
NIO ES8은 15.6인치 OLED 중앙화면에 38인치 AR HUD, 21.4인치 후석 Mini-LED 화면, 8인치 후석 OLED 제어화면을 갖췄다. 오디오 시스템은 27개 스피커로 구성된다.
주행보조 장비도 공격적이다. 장거리 LiDAR와 측면 LiDAR, 4D 이미징 레이더, 8메가픽셀 카메라 등을 포함해 31개의 센서를 사용한다.
Li Auto i8도 전 트림에 듀얼모터 AWD와 듀얼챔버 에어서스펜션, LiDAR를 넣었다. 상위 모델에는 NVIDIA Thor-U 기반 700 TOPS 연산성능의 주행보조 시스템을 적용했다.
물론 화면이 크고 센서가 많다고 자동차 전체가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행성능과 충돌안전, 내구성, 서비스망, 수리비와 중고차 가치도 자동차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첨단·편의사양만 놓고 보면 상황은 분명히 달라졌다.
‘중국차는 싸니까 한국차보다 사양도 떨어진다’는 과거의 인식으로 지금의 중국 전기차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상위급으로 올라갈수록 중국 업체들이 디지털 장비와 첨단 센서, 후석 편의사양을 훨씬 공격적으로 넣는 모습이 나타난다.
여기서 국내 자동차 업계가 중국차의 ‘가격 파괴’만 강조하면 소비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싸면서 사양까지 많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비자에게는 저가 공세가 아니라 가성비다.
한국차의 옵션 판매방식도 돌아볼 때가 됐다.
필요한 기능 하나를 넣기 위해 상위 트림으로 올라가고, 다시 패키지를 추가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차값보다 수백만원씩 높아지는 경험은 국내 소비자에게 낯설지 않다.
그동안은 그래도 팔렸다.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시장 영향력이 컸고 수입차와 가격 차이도 상당했다. 소비자가 옵션 구성에 불만을 가져도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만 낮춰 들어오는 게 아니다. 디지털 콕핏과 AI, 운전자 보조장비와 각종 편의사양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다. 상위 모델에서 선보인 기능을 아래 차급으로 내려보내는 속도도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차를 정부 지원으로 만든 값싼 차라고만 평가한다면 한국 업체가 놓치고 있는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 문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공장과 일자리, 부품산업을 지키는 정책은 필요하다. 불공정한 정부 지원이나 통상 문제가 확인된다면 정부가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것과 자동차 회사의 높은 가격과 복잡한 옵션 판매방식을 보호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세를 높여 중국차 가격을 올린다고 한국차의 기본사양이 늘어나지 않는다. 생산세액공제를 확대한다고 옵션 가격이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기업이 답해야 한다.
차값을 낮추든지, 같은 가격에 더 많은 사양을 넣든지, 비싼 만큼 중국차보다 확실하게 나은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중국차 역시 한국 시장에서 검증받아야 할 부분이 많다. 장기간의 내구성과 서비스망, 부품 공급, 수리비와 중고차 가치 등은 실제 판매가 늘어난 뒤 확인될 영역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앞세워 한국차의 가격과 옵션 문제까지 덮을 수는 없다.
소비자는 이미 비교하기 시작했다.
한국차가 더 비싼데 중국차에 있는 기능이 왜 없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7천만원이 넘는 차에서 이 기능까지 돈을 더 내야 하느냐는 불만도 생긴다.
중국차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싸서가 아니다.
싸면서 사양까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더 경계해야 할 상황도 중국차 몇천 대가 추가로 들어오는 순간만은 아니다.
소비자가 한국차와 중국차의 가격표와 사양표를 나란히 놓는 순간이다.
그때는 애국심도, 관세도 옵션표의 빈칸을 채워주지 못한다.
중국차를 막는 데만 신경 쓰다가 한국차의 비싼 가격과 부족한 기본사양을 그대로 둔다면 시장의 답은 소비자가 먼저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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