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김종택(한글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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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는 단순히 말을 적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문화를 창조하고 경제를 창조하고 정치를 창조하는 무서운 힘이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가 나라가 커서, 인구가 많아서 세계 문명을 주도한 것이 아니다. 고대이집트 상형문자에서 발전한 최초의 온전한 소리글자인 희랍문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문자로 소크라테스 ,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논하고 정치학,수사학을 하면서 세계 문명을 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문자가 도시국가 라티움에 들어가 로마자로 정비되었기 때문에 중세 천년 로마대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고 이글자를  북해의 작은 섬나라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대영제국을 건설하면서 근세이래 세계문명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글자의 힘을 교육의 힘이 되고 정치 경제의 힘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인은  한국어로 말하고 듣고 한글로 쓰인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 같지만 이것처럼 놀라운 사실은 없다. 온 세상에서 자기 나라말과 글을 자연 스럽게 알아듣고 자연스럽게 쓰고 읽을 수 있는 국민은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광복 이후 한글이 나라 글자의 구실을 하고부터이니 우리에게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이런 한글의 힘, 교육의 힘이 바탕이 되어 오늘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문화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눈을 돌려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는 거저 주어지다시피 한 그 국어 능력을 얻기 위하여 중국인은 평생을 바쳐 노력하고 있다. 한자가 어렵다고 간자체를 만들어 쓰고 있지만 옳은 소리글자가 아니므로 있는 어휘의 수만큼 글자를 배워야 한다. 초증학교에서 2,500자를 배우고 중학교에서 1,000자를 더 배워도 신문은 커념 주변의 안내 표지판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교양인으로 살려면 최소 5,000자는 배워야 하는데, 그것이 어찌 만만한 일인가. 반복학습을 하지 않으면 잊기 마련이니 그들은 평생을 글자 공부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시대마다 지역마다 제멋재로 정착한 무질서한 한자 차용 표기가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같은 한자라도 그때마다 지방마다 음이 다르고 뜻이 달라 일일이 가나로 음을 달지 않으면 읽을 수도 없고 뜻을 알 수도 없다. '日本'이라 써 놓고 어떤 때는 '닙뽄' 이라 읽고 어떤 때는 '니혼'이라 읽어야 하고 또, '海老'라 써놓고 전혀 당치않은 소리 '에비'라고 읽고  전혀 당치않은 뜻 '새우'를 익혀야 하니 그것이 어찌 정상적인 한자의 쓰임새라 할 것인가. 우리 어린이들이 '고맙습니다.'라 말하고 쓸 때 일본의 어린이들은 '有難'이라 쓰고 '아리가또'라 읽는 법을 배워야 하니 어찌 그게 쉬운 일인가. 역시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도 읽고 쓰는 국어 생활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다.
 
경제선진국이 된 도시국가 싱가포르도 국어교육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어와 중국어, 말레시아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도 옳은 영어를 알지 못하고 영어와 중국어의 혼종인 '싱글리시'쓰고 있으며 중국어를 쓰는 사람도 북경어와 광동어가 달라 소통이 어렵고 말레시아어를 쓰는 사람도 다른 언어를 알아 듣지 못한다.  그러니 신문, 방송도 사용 언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작은 나라지만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 
 
이런 혼란은 필리핀과 인도에서 더 극심하다. 두 나라 다 영어를 공용어로 정해 놓고 있지만 수십 개의 민족어를 아울러 공용어로 허용하고 있다. 영어로 말하고 읽을 수 있는 국민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약 15%에 달하는 주민이 영어를 듣고 말하지 못한다고 하니 국어교육이 편할 리 없다. 언어를 통합하지 못하면 한 나라의 국민으로 의식을 통합할 수 없으니 그것이 어찌 작은 문제인가.

우리도 광복 이전까지는  한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 일본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같은 땅에 살아도 사람값이 달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국어를 말하고 쓰는 당당한 하나의 국민이 되었다. 우리의 정체성인 우리말  우리글을 쓰면서 함께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거기에 경쟁력을 더 하기 위하여 영어를 배우고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고 우리 역사를 지키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글이 얼마나 우수한 글자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나는 매일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역마다 한글로 지명을 쓰고 그 밑에 로마자로 적어 놓았다. 필경 외국인들에게 지명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신길'역에 'singil'은 '산길'이라 읽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상일'역을 적은 것이다.

우리 생각일 뿐 '신길' 인지 '싱일' 인지 '산길' 인지 도무지 분간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글은 소리마디와 글자마디가 일치하기 때문에 그런 혼란이 있을 수 없다. 흔히 영어 알파벳이라 불리는 로마자는 소리글자이기는 하되 글자를 보고도 읽을 수 없는 반벙어리 소리글자이다.

'a' 자 하나만 하더라도 낱말에 따라서 예닐곱 가지의 다른 소리로 읽힌다.  '아'(apart)로 읽히기도 하고, '어'  (about)로 읽히기도 하고 '애' (and)로 읽히기도 하고, '오' (all)로 읽히기도 하고, '에이' (april) 로 읽히기도 하니 소리글자이기는 하되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소리글자이다. 그러나 단어마다 그 소리가 무엇인지 발음 부호가 필요한 것이다. 발음부호가 필요 없는 국어사전이야말로 한글의 우수성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또, 한글은 글자 모양이 비슷하면 소리값이 비슷하다. ㄱㅋㄲ, ㅂㅍㅃ, ㄷㅌㄸ 글자 모양이 비슷하니 소리값이 비슷하다. 그래서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로마자 C,K,G,Q는 모양이 전혀 다른데 소리값이 비슷하니 그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한글은 필요에 따라 가로쓰기, 세로쓰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마자나 아랍문자는 가로쓰기만 ,  만주문자·몽골자는 세로쓰기밖에 할 수 없다.

나는 대학원 재학시절 만주문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 같은 자모라도 단어의 어두에 오는 경우와 어중에 오는 경우 , 어말에 오는 경우 글자 모양이 전혀 달라 종강에 이르도록 알파벳을 분간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은 우리 한류 문화와  함께 필연코 세계로 흘러갈 것이다. 고대 희랍문자가 최소의 소리글자로 고대 서양 문화를 이끌었듯이, 중세로마자가 천 년 로마 문명을 이끌었듯이, 근세 영어 알파벳이 세계문명을 주도했듯이 한글은 필연코 21세기 세계 문명을 이끄는 위대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한류문화의 중심에 있다. 한글이 바탕이 된 한류 문화의 힘은 끝없이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10여년 전 인도네시아의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배워 그들의 말을 적는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젠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세계에는 1,000여 곳이 넘는 대학에 한국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세종학당을 비롯하여 4,000여 곳이 넘는 공식, 비공식 기관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중국절강성에 있는 월수외국어대학 한국학과는 재학생이 1,600여 명이 넘는데 이와 비슷한 대학이 중국에만 250여 곳이 있다. 몽골의 경우는 30여 개에 달하는 모든 대학에 한국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한국어, 한글을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적지 않다.

한국어, 한글 한류문화의 열풍은 지난해 (2014) 한국어 능력시험에 응시한 외국인이 61개 나라에서 17만 명에 달하는 것만 보아도 한글, 한국어, 한류문화에 대한 열풍이 얼마나 뜨거운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에 걸쳐 굶주린 백성이 되어 세계에 흩어진 700만이 넘는 해외 동포들은  그대로 한글문화를 전파하는 파수꾼이  될 것이다.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진 동포들이 발간하는 우리말 한글 신문을 정부는 더욱 책임 있게 후원하고 가꾸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우리 세종학당과 유기적으로 협동 할 때 세계속의 한글의 시대, 한민족 한류 문화의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찬란하게 우리앞에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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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한글 시대, 한류 문화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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