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김문일



지난주 일요일날 큰 매형과 둘째 매형이 낚시질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냥 인근 교외의 강변에서 한 겨울 낚시였는데도 퍼그나 잡은듯 했다. 큰 고기는 아니였지만 손가락만한 붕어들이 대부분이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낚시는 잔인한 취미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취미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취미야 어떻게 막겠는가. 아이들이 물고기를 키우고 싶어해서 일부 달라고 해서 남생이를 키우던 자그마한 어항속에 물을 부어넣고 넣어 주었더니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반 이상이 죽어있었다. 남생이는 아직 작아서 물고기를 잡아먹을수 없으니 물고기들 자체가 낚시코에 걸렸던 상처때문에 죽은듯 했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나니 한두마리 따라서 죽어가던것이 이윽고 네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 네마리를 살리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주었더니 이제는 활기를 찾아서 잘 자라고 있다. 오히려 거부기에게 주려는 먹이를 빼앗아 먹을 정도로 싱싱하게 살아났다. 처음에는 사람이 어항 가까이 가면 놀라서 이리저리 흩어지던것이 이제는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어서 그런지 사람이 가까이가도 제법 태연하게 헤염을 치며 유유작작하다. 비록 강에 있을 때처럼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다시는 먹이 걱정 잡힐 걱정은 없을듯 싶다.


중국말 속담에 새는 먹이때문에 잡히고 사람은 재물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 물고기 역시 그런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수 없는가 싶다. 물고기를 낚는 사람은 낚인 물고기를 보면서 득의양양하겠지만 그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의 돈과 물질의 미끼에 걸려든 물고기인줄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중,한 수교가 이루어진 92년 그때부터 조선족은 남한이라는 나라를 다시 알게 됐다. 88올림픽을 통하여 한강의 기적을 알리고 중국에 있는 동포사회에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었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조선족 사회에는 서울바람이 불었고 십배가 넘는 월급을 바라보며 가족과 친지를 버리고 외화벌이에 나섰다. 그래서 생긴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가 오래동안 조선족 사회의 아픔과 상처로 남을듯 싶다. 한국에서는 또 조선족을 불법체류자로서 잡아서 가두고 반송해 보낸다. 그래서 잡혀온 사람들은 한국에 강한 반한감정을 가지고 돌아오고 한국사람들을 적대시 했다. 불법체류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안해와, 남편과 아이들과 생 이별하고 몇년 지어는 십년가까이 그 땅에서 돈벌어 부쳤다. 이로 인해 조선족 사회도 한국 사회도 모두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게 됐다. 중국에 와서 사기를 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한국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 법을 위반하고 쫒기는 조선족 또한 많았다. 불법체류자 추방을 반대하는 운동을 서울에서 진행하던 때가 거퍼 2, 3년도 채 안된 전의 일이다.

 

많은 조선족 작가들과 지인들이 황페된 조선족 마을과 시들어가는 조선족의 가족관계를 되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를 써왔다. 신문에서 말하고 방송에서 이야기 했지만 돈과 물질의 충격에 이성을 잃은 조선족에게는 어떤 충고도 들리지 않았다. 한국나가도록 알선하는 브로커들이 판을 치고 돈과 금전에 자존심도 팔고 가족도 팔고 심지어 사랑마저 팔았다.


그렇게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다. 한국에서는 재외동포법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제는 무연고 취업비자로 제법 쉽게 한국에 다녀올수 있도록 되였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조선족의 경제적인 수준이 어느정도 상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십년전 한국에 가서 일하다 불법체류자란 딱지로 한국의 감옥에 갇혀있다 송환돼 돌아온 한 조선족 청년은 나한테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라디오에서는 고국이고, 동포고 떠들더니 이게 뭐야? 중국에서 살면서 한번도 감옥 들가본 일 없는 내가 도적질 했냐 어쨌냐, 내 손으로 돈벌어서 살겠다는데 감옥에 넣어 온갖 수모를 주고 쫒아보내다니.”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고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르자 문제는 커졌고 오히려 한국에 대한 나쁜 감정이 가득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법으로는 역시 그들도 어쩔수 없는 상황이였을 것이다. 조선족이라고 해봐야 옛날에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 간도땅을 건너간 독립군 후예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진정 조선족의 미래를 한국의 미래와 연결시켜본 한국인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나, 어느 시기에서나 통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대부분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잘살고 능력있고 힘센 사람옆에서는 온갖 아첨과 아양을 떨면서 빌붙으려 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불법체류한 조선족에게 일을 실컷 시키고는 몇달씩, 심지어는 몇년의 월급을 제때에 주지 않고 불법체류자라고 법무부에 고발해서 중국에 잡아보낸 악덕 업자들 때문에 전체 한국의 이미지와 조선족이 한국인을 보는 태도가 변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런 모든것은 바로 돈과 이익때문이지 민족성과 고국애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국내에서도 가난한 친척은 잘사는 친척에게 무시당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변의 조선족은 자기 주변의 가난한 친척들을 한번도 무시한적 없는가? 당연히 그럴리가 없다. 잘살고 힘있으면 대접받고 못살고 가난하면 무시당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오래전에 한국 출장다녀오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대륙사람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대만이나 홍콩에서 온 중국인들에게는 여간 살갑게 맞아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돈의 힘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고국이나 동포보다도 현실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조선족들이 한국은 우리 고국이고 한 핏줄인데 어찌 이다지도 못살게 구느냐고 한때 아우성을 쳤지만 그것은 경제의 원칙을 몰라서이다. 한국사람들이 동포를 싫어서도 아니고 동포가 고국을 찾아온줄을 몰라서도 아니다. 답은 간단하다. 조선족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조선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조선족의 당위성이 무엇인지? 세미나가 열리고 포럼이 열리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할일없는 사람들의 소일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선족들이 한국을 욕하고 한국사람을 욕하지만 조선족은 다 잘하기만 하는가? 한국의 잘못을 보고 한국인의 잘못을 보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고치고 바꾸어나가야 겠는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다. 조선족들보다 아직 상대적으로 못사는 조선 (북한)에 가서는 한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하던 똑 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 돈 있는척 거들먹거리고 도박, 오입질하고 벼라별짓을 다하고 다니면서 무슨 낯으로 한국을 꾸짖고 한국인을 욕한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대부분 한국인들의 인상속의 조선족은 가난의 대명사이다. 한국에서 허드레일만 하고 아직 먹고살기 어려운 그런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한국인들 앞에서 조선족하면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 노가다판에서 막일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바뀌여 가고 있다. 조선족의 경제적인 위치가 계속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가리봉동의 많은 가게들이 조선족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 조선족들도 더는 그냥 단순 노무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무역과 사업을 벌려서 크게 성공한 조선족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경영으로 전 세계로 그 영향력을 미치는 조선족 기업인들이 점점 늘어난다. 조선족을 위한 행사때면 천만원씩 일억씩(한화)선뜻 내놓는다.

 

옛날 미국국적을 가진 한인들이 서울에 오면 대접을 깍듯이 받았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들이 돈에 대한 예우이고 서비스일 뿐이지 지역 감정하고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만큼 조그마한 땅덩어리서 지역감정 운운하는 나라도 없겠지만 지역이 어디든 나한테 돈을 벌어주고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조선족은 가장 우수한 핏줄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조선족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글 참조) 그들은 고생을 두려워할줄 모르고 부지런하며 지혜롭다. 일부 부족한 사람들이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동네에 문제 없는 곳이 어디에 있을가? 조선족은 이제 서서히 발전하고 있고 언젠가는 미국에 있는 한인이나 일본에 있는 한인보다도 훨씬 더 크게 한국의 경제성장과 한국인의 사회에 그리고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옛날 생각을 하면서 중국을 무시하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 성장은 놀라울 지경이다. 빈부격차와 사회적은 문제점도 있지만 년 2만불 소득을 넘긴 사람이 이미 1억 2천만명을 넘겼다는 통계자료가 나왔다. 한국이 2만불 시대에 들어간것이 이제 몇년이 안됐는데 중국이 어떻게 그럴수가? 하면서 놀랄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전반적인 국민 평균소득은 한국보다 낮을수 있겠지만 이 1억2천만명의 고소득층은 매일, 매달, 매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전체 인구를 합한 세배에 가까운 수치다. 게다가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2만불은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2만불의 열배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 그만큼 기본 물가가 싸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에서 중국어 잘하고 한국어도 능통한 신 조선족은 비약한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 현재 삼십대 좌우의 젋은 층들은 거개가 한국어, 중국어, 영어 혹은 일본어등 삼개국어 이상을 자유로이 사용할수 있다. 그들은 중국의 광동, 상해, 북경 등지에 진출하여 번역, 가이드 등을 하던데로 부터 이제는 여행사, 무역회사 사장으로 발돋움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국제적인 그룹을 설립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국민들은 반도땅에서 좀 더 크게 좀더 멀리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준비를 해야한다. 그러려면 겸손해지고 낮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생기고 일본보다 미운 나라가 한국이 된데는 한국민의 자존심 때문이다. 한국의 KBS나 기타 TV프로를 보게되면 중국을 보도하는 거의 대부분 내용이 부정적인 부분만 보여준다. 가난해서 찢어지는 가족들 아니면 부정부패의 관원들, 아니면 환경오염을 만들고 짝퉁 저질 상품을 만드는 기업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삼십년전 한국도 짝퉁을 만들었고 서울 인사동에는 아직도 짝퉁이 팔리고 있다. 서울의 달동네에서도 소년소녀 가장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누굴 욕하고 웃을 상황이 아니다. 그런걸 찍어서  한국민의 자존심이나 세우련다면 큰 오산이다. 중국의 발전과 거대한 경제력을 직시하고 위기 의식을 가지고 도전적인 자세로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국은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조선족이 지금까지 그래도 중국땅에서 그만큼 대접을 받은 것은 그나마 자신의 고국이 있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북한보다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잘사는 한국이 있었기에 민족자부심도 가질수 있었다. 이제 한국이 경제가 떨어지면 조선족이 중국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자부심은 없다.


가난한 친척이 밉다가도 그 친척이 잘살게 되면 다시 고와지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한국이 중국을 제대로 인식하고 중국 경제와 정치를 통하여 새로운 세기 더 큰 발전을 원한다면 조선족에게 투자할줄 알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플로리다 주에 ‘윈터 헤븐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해변도 , 높은 산도 없는 그곳은 도시 사람들을 매료시킬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을 주변은 대부분이 농지였고 약간 솟아오른 작은 언덕들과 골짜기 사이에 있는 호수, 그리고 측백나무가 자라는 늪지대가 있을 뿐이였다.


이처럼 세상과 단절된 마을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포프로 농기구를 팔려고 마을에 우연히 들어온 사람이였다. 그는 마을 사람 한명과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는 소택지를 보게 됐다.


“대단한 곳이군요. 측백나무가 정말 인상적입니다.”


그는 같이 따라온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심드렁한 말투로 대답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단 말입니까? 저희들은 항상 보는 이곳이 그저 지긋지긋할 뿐입니다.”


“저는 선생님이나 마을분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경 사업을 한 적이 있거든요. 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뤄 자라는 모습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장관 중의 장관이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마을 사람들의 물음에 리처드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이 마을을 아주 유명한 곳으로 만들어 드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제겐 이 마을, 이 측백나무들의 미래가 보이는군요. 그래서인지 좋은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르네요.”


이후 그는 전 재산을 투자해 측백나무 소택지를 구입했다. 그리고 울타리를 쳐 숲 사이로 산책로와 휴게소를 만들었다. 측백나무 정원이였다. 만들어 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세상에 정원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었다. 그는 광고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기존의 광고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다른 홍보 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그가 먼저 이용한것은 사진이었다. 그는 공원에 사진 재료 전문점을 열고 관광객들에게 필름을 팔았다. 그런 다음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시켰다.


“측백나무 정원의 빼어난 경치를 담고 싶지 않으세요? 저희가 멋지게 찍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죠.”

또 수상스키 선수를 고용해 역시 같은 방법을 썼다.


“정말 멋진 동작이죠? 어떤 구도로 찍어야 하는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관광객들은 그 덕에 멋진 사진을 집에 가져갔고 이들이 가지고 간 사진이 측백나무 정원의 가장 좋은 광고물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했던 측백나무 정원은 금세 입소문을 탔고 관광객들은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100만달러를 내고 그 땅을 사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리처드 포프는 거절했다.


현재 ‘윈터 헤븐리’ 마을의 이 측백나무 정원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처드 포프가 없었다면 ‘윈터 헤븐리’ 마을은, 그리고 측백나무 숲은 어떤 모습이였을까?


통찰력이 없는 사람은 코앞의 것만 바라볼뿐, 멀리 내다 볼줄 모른다. 통찰력이 없는 리더들이 모인 조직이나 국가도 그렇다.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루 이틀 사는것이 아닌 우리의 삶에서 미래를 내다볼줄 아는 통찰력은 아주 중요하다. 긴 인생의 굴곡을 대비 할수 있도록 도와줄뿐 아니라 성공적으로 현재를 이끌어 갈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표현을 쓰면 자존심 강하고 감성이 예민한 한국인들은 발칵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때 한국인들은 우리집 어항속의 고기떼와 같다. 여기 저기 대국에서 넣어주는 먹이에 의존하고 언제 낚시코에 걸릴지 모른는 상황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매일 떨어지는 먹이에 안주하며 사는듯 싶다.


현재 중국은 14억이 넘는 거대한 인구로 내수 시장을 활성화 시키고 있고 탄탄한 기술력으로 새로운 세계시장 판도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나라는 미국도 러시아도 아닌 중국이 될 것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것은 통찰력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알고 인정하는 사실이다.


조선족사회는 연변의 작은 농촌에서 서울로 이동하던데로부터 이제는 다시 북경, 상해, 광주등 중국의 대도시로 각자의 사업과 실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민족의 핏줄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는 그들을 새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이 새 조선족의 리더들이고 대표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조선족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의논할 필요가 없다. 지금 한국과 한국민이 해야할 일은 조선족의 지금 보이는 모습보다 그 내면에 숨겨진 잠재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것이 사물의 본질을 보는 것이고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구할 사람들은 한국인 자신이지만 미래 한반도의 통일과 경제성장의 가장 큰 힘이 될 주역은 미국의 한인도 일본의 한인도 아닌 바로 새 조선족이 될 것이다.


그게 역사의 필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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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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