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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총리 관저, 중국 춘절 초대회 마련
    ▲ 총리 관저에서 열린 중국 춘절 초대회에서 축사를 전하고 있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현지 시간으로 2월 21일 저녁,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관저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중국 춘절 초대회가 열렸다. 중국 매체 CRI에 따르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축사에서 지난 달 중국 방문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영국과 중국은 90억 파운드가 넘는 상업 협의를 달성했고 함께 영중 관계 "황금시대"를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화교 지역사회는 영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버밍엄에서 온 황전방(黃展邦) 화교 대표에게 축하를 표하면서 황전방 버밍엄 화교 명절 준비위원회 주석의 노력으로 버밍엄의 춘절 축제는 이미 영국의 최대 규모의 중국인 춘절 경축 행사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이날 황전방 버밍엄 지역 화교 대표는 영국 총리가 수여하는 "포인츠 오브 라이트 상(Points of Light)"을 수상했다. 한편 이번 중국 춘절 초대회에는 류효명(劉曉明) 영국 주재 중국 대사가 참석했고 영국 정계와 상업계 대표 및 중국계 기업, 화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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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3
  • 평창동계올림픽, 25일 폐회식... 17일간의 여정 마무리
    ▲ 지난 9일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사진 =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17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폐회식이 오는 25일 저녁 8시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진행된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폐회식 주제는 기존의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도전정신을 의미하는 ‘The Next Wave(미래의 물결)’로 선수단과 자원봉사자, 관람객 등이 하나가 돼 평창의 마지막 밤을 함께하게 된다. 총 4개의 문화공연으로 구성된 폐회식은 조화와 융합을 통한 공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한국적인 색채와 혁신적인 현대 아트의 결합, K팝 공연 등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대한민국을 표현할 계획이다. 특히 대표적인 한류스타인 씨엘, 엑소가 출연해 폐회식 무대를 함께 하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뛰어난 연출능력으로 호평을 받은 장예모 감독이 차기 개최도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개회식에서 평창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드론쇼가 다시 한 번 펼쳐지고, 각국 선수단이 함께 어우러진 선수단 입장, 신임 IOC 선수위원 선출, 자원봉사자 치하 등의 공식행사도 진행된다. 마지막 순서로 세계 최고의 EDM DJ가 진행하는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출연진, 선수단이 하나가 돼 피날레를 장식할 계획이다. 조직위는 개회식과 마찬가지로 폐회식에서도 모든 관람객에게 판초우의와 무릎담요, 핫팩방석, 손핫팩, 발핫팩, 모자 등 방한용품을 지급한다. 조직위 관계자는 “폐회식 당일 최저온도가 영하 3도 내외(체감온도 영하 9도 내외)로 예보돼 다행히 큰 추위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야외에서 장시간 노출되는 만큼 관중 스스로가 두꺼운 겉옷과 내복 착용, 귀마개, 목도리, 마스크, 장갑, 두꺼운 양말, 부츠 등 개인 방한대책을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폐회식 당일 개·폐회식장이 위치한 올림픽 플라자는 오후 4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며, 조직위는 조기 입장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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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3
  • "'성범죄 침묵의 카르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동포투데이] 세계청년리더총연맹(WFPL, 총재 이산하, www.wfple.org, 이하 세계연맹)은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성범죄 침묵의 카르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는 내용의 성명을 23일 발표했다. 세계연맹은 이날 성명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절규와 분노가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Me Too'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다"며 "비단 검찰 내부에서만이 아닌 수십 년간 명성과 입지를 공고히 쌓아온 예술계 원로들 그리고 현역 배우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계에도 다양한 성폭력 의혹이 터지면서 국민들은 충격과 실망감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연맹은 이어 "최영미 시인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린 '괴물'이란 시를 통해서 문단 권력의 민낯을 고발했다"면서 "최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왔던 고 시인으로부터 직접 성추행을 당했고 목격도 했다면서 그는 상습범"이라는 주장에 경악했다고 밝혔다. 세계연맹은 끝으로 "성폭력은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자 인권 침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우리 사회에 어떠한 폭력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드러난 성범죄 행위에 엄격한 법 적용,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기준과 규칙 명확히 마련, 성범죄자의 신상공개와 공직 박탈 및 지원 전면 중단"을 제안했다. 다음은 세계청년리더총연맹이 밝힌 "'성범죄 침묵의 카르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성명 전문이다. "'성범죄 침묵의 카르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절규와 분노가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Me Too'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다. 비단 검찰 내부에서만이 아닌 수십 년간 명성과 입지를 공고히 쌓아온 예술계 원로들 그리고 현역 배우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계에도 다양한 성폭력 의혹이 터지면서 국민들은 충격과 실망감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서 검사는 지난 달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옆 자리에 동석했던 당시 법무부 간부 안 검사가 허리를 감싸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안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최고위급 간부까지 개입해 무마하려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최영미 시인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린 '괴물'이란 시를 통해서 문단 권력의 민낯을 고발했다. 최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왔던 고 시인으로부터 직접 성추행을 당했고 목격도 했다면서 그는 상습범이라고 폭로했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지난 19일 국내 연극계 대가로 평가받는 이 연출가가 자신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을 20년 가까이 상습 성추행 해왔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며 남성 권위자 위주인 연극계에서 강요된 ‘침묵의 카르텔’을 고발했다. 극단을 이끄는 여성대표조차 성폭력에 둔감해진 채 후배 연극인들을 이 연출가의 방에 적극 밀어 넣어 안마용 도구를 삼기까지 그렇게 20여년이 다 되도록 ‘집단 최면’에 걸린 가해 및 동조자들, 침묵자들에 의해 명맥을 잇던 최고의 극단은 이제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서 불명예를 떨치고 있다. 청주대학교 출신의 탤런트 조 씨도 상습적인 성추행 가해자로 고발되어 연일 피해자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 20일 송하늘 씨는 조 씨의 성추행 정황을 밝히는 장문의 글로 조 씨의 성폭력 회피와 가해사실 일축을 반박했다. 송 씨에 따르면 조 씨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제자들을 불러 억지로 침대에 눕히게 하고 성추행을 한 바 있고,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문제 등 차마 입에 담긴 힘든 음담패설과 성희롱도 거듭했다. 이처럼 사회 여러 분야에서 성폭력에 대한 고발운동이 미투(#Me too)와 위드유(#With you) 운동으로 확산돼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성 권력 위주의 성차별이 공고한 이상 그것이 ‘폭력’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것은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수치스럽고 끔찍한 기억을 모조리 끄집어내 실명과 얼굴까지 밝힌 채 구체적인 인터뷰를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고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고발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가해 당사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걷잡을 수 없는 폭로와 추가고발 뒤 그들에게 가해질 2차 피해를 경계한다. 정치권과 경찰, 대학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들이 서 검사의 행동에 칭찬하고 용기를 내 피해사실 공개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들을 오히려 불순한 존재로 여겨 피해 사실을 공개한 여성을 ‘꽃뱀’ 취급하거나 ‘처신 문제’ 운운하며 2차 가해를 한다. 실제 검찰 내 한 부장검사는 서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이유로 인사이동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폭로를 했다는 취지의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리는 등 서 검사의 인격을 짓밟기도 했다. 성폭력에 대한 인지 부족과 뒤틀린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왜곡된 성문화와 성차별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근절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세계청년리더총연맹은 성폭력은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자 인권 침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우리 사회에 어떠한 폭력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결연한 의지를 모아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1. 사회 각 분야에서 드러난 성범죄 행위에 엄격한 법을 적용하라!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피해자가 고통 받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이에 현행보다 강화된 법률적 보완을 마련해 약자들의 안전망을 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안전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2.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기준과 규칙을 명확하게 마련해 2차 피해를 막아라!사회 각 분야에서 성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가해자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법을 적용해 발본색원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유로 2차 가해가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시점에서 이러한 고질이 뿌리 뽑히고 시대착오적인 의식이 타파되도록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금과 반성폭력위원회 등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도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2차 가해의 두려움 때문에 피해를 방관하고 침묵하다가 ‘체면’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또한 자정하려는 움직임이 널리 확산되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 3. 정부는 성범죄자의 신상공개와 공직 박탈 및 지원을 전면 중단하라!성범죄자가 해당 분야나 조직의 권위자라는 점은 절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집단적 침묵 또한 비판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또 다른 성폭력을 야기하고 방관하는 일이 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절대 조장되거나 은폐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공직을 박탈함은 물론 정부 지원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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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3
  • 동북항일연군 조선인 "여장군" ― 허성숙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여성의 몸으로 육중한 기관총을 보총다루듯 휘두르며 일제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힌 한 조선인 “여장군”이 있었다. 그가 바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4사 제1퇀 제1련의 첫 여성기관총사수인 허성숙(许成淑)이다. 1938년 5월, 허성숙은 항일연군 제2군을 따라 수개월에 달하는 일제와의 조우전을 벌이면서 마침내 겹겹으로 되는 적의 봉쇄와 추격을 벗어나 로야령산속에 진입,로야령에서 항일을 견지하고 있는 항일연군 제1로군과 승리적으로 합류하였다. 합류 후 제2군의 4사와 제1군은 배합하여 연속 몇 차례의 대승전을 거두었다. 그 후 제2군은 다시 화전, 교하와 연길지방으로 진출했다. 1939년 1월, 제2군의 4사는 화전에서 항일명장 양정우가 인솔하는 부대와 합류하였다. 양정우 사령의 인솔하에 일거에 화전현 경내에 있는 목기하림장과 따푸차이허진을 공략했다. 두 차례의 전투에서 허성숙은 상급에서 준 정찰임무를 원만히 수행, 적군의 인수와 병력포치 등 정보를 부대에 제공하여 큰 공로를 세웠다. 이어 또 안도현 경내에서 있은 어느 한 차례의 매복전에서 지혜롭게 적의 기관총 한 자루를 노획하기도 했다. ▲ 대사하전적기념관 허성숙 열사 동상 1939년 7월, 항일연군 제4사와 제5사의 주력은 개편되어 항일연군 1로군 제3방면군으로 되었고 허성숙은 제3방면군 13퇀 기관총반의 반장으로 되었다. 부대재편성이 끝난 후 제3방면군에서는 항일투쟁의 새로운 고조를 형성하기 위하여 적들의 요새지역인 대사하진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지휘부에서는 적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하여 우리 부대를 두개 방면군으로 나누어 적들의 응원부대가 올 수 있는 대장강남골과 소사하 방면으로 파견하고 주력부대는 대사하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8월 24일 아침 주력부대는 총공격을 개시하여 대사하진 경찰서를 점령하고 자위단의 무장을 해제시켰으며 2시간 후에는 대사하진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대사하진이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받은 송강에 주둔해 있던 적들은 급급히 부대를 동원하여 대사하 방면으로 달려왔다. 이때 남골에 파견된 우리 부대는 기회를 보아 순식간에 대장강과 동양툰부락을 점령함으로써 명월구의 적들로 하여금 부득불 증원부대를 파견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그날 밤 지휘부에서는 적들이 추격해 올 것을 예견하고 허성숙과 한 전사를 동양툰에 파견하여 보초를 서게 하였다. 그들은 임무를 받고 동양툰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놈들은 6대의 트럭에 앉아 마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태는 매우 긴급하였다. 재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지휘부가 위험한 처지에 빠지게 되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둘이 함께 부대에 연락을 간다면 적들을 견제하지 못하므로 부대의 안전에 위험이 끼칠 수 있다. 어떻게든 저놈들을 견제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허성숙은 비장한 결심을 내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장엄한 임무를 자기가 맡을 것을 결심한 허성숙은 명령조로 다른 대원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서 지휘부에 소식을 전하오. 내가 적들을 견제하겠소!” ▲ 동양툰 허성숙 희생지 허성숙은 그 전사를 지휘부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이 탄 자동차가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허성숙은 자리를 정한 후 침착하게 앞에서 달리는 자동차를 겨냥하여 사격을 시작했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놈들은 항일연군의 매복에 걸려든 줄로 여기고 자동차를 세운 채 어쩔 할 바를 몰라 하며 헤덤벼 쳤다. 한참 후에야 대방이 소수임을 눈치 챈 적들은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 허성숙을 향해 집중사격을 들이댔다. 탄알은 빗발치듯 허성숙을 향해 날아왔다. 허성숙은 완강하게 저격하였다. 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 안달아난 적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돌격해왔다. 지휘부의 안전을 위하여 허성숙은 개인의 안전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는 유리한 지세로 옮겨가며 대응 사격을 가했다. “땅!” 아츠러운 총소리와 함께 적탄이 허성숙의 다리를 명중하였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적들을 견제해야 한다!” 허성숙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러나 연속 날아드는 적탄은 또다시 그의 복부를 명중하였다.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의 사격이 중지되자 적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곧추 마을을 지나 지휘부가 있던 산으로 향하였다. 얼마 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허성숙은 있는 힘을 다하여 부대가 있던 산 밑으로 기어갔다. 그러나 지나친 출혈로 하여 그는 얼마 못 가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 구원의 손길을 뻗쳤으나 지나친 출혈로 하여 얼마 안 지나 그의 심장은 박동을 멈추었다. 부대는 안전하게 전이하였다. 그 이튿날 항일연군은 대장강남 골에서 멋들어진 매복전으로 적들의 “토벌대”와 특설부대 170여 명을 전부 소멸해버렸다. 그러나 부대의 안전을 위하여 단신으로 적들을 견제한 허성숙은 이 기꺼운 승리도 보지 못한 채 24살 꽃 나이로 전우들과 영영 이별하였다. 허성숙은 청춘과 생명을 성스러운 항일무장투쟁에 아낌없이 바치었다. 참고문헌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 2, 原書房, 1967, 65~66쪽.☞ 김정명 편, 『조선독립운동』 1-분책, 563~564쪽.☞ 김정명 편, 『조선독립운동』 3, 326쪽.☞ 박용옥, 「조신성의 민족운동과 의열활동」,『오세창교수 화갑기념논총』, 한국근현대사학회, 1995 참조.☞ 『독립신문』 1921년 1월 15일, 3월 26일, 12월 6일자 ; 『동아일보』 1921년 10월 21일자 ; 박용옥, 「조신성의 민족운동과 의열활동」, 『오세창교수 화갑기념논총』.☞ 『동아일보』 1921년 6월 13일자.☞ 연변조선족자치주부녀연합회 편저, 『항일녀투사들』, 1984.☞ 村田陽一 編譯, 『コミンンテルンン資料集』 2, 大月書店, 1982, 75쪽.☞ 조선총독부, 『朝鮮の治安狀況』, 1930, 12~13쪽.☞ 중공연변주위 당사사업위원회 편저, 『연변인민의 항일투쟁』, 연변인민출판사.☞ 연변조선족자치주부녀연합회 편저, 『항일녀투사들』, 101~102쪽.☞ 연변조선족자치주부녀연합회 편저, 『항일녀투사들』, 201~216쪽. 허성숙의 열사전은 『불멸의 투사』 및 『빨찌산의 녀대원들』등에 실려 있는데, 그의 장렬한 희생 장면 묘사는 각기 다르다. 『항일녀투사들』에서는 7대의 敵특설부대 중 첫 번째 트럭을 향해 사격하다가 다리와 복부에 적탄을 맞고 쓰러진 것을 그 이튿날 한 韓醫師가 자기 집에 데려다 눕히자 죽었다고 했다. 『불멸의 투사』에서는 다리 부상으로 적에게 체포 압송된 그녀가 自衛團長의 딸임을 알고 전향시키려 했으나 끝내 불복하여 총살했다고 했다. 『빨찌산의 녀대원들』에서는 중상으로 체포되느니 차라리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생각, 250여발 보총 탄알을 모두 쏘았고 마지막으로 수류탄을 적에게 던져 큰 희생을 주고 자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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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2
  • 연길서 옥사한 중국의 말대황후- 완용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곽부라 완용(郭布罗·婉容)은 자가 <모홍(慕鸿)>이고 호는 <식련(植莲)>으로 중국의 말대 황후이다. 완용은 별명으로 영월화(荣月华), 이리싸 백(伊丽莎白) 등이 있으며 중국의 만청시대 및 민국시대를 겪으면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명이었고 또한 시대의 희생품으로 된 비운의 여인이기도 했다. 1931년 말, 일본 여간첩인 가와시와 요시코(川岛芳子)가 일본 관동군의 명령에 의해 천진에 가서 완용을 만주로 데려오게 된다. 그 뒤 1932년 1월, 일본인들의 유혹하에 완용은 여순(旅顺)에서 그녀보다 앞서 그 곳에 도착한 부의와 상봉하게 되었다. 그 시기의 부의는 이미 일본 관동군에 의해 조종되는 괴뢰로 되었으며 완용 역시 일본인들의 음모에 말려들게 된다. 당시 만주에서의 완용은 모든 것을 일본인들의 배치에 복종해야 했으며 그녀의 일거일동 모두가 일본인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이는 <모덴여성>이었던 완용으로 하여금 가장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결국 완용은 도주를 결심하였다. 남경 국민정부의 제1임 외교장관이었던 고유균(顾维钧)의 회고에 따르면 일찍 완용은 만주국정부내의 한 사람을 고물상으로 가장시켜 고유균한테 파견, 자기의 탈출을 도와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고유균 역시 신분상 완용의 탈출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뒤에도 완용은 탈출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1933년 8-9월 기간, 위만주국 입법원의 조흔백의 부인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자 완용은 그녀한테 자기의 탈출을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그 때 오직 자기만 탈출에 성공하면 후에 부의까지 탈출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당시 한 일본인 첩자가 이를 알아채고는 부의한테 밀고하여 완용의 탈출시도는 재차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그 후 완용은 더는 탈출기회를 찾을 수 없게 됐다. 1934년, 3월 1일, 완용은 만주제국의 황후로 책정되었지만 매일 마약과 접촉하면서 세월을 보내며 병태적인 생활을 지속, 때로는 예쁘게 치장하고 황궁내의 정원을 거닐기도 했다. 바로 그 시기, 만주국 황궁에서는 완용과 시중꾼 사이의 간통사건이 터지었다. 당시 부의의 말대로라면 완용이 문수를 내쫓자 부의는 완용에 대한 반감이 생기면서 아주 오랫동안 완용은 부의로부터 냉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황후라는 존호를 잃을 수 없었는가 하면 부의와 이혼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반대로 정상적인 생리수요가 있는 여성이었기에 사통이라는 불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완용은 선후로 부의의 시중꾼 이체육(李体育), 기계충(祁继忠) 등과 간통, 나중에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완용의 마약흡입으로부터 사통에 이르기까지에는 오빠의 역할이 컸다는 설도 있다. 일찍 천진에서 대련으로 오는 동안 오빠는 일종의 이익을 챙기고는 자기의 여동생을 한 일본군 장교한테 팔아먹었다고 한다. ▲곽부라 완용(郭布罗·婉容)의 묘 1935년, 완용이 여자아이를 출산, 이는 부의로 하여금 대노하게 했다. 당시 부의는 애를 처남(완용의 오빠)한테 맡겨 키우기로 했다고 완용한테 말했으나 기실은 이미 애를 보일러 속에 집어던져 요절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분을 삭일 수 없었던 부의는 또 완용을 황궁에서 가장 추운 방에 한동안 가두어 놓기도 했다. 그 뒤 완용은 지나친 정신적 타격으로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말았다. 정신병에 걸려있던 나날, 완용은 완전히 미치광이였다. 치장은 고사하고 매일 울고 웃고 하였으며 유일하게 남은 습관이란 곧바로 매일 마약을 흡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병이 엄중할 때는 방안(갇혀있는 독방)에서 거닐 수도 없을 지경이었으며 두 눈은 한 점의 광채도 없이 늘 흐리터분하였다. 또한 가끔씩 정신이 들 때마다 울면서 자기의 부친을 욕했다. 자기의 출세를 위해 딸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었다고 욕해대군 했다. 1945년 8월, 소련은 <8월 폭풍>으로 명명된 군사행동으로 신속히 만주 전체를 점령, 8월 11일 완용은 신경(장춘)을 떠나 통화로 피난 가던 중 따리즈거우(大栗子沟)에서 당지의 유격대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 그 뒤 완용은 통화, 장춘, 영길(永吉), 돈화와 연길 등지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1946년 6월 10경에 연길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녀가 사망한 뒤 여러 가지 설이 난무, <낡은 온돌 삿자리에 말아 연길 북산에 버려졌다>는 설과 <연길 남산(즉 모아산 주변)에 묻혔다>는 설이 엇갈리었다. 그 때로부터 3년 뒤 소련의 시베리아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부의는 동생 부걸이 보낸 편지를 통해 완용의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비애에 잠겨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2006년 10월 23일, 완용의 남동생 윤기의 동의를 거쳐 하북성 청서릉(清西陵)밖에 있는 화룡황가릉원(华龙皇家陵园)에서는 초혼(招魂)의 형식으로 된 완용과 부의의 합장의식이 있었으며 묘비에는 <효각민황후(孝恪愍皇后)>라고 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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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2
  • 독도사랑운동본부, ‘다케시마의 날’ 철폐 촉구
    ▲ 사진제공=대한민국독도사랑협회 [동포투데이] 대한민국 독도사랑협회가 22일 14시에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철폐를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학생대표 이승재학생(배재대학교 사이버보안학과 1년)의 “일본학생에 고함”과 안청락 협회장의 “다케시마의 날 철폐 촉구” 선언문을 통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만이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다케시마의 날’은 일본 지방정부인 시마네현이 매년 2월 22일 주관하고 있는 행사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제정한 날이다. 다케시마(竹島)는 독도의 일본식 명칭으로,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본 제국 시마네현으로 편입 고시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지정하였다. 시마네현 의회는 2005년 3월 16일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지정 조례안을 통과시키고, 다음 해인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에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개최해 일본의 독도영유권을 주장 하고 있다. ▲ 사진제공=대한민국독도사랑협회 일본 정부는 2차 아베 정권 출범이후인 2013년부터 차관급 인사들을 행사에 참가시키고 있으며, 2017년에는 무타이 순스케(務台俊介) 내각부 정무관이 참석하고, 올해는 야마시타 유헤이(山下雄平)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하는 방침을 정했다고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이 16일 전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1월 25일 도쿄 중심가에 '독도가 일본땅'이라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토 주권 전시관을 개관해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영상을 상영하는 등 독도 침탈 야욕을 노골화 하였다. 또한 초·중·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도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교육내용을 넣어 자라나는 세대에 거짓역사를 교육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우리땅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조차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독도가 빠진 한반도기를 사용해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대한민국 독도사랑협회 안청락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우리정부는 독도가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부각되는 것을 우려해 조용한 외교정책을 실시해 왔지만 조용한 외교정책으로 얻은 실리는 없고 꾸준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으로, 독도가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정부차원의 강력한 독도정책을 실시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 사진제공=대한민국독도사랑협회 이번 행사를 총괄한 대한민국 독도사랑협회 전일재 사무총장은 “실효적 지배사실만 믿고 독도문제를 안이하게 대처하는 정부가 제일 큰 문제이고, 평창올림픽 한반도기에서 독도 표기를 뺀 것은 우리 스스로 독도주권을 포기한 것이며, 국민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는 행위로 차후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이러한 매국행위를 한 올림픽조직위를 형사고발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대한민국 독도사랑협회 회원, CS해밀 독도지킴이, 리플리히 오케스트라, 국악연주단 등 200여명이 참여 했으며, 경상북도 체육회 독도사랑스포츠공연단의 태권도 공연도 성황리에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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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2
  • ‘제4회 인성교육대상·교육공헌·교육브랜드 대상’ 수상후보자 공모
    [동포투데이] 제 4회 ‘2018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Korea Character Education Awards 2017) & 대한민국교육공헌대상(Korea Education Contribution Awards 2018)’ 시상식이 오는 3월 3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인성교육 & 교육공헌 대상은 ‘2018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교육공헌대상조직위원회, 글로벌교육브랜드대상 조직위’와 김병욱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성남시분당구을), 한국교육신문연합회, 대한민국베스트브랜드협회가 주최하고, 뉴스에듀신문, 나비미디어가 주관하며, 국회교육문화체육위(예정), 한국교육연합신문, 한국교육전문기자클럽, 국제학생기자단, 아하취업아카데미 등이 후원한다. ▲ 지난 2017 ‘제 3회 학교폭력 예방 세미나 및 인성교육대상 · 교육공헌대상 · 교육브랜드 대상’시상식이 국회의원회관 제1회의장에서 개최됐다. 시상 부문은 의정교육부문, 공기업교육부문, 지자체교육부문, 공직자교육부문, 청렴교육부문, 교육언론사부문, 인권교육부문, 나눔봉사부문, 글로벌교육부문, HRD교육부문, 청소년교육부문, 사회교육부문, 성인교육부문, 청소년수련원부문, 문화예술교육부문, 경제교육부문, 대학교육부문, 일자리교육부문, 진로교육부문, 환경교육부문, 온라인교육부문, 명강사부문, 기타 교육부문을 시상한다. ‘2018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 교육공헌’ 선정심사위원회는 후보자에 응모한 지도자와 교육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수상후보를 선정하게 된다. 응모 대상은 인성교육 발전에 기여한 지도자, 교육자, 단체(법인) 및 개인을 발굴해 시상하게 된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메달을 수여한다. 한편, 지난 이번 시상식에서도 행사에 이어 청소년들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2018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 교육공헌’ 후보를 추천 또는 신청을 하고자 하는 분은 뉴스에듀신문사 공지사의 후보 신청서(기사 하단 첨부파일) 1부를 작성하여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 교육공헌대상’ 대회조직위원회 이메일 ( aha310@naver.com )으로 송부하면 된다. 시상 후보자 접수마감은 3월 20일(화)이며, 23일(금)뉴스에듀 사이트 및 언론을 통해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시상식은 오는 3월 31일(토)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회의실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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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2
  • 연변부덕 FC, 카메룬 출신 용병 테스트…영입 작업 마무리될까
    ▲ 까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 라파엘 메시 불리(Raphaël Éric Messi Bouli)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 라파엘 메시 불리(Raphaël Éric Messi Bouli)가 현재 연변부덕에 합류하여 테스트를 받고 있는 중이다. 현재 25세인 라파엘 메시 불리는 지난 시즌까지 카메룬 프로리그 Apejes FC에서 활약,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확보 중이다. 거물급 세계스타 아르헨띠나 국가대표팀의 공격수 메시와 같은 이름을 보유하고 있어 카메룬 "메시"라고도 불리운다. 라파엘 메시 불리는 지난달 카메룬 국가대표2팀을 대표하여 2018모로꼬 아프리카 국가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이 중 한 경기에서는 전에 연변부덕에서 테스트를 받은적이 있는 공격수 프란츠와 공동이 잔디를 밟았다. 프란츠는 지난달 카메룬을 떠나 미국 프로리그에 가맹하였다. 라파엘 메시 불리, 프란츠와 허난 젠예의 외국인 선수 바소고그는 모두 미국에 장기거주하고 있는 카메룬적 매니저 킹슬리(Kingsley가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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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2
  • 日 시마네현, 시민 생활속에 '독도'를 주입하다
    ▲ 시마네현청 주변 대형 상점에서 독도 관련 술, 과자 등이 판매되고 있는 모습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독도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팀이 매년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에서 열리는 자칭 '다케시마의 날' 행사의 준비 상황을 답사한 후 "시민들의 생활속에 독도를 주입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요근래 매년 행사의 준비상황을 지켜 보면서 독도관련 책, 술, 과자, 자판기 등을 만들어 독도를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더니 올해는 차량용 스티커, 강치 캐릭터 등 더 다양한 상품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시마네현청 주변을 다니면 대형 상점가에서 독도관련 술과 과자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시민 모임 장소 및 서점 등에서는 강치를 캐릭터화 해 만든 동화책 '메치가 있던 섬'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동화책은 일본 내각관방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에서 구연동화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 홍보중이며, 전자책으로도 제작하여 일본 전역의 초중학교 3만 2천여곳에 배포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에 서 교수는 "이처럼 생활속에서의 문화 컨텐츠를 활용하여 일본인들에게 '독도가 일본땅'임을 자연스럽게 주입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시마네현청 제3분 청사 2층에 자리잡은 '독도자료실'에는 일본측 억지 주장이 담긴 다양한 독도관련 전시물이 소개되어 있고, 특히 올해 1월말 도쿄 히비야공원 내 '영토 주권 전시관'이 만들어진 것도 전시중이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예전과는 달리 독도자료실 직원이 안내서 및 기념품을 먼저 전달해 주면서 시마네현에서의 꾸준한 활동이 독도를 일본 교과서에 넣을 수 있었고 또한 도쿄에도 전시관을 만들어 냈다며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이젠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일본의 한 작은 지역의 행사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커져버렸다. 하지만 우리도 이젠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좀 더 전방위적인 독도홍보를 진행해야만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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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2
  • 연길서 옥사한 중국의 말대황후- 완용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곽부라 완용(郭布罗·婉容)은 자가 <모홍(慕鸿)>이고 호는 <식련(植莲)>으로 중국의 말대 황후이다. 완용은 별명으로 영월화(荣月华), 이리싸 백(伊丽莎白) 등이 있으며 중국의 만청시대 및 민국시대를 겪으면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명이었고 또한 시대의 희생품으로 된 비운의 여인이기도 했다. 곽부라 완용은 1906년 11월 13일, 청정부 내무부 대신인 영원(荣源)의 규수로 태어났다. 생모 아이신기오로(爱新觉罗氏)는 완용을 낳은 뒤 산욕열(产褥热) 로 사망, 완용은 계모 김중형(金仲馨)의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다. 완용의 계모 김중형은 당시 조정에서 일정한 권세가 있는 왕박후(王溥煦)의 손녀로서 완용을 총애하면서 아주 자상하게 완용을 돌봐주었으며 이들 모녀간은 더없이 화목했다고 한다. 한편 완용의 부친 곽부라 영원은 일명 개명인사로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인사였으며 여자애들도 남자애들처럼 학당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부친이 있었기에 어릴 때의 완용은 독서하고 글자를 익히는 외 악기를 다루고 그림 그리는 것도 배울 수 있었으며 또한 미국인 이사벨(Miss Isabel) 여사를 가정교사로 초빙해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당시 완용은 아우르족(达斡尔族) 가정의 공주로 부유한 생활환경과 현저한 가족지위가 있었으며 특히 민족문화와 전통문화의 교육은 그한테 아주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1922년, 이미 16살이 된 완용은 용모가 단정하고도 아름다운 숙녀로 탈바꿈했다. 아울러 양금을 다루고 붓글씨도 제법 잘 쓰는 등으로 그 이름이 원근에 자자했다. 그 해 완용은 고궁(자금성)에 입궁, 그 해 11월 30일에 <청조사상의 마지막 황후>로 되었다. 당시 완용이 황후로 된 것은 단지 그가 아름답고 다재다능해서만이 아니었다. 즉 근황귀비(瑾皇贵妃)의 지지가 있었기에 마침내 황제였던 부의가 완용한테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1911년 중국은 2000여 년간 지속되던 봉건군주제를 결속시키고 공화제의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화민국 정부는 대청제국 황제의 퇴위 후에도 여전히 황제‧황후의 존호(尊号)를 폐지하지 않았으며 부의와 완용에 대해 군주에 해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때문에 부의와 완용의 혼례는 완전히 황제의 혼례로 예의를 갖추고 거행되게 하였으며 민국정부의 특별 승낙으로 황후가 탄 가마가 동화 문으로부터 자금성의 후반부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귀족출신인 완용은 지식이 있고 예의가 밝았으며 제법 시를 쓰고 읊을 줄도 알았다. 또한 부의와 서신 거래를 할 때면 늘 영문으로 쓰면서 마지막엔 꼭 <이리싸 백>이라고 서명하군 했다. 거기에 완용은 용모가 단정하고도 아름다웠고 행동자세가 우아했으며 거기에 내강외유(内刚外柔)의 스타일로 동서방 문화를 겸비한 전형적인 귀족부인이었다. 하지만 부의 자신의 신체원인으로 결혼 후 완용은 줄곧 자녀가 없었다. ▲ 위만주국시기 말대황제 부의(溥儀)와 완용 1924년 풍옥상(冯玉祥)이 <북경쿠테타(北京政变)>을 일으키면서 11월 5일, 부의는 자금성에서 쫓겨났고 완용 역시 부의를 따라 자금성을 떠나게 되었다. 그 뒤 완용은 부의를 따라 천진에 거주, 그 때로부터 그녀는 마약에 인이 박혔다. 그리고 궁중에서 입던 복장을 활활 벗어버리고는 치포를 입었고 하이힐(高跟皮鞋)을 신었으며 파마를 하는 것으로 당시 조계지에서의 <모덴여성(摩登女性)>으로 탈바꿈했다. 그 시기 완용의 최대 즐거움이란 각 백화점들을 돌면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돈은 여하튼 부의가 지불하기에 그녀는 절제 없이 돈을 휘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또한 1922년 함께 입궁한 다른 한 황비 문수(文绣)와의 암투로 되기도 했다. 천진에서 생활하는 동안,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의는 성격상의 약점이 점차 드러났다. 그의 생리상 약점은 마침내 문수가 이혼을 제기하기까지에 이르게 했고 부의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몽땅 완용의 잘못으로 밀어붙였다. 한편, 완용은 사회를 위해 돈과 금은 장신구 등을 기부하여 각 계로부터 찬양을 받은 적도 몇 번 있었다. 1923년 12월엔 북경에 있는 <임시 와와두회(临时窝窝头会)>로 명명된 자선기구에 은화 600원을 기부하여 이재민을 돕게 하였고, 1931년 중국의 16개 성이 엄중한 수재를 입었을 때에도 은화와 함께 진주보석들을 기부(당시 부의는 층집 한 개 동을 내놓았음)해 이재민을 돕게 하여 당시의 <대공보> 등 신문들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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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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