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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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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북한, 일본 2-1로 꺽고 U20 여자 아시안컵 우승
    [동포투데이] 16일 막을 내린 20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1-1로 비기고 일본에 0-2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편 호주 여자축구는 3,4위 결승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두 팀은 일본, 북한 등 4개 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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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7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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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 “최종 목표는 월드컵 진출”
    [동포투데이] 8일 오전 11시, 중국축구협회는 톈진에서 브란코 이반코비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을 위한 정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인 중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3월 21일과 26일 조별리그 36강전 싱가포르와의 연속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반코비치는 “지금 기자회견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선수들의 경기 감각도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의 1차 목표는 최종예선 진입이고 최종 목표는 강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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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中 U-20 여자축구, 일본에 완패…월드컵 진출 불투명
    [동포투데이] 7일 밤에 끝난 AFC U-20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중국이 일본에 0 : 2로 패하면서 U-20 여자 월드컵 진출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해졌다. 이번 U-20 여자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전년도 준우승팀인 일본, 그리고 전년도 준우승팀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어 U-20 여자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상대의 강한 실력에 비해 중국은 라인업이 불규칙했고 중앙수비수인 차오루치(乔睿琪)가 경기 준비 마지막 순간 부상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서 중국은 1 : 1로 힘겹게 북한과 비기면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은 지난 경기에서 베트남을 10 : 0으로 대파했다. 중국은 월드컵 진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번 경기에서 적어도 골을 넣어야 하고 최소 1점을 따내야 했다. 왕쥔(王军) 중국팀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은 기술이 뛰어난 팀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강팀”이라며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경기에 비해 중국팀의 이번 라인업이 다소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리팅잉거(李渟英格), 장천징(姜晨璟), 천자위(陈佳宇)가 선발로 나섰다. 초반에는 양 팀 모두 골문 앞의 절대적인 찬스가 있었지만, 득점을 못했다. 경기 20분 중국은 상대의 실수를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루자위(卢家玉)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 의해 무산되었다. 26분 페널티 구역에서 동료의 크로스를 받은 일본의 마야 히지카타가 슈팅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고 88분에 아마노 스즈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대회에는 8개 팀이 참가하며, 중국은 일본, 북한, 베트남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2024년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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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8

실시간 스포츠 기사

  • 북경팔희팀 북공연경팀으로 탈바꿈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시나넷에 따르면 25일, 중국 축구협회에서는 “북경팔희축구구락부가 북경공고축구구락부(北京控股足球俱乐部簿)”로 이름을 변경한다고 선포하였다. 그 이튿날 북경시체육국 역시 북경 공고그룹과 합작하여 공동으로 투자, 체육사업 발전전략을 출범시키며 북경팔희구단을 인수한 북공그룹이 구단이름을 북경연경팀으로 변경, 명년에 1억위안을 투입하여 북경연경팀의 슈퍼리그진출을 성공시킨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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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8
  • 中 해경훈련기지 평가전서 충돌 발생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시나넷에 따르면 27일, 운남 해경훈련기지에서 국가 올림픽팀과 상해신흠팀간의 평가전에서 쌍방 선수들간의 서로 치고 박는 충돌사건이 발생했다. 이 날의 충돌사건은 경기진행 20 여 분 경에 발생, 국가 올림픽팀의 몇명 선수들은 상해신흠팀 강가준 선수의 공차단에 불만을 품고 그를 에워싼채 치고 박고 하였으며 이로 인해 경기가 한동안 중단되기도 했다. 두 팀 선수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은, 쌍방의 감독진 성원들의 신속한 제지로 통제되었으나 이로 인해 더는 경기를 진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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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8
  • 한 슈퍼축구팬의 수기(10)
    ■ 허 헌 (당고의 바닷가에서) 2일간의 회의를 원만히 마치고 나는 몇명 대표들과 함께 먼저 북경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이튿날 천진여행을 해야 하기에 준비하고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10월 15일 아침, 북경역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정각 7시에 천진으로 향발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완행열차여서인지 기차의 속도는 몹시 늦었다. 그 사이에 나는 밀려 오던 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약 2시간이 지나서 눈을 뜨자 열차는 어느 덧 천진역 플래트홈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나의 첫 여행지는 바다가였다. 천진을 몇번 와 봤어도 바다구경을 못해 보았기에 또한 해변가도시 대련에는 여러번 갔었지만 백사장에서 노닌적은 없었고 또한 여객선을 타고 상해를 가본적은 있지만 그냥 바다구경을 했을뿐 바다가에서의 여행은 해본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천진역 출구를 나서다가 보니 앞에 아츨하게 높은 건물이 일떠서 있었다. 주위 사람들과 물어보니 그 건물은 높이가 400미터도 넘는다고 했다. 영화나 그림에서만 보아 오던 높은 건물이 천진에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해변가를 가자면 천진 남쪽 끝의 당구로 가야 했기에 행인들과 물어 겨우 당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헌데 교통이 어찌나 복잡한지 길이 자주 차들로 막히면서 버스에서 지체한 시간만 해도 2시간 정도가 되었다. 어쨌거나 그럭 저럭 당구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당구에서도 해변가로 가자면 한참 가야 한다기에 또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요금은 60위안이라 했다. 이렇게 택시에 앉아 30분만에 해변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2시가 넘었다. 해변가에 도착한 후 매표구에서 30위안을 내고 입장권을 사서는 입장하려다가 망설이게 되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였다. 그리하여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마다 문을 꽁꽁 잠그워놓아 배고픔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백사장에 들어섰지만 앞은 방파제가 막혀져 바다는 전혀 시원한 멋이 없었고 싸늘한 가을날씨에 여행객까지 없다 보니 적막하기 그지 없엇으며 게다가 갈증과 배고픔까지 더하다 보니 바다물이라도 퍼마시고 싶었다. 그와 중 그래도 바닷가에 사업일군들이 있었기에 기념사진을 부탁하고 먹을 것을 찾으니 저 앞에 공짜로 주는 달걀빵(鸡蛋糕)이 있다고 했다. 내가 사업일군들이 가르쳐 주는대로 찾아 갔더니 어느 빵공장에서 광고용으로 내놓은 빵으로서 한개씩만 맛보게 하는 것이었다. 헌데 그 내속을 알리 만무했던 나는 무려 5개나 먹어치웠다. 먹는 것을 놓고 말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다 먹은 후에 그 곳의 사람들은 이는 하나씩만 맛보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순간 나의 얼굴은 달아올랐다. 아이구머니나, 저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을까? 실로 거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크게 무안을 당한 나는 그곳에서 슬며시 빠져 나왔다. 그러고는 웨쳤다. “다시는 안온다, 천진은 아름다운 해변도시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의 다리위로 달리는 작은 열차가 눈에 띄었다. 알아보니 천진역까지 다니는 작은 열차라 했다. 북경에는 지하철, 천진에는 공중열차가 있었다. 좌우간 앉아보자. 아니나 다를가 앉고 보니 30분도 안되어 천진역에 도착하였다. 내가 돌아볼 두번째의 목적지는 등탑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버스에 올랐으나 이번에도 교통체증은 여전했다. 천진역에서 등탑까지 가는데 3시간이 소요되었으니 이날 나는 차에서만 8시간 이상 보낸 셈이었다.  그런대로 등탑에 도착하였고 그 주위의 모텔방을 잡으니 투숙비용이 제일 싼 방이 280위안이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행장을 풀고는 등탑으로 향했다.  등탑은 호수중심에 있었으며 말 그대로 하늘이 무서운줄 모르고 가늘게 우뚝 솟아 있었다.등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었는데 가격은 30위안이었다.  내가 등탑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는 이미 밤 장막이 짙게 내린 저녁이어서 오르면서 보는 천진시의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230미터의 높이에서 바라보는 그 경관, 다시 언제쯤 와 볼 수나 있을까?! 나는 독한 흰술과 간단한 요리 두접시를 청해서는 천진의 밤경치를 감상하며 황홀경에 취해있었다. 그러노라니 저도 몰래 감탄한 나머지 시흥이 무르익었다.  그러자 나는 인차 가방에서 노트와 필을 꺼내서는 보이는대로 적기 시작했다.  하늘의 별 자취 감추고 땅에 내렸나 하늘 뚫고 뻗어 있는 등탑 무서워 땅에 내렸나 온 누리에 펼쳐진 별무리 반짝 반짝 때로는 깜빡 깜빡 때로는 움직이고  때로는 줄지어 달리기도 명명하는 그 별빛 하늘 향해 비추니 쓸쓸한 이 내 마음 달래여지고  황홀한 경치 더불어 술잔 기울릴제  기쁨에 취해 웃노라 교통체증이 심한 천진시가 밤경치가 이렇게도 아름답고 황홀할 줄은 진짜 꿈에도 상상못할 일이었다. 이렇게 반시간에 한 바퀴씩 돌면서 등탑식당에 앉아 천진시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며 크게 흥분하고 있을 때 불현듯 어디선가 “헬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눈이 새파랗고 코가 큰 서양인 4명이 맥주를 들면서 나한테 알은체하며 손짓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 역시 “하이”하고 답변하니 그들 4명은 차례로 나한테 다가와 악수를 청하였다.  이어 내가 마시던 독한 흰술을 한잔씩 권하자 그들은 모두 코와 눈을 험상굳게 잔뜩 찡그리며 사절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한테 손질과 발질을 해가면서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하고 물으니 그들 또한 말은 안 하고 손바닥에 글로 써보이며 “USA”라며 자기들은 미국인이라고 소개해왔다.  그러자 그들 또한 눈짓, 손짓을 해가며 나한테 뭔가를 묻는 것이었다. 헌데 그 뜻을 알아차린 나였으나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자란 내가 어떻게 조선족이라 표현할 수 있을랴.그래 고민하던 중 엉결에 한국인과 조선족은 한 민족이란 생각이 불쑥 떠올라 서툰 영어로 “코리아(KOREA)”라고 말해 버렸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대뜸 크게 기뻐하면서 입에서 함박꽃이 피였다.그들은 한국과 미국은 제일 친한 나라의 사이라면서 재차 나한테 악수를 청해왔고 이어 두팔을 벌이면서 포옹까지 해주었다. 아차,뭐가 잘못돼도 한창 잘못됐다.이게 웬 꿩고기 먹고 닭고기 타령이야! 내가 한국인이라니, 어제까지도 북경에서 중국축구를 위해 중국축구협회로 회의하러 왔던 놈이 한국인이라니 너무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들한테 손들어 보이고는 위생실을 찾는 것처럼 꾸미며 줄행랑을 놓았다. 36계를 놓았다. 왜 도주했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코리아인이 아니기 때문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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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8
  • 슬리스코비치,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임명 가능성
    [동포투데이] 러시아 한국어 방송에 따르면 슬리스코비치 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수 있다고 러시아 스포츠부가 rts.rs 공개내용을 인용해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슬리스코비치 감독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감독으로 복귀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12월 메흐메드 바즈다레비치 감독이 대신 임명됐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맡았던 슬리시코비치 감독은 선수 시절 프랑스 '마르세유'팀과 크로아티아 '하이두크'팀에서 활약했고 2012년도 중국 '칭다오 중넝' 팀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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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4
  • 中 강소성 향후 5년간 청소년축구 크게 발전시킨다
    청소년 과외활동 천연잔디밭 표준축구장 100개 건설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향후 5년간 강소성에서는 청소년축구 ‘백천만’ 보급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즉 100개 이상의 청소년 과외활동 천연잔디밭 표준축구장을 건설하고 1000개의 축구특색학교를 건설하며 1만명의 교정축구운동원을 배양해 청소년들의 교정 내외에서의 축구의 꿈이 현실로 되게 한다” 21일, 중국 강소성 교육청에 따르면 목전 강소성에서는 “청소년 축구 진흥계획 강령(2015년—2020년)”을 기본상 완성했으며 곧 공포한다고 중국 신화일보가 22일 보도했다. “강령”에 따르면 강소성에서는 향후 5년간 축구특색학교를 토대로 축구 후비인재 시범학교를 인도로 축구 정예 제대를 중점으로 하는 청소년 축구발전 체계를 형성한다. 강소성은 축구를 비교적 일찍 추진해온 성이다. 소개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강소성의 축구 후비인재 배양 중점학교는 2011년 이전의 46개로부터 329개로 증가되었고 등기한 학교 축구운동원은 1519명으로부터 3794명으로 증가했다. 학교 축구장 뿐만 아니라 과외 축구장이 부족하고 축구교사가 엄중히 부족하며 보장이 결핍한 것은 학교 축구발전의 주요 장애로 나서고 있다고 현지의 한 체육교원은 지적한다. 지어 학부모들이 자식이 축구를 하면 장차 대학가기 어렵다며 자식이 어려서부터 축구를 못하게 하는 경향들도 있으며 또 학생이 축구를 하다가 상하면 보험회사에서 그 치료비를 결산해 주지 않는 등 관련되는 문제점들이 많이 제기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 하반년부터 강소성 교육청과 체육국에서는 공동으로 “청소년축구 진흥계획 강령(2015년—2020년)을 제정하고 목표를 제기한 외 청소년축구장의 대대적인 건설, 축구교사의 축구소질을 중시하고 학력수준은 낮추는 등 축구교사 초빙 문턱 낮추기, 축구특장생의 대학입학 우대정책 제정, 의료보험 등 학교 축구 발전을 저애하는 모든 문제들부터 해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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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3
  • 중국 조선족축구를 만방에 알린 노년축구팀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일전 김재율씨를 단장으로 하는 연변70대 노년축구팀인 흰구름 축구대표팀이 한국 제주특별시 종합체육장에서 있은 제1회 제주“장수배”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하여 제 3 위에 오르는 영광을 지녔다. (겨울철에도 훈련을 견지하고 있는 흰구름축구팀 성원들) 대회에 참가한 16개 축구팀을 보면 중국에서 3개팀, 일본에서 2개팀이 참가했으며 나머지 11개 팀이 한국 본토팀이었다. 성적순위를 보면 1위와 2위가 모두 한국팀이 차지했으며 해외팀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팀이 연변 흰구름축구대표팀이었다. 경기에서 연변흰구름팀은 1조에 편입, 조리그에서 한국 서울광진팀과 1 : 1로 비기고 제주장수팀과 역시 1 : 1로 비기었으며, 일본 도쿄노년팀을 2 : 1 제압하고 3 : 0으로 한국장수홍보팀을 완승해 조1위를 기록했으며 득실차에 의해 결승경기가 없이 3위에 올랐다. 중국에서 참가한 3개 팀 중 상해노년팀은 60대 연령단계어서 성적기록이 없는 순 친선경기형식으로 참가했고 청도팀은 70대 연령단계었지만 조경기에서 탈락한 상황, 이러고 보면 연변 흰구름노년축구대표님은 연변만이 아닌 전반 중국의 노년축구의 실력을 보여준 셈이었고 중국축구를 위해 영예를 빛내인 셈이었다. 이번에 연변 흰구름축구대표팀은 도합 26명으로 구성, 한국방문목적이 순 제주 “장수배”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고찰과 친선경기를 통하여 한국의 노년축구 현황을 알아보고 향 후의 상호교류를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대표팀은 대회의 개최를 약 일주일간을 앞두고 한국에 입국, 11월 11일부터 선후로 서울, 인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 지방의 노년팀들과 8차에 달하는 친선경기를 치르면서 교류와 친선을 돈독히 하는 한편 중국 조선족노인들의 축구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 제주에서 제1회 제주 장수배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하여 남긴 기념) 한편 이번에 한국행을 하면서 이 축구팀 노인들은 1명당 100위안씩 내놓아 가정 특별사정으로 한국행이 어려웠던 한 노인의 노비를 부담해주는 것으로 화목하고 서로 도와주는 모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3월에 정식으로 연변흰구름축구팀으로 고고성을 울린 이 축구팀은 매주 3차씩 훈련을 견지하는 한편 주내외에 있은 많은 경기들에 참가하기도 한다. 또한 이 축구팀의 스폰서를 담당하고 있는 연길 흰구름이불공장의 최기춘 사장은 매달 축구팀에 정기적으로 1000위안씩 협찬, 이번의 한국행에도 5000위안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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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1
  • 47세의 미우라 요코하마 FC와 재계약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12월 20일, 전 일본국가대표팀 선수 미우라 가즈요시가 47세의 나이로 일본 J리그 2부팀인 요코하마 FC와 재계약을 맺었다. 1967년생인 미우라는 현재 세계적으로 공인하는 가장 나이가 많은 프로선수이다. 아시아 프로축구선수로 가장 먼저 이탈리아 세리에에 상륙한 선수인 미우라는 수차 일본 J리그의 최우수 선수 및 아시아 축구선생의 영예을 가졌으며 일본 국가대표 선수로 89경기에 출전하여 55골을 성공시켰다. 2013년 미우라는 46세의 나이로 요코하마 FC의 선수로 출전하여 득점에 성공, 일본 프로축구사상 가장 연장자 득점선수로 기록되었다. 현재 그와 나이가 비슷한 중국의 축구인들로는 범지의, 학해동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프로축구선수 생애 30여년을 갖고 있는 미우라 가즈요시의 가장 큰 유감은 일본대표 선수로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다.
    • 스포츠
    2014-12-21
  • 한 슈퍼축구팬의 수기(9)
    ■ 허 헌 (전번기 계속) 샤와를 마치고 나오니 저녁식사를 한다는 호출이 있었다. 복도로 나오니 마침 국가청년팀 선수들이 줄을 지어 식사하러 가기에 그들이 들어가는 식당홀에 들어서자 접대원이 우리의 앞을 막으며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었다. 이에 내가 회의하러 온 축구팬 대표라고 말하자 접대원은 대표들의 식당은 저쪽 큰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축구팬 대표들에게 향해지는 접대는 5성급 호텔 차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접대원이 알려준 식당홀에 들어서니 이미 아주 큰 식탁 3개가 준비되어 있었고 상위에 오른 요리 개수를 세어보니 무려 36가지나 되었다. 그리고 매 상마다 미녀 5명씩 차렷 자세로 우리를 맞아주며 곱게 인사하였다. 이어 하나 둘씩 자리를 찾아 앉자 위주임이라는 기지의 책임자가 나를 자기의 옆에 앉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연변축구의 현황에 대해 이 것 저 것 물으면서 나한테 맥주를 부어주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조선족은 맥주보다 배갈을 더 즐긴다고 하자 그는 인차 접대원한테 부탁하여 모태주를 올리게 하였다. 명주인 모태주는 확실히 기타 다른 싸구려 술과는 근본 맛이 달랐다. 맛도 유유했지만 향기가 더욱 좋았다. 그래서 그 책임자한테 값이 얼마인가고 물었더니 3000위안이라고 했다. 어머, 3000위안? 그럼 내가 반근을 마시면 1500위안어치 마시는 셈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촌 놈이 좋은 술이 생겼을 때나 콱 마셔야지.) 아니나 다를가 내가 한잔 마시기 바쁘게 대기하고 있던 미녀 접대원이 계속 잔을 채워주군 하였다. 한편 연회의 무드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기지의 위주임은 29명의 대표들을 향해 차례로 자아소개를 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맨 끝에 있는 연회상부터 소개되다 보니 위주임의 옆에 앉은 나의 차례는 맨 마지막으로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술기운을 빌어 큰 소리로 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연변에서 온 대표이며 이름은 허헌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 있는 대표들중 유일하게 소수민족으로 조선족입니다. 저는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니며 조선족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중국인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수많은 중국인 중의 일원입니다.” 나의 소개가 끝나기 바쁘게 박수소리가 터졌다. 여기서 힘을 얻은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제가 노래 한곡 불러드려 되겠습니까? 제목은 ‘나의 중국마음(我的中国心)’입니다.” 접대원이 노래방 기계를 틀자 전주에 이어 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산과 강은 이 내 꿈 속에 있고 내 마음 항상 조국과 함께 있다네 타향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의 중국 맘 변할 수 없다네 … 나의 노래에 감동을 받았는지 많은 대표들이 눈물을 보이었고 후렴에 가서는 사업인원들과 대표 지어는 접대원 아가씨들까지 모두 기립하여 합창으로 이어지면서 장내의 무드는 클라이막스로 치달아 올랐다. … 이튿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빠개질듯이 몹시 아파났다. 아무리 명주라지만 과음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엇다. 하지만 이 날에 있을 행사를 생각하면 정신만은 올똘하게 차려야 했다. 아침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서니 각종 반찬 중 눈에 확 띄우는 것이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김치가 있었고 된장국은 아니었지만 된장국의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국(汤)”이 있어 그나마 쓰린 속을 달랠 수 있었다. (청도와 광주에서 온 미녀 축구팬 대표들과 함께 ) 아침식사가 끝나 얼마 안되어 북경으로부터 취재팀이 온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마중을 나가자 몇대의 승용차들이 대문으로 들어와 칙 하고 멈춰서더니 차안에서 기자들이 카메라와 각종 기재들을 들고 내렸다. 그들은 바로 중앙TV방송국과 국가급 매체의 기자들이었다. 이어서 중국 축구협회 상무 부주석이며 중국 축구운동관리센터의 위적 주임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두손을 높이 추켜들고 우리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각 지에서 온 축구팬 영수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축구팬 대표들을 영수라고 부르다니… 영수라고 하면 이전에 떠올려 봤던 중화 인민 공화국 창건자 모택동 주석만이 영수라고 했었는데 우리를 영수라니 우스꽝스럽고도 조금은 당황하기까지 하였다. 위적 주임은 우리 대표 한사람씩 악수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위주석님, 저는 연변에서 온 대표입니다. 그리고 이건 저의 명함장입니다.” 나의 명함장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는 “당신은 치과의사입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치과의사가 축구팬협회의 영수라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를 추켜올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념으로 집체사진을 찍을 때 나의 손을 꼭 잡고 중간좌석에서 자기와 나란히 앉게 하였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회의장소에 들어섰는데 맨 앞좌석에 내가 앉을 장소로 “연변대표석”이라고 씌어져 있었고 옆에는 “청도대표석”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청도대표는 여성으로, 청도 해우축구팬협회의 부 회장으로 활약하는 미녀축구팬이었고 성은 서씨였다. 회의가 시작되자 먼저 중국 축구운동관리센터 주임이며 중국 축구협회 위적 부주석이 발언하였다. 헌데 그의 첫 마디 발언이 나를 놓고 시작될 줄이야. “각 지에서 온 축구팬 영수 여러분, 오늘 제가 본 주제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한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제일 먼 곳에서 오시고, 더구나 조선과 러시아가 가까운 변강에서 오신 허헌 대표 말입니다. 그는 치과의사랍니다. 전국에서도 제일 많은 축구팬을 소유하고 있고 전국을 놀래울 정도로 연변축구팬들은 열정이 넘치고 문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연변축구팬 령수가 치과의사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응당 여러 대표분들이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봅니다.” 위적 부주석의 발언이 끝나자 모든 사업인원들과 대표들이 한결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한테 박수를 보냈고 그 답례로 나는 우리 민족이 할 수 있는 분명한 경례로 답사를 하였다. (중국축구협회에서 마련한 축구팬대표 좌담회 전경) 이날 회의의 주요 내용은 중국축구계의 많은 문제점을 적발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예하면 안보, 비리, 가짜볼, 검은 호르래기 등과 중국축구의 앞날에 대해 심각하고도 투철하게 고민해 보는 것 등등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연변축구계에서도 자주 나타나군 하는 현상이였다. 연변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그것도 우리 조선족들로 주로 무어진 축구팀이라는 명칭이 업신여겨서인지 우리 연변축구는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부분적 축구팬들은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심판과 상대방 선수들을 욕해대는 현상도 비일 비재로 존재하군 했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열거하면서,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나의 일가견들을 숨김없이 밝히었다. 회의에서 나의 발언은 큰 인기를 얻었다. 비록 한어발음이 서툴고 정확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집어내는 문제들은 확실히 보편적인 문제들이었고 또한 반드시 시정돼야 할 사항들이기 때문에 회의 참가자들은 명심해 청취하고 기록하군 하였다. 회의는 오전 오후로 계속 진행되었고 휴식은 오전 중간에 30분, 점심시간 2시간, 오후 30분이었는데 휴식시간마다 각 지의 대표들이 나한테로 찾아와서는 연변축구팀의 현황을 물어보군 하였다. 특히 고종훈은 지금 뭘 하는가고 묻는 사람이 제일 많았고 또한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대표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 청도에서 온 미녀대표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게 된 나는 기분이 한결 좋았다. (다음기 계속)
    • 스포츠
    2014-12-17
  • 연변축구 “동산재기”로 우뚝 솟으라!
    ■ 김철균 연변 프로축구의 “박태하”호가 “출항의 닻”을 달고 긴 고동을 울렸다. 총망히 재정비되었지만 새로운 기별도 육속 전해지고 있으며 얼핏 봐도 근사하고도 탄력있는 구단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여 흐뭇하다. 원 연변축구의 동량들이었던 문호일, 허파, 배육문, 조명 등 선수들이 대거 귀환했고 유명한 “국내호” 프리킥 대가인 서량이란 선수도 연변팀에 “점목”됐다. 최근 몇년간 가장 이상적인 포메이션을 형성할 조짐이다. 우선 스트라이커선에서의 문호일과 허파 등 “해결사”들의 맹활약이 기대된다. 이 중 문호일은 2006년 시즌 갑급리그 골잡이 2위를 기록한 “킬러”로 세월의 흐름에도 크게 녹쓸지 않는 플레이를 보이는 것 같으며 어찌보면 경험의 축적으로 보다 더 성숙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주력수비로 국가청년팀에까지 발탁된 적이 있었던 조명 선수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연변팀의 갑급입문 초기, 조명의 변선공 던지기는 전국의 일품이었다. 그가 변선공 던지기를 한다 하면 흔히 던지는 공이 상대방 문전 중앙에 가 떨어지면서 동료한테 슈팅기회를 자주 만들어주군 했다. 2004년 연변팀은 중국축구 을급리그 북방구 경기에서 한 한번의 패전도 없이 그 해의 10월 말 정주에서 있은 8강전에 합류하며 갑급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하다면 문호일과 조명은 당시 갑급진출에 성공할 때의 공신이다. 10년이 지난 오늘 이들 두 선수가 재차 연변팀의 갑급진출을 위해 그라운드에 나선다는 것 그 자체가 자못 큰 뜻을 담고 있다. 최정예 멤버들의 합류와 명년도의 을급리그, 이것이 묘한 일치가 될 수 있겠다는 분석도 조심스레 해본다. 거기에 한국적 박태하 감독의 특출한 아이디어와 용병술이 기대되며 명년 을급리그에서의 연변팀아 “천하무적”의 구단으로 2004년의 굴기를 재현시킬 수도 있겠다는 분석이다. 한편 연변축구구락부도 “머리가 보다 명석”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의 강등을 통해 문제점을 많이 찾아낸 것 같고 또한 “자아반성”도 충분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난해 연변팀의 강등이 100%의 나쁜 결과만 초래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평가를 하고 싶다. 이는 결코 변명이 아닌 객관적 논리와 축구발전의 법칙으로 받아들여 졌으면 좋겠다. 왜냐인가 하면 강등의 쓴맛은 비록 가슴아픈 건 사실이나 이 강등이 연변팀한테는 그냥 비극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아반성하고 해결점을 찾는 “약”이 됨과 더불어 동력이 되고 또한 “동산재기”의 밑거름으로 될 수 있겠다는 활기찬 기대를 가져보는 바이다. 새해의 시즌을 앞두고 예감이 괜찮다는 기분이다. 첫 스타트가 좋다. 그리고 이제 있을 과정도 더불어 좋겠다는 생각이며 결과는 더더욱 이상적이여서 명년도 갑급복귀 목표가 꼭 현실로 도래하리라는 확신성을 가져본다.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 스포츠
    2014-12-14
  • 연변천양천 명년리그 위한 준비 가동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14일, 2015년 갑급리그 복귀를 슬로건으로 내건 연변 장백산팀(50명)이 신임감독 박태하의 인솔하에 동계훈련 행으로 연길을 떠나 해남 해구에 있는 훈련캠프로 향했다. 박태하 감독에 따르면 동계전훈 제1단계에서는 체력위주의 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연변팀은 해남 해구에서 60여길간 훈련, 구정은 연길로 귀환해 쇠게 되며 이어 2차 전훈으로 한국으로 향발, 한국전훈을 통해 최종 멤버를 확정한 뒤 2015년 시즌 제1라운드에서 맞붙게 될 팀 지역으로 이동해 막바지 담금질에 들어가게 된다. 한편 연변팀 코치 왕건에 따르면 최근 대량의 정예멤버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원 연변팀에서 뛰었던 문호일, 배육문, 허파와 조명 등이 고향팀으로 돌아와 그라운드에 나서게 되며 장춘아태에서 활약하던 연변적 선수들인 이광, 이상 형제도 고향팀의 초청에 응했다. 그리고 중국축구무대의 이름난 플리킥대가이며 상해신화팀에서 뛰던 서량 선수가 연변 축구구락부 관원의 설복에 의해 새해 연변팀 전포를 입고 뛸 전망이다. 한편 지난 10일, 연변 장백산축구구락부는 한국적 축구인 박태하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최은택, 조긍연에 이어 세번째로 연변축구의 “한국인 감독시대”를 열었다. 박태하 신임감독은 1968년 5월 29일 출생, 전 한국국가대표팀의 선수, 2011년 12월까지 한국국가축구대표팀의 수석코치였으며 그 뒤엔 FC서울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었다.
    • 스포츠
    20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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