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허성운 칼럼] 피밭골과 비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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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운 칼럼] 피밭골과 비파골

기사입력 2019.05.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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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지명에는 연변역사의 굴곡이 화석처럼 새겨져 있다. 돈화시 흑석향 경독耕讀촌 지명은 최초에는 함경도 포수들이 이곳에 들어와 무더기로 피낟이 자라는 것을 보고 피밭굽이라 불러 온데서 기원된다. 그 후 일본인과 경상도 상주, 강원도 여러 지역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름이 비파琵琶목으로 붙여졌다가 교토京都라는 지명으로 굳어진다. 일본 옛 도시 교토京都와 일본의 오랜 불교사찰들이 밀집하여 있는 비와호琵琶湖 이름으로 명명하여 의도적으로 땅이름을 왜곡하였다. 그 시기 흑석향 지역의 지명을 살펴보면 나라촌奈良 하가산촌和歌山 시가촌志賀 미에촌三重 등 일본 긴키지방 지명들을 판박이로 옮겨와 이식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함경도 포수들은 그때로부터 일본군과 저항하여 싸우기 시작했으며 1945년 가을 목단령 고개길 다리목에서 일본군 소분대를 전멸시킨다. 죽은 시체를 쌓아 무덤을 만들었는데 마치 작은 산처럼 솟아 있었다. 80년대 초에 들어와 감쪽같이 무덤이 사라지고 다시 평지로 바꿔졌다. 항일전쟁  끝난 후 이들 포수들은 마적과 손잡고 토비소굴에 들어가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곡파가 쓴 “임해설원”의 토비무리에는 함경도 포수형상이 파편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맥락은 이런 흐름에서 엿볼 수가 있다. 해방 후 교토京都촌은 경독촌耕讀으로 땅이름을 바꾸어 표기한다. 
  
항일무장투쟁사에 한 획을 그은 봉오동전투에는 비파골琵琶溝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원래 이름은 피밭골로서 일본군이 의도적으로 혹은 착각하여 군용지도에 비파골로 표기하면서 오늘날까지도 국내 학자는 물론 국외 학자들도 비파골이란 그릇된 지명을 그대로 옮겨 쓰고 있다. 1945년 가을 일본군은 투항하였지만 피밭골 사람들은 그해 겨울에 가서야 광복소식을 소금장사한테서 듣고 알게 된다. 50년대 말 숱한 농촌 인력이 쇠물을 녹이는 일에 동원되어 농사가 흉작이 들었을 때 인근 마을 사람들이 피밭골로 몰려들어와 피낟을 뜯어 간적 있었다.  

연길해란강골프장 자리는 원래 관청메 (일명 계림촌)라 불리던 마을 옛터이다. 겹겹이 산으로 에워싼 마을은 무릉도원처럼 남으로 해란강이 북파하여 흘러들어 오고 마을 앞으로 작은 냇물이 동네를 감돌며 해란강과 합류되어 비켜나가는 형국이다. 마을 뒤로는 야트막한 동산이 솟아있어 전형적인 금계포란형 풍수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에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전개되어 온 마을 취락들. 그 위에 겹겹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인문지리경관은 우리가 보존했어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이었으나 2000년 문턱에 들어와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복원하기 힘든 곬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다. 관청메에는 절당께 진사래밭 술기고래 닷돈고래 세가달물 사물깨 삼밭구석 부싯돌밭 매방재데기와 같이 선인들이 삶의 흔적이 깊숙이 슴배인 땅이름들이 널려있다. 그 가운데 큰 피밭골과 작은 피밭골은 이미 해란호에 그 입구가 잠겨버리면서 력사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피밭골 지명을 쫓아 선인들의 발자취를 조심스럽게 더듬어가노라면 피낟농사로부터 벼농사로 이어지는 이들의 운명적인 삶을 돌이켜 보게 되며 긴 세월동안 입을 다물어 버린 진실과 깊숙이 묻혀있는 역사와 우리가 넘어 가야할 장벽과 마주 서게 된다. 지난시기 우리는 눈앞의 경제리익에 매달리어 외래문화를 번역복제하기에 급급하다보니 정작 자기 전통문화유산을 깊이 있게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였다. 이는 결국 피밭골이 피파골로 왜곡되고 고유의 마을문화자원을 반듯하게 본존하지 못하고 그 설자리조차 잃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산천초목의 경관은 선인들의 발자취가 새기여 풍경의 한계를 뛰어넘고 대대손손 이어진 풍토는 천년세월을 버텨나간다. 선인들이 손발이 닳도록 황량한 황무지를 뚜지고 뚜지어 기름진 옥토로 바꾸어놓은 력사를 밝히는 일을 미루고 미루다 보면 우리는 영영 변화된 세상을 보지 못하고 피밭골과 같은 땅이름들을 서서히 잊힐 수가 있는 것이다. 늦게라도 과거를 위해 미래를 위해 그리고 지금을 위해 우리는 하루속히 고유한 전통문화 가치를 바로세우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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